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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독자가 뽑은 97년 인권 10대 뉴스


<인권하루소식>은 12월17일부터 23일까지 인권하루소식 독자와 사회단체 활동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작업을 벌여 97년 한해동안 발생한 국내 인권사건(총 54문항) 중 인권 10대뉴스를 선정했습니다. <편집자주>


<설문응답자 분포>
설문응답자 총수 142명
인권, 사회단체 활동가 54명
일반독자(학자, 종교인 포함) 56명
변호사 14명
언론종사자 18명



새벽날치기 잠재운 총파업 저항
87년 이후 최대의 국민저항

연초 민주노총이 주도한 ‘총파업투쟁’은 인권하루소식 독자가 선정한 97년 최대의 인권뉴스다.

연인원 3백60만 명의 파업 돌입. 파업기간 총 24일. 종교인․교수 등 양심적 지식인 계층 및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연일 계속된 시위 등. 이번 총파업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의 국민저항으로 기록된다.

총파업의 직접적 계기는 노동법․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였다. 96년 12월 26일 새벽 미명을 틈타 기습적으로 진행된 날치기는 온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으며, 정리해고의 합법화에 따른 생존권 위협은 1천2백만 노동자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안기부법의 개정 역시 각계 지식인 계층의 광범위한 저항을 초래한 요인이었다. 무엇보다도 총파업투쟁을 가능케 한 것은 80년대 이후 끊임없이 성장해온 노동운동의 잠재력이었다. 그리고, 노동운동계의 숙원으로서 95년 건설된 민주노총은 이번 전국민적 저항의 실질적 사령탑 역할을 수행했다.


12․12, 5․18사건 대법원 유죄확정
8개월만에 대통령 특별 사면 면죄부

지난 4월 17일, 대법원은 “12․12 및 5․18 사건은 명백한 군사반란,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행위였다’며 유죄확정 판결을 내림으로써 전두환․노태우 등이 학살과 내란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이 판결은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 후 억압과 분노의 세월 17년만에 이뤄진 것으로 검찰의 두 차례에 걸친 불기소 처분, 국민들의 줄기찬 투쟁 그리고 그에 따른 5․18 특별법 제정, 재수사와 기소라는 우여곡절 끝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유죄’라는 사법적 결론은 8개월만에 ‘사면’이라는 정치적 해결의 뒤통수를 맞게 되었다. 특별사면과 석방이라는 무대에 등장한 전․노는 참으로 당당하게 국민의 집중된 시선을 받아냈다.

전․노 씨 등에 대한 사법처리 후에도 시민․사회단체들은 쿠데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반헌법적 행위에 대한 정정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 및 보상 등을 포함한 완전한 과거청산을 추구해왔다. 또한 전․노 사면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혀왔다. 따라서 뉘우침 없이 당당하게 돌아온 그들을 보며 어떤 국민적 대통합을 이룰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국을 덥힌 북한동포돕기 물결
정부의 외면과 방해로 얼룩

굶주림에 퀭한 북한 어린이의 눈망울이 전국민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한해였다. 95년과 96년 연이은 대규모 홍수에다 올해의 극심한 가뭄까지 할퀴고 간 북녘의 굶주림은 실로 처참한 것이었다.

여기에 동포애와 인도주의를 실천하려는 손길이 모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반쪽의 굶주림을 외면할 수 없는 그 당연한 노력은 실로 분단 50년만에 벌어진 민족 화해 운동이자 통일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이 물결 속에서 정부는 먼발치에 있었고, 적선은커녕 쪽박을 깬다는 지탄을 면치 못하였다. 즉각적인 북한식량지원 촉구에 미지근한 태도를 취했을 뿐 아니라 의도적인 판깨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돕기 문화공연을 경찰력으로 막은 일이나 민간의 모금활동을 수사하겠다고 나선 일이 대표적인 예이다. ‘황장엽 씨 망명’의 대대적 선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 ‘베트남 지뢰밭 실종 북한 식량 난민’에 대한 외면은 민간의 동포돕기 노력을 무색케 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남성혈통주의 벗어난 평등한 결혼
헌재, 동성동본 결혼금지 위헌 결정

지난 7월 16일, 헌법재판소는 민법상의 동성동본 금혼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20여만 명의 부부가 ‘혼인 외’의 굴레를 벗고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재판은 95년 5월,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으나 거부당한 부부들이 낸 불복신청과 위헌법률 제청신청으로 시작되었다. 그후 2년여 동안 유림의 격렬한 반발과 우생학적인 문제제기 등 갖가지 주장이 빗발치듯 오갔다.

이 속에서 고심을 거듭한 끝에 재판부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는 “혼인의 범위를 남계 혈족에만 한정해 성차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의 원칙에도 위반된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이러한 결정은 무엇보다도 남녀평등권을 중심으로 논리를 풀어간 점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동성동본 결혼의 허용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에 대한 합리적인 규정을 마련할 과제를 남겼다.


절정에 이른 한총련 죽이기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 탈퇴와 해체 선언

지난해의 연세대 사태에 이어 발생한 ‘프락치 용의자 치사사건’은 당국의 한총련 죽이기에 기름을 부었다. 급기야 당국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이를 ‘해체시키겠다’고까지 선언했다. 이어 미탈퇴 학생에 대한 전원 구속이 방침이 선포됐고, 마구잡이 연행과 대학생 신분으로는 어떤 집회에도 참가할 수 없는 검문검색과 원천봉쇄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무리한 연행이 김준배(한총련 투쟁국장) 학생의 죽음을 몰고 왔다.
한총련에 대한 국민 정서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시민․사회단체도 한총련의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의 대응을 지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한총련의 허물을 정부의 위기탈출용으로 이용하며, 폭력적 대응으로 치달아간 정부에 대한 반감은 깊어갔다. 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을 무시하며 마구잡이식 한총련 사냥에 나선 불법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벼랑으로 내몰린 봉급생활자
퇴직금지급 제한, 실업 양산 위기

97년 한국경제는 파산선고를 받았다. 재벌체제로 대표되는 한국의 자본은 연초 한보사태를 시작으로 부도사태 행진을 벌였으며, 이어 외환위기․금융위기 상황을 초래한 끝에, 급기야 IMF 구제금융을 받는 경제식민지로까지 한국경제를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 와중에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은 계속 벼랑으로 내몰렸다. 정권초기 2% 수준이던 실업률이 97년 상반기 들어 3% 선까지 증가하는 등 고용불안은 확산됐으며, IMF의 개입과 정리해고제 도입 계획 등으로 인해 실업의 고통은 사회전반을 짓누르게 되었다.

한편, 8월 21일 헌법재판소는 “기업의 파산시 퇴직금을 우선변제하는 것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려 1천만2만여 봉급생활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우선 변제되는 퇴직금의 범위를 최종 3년간의 근로에 대해 발생한 것으로 한정”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임금과 더불어 봉급생활자의 주된 생활유지 수단인 퇴직금마저 제대로 받기 어렵게 되면서, 노동자․서민들의 삶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떠밀리고 있다.


전자주민카드 국회통과
전자감시시대 도래 하는가

지난 11월 17일 전자주민카드 시행의 근거 법률인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정부는 94년 2월 행정쇄신위원회의 기획과제로 전자주민카드 사업을 선정한지 3년만에 근거법률을 마련한 셈인데, 2,735억원이나 드는 사업을 국민의 의견수렴과 같은 동의절차를 무시한 채 집행했다는데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전자주민카드는 △개인정보 집중에 따른 정보유출의 위험성 △프라이버시권 침해 △소수에 의한 정보독점과 이에 따른 감시·통제 가능성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전자주민카드 시행 여부는 안개에 싸여 있다. 12월 14일 대통령후보초청 합동토론회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으나 집권자의 강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특단의 조치나 내년 임시국회에서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 없이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검열의 칼, 재단에 오른 인권영화제
인권운동가 서준식 구속

지난 해 10월 24일 영화에 대한 사전심의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그러나 사전심의를 강제하는 음비법 17조와 사실상 심의기구인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의 탄생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딛은 중·소 영화제들은 검열의 칼날 앞에 영화제 존립 자체가 위협받았다.

올해만 해도 서울다큐멘타리영상제, 시민영화제가 상영 작품을 대거 취소했고, 독립영화제 인디포럼97은 파행을 겪었다. 또한 퀴어영화제는 무산되었고, 인권영화제는 당국의 상영장 폐쇄와 관련자 구속에 맞서 항의연장상영에 이르는 기나긴 고난의 행군을 감내해야 했다.

급기야 검찰은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제주 ‘4‧3 양민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드헌트>를 이적표현물로 규정하며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의 위반 혐의로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서준식 씨를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영장실질심사제 10개월만에 개악
피의자 인권보장 큰 폭 후퇴

구속영장실질심사제도(영장실질심사제)는 첫 시행으로 96년 인권뉴스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었다. 그러나, 10개월만의 중도하차라는 ‘치욕’으로 다시 97년 인권뉴스에 오르게 되었다.

‘불구속 수사 및 재판’이라는 형사소송법 대원칙의 정착이라는 평가를 받은 영장실질심사제는 수사초기 경찰의 고문과 가혹수사가 대폭 사라졌다는 구체적인 결과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실제로 영장실질심사제 시행 이전보다 구속자 수가 25%가 줄어듦으로써 형사피의자 25%가 불필요한 구속을 면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11월 국회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됨으로써 ‘구속영장 발부시 담당판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피의자 심문할 수 있다’는 임의적 실질심사가 ‘피의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심문할 수 있다’는 형식심사로 바뀌게 되었다.


헌재, 보안관찰법 합헌 결정
서준식․함세환․방양균 사법처리

11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보안관찰법에 대한 합헌결정을 내렸다. 또한 “보안관찰 대상자가 신고 의무를 지고 있지만, 이는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에 제한을 거의 가하지 않고 있으며,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유만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지난 91년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최초로 구속되었고, 올 11월 또다시 구속된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씨의 문제제기에 대한 응답이다. 서씨는 △전향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감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자신의 주거, 가족사항, 교우관계, 여행, 주요 활동상황등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거주이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및 통신의 비밀을 침해한다등의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었다.

서씨 외에도 9월 함세환(출소 비전향 장기수) 씨가 각종 집회에서 자신의 북한송환 문제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11월 방양균(서경원의원 방북사건으로 복역출소) 씨가 출소신고 등 신고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불구속기소 되었다.


설문대상별 10대 뉴스 반응도

⑴ 노동법 날치기에 맞선 총파업투쟁 (90.1%)
⑵ 인권운동가 서준식 씨 구속 (77.4%)
⑶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 (68.3%)
⑷ 전자주민카드 관련법 국회 통과 (61.9%)
⑸ 북한동포돕기운동 범국민적 확산 (55.6%)
⑹ 경제파탄, 봉급생활자 생존권 위기 (40.8%)
⑺ 대법원, 전․노 유죄 확정 (39.4%)
⑻ 영장실질심사제 열 달만에 개악 (33.0%)
⑼ 헌법재판소, 동성동본 결혼금지 위헌 결정(27.4%)
⑽ 헌재 보안관찰법 합헌 결정 (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