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위임과 동원을 넘어, 정치적 권리 확장으로

민주당은 개혁세력이 아니라, 反 자유한국당일 뿐

지난 한 해 내내 국회가 매달려온 신속처리안건 중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21대 총선이 4월에 치러지고, 공수처는 7월이면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원내정당들의 연합으로 법안이 통과되면서, 마치 반보수연합으로 대단한 개혁입법을 한 것인 냥 이야기된다. 민주당은 내심 2017년 촛불대선이 재현되기를 기대하면서 21대 총선체제로 전환했다. <한겨레신문>은 여론조사를 인용하면서 이번 총선에선 '정권심판'보다 '적폐청산'이 더 중요한 투표기준이라고 보도했다.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고 결국 탄핵까지 당한 박근혜 정권을 '적폐'로 규정하고 이를 청산하는 것은 새롭게 출범한 정권의 1년차 목표는 될 수 있다. 그런데 출범 3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민주당 정권이 스스로를 개혁자의 위치에 놓는 것은 영 어색하다. 원내 1당이면서 정부를 운영하고 있는 정치세력인 민주당에 대한 심판과 평가가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는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대체 '적폐청산'이 무엇이길래?

적폐청산과 개혁, 무엇을 청산하고 개혁했나 

'적폐'는 '국정농단' 사건을 겪으며 박근혜 정권 시기 정치, 사회, 경제 각 분야의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고, '적폐청산'은 탄핵촛불의 요구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첫 번째 국정과제로 '적폐청산과 개혁'을 내걸었고 검찰, 경찰, 국정원과 같은 권력기관 개혁을 추진했다. 그 중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핵심 개혁대상이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이는 정권의 명운을 건 과제가 되었다.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로 20년 넘게 끌어 온 민주주의의 오랜 숙원이 풀렸다며 민주주의가 일보 전진할 거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민주주의는 모르겠지만 민주당의 숙원이 풀린 건 분명해 보인다. 

공수처는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고위직 공무원과 경찰을 수사대상으로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쥐고 있는 또 다른 강력한 사정기관이 탄생한 것이다. 정부는 검찰의 기소독점을 깼다는 것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면서 자연스레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검찰이라는 거대권력을 제어한다면서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든 것이다. 당장 공수처는 어떻게 감시받고 견제되는가? 수사권을 경찰에게 일부 넘기는 검경수사권 조정도 마찬가지다. 조정안이 통과된다면 거대한 경찰조직이 단독으로 수사를 개시하고 종결하는 수사권을 갖게 되는데, 우리가 아는 경찰은 정권과 자본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 온 충직한 하수인이다. 검찰의 권한은 조금 줄었을지 몰라도, 공수처/검찰/경찰로 이루어진 국가형벌기관의 힘은 더욱 커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공권력의 문제는 권력기관의 힘이 미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강력한 그 힘을 가진 자들의 편에서, 남성들의 권력으로 휘둘러 온 게 문제였다.  

부당한 수사와 기소라는 공권력의 문제는 또 다른 공권력을 만든다고 해결될 수 없다.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기초한 독립적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정권교체기마다 이벤트성으로 꾸려지는 과거사위, 개혁위가 아닌, 권력기관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가 가능한 시민위원회가 제도화되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 원안에 있던 기소심의위를 도리어 삭제했고, 경찰과 검찰의 시민위원회를 실질화하는데는 관심이 없다. 지난 정권 시기 맹활약한 국정원에 대한 개혁은 진행된 게 거의 없고, 기무사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간판만 바꿔달았다.  

시민의 정치적 권리 확장에는 관심 없는 민주당의 태도는 이번 선거법 개정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정당득표율을 전체 의석수에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면서, 현행 선거제도를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결국 비례대표 의석 47석은 그대로이고, 이마저도 30석에 대해서만 연동률 50%를 적용하게 됐다. 거대 양당이 기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17석을 대부분 차지하고 소수정당들이 30석을 나누는 형태가 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적자를 자처하며 언제나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지만,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선거를 넘어서지 못하며 그마저도 정책과 이념이 아닌 인물선거와 기득권 지키기에 머문다.  

정치 이벤트 기획사,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정책과 이념에 따른 정당정치보다는 인물중심의 기득권 정치는 한국 정치의 오랜 문제였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가 모든 정책의 표준이 되면서 더욱 강화됐다. 남북관계를 제외하고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계열의 정당들은 정책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대선후보 국민경선제를 시작으로 노무현-문재인과 같은 정치지도자의 매력에 기대는 이벤트 정치를 시작했다. 자유한국당도 박정희 향수를 자극한 박근혜를 필두로 이러한 경향에 동참했고 정치는 정당이나 정책이 아니라, 노사모-박사모, 친노/친문-친박/친이와 같은 말들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청와대는 역대 대통령들의 단골 멘트인 정쟁만 일삼는 국회라는 비난을 반복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강조했다. 박근혜 탄핵 당시 문제가 됐던 '제왕적 대통령제'는 개혁 의제조차 되지 못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힘없는 백성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해결해주는 '현대적 군주'의 모습을 재현한다. 그래서일까? 정치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무한신뢰와 애정은 곳곳에서 넘쳐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단체의 성명서에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관료들의 가짜통계'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조국 사태'는 그 정점에 자리한다. 광화문 태극기 집회를 두고 우리공화당과 경쟁하는 자유한국당, '조국수호' 집회로 맞불을 놓는 민주당의 모습에서 우리는 시민의 정치적 권리 확장, 배제되었던 정치적 주체의 등장을 보기보다는 기꺼이 주권을 위임하는 동원정치의 전형을 보게 된다.  

위임과 동원을 넘어, 정치적 권리의 확장으로  

적폐청산과 개혁의 실상이 이러한데도 민주당은 여전히 개혁의 상징이다. 어쨌든 자유한국당에 반대하는 한 개혁세력이 된다. 지난 20년 동안 번갈아가며 집권해 온 두 정치세력은 한국 사회를 신자유주의에 맞춰 완전히 다른 사회로 만들어버렸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유산은 대의제 선거제로만 남았고, 신자유주의는 경제프로그램을 넘어서 정치, 사회, 문화 각 영역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고 '효율성'이라는 하나의 신호에만 반응하는 사회체계를 만들어냈다. 2002년 이후, 주기적으로 불타올랐던 광장의 촛불에는 이러한 한국사회에서의 삶의 불안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언제나 함께 있었다. 2016년 탄핵촛불도 그랬다.  

이를 감지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노동존중사회를 내세우며 공공부문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추진했지만, 사실상 정책 실패를 자인하며 '혁신과 투자 활성화'라는 과거의 경제정책으로 회귀했다. 애초에 자본이 만들어낸 구조화된 불평등을 바꿀 계획이 없었던 정부에겐 당연한 결과였다.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삶의 불안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건 공정한 '경쟁'이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부는 노동자들이 단결해 행동하고 교섭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를 확장하기는커녕 ILO 협약을 핑계되며 제약하려고 한다. 정부발의로 제출된 노조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고용관계가 다변화되고 다양한 형태로 노동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오히려 노동삼권은 직종과 고용형태를 넘어 대폭 확장되어야 함에도 말이다. 

18세로 선거연령이 낮아지면서 각 정당과 언론은 50만 명의 새로운 유권자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교육청은 참정권 교육을 새롭게 준비하겠다고 한다. 선거권은 참정권의 일부일 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은 공동체의 평등한 시민으로서 존중받고 관계 맺는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권리이며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득표수로 18세 유권자들을 계산하기 전에, 지금도 한국 사회가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을 평등한 시민에서 배제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들이 외치는 것은 공동체의 평등한 시민으로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이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차별과 폭력 경험들을 온 몸으로 말해왔지만, 한국 사회는 이를 들을 수 없었다. 여성은 평등한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이야기는 언제나 특수하고 사적인 사건일 뿐이었다. 이주민, 성소수자들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바로 그런 소수자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평등한 시민에서 배제되어 온 이들이 보장받아야 할 정치적 권리를 명시하고 선언하는 것이다. 

평등한 '우리'를 구성하기 위한 세력화가 필요하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매우 달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 살벌하게 싸운다고 그 차이를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다. 집권 세력으로서 이들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적어도 평등한 시민의 정치적 권리 확장에는 관심이 없는 건 분명하다. 모든 걸 팽개치고 서로 격돌한 검찰개혁을 봐도 그렇고,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이들의 태도를 봐도 그렇다. 재벌 지원과 노동자 권리 탄압에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지방선거, 총선, 대선이 번갈아오면서 우리는 유권자로서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것 같지만, 이들이 만들어 놓은 현행 선거구조에서는 그들에게로 합법적 권력위임이 승인될 뿐이다. 정치와는 상관없는 호불호에 따른 인기투표가 아닌, 평등한 '우리'를 구성하기 위한 정치와 운동, 세력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