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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꿰고 깨고] 어느 해보다도 격동적일 2009년을 바라보며

새로운 촛불들이 타오르고 있다. 일제고사를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려준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이 교사들을 징계한 것에 항의해 매일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수천의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있다. 17일에는 수천의 전교조 교사와 시민들이 촛불을 밝혔다. 한편에서는 서울시교육감 공정택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붙이면서 구속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에서는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촛불 산책이 진행된다. 촛불을 들고 한두 명씩 광화문 사거리를 거쳐서 경찰청 앞을 돌아온다. 한두 명이 촛불을 들고 그냥 산책하듯이 경찰청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니 경찰이 막아서도 막을 명분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보다 재미난 일이 매일 밤 명동에서 벌어진다.
지난 12월 9일부터 다음 카페 ‘널 기다릴게’가 주최하는 ‘무한도전×2’가 진행되는 것이다. 매일 2배씩 인원을 늘려 가는데 오는 12월 21일 4096명을 모아낸다는 식이다. “MB에게 열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모여서 누구 욕도 하고 우리끼리 놀기도 하고 재밌는 퍼포먼스도 하고 뭐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그것도 하고 그런 거죠….”라는 카페지기의 설명처럼 ‘MB OUT'이란 글씨가 새긴 코스프레 의상을 입은 춤도 추고, 기차놀이도 하고, 가위바위보 놀이도 한다. 경찰은 마이크를 쓰면 집회다, 구호를 외치면 해산하겠다는 등의 엄포를 놓지만, 모인 사람들은 아랑곳없다. 실제 이런 기세라면 목표는 달성될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론 기존의 촛불들은 여전히 타오른다. YTN 앞에서, 기륭전자 앞에서, 강남성모병원에서 촛불은 타오르고, 지역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촛불들이 어떻게 다시 모일지, 모이게 되면 얼마나 위력이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은 분노를 삭이며 조용히 타오르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부당징계에 항의하여 촛불집회[사진: <교육희망>]

▲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부당징계에 항의하여 촛불집회[사진: <교육희망>]



지금은 조용히 타오를지라도

19일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지 1년이 된다. 정식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한 지는 채 10달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많은 부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지지율은 20%대를 맴도는 이명박 대통령이고, 100일 넘도록 계속되었던 촛불시위로 퇴진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는 20년 동안의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뒤로 돌리는데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되짚어 봐도 국민들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했고, 촛불시위를 진압하는데 성공했으며, 언론장악도 계속 저항하는 YTN 노조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는 있어도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들어갔다. 인터넷 네티즌들에 대해서도 검찰과 국세청, 감사원까지 동원하여 집요하게 수사를 벌여서 위축시키는데도 성공했고, 국정원을 비롯한 공안기구들의 위상을 강화하는데도 성공했다. 생존권의 위협을 받는 노동자와 서민, 민중들의 생계는 젖혀두고 2% 부자와 재벌들만을 위한 감세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밀어붙이기 하여 국회에서 예산안으로 관철시켰다. 교육문제에서도 사교육비를 줄이겠다, 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경쟁교육 시스템 도입을 위해서 열을 올리고 있다.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먼 보수우익만의 이념을 강화하는 역사 교과서 강제 개정 작업,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으로 말미암은 금강산 관광 중단과 개성공단의 사실상의 중단 사태까지 불러왔다. 10년간의 남북 화해 무드는 찾아볼 길이 없게 만들었다.
어느 것 하나 후퇴하지 않는 것이 없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로, 시장중심 경제는 관치경제로, 법치는 인치로, 자유는 원천봉쇄로, 평등은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로, 정의는 거짓과 위선으로, 다양성은 획일화로, 남북화해는 남북대결로 뒤바뀌었다(여전히 신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로, 경찰국가는 더욱 강화된 경찰국가로, 사대주의는 더욱 심화된 사대주의로 남았고, 지금의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닦아놓은 연장선 위에 있으므로, 이들 정부를 책임졌던 이들과 이명박 정부는 계급적으로는 일맥상통한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집권여당 정치인들의 입에서 인권은 사라진 지 오래며, 그들은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만 인권을 입에 올린다.

지나치게 계급적인 지배세력들

이제 국회에서 ‘MB 노믹스’를 실현할 합법적인 기반이 될 경제 관련법과 국민적 저항을 초기부터 철저하게 진압할 수 있는 수단인 공안탄압을 위한 악법을 통과시키면 그의 통치기반은 다 만들어지는 셈이 된다.
지난 주 부자들을 위한 감세 예산안, 그리고 이른바 형님 지원 예산안, 공안통치 강화 예산안이란 비판을 받았던 예산안을 한나라당이 민주당과의 약속도 깬 채 밀어붙이기로 성공하고 나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애초의 계획을 바꾸어 버렸다. 애초 이른바 이념법안이라고 불린 공안탄압 강화 법안들이나 한미FTA 비준안도 속전속결로 처리해 버리겠다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온 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돌격내각이니 입법전쟁이니 하는 소리를 연신 내지르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전초전으로 의심받는 4대강 유역 사업과 관련해서는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끼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한나라당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해서라도 필요한 법안들은 일사천리로 처리할 기세다.
여기에 민주당이 결사항전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도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말에서 결기를 느끼지 못한다. 이미 예산안을 대강 합의해주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2월 4일 민생․민주 국민회의가 주관한 정당, 원로, 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연말까지 예산안 처리를 미루면서 싸우겠다고 공언을 했으면서도 바로 그 다음날 한나라당과 예산안 합의 처리를 약속해버렸다. 거기에 열 받은 국민회의 관계자들이 항의했지만 한번 합의해준 예산안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가게 되었다. 겨우 의석 5석의 민주노동당이 결사항쟁으로 통과를 저지하려고 몸으로 막아섰지만 수적인 열세는 면치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로서 그 존재감을 오랜만에 확인시킬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다시 민주당이 불신의 그림자를 키우고 있다. 한미FTA 비준이 당론이라고 지도부가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비준을 요구하면 30일 이내에 처리한다는 어정쩡한 단서를 달고서.
당장 악법들을 막아야 하는 시민사회로서는 이만저만 골치 아픈 상황을 맞은 게 아니다. 민주당은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집권했던 시기에 당론으로 처리했던 한미FTA 비준안, 비정규악법 제정, 통신비밀보호법 개악과 인터넷 실명제 도입 등에 대해서 반성과 사과, 철회를 하는 등으로 입장의 변화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석이라도 아쉬운 판에 82석의 야당과 사안별 공조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하자니 신뢰할 수 없는 정당과 어디까지 공조를 해야 하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다. 민주당이 시민사회를 믿게 하려면 한나라당이 국가보안법의 상정을 막을 때처럼 법사위 점거농성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2004년 한나라당은 당시 박근혜 대표의 지휘 아래 무려 45일 동안 국회 법사위를 점거 농성했다. 그런 결기라도 있어야 소수 야당으로서 제 구실을 하겠지만, 기대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워낙 이번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처리하려는 법안들이 매우 비중이 높은 것들인지라 이를 막을 투쟁전선을 국회 앞에 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객관적인 사실이다. 올해 연말까지 국회 내부는 어쨌건 여야의 격돌이 벌어지고, 국회 밖은 법안을 저지하려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천막, 노숙농성이 이어질 전망이다. 경찰은 한사코 여의도에 천막 치는 것을 저지하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에 진짜 전쟁은 국회 앞에서 벌어질 수 있다. 여의도 국회 안에서 처리되는 법안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국회 밖에 저항세력들을 결집시키는데 성공한다면, 진보운동진영은 새롭게 탄력을 받아서 이후 투쟁을 준비할 수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러기에는 진보운동단체들의 결들이 너무 다르기는 하지만.

악법 저지 투쟁으로 들끓을 여의도

그리스에서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첫 대중행동이 일어났다. 그리스 청년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상황이다. 프랑스에서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만연한 실업문제이고, 줄어들기만 하는 일자리문제다. 신자유주의가 결과한 이 참혹한 현실 앞에서 이제 이들은 당연하게도 저항에 나섰다.
한국이라고 예외일까? 11월 통계로 잡히는 것만으로도 실업자와 일자리가 있어도 불안정해서 재취업해야 하는 사람들이 무려 317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주례 라디오 방송에서 한 마디 질러 주었다. 눈높이를 낮추고 도전하는 투지를 갖추라고 한다. 그는 또 미국의 GM 자동차를 예로 들면서 GM이 망한 것을 노조 요구를 모두 들어준 탓으로 돌렸다. GM이 망한 원인을 노조로 돌리는 대통령은 아마 이 사람밖에 없을 것이므로 그의 청년실업 문제 해법도 그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미 차오를 대로 차오른 청년실업 문제, 그리고 이미 너무 확대된 비정규직 노동, 거기에 심화된 빈곤이 있는 위에다가 이미 시작된 자동차 3사와 공기업에서의 구조조정, 그로 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업 문제까지 엎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비정규악법을 개악하겠다고 하고, 그렇잖아도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더 낮추겠다고 최저임금법을 개악하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너무도 계급적인 지배세력들의 치졸한 기득권 지키기와 몰아주기가 가져올 분노는 어느 정도일까.
미국이 경기침체에 확실히 들어섰고, 중국의 불황도 이미 예고되어 있는 상황이고, 경제를 안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예고하듯이 오는 2,3월 위기설이 현실로 닥쳐올 공산이 크다. 넘쳐나는 실업자,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정화, 전체 고용노동자의 88%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몰락으로 인한 기업들의 줄도산 등이 겹쳐질 때 과연 그리스의 상황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올해의 촛불은 아무래도 중산층적인 성격이 강했고, 그래서 조금은 여유가 있었을지 몰라도, 만약 내년에 촛불이나 그 이상의 행동이 터져 나온다면 그것은 삶의 벼랑 끝에서 터져 나오는 계급적으로도 색다른 저항이 될 공산이 크지 않을까. 아마도 이런 저항들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국정원을 전면에 배치하여 일상적인 사찰을 강화하고, 정보정치, 공작정치를 벌이겠다는 것이 아마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하려는 법안들의 큰 줄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년 상반기의 정세는 올해보다도 더 역동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 뒤에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역사에는 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정세를 가름할 그 변수를 누가 쥘 것인가.

연대와 저항의 인권선언을 손에 쥐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나쁜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촛불시위에서 보았듯이 한국사회의 대중들은 살아 있다. 어느 여론조사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이른바 ‘무당파’들이 유권자의 50%를 넘었다고 한다. 대안정당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나름 불행한 일일 수 있으나, 그 무당파들이 일본처럼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이고, 비판적이란 점에서 희망이라는 분석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촛불시위에 나온 시민들은 한 순간에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지향을 거침없이 주장했다. 정치 주체로 새롭게 등장한 광장의 촛불사람들은 광우병 문제에서 조중동 언론문제로, 교육문제로, 공기업 민영화 문제로, 한반도 대운하 문제로,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로 인식을 확장시켜갔다. 그러면서 이 사회의 가장 절실한 인권문제들을 하나하나 현실의 과제로 등록시켰다.
그런 운동은 마침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라는 계기를 맞아 각계 영역에서 진행된 릴레이 인권선언으로 이어졌다. 환자의 권리선언, 주거권 선언, 빈곤에 맞선 인권선언,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선언, 성소수자 선언, AIDS/HIV 감염인 인권선언, 청소년 권리선언, 이주노동자/이주민의 인권선언,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과 표현의 자유 선언 등으로 이어진 인권선언들은 12월 10일 ‘2008 인권선언’으로 집약되었다. 이런 운동은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한 일일 것이다.

12월 10일 청계광장에서 '2008 인권선언' 발표 기자회견 모습

▲ 12월 10일 청계광장에서 '2008 인권선언' 발표 기자회견 모습



반민주, 반인권으로 지배세력이 급격히 회귀하는 상황에서 진행된 인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확인, 공유의 작업은 이후 저항의 밑불을 크게 놓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현실 투쟁의 지침과 방향을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었던 그날, 경찰과 용역은 왕십리 철거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했고, 뉴라이트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의 기념식장에서 반인권 구호를 외치면서 방해를 놓았다. 그리고 곧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직이 대대적인 축소 방안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확인한 세력이 사회 저변에 광범하게 형성되어 있고, 이런 힘이 그나마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지배세력의 반동을 조금이라도 저지하고 있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 다가올 정세에서 반민주, 반인권 세력과 전면적인 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 진보세력이 꼭 읽어야 할 문서가 ‘2008 인권선언’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과 29개조로 이루어진 선언은 “모든 사람은 선언에 제시된 권리가 완전히 실현되도록 연대할 권리가 있다. 연대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존엄함을 실현하는 권리이다.”(28조)와 “인권을 유린하는 압제 정치와 사회 구조에 맞서 저항하는 것은 고귀하고 정당한 권리이다.”(29조)로 맺는다. 2009년은 이 정당한 권리를 현실에서 실현함으로 빼앗긴 권리를 되찾고 진보를 향한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기축년 소해에 우리의 걸음은 소걸음처럼 묵직하지만, 그만큼 또 뚝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절망하고 주저앉기에는 아직 우리는 제대로 연대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였으면 좋겠다.
덧붙임

* 박래군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