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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꿰고 깨고] 코앞에 다가온 경제위기,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미국 발 금융위기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구제금융을 무제한대로 풀었기 때문이다. 국가들이 이번에 내놓은 구제금융의 총액이 3조 3천억 달러로 독일 한 해 GDP와 비슷한 숫자라고 한다. 가히 천문학적인 돈이 풀렸고, 이 돈은 부실해진 금융기관들을 구제하는 데로 들어갔다. 시장만능주의에서 갑자기 국가개입주의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러다 보니 한편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 은행 국유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성급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무튼 신자유주의 금융위기를 겪은 세계는 갑작스럽게 금융기관들을 감독하고, 유동성을 관리하는 등 자본주의 체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신 브레튼우즈 체제를 세우자고 나서고 있다. 아마도 조만간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서 이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할 것인데,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미국 부시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선뜻 이에 합류하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 신 브레튼우즈 체제의 기본은 시장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고, 세계 금융질서의 새 판을 짜는데, 세계적인 차원에서 ‘금융’ 규제하고 감독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흔들리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것이고, 현재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상황을 막겠다는 발상이다.

경제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처방식이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미국 발 금융위기가 진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금의 금융위기가 이제 시작일 뿐이고, 내년 상반기에 더욱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 앉으면서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세계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는 중국에서마저 경기침체가 현실화되고 있다. 금융부문과 산업부문이 동시에 침체에 들어가면서 공황의 현실화를 점치기까지 한다. 그럴 때는 어떤 약발도 이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 또한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공황은 피한다고 해도 이제 세계 경제는 1%대의 성장에 그치는 매우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경험해야 할 것이고, 그 탈출구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으로 인해서 각종 경제 전망치들은 어둡기만 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한국경제의 성장을 밑받침하던 수출마저도 이제는 급격하게 둔화되기 시작했다. 중국(22.5%), 미국(10.6%), 일본(6.6%) 등 심각하게 편중된 수출시장들이 모두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9월 수출 증가율은 15.5%로 계속 하강세를 보이고 있는 추세이고,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 컴퓨터 등에서 심각한 하강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마저도 10%대 이하의 경제성장으로 내려앉았고, 이에 따라 중국경제가 올림픽 이후 거품이 제거되면서 위기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되어 간다.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이라는 수출이 하강세로 돌고 심지어는 수지 적자의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정부는 은행들에게 달러와 원화 유동성 공급을 무한대로 하기로 하였고, 부실해진 건설업계에는 9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동안 은행들이나 건설업계가 너무 안이한 방식으로 수익성 올리는 일에만 골몰하다가 내실이 허해지는 상황을 맞은 것이어서 이에 대해 정부가 무한대의 자금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 도덕적 해이(모럴 해지드)를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임원들이 대폭 늘어난 상황을 은행들이 서둘러 정리한다고 야단이지만, 아무튼 국민의 혈세를 퍼부어서 은행들이나 건설회사들의 파산을 막겠다는 것이어서 이 또한 기업 위주의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경제로 인해서 멍들어가는 서민들, 노동자들, 농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은 전혀 없다. 오히려 노동부장관은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다고 지적하여 마치 현재의 최저임금이 너무 높으므로 조정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까지 하였다. 사실 이전에는 강만수 재정기획부 장관이 종부세와 관련해서 여론이 악화되자 1%의 문제를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냐는 식의 발언을 뱉어내기도 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안중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청년실업자의 고통, 논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분노는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소수 부자들, 재벌들의 이익을 보전해주기에 급급하다. 앞으로 이런 추세들은 더욱 심화될 것인데, 이미 예고되어 있는 것처럼 기간제와 파견노동자 사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려 하고 있지 않은가.

민중들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

어쨌건 앞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경제관련 기관들이나 연구소는 내년의 경제성장률을 3%대로 예상하고 있고, 정부도 그렇게 보고 있다. 전 세계의 경기침체에 곧바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종속적인 한국경제의 체질상 이는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경제위기가 바로 코앞으로 닥쳐왔고, 그 고통은 너무도 심각할 것인데 이에 대한 대비책은 없다는 점이다. 미국도 금융권에 막대한 구제금융을 퍼부었지만, 당장 1천2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구제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은행 빚에 시달리거나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 오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아니다. 주택을 담보로 은행 빚을 빌려 펀드에 투자한 이들은 최근에 투자한 돈의 절반을 날리고 쪽박을 차기에 이르렀다. 자영업자, 농민, 노동자, 빈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경제위기가 오면 다시 소수의 부자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벌지만, 민중들은 더욱 고통스럽게 삶의 질 하락을 경험한다. 빈곤층의 확대와 절망의 빈곤의 심화는 이미 예견되어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정부를 믿을 수도 없다. 그나마 있는 사회안전망을 모두 부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고, 원주민이 쫓겨나는 막개발 사업인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가난한 이들의 인권은 찾을 길이 없어진다. 신자유주의가 몰락하고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는 마당에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은행을 만들겠다고 한다. 지금처럼 극단적인 자본계급 옹호정책으로 일관하는 데도 진보운동진영에 이에 대한 저항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지 못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힘들게 이어지고 있다. 기륭에서는 경찰이 용역깡패들과 역할분담을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폭행했다. 기륭 회사 앞에 쌓았던 망루를 철거하기 위해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었고, 4백 명의 전의경이 동원되었다.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잡아서는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에게 넘겨준 것도 경찰이다. 자본경찰의 속성을 이처럼 잘 드러내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 이제는 외형상이나마 회사와 노조의 중립지대를 지키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회사가 고용한 용역깡패들과 한편인 경찰의 모습, 사실 이게 신자유주의에서 국가의 모습이다. 정책으로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규제를 완화하는 반면에 노동유연성을 극대화하고(이미 한국은 세계 최고로 노동유연성이 확보되어 있지 않은가), 노동자들과 민중의 저항을 폭력으로 진압한다. 그게 지난 10월 20일과 21일 기륭전자 앞에서 일어난 사태다. 기륭 사태가 심각하다보니 강남성모병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천막농성도, 양화대교 남단의 철탑에 오른 알씨디 하이텍,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오는 26일에는 전국 비정규노동자대회가 오후 1시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다. 이번 주에는 이와 관련된 행사들이 많다. 25일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3차 행동 차원에서 진행되는 전국 동시다발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서울에서는 기륭전자 앞에서 26일 대회의 전야제를 겸해서 열리게 된다. 이처럼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고, 그런 힘겨운 투쟁에 시민들이 연대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는 오는 11월 9일 노동자대회에 4차 행동을 하고, 오는 12월 6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선언대회를 갖기로 하고, 이번 주부터 권리선언운동을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어진다

이번 주로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끝난다. 국정감사 기간 중에 가장 논란이 되었던 점은 무엇보다도 쌀 직불금 문제였다. 여야 간의 공방 끝에 국회는 국정조사로 가기로 했는데, 결국 고위공직자들부터 부동산 투기에 혈안이 되어 직불금을 꿀꺽해왔음이 드러났다. 이를 보는 농민들의 분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국회는 온통 쌀 직불금 문제로 뒤덮여서 다른 문제들은 제기조차 되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국정감사 기간 중에 드러났던 문제 중에서 특히 노동부가 수시로 국정원에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는 점은 의외로 간단히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노동부가 보고한 내용의 일단이 드러난 것인데, 노동자들의 투쟁 상황을 보고하고, 심지어 국회의원들의 국정감사 상황까지 보고하고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17대 국회에서 이와 비슷한 문제가 났을 때 한나라당은 국회 본관에서 농성을 하고 문제의 방문을 도끼로 찍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 문제를 슬그머니 없던 일도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민주노동당이 국정원장을 고발했는데, 이참에 민주당까지 나서서 국정원장 해임결의안을 추진하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집권여당의 태를 벗지 못한 민주당은 야당의 투쟁력 면에서 실망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러니 언론들로부터 ‘한편 민주당’이라는 비난을 듣는 것이 아닌가. 야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정당인데, 그래도 82표나 갖고 있다. 당장 이번 정기국회에서 한나라당과 정부가 통과시키려는 법안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제대로 나서주어야 하겠지만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11월, 12월 국회가 정말 걱정된다. 대기하고 있는 법안들이 거개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진영은 12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에 맞추어 ‘2008 인권선언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진작부터 ‘인류의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제하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12월 10일까지 가는 동안에 각계각층의 인권선언이 이어질 것이고, 이를 종합하는 인권선언문이 작성될 것이다. 현실에서 붕 떠 있는 인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담은 인권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인권이 고상한 도덕적 가치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투쟁의 무기, 연대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이 과정에서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오늘 자에 같이 실리는 인권선언운동 제안서 참조 바람).

미 대선 결과가 미칠 영향은?

10월도 거의 끝나 간다. 11월 초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오바마가 당선권에 진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워낙 인종차별이 강고한 나라이므로 막판까지 안심할 수 없다고 한다. 그의 당선 이후 세계는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다. 한국은 당장 한미 FTA 협상부터 다시 해야 한다. 북한이 국제사회로 한 걸음 더 걸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가 그 계기를 만들고 있다. 이후 6자 회담이 어떤 방향에서 논의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6자 회담의 성과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도 지대하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은 이미 개성공단의 남한 상주 인력을 철수시킬 뜻을 내비쳤다. 이명박 정권과는 대결적인 태도를 견지해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주변관계는 풀어지는데 오히려 남북관계는 경색될 수 있다. 11월에 놓치지 말아야 할 동향 중에는 한미군사합동군사훈련과 무건리 훈련장 확장 문제, 그리고 제주 해군기지 문제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보운동진영 전체로는 민생과 민주주의를 내걸고 새로운 연대체가 건설되는 점도 유의해 보아야 한다. 이 연대체가 과연 촛불 시즌 2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쳐와도 어떤 대비책도 마련하지 못하는 진보운동진영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는데, 현실의 투쟁과제들은 너무도 많다.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하는 정책들에 맞서는 강고한 연대기구의 형성은 아직은 요원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