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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독자와 인권활동가가 함께 뽑은 2005년 10대 인권소식

[편집자주]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2005년 10대 인권소식'을 발표합니다. <인권하루소식>은 인권하루소식 독자와 인권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올 한해 동안 발생한 주요 인권사건(전체 51문항)에 대해 설문조사(각 10개 문항 응답)를 벌여 '2005년 10대 인권소식'을 선정했습니다. 11월 30일부터 12월 8일까지 9일간 실시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모두 104명의 독자와 인권활동가들이 참여했습니다.


1. 농민 생존권 위협하는 쌀협상 비준안 국회 가결…고 전용철 씨 등 농민 죽음 잇달아 (78.8%)

올 하반기에만 쌀 개방을 막기 위해 3명의 농민이 자결했다. 그리고 11월 23일 쌀 개방 비준 협상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다음날 충남 보령의 전용철 농민은 뇌손상에 의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는 11월 15일 쌀협상 비준안 저지를 위한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의 폭력진압 과정에서 가격을 당해 넘어져 뇌손상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쌀이 우리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26%라고 하지만, 유일하게 소비량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쌀을 제외하고 나면 식량 자급률은 2%밖에 되지 않는다. 농업문제는 단순히 교역 문제로 치환될 수 없는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식량주권 차원에서 무리해서라도 농업을 지키려고 하고, WTO 규정을 무시하고 각종 명목의 편법적인 보조금으로 농업과 농촌을 지원한다.

농업이 망할 때, 이후 곡물 메이저가 부르는 대로 비싼 돈을 주고 곡물을 수입해야 하고, 그것이 무기가 되어 다국적 기업과 자본에 대한 종속성이 더욱 심화되리라는 것을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쌀 협상을 놓고 정부는 이면협상의 내용을 숨기고 있고, 급락하는 쌀 값으로 인한 농촌소득 보전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쌀협상 비준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쌀 개방 문제는 12월 WTO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다시 한번 더 큰 위기를 맞을 지도 모른다. 농민들의 생존권은 더욱 위협받게 되고 생존권 확보를 위한 농민들의 절망적인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2. 비정규직 확대 불러올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안…노동자들 총파업 불사하며 결사 저지 태세 (55.8%)

지난해 말 회부된 비정규 개악법안이 노동자들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9월 정기국회에 또다시 상정돼 분노를 사고 있다.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은 날이 갈수록 참담해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단결하고 단체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최저임금 수준을 밑도는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고 있다. 날로 교묘해지는 감시와 노동탄압은 노동자들의 건강할 권리를 곳곳에서 침해하고 있다. 비정규 개악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오히려 확산하는 법안으로 비판받고 있다.

2월 임시국회 처리가 무산된 이후 4월 14일 인권위의 의견표명으로 비정규직 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운동은 가속도가 붙었다. 인권위의 의견은 파견법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고 최소한의 기준도 마련하지 못하는 등 한계가 있었으나 재계와 여당의 '비정규직 문제가 왜 인권이냐'는 황당한 반응으로 인해 오히려 빛을 발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10월 16일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의 출범은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기대하게 한다. 근본적인 현실진단에서 출발한 요구안을 들고 끝까지 투쟁을 만들어나갈 연대조직이 탄생한 셈이다. 민주노총 역시 12월 1일 총파업에 돌입해 정부의 비정규 개악법안을 거부하고 있다. 같은 날 발표된 '7개 시민단체 조정안'은 원칙을 저버린 타협안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온몸으로 비정규 개악법안을 막아내겠다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비정규 개악법안을 끝장내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올해 겨울에도 타들어가고 있다.


3. 세상을 흔든 '초록의 공명' - 지율과 도룡뇽의 친구들 (49.0%)

겨울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2월의 광화문, 하나둘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방방곡곡 마음을 접어 보내온, 무려 12만마리에 이르는 종이 도룡뇽들도 함께 했다. '지율스님을 살리자! 천성산을 살리자!' 손발은 꽁꽁 얼어붙어도 마음만은 뜨거웠다. 이윽고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천성산 고속터널공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민간합동으로 조사하자는 요구를 마침내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지율스님이 단식을 시작한 지 꼭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율스님과 천성산대책위는 2001년부터 꼬리치레 도룡뇽을 비롯한 천성산 뭇생명들을 파괴하는 고속터널공사의 중단을 요구해왔다. 공사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건 노무현 정부가 등장했음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약속 뒤집기를 밥 먹듯 하는 정부에 맞서 스님은 2003년부터 모두 4차례나 단식을 결행했지만, 정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도룡뇽 소송' 역시 1심과 2심 모두에서 패배했다. 도룡뇽을 원고로 내세워 공사 중단을 요구했던 이 '자연의 권리' 소송은 그렇게 끝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도룡뇽의 친구들'은 점차 늘어나 전국 40만에 이르렀고, 2005년을 맞으면서 천성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무분별한 개발과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렇게 모아진 힘이 2월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9월 어렵사리 시작된 공동조사는 순탄치 않았다. 조사가 마무리되고 분석작업을 남겨둔 11월말,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정부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의도적으로 흘렸고 스님을 매도했다. 공동조사는 또다시 파국 위기에 몰렸다. 민간조사단은 오는 13일까지 공단이 사과하지 않을 경우 공동조사에서 빠질 계획이다. 그 사이 지난 1일부터 천성산의 심장을 뚫는 발파공사가 재개됐다.

천성산과 도룡뇽의 최종 운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초록의 공명'이라는 울림은 요식절차로 전락한 환경영향평가와 무분별한 개발에 경종을 울렸다. 인간의 존엄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자연의 존엄'을 주장한 이 운동은 인권운동에도 생태주의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4.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 '활활' (41.3%)

이라크에서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미국이 더욱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결정권도 미국에 넘겨줄 수 없다는 저항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은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을 통해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 재편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한강 이북의 용산 미군기지와 미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전면 후방 배치하겠다는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은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주요한 군사적 압박정책이다. 실제로 주한미군의 '작전계획 5030' 등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대북 선제공격 군사훈련까지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은 한반도 평화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더군다나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 재편은 주일미군의 재편과 함께 중동 지역에서 미군의 군사적 전선이 형성된 것과 더불어 동북아 지역에도 한-미-일 합동 군사력을 중심으로 북-중을 대상으로 군사적 긴장감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거대한 군사적 화약고로 만드는 치명적인 평화 위협 요소가 될 전망이다.

한편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을 통한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팽성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땅을 일궈온 농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낼 것으로 예상되어 더욱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예상지역인 팽성 주민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토지 수용정책에 격렬히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 의한 토지수용 절차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 토지 강제수용이 실시되면 강제철거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1년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팽성에서 촛불을 밝혀온 농민들과의 거센 충돌이 우려된다.

지난 7월 10일 팽성 대추초등학교에서 1만2천여 명이 모여 '한반도 평화와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한 1차 평화대행진'을 성공적으로 마친데 이어 12월 11일에는 평택역 앞에서 2차 평화대행진이 대규모로 진행돼 '미군에게 한반도 평화의 결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전민중적인 의지를 모을 예정이다.


5. 배아줄기세포연구를 둘러싼 논란… '국익과 영웅이면 다 돼(?)' (40.4%)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연구에 연구원의 난자 사용이 밝혀지면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윤리문제는 정점에 다다랐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난자를 기증한 여성은 난자채취 과정의 고통이며 부작용을 알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매매된 난자가 황우석 연구팀에게 제공됐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러나 대부분 여론의 쟁점은 여성의 몸을 위협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아니라 '별것도 아닌 일을 드러내는 언론'으로 맞춰졌다.

문제가 불거지면서 언론에서는 '황우석 효과로 벌어들이는 수익'과 기술 '특허' 위기 보도가 연일 계속되었고 황 박사 쫓기에 여념이 없었다. 언론과 인터넷을 통한 국익론의 시작은 제기된 인권문제에 대한 검증과 언급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여론으로 자리잡으며 전체주의 양상마저 띠고 있다. 단지, 일부 언론과 단체, 종교계에서만 여성의 인권, 난자 매매를 우려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연구 문제를 보도한 <문화방송>(MBC) PD수첩이 취재윤리 위반으로 중단되면서 애초 제기된 의혹과 문제까지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매매된 난자의 사용, 연구원 난자 사용의 과정, 기증자의 동의과정, 연구성과의 진위 등에 대해 황우석 연구팀은 여전히 속시원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6. 헌재, 호주제 헌법 불합치 결정…"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 (38.5%)

올해는 여성에 대한 대표적인 차별악법으로 불리는 호주제가 폐지되고, 대안적인 신분증명제도가 공론화 됐다는 점에서 인권운동은 한걸음을 내딛었다. 1957년 민법제정부터 호주제는 '부가 입적' '호주 승계시 남성 우선' 등의 규정으로 가정 내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남아선호 사상을 유지·강화시켜왔다. 또한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 단위로 편제되는 신분등록제인 호적제는 호주와의 관계를 통해 개인의 신원을 증명해 왔다. 한마디로 호주제와 호적제는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이 사회에서 부계중심성, 가부장성을 대표해온 제도이다.

지난 50년간 여성단체를 비롯하여 인권단체에서 끊임없이 호주제 폐지를 주장해왔고, 드디어 올해 그 성과가 가시화 됐다. 출발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2월 4일 헌법재판소가 호주제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조항들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 헌법재판소는 호주제가 성(性)에 기초해 가족구성원의 법적 지위를 차별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라고 결정했다. 이에 3월 2일 국회는 재적 296명 가운데 235명이 투표해 찬성 161표, 반대 58표, 기권 16표로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호주제 폐지는 법률적으로나마 '남성이나 가족'을 통하지 않고도 여성이 자신의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점, 가족 내 평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가족해체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현실과 부합하지 않은 가족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점, 자녀의 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부성원칙주의를 따르고 있는 점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11월 호적을 대신할 신분증명제에 대해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 취지에 어긋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어, 이에 대한 반대의 흐름도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다. 호주제 폐지의 성과는 인권의 원칙에 부합하는 '개인기준 목적별 편제방식'으로 입법활동이 이루어져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7. 두발자유화, 인권을 향한 청소년들의 힘찬 비상 (37.5%)

2000년 온라인에서 시작한 두발자유화 운동이 올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강제로 머리를 깎이는 등 두발규제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심각해지자 학교 홈페이지에 항의문을 올리고, 일명 '락카 시위'를 하는 등 두발자유화를 향한 청소년들의 외침이 봇물처럼 또다시 터져 나온 것.

청소년들의 이같은 외침은 머리를 조금 더 기르게 해달라는 요구를 뛰어넘어 머리조차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저항행동이었으며, 자유를 향한 힘찬 비상이었다. '두발자유학생운동본부', '두발자유법제화를위한연대', '학생인권수호네트워크' 등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조직을 만들기도 했으며 촛불집회, 거리축제 등 온라인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청소년들의 직접행동이 이어졌다.

그러자 학교측은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는 청소년들을 징계하거나 자퇴를 권유하는 등 처벌로 일관했다. 교육부와 교육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소년들의 정당한 요구에는 눈과 귀를 막은 채 '학생집단행동 예방대책' 등을 꾸리며 청소년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저항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청소년들은 학내 두발규제에 대한 인권침해를 조사해줄 것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7월에 "학생두발자유는 기본권으로 인정되어야한다"는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철옹성 같은 학교를 무너뜨리기에 청소년들의 저항이 미흡해 두발규제라는 인권침해가 여전히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고, 마치 5년 전을 답습하는 듯이 보이지만 청소년 스스로 인권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2학기 들어 잠잠해졌던 두발자유화 운동이 수원을 중심으로 지난달부터 다시 일렁이고 있다. 아직 두발자유화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8. 경찰, 강정구 교수 글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천정배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에게 불구속수사 지휘 (36.5%)

한 교수의 학문적 주장이 또다시 마녀사냥에 걸려들었다. 지난 8월 맥아더 동상 철거 논쟁이 한창일 당시 강정구 교수가 한 인터넷 매체에 "한국전쟁은 북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 전쟁"이라고 주장한 것이 매카시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글이 발표된 후 자유개척청년단 등 23개 보수 시민단체 회원 820여명은 '북을 고무 찬양하고 내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고발했고 경찰과 검찰은 이에 화답하듯 강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중이다. 또한 2001년 이른바 '만경대 방명록 사건의 재판'까지 2년 11개월 만인 이달 23일 재개된다. 이 사건의 이적성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재판부는 한국정치연구회와 한국역사연구회에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역사연구회는 강 교수의 행동은 '다양한 학문적 견해'라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한 상태이다.

강 교수의 주장이 하나의 의견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국가의 심판과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하는 현실은, 학문이라는 한정적인 영역에서조차 표현의 자유가 자유롭게 숨쉴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불온한 사상'일지언정 말하고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권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사람들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되찾아오기 위해서 갈 길은 험난하다.


9. 첫 이주노동자 독자 노조 출범…정부, 아노아르 위원장 표적연행하고 노조설립신고서 반려 (34.6%)

첫 이주노동자들의 독자적인 노동조합,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4월 24일 출범했다. 2001년 서울경인지역 평등노조의 한 지부로 시작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은 지난해 380일 동안의 명동성당 농성을 거쳐 단속추방반대와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노동허가제 도입을 요구하며 독자적인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없는 불법취업 외국인이 주된 구성원이라는 이유를 들어 6월 3일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장에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이에 앞서 이주노조의 첫 위원장으로 선출된 아노아르 씨가 5월 14일 새벽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뚝섬역 출구로 나가던 중 출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 의해 표적연행됐다. 지난해 샤멀 타파 이주농성단 대표가 추방되었듯이 그도 강제추방될 위기에 처해 있다.

연행과정의 폭력과 출입국사무소장의 직인도 없는 보호명령서로 이뤄진 '보호'가 불법이므로 즉각 석방해야 한다는 이주노조의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출입국사무소가 적법절차를 위반한 것은 맞지만 법정시간인 48시간이 지나 재발부된 보호명령서가 적법하다고 결정했다. 분노한 이주노동자들은 인권위원 전원사퇴와 아노아르 위원장 석방을 요구하며 12월 5일 인권위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자본의 질서는 여성과 남성을,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나누는 것도 모자라 외국인과 내국인을 나눈다. 엄연히 이 땅에서 노동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출입국관리법이 합법과 불법으로 나눠도 이들이 노동자인 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결사의 자유는 노동권 확보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10. 사회보호법 25년 악명을 끝내고…… (33.7%)

이중처벌, 인권침해로 악명을 떨치던 사회보호법이 6월 29일 폐지되었다. 1980년 전두환 군사반란 정권의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들어진 이래 25년, 2002년 청송 피보호 감호자들이 집단단식을 한 지 3년만의 일이다.

범죄자들에 대한 지독한 편견, 사회보호에 대한 막연한 필요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지만, 사회보호법은 인권침해 당사자들의 끈질긴 몸부림과 어깨 걸고 함께 했던 인권단체들의 행동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인권신장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송감호소에 수용되어 있는 피보호 감호자들 그리고 감호가 병과된 채 징역형을 살고 있는 수형자들! 이들에 대한 감호집행은 사회보호법이 폐지된 이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10년여간 사회보호법의 망령을 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정신장애인들을 격리 수용해 온 '치료감호'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 것도 문제다. 인권단체들이 사회보호법 폐지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천명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반인권 악법을 폐지해 본 경험이 일천한 한국사회에서 사회보호법 폐지는 가히 기념비적인 일이라 하겠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노동악법들이 더욱 개악될 위기에 있는 오늘날, 사회보호법 폐지는 인권보호를 위한 법(률)의 제ㆍ개정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밖에 △철군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 국회 제출(30.8%)이 11위였으며 △'국정원 엑스파일' 폭로로 드러난 도청실태와 물꼬 터진 국정원 개혁논의(28.8%)와 △기륭전자·신세계이마트·하이텍공대위 등 이중의 굴레 안고 투쟁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28.8%)이 공동으로 그 뒤를 이었다. 또, △성매매방지법 1년, '성매매는 범죄라는 인식 확산', '실효성 없다' 평가 엇갈려…성노동자운동 제기되기도(26.9%) △공급확대·규제완화 골자 '8.31부동산 종합대책'…시장중심 주거정책에서 주거공공성 확보로 방향틀어야(26.0%) △병역거부 수감자 1000명 넘어서…국회 대체복무제도 논의는 지지부진(25.0%) 등이 올해 주목을 받은 주요 인권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