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가라가라 빈곤

빈곤에 저항하는 직접행동으로부터 배운다

[가라가라 빈곤 ③] 캐나다의 ‘빈곤에 저항하는 온타리오연합’ <3>

‘빈곤에 저항하는 온타리오연합’(The Ontario Coalition against Poverty, 아래 온타리오연합)은 자신들의 활동방식을 ‘개별적 지원을 위한 직접행동’(Direct Action Casework, 아래 직접행동)이라 부른다. 온타리오연합은 직접행동의 취지와 구체적인 방법을 담은 안내서(아래 ‘직접행동 안내서’)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했다. 이번호에서는 안내서의 내용과 활동가 존 클라크와 이메일로 나눈 대화를 기초로 온타리오연합의 직접행동이 한국의 운동에 던지는 시사점을 찾아 본다.

온타리오연합의 직접행동

온타리오연합의 직접행동은 복지급여(OW)와 장애급여(ODSP)를 삭감당하거나 빼앗긴 사람들과 함께 정부와 싸우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사례마다 다르지만 직접행동은 보통 책임있는 기관에 편지를 보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편지에는 요구사항과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쓰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고위 책임자에게 팩스로 보내거나 직접 전달한다. 정부가 요구사항을 거부하거나 아예 응답하지 않으면 온타리오연합은 수십에서 수백 명의 활동가들을 동원해 사무실을 점거하고 권한을 가진 사람과의 면담을 요구한다. 이들은 사무실에서 확성기로 발언하고 노래하면서 일상업무를 방해하고 면담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수위를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캐나다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찰이 출동하기 마련이다. 경찰은 소란을 막기 위해 이들을 체포하고 침입죄로 처벌하지만 온타리오연합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높은 기관을 상대로 더 큰 규모의 다음 행동을 계획한다. 직접행동은 승리할 때까지 계속된다.

직접행동은 △체불임금 △주택 강제퇴거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등 여러 영역에서 정부 뿐만아니라 사업주를 상대로도 시도된다. 예를 들어 주유소에서 5일간 일한 한 노동자가 임금을 못 받게 되자, 온타리오연합은 주유소에 피켓을 들고 나갔고 자동차들이 그 주유소에서 주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몇시간 만에 그 주유소는 밀린 임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달 동안 식당에서 일했지만 월급을 받지 못한 노동자 2명이 도움을 요청하자 온타리오연합은 식당의 주방을 점거하며 영업을 방해했고 결국 두 노동자는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한 가족이 케냐로 강제추방 당할 위기에 처하자 온타리오연합은 공항 안에서 집회를 열었고 결국 이들의 강제추방은 취소되었다.

직접행동의 3가지 원칙

강제퇴거 위협에 처한 크리스 가디너. 온타리오연합이 그의 퇴거를 막기 위해 지원했다. <br />
<출처; www.ocap.ca>

▲ 강제퇴거 위협에 처한 크리스 가디너. 온타리오연합이 그의 퇴거를 막기 위해 지원했다.
<출처; www.ocap.ca>

직접행동의 형태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지만 온타리오연합은 이들을 관통하는 3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 원칙은 “직접행동과 함께 법률적 작업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법률적 권리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힘을 얻게 되고 이들의 요구사항은 더욱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닥친 현실을 극복하는데 법률적 지원은 꼭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온타리오연합은 이렇게 지적한다. “집주인과 사장, 정부관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할 때는 언제나 법을 어긴다. 그들은 자주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이런 일들을 한다.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식적인 항의 절차는 흔히 장황하고, 비싸고, 효과도 없다. 직접행동은 이런 방식을 극복하고, 사람들이 누려야 할 것을 얻을 수 있도록 계획된다.”

게다가 법률적 지원은 다른 곳에서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온타리오연합의 두 번째 원칙은 “법률상담소나 다른 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중복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캐나다에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법률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기관은 많다. 이런 경우 온타리오연합은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곳을 소개해줄 뿐이다. 그래서 온타리오연합을 찾는 사람들은 ‘모든 공식적인 법률절차를 거쳐서 온 사람들’이기 마련이다.

한 사람의 고통은 전사회적 모순을 반영한다

세 번째 원칙은 “정치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되, 당사자들의 이익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타리오연합의 직접행동은 한 사람 또는 한 가족의 사례를 다루면서도 단순히 이들을 돕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러분이 개별적인 사례를 맡으면 언제나 그 사례를 정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분명히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온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여러분은 부당한 체제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행동 안내서) 이런 인식에 따라 한 사람의 복지급여와 장애급여 문제를 다루는 온타리오연합의 직접행동은 온타리오 주정부의 복지급여 인상캠페인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강제추방 위기에 놓여 있는 한 이주노동자의 출국을 몸으로 막는 직접행동은 비인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캐나다 이민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온타리오연합은 이들의 이익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다. “여러분이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양보해서는 안된다. 일단 여러분이 한 사례를 맡게 되면, 여러분의 최우선 순위는 일단 이기는 것이다.” (직접행동 안내서)

국경을 넘어 배운다

온타리오연합에서 직접행동이 가능한 이유는 조직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활동의 대부분이 이들을 조직하는 것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활동비를 받는 상근활동가는 2명뿐이다. 그 외 활동비를 받지 않는 수십 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있다. 온타리오연합 활동가 존 클라크는 “대부분의 회원들은 분명히 가난한 사람들”이라며 “온타리오연합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무시하는 정부에 대항하면서 이들을 조직한다”고 소개했다. 온타리오연합은 가난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주거지에 홍보물을 뿌리고 복지사무소와 홈리스 쉼터를 찾는다. 또 가난을 이유로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이나 주택 수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만난다. 존 클라크는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 이들이 행동하도록 자극하는 이슈에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정치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되, 당사자들의 이익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직접행동의 원칙은 빈곤 당사자들을 조직하려는 한국의 반빈곤 운동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가난한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맞선 운동의 조직은 더디기만 하다. 한국사회에는 노동조합으로 포괄되지 않는 미조직 노동자 1200만 명, 비정규직 노동자 810만 명, 다수가 비정규직이자 미조직 노동자인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하지만 정규직·대공장·남성 중심의 기업별 노동조합 운동은 가난한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대표하지 못하게 된지 오래이다. 과거의 노동조합 운동이 기업 단위 투쟁을 통해 전체 노동계급의 노동조건을 상승시켜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었던 반면,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분절된 노동사회에서 이는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 이른바 ‘정규직 이기주의’와 같이 자본이 퍼뜨리는 이데올로기는 하항평준화를 강요하면서 빈곤의 원인을 은폐하고 있다.

결국 ‘이미 존재했으나 스스로를 드러낼 수 없었던’ 새로운 주체들, 전통적인 반빈곤 운동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여성, 장애인, 노인, 이주노동자의 빈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반빈곤 운동의 주요과제이다. 이들은 노동조합 등 기존 사회조직으로는 자신의 권리가 옹호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운동도 아래로 흘러야 한다. 당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조직화와 함께 정치적 실천을 시도하는 온타리오연합의 직접행동은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본보기가 된다.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작가 공선옥은 연작소설 <유랑가족>에서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고 지적했다. 빈곤이 물질적인 면 뿐만 아니라 신념과 가치관 등 정신적인 면에까지 영향을 미쳐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는 파업이라는 공식적인 항의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노동을 멈추고 자본주의 체제에의 참여를 중단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파업 같은 방식은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사회복지 급여를 거부하면 그 사람에게는 손해가 될 뿐 정부에는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타리오연합의 직접행동은 미조직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책임있는 기관의 일상적인 업무를 방해함으로써 체제의 규칙적인 운영을 중단시켜 목적을 달성한다. 그리고 승리한 경험을 만끽한 사람들이 다른 동료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이렇게 직접행동은 단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을 넘어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감을 찾는 계기가 된다. 존 클라크가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을 선호한다”고 밝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빈곤에 불복종하는 운동

지난 3월 15일 열린 ‘가난한 사람들의 행진’을 알리는 포스터. <br />
<출처; www.ocap.ca>

▲ 지난 3월 15일 열린 ‘가난한 사람들의 행진’을 알리는 포스터.
<출처; www.ocap.ca>

직접행동이 지향하는 운동방식 또한 주목할만 하다. 2001년 온타리오연합은 토론토 금융중심부를 거리행진을 통해 봉쇄하는 ‘경제방해운동’을 벌이며 은행과 대기업의 업무를 마비시켰다. 경찰이 진압에 나섰으나 3000여 명의 행진대열은 끊임없이 행진의 방향을 바꿔가며 시가지를 누비는 이른바 ‘뱀의 행진’(snake march)으로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다음 장소로 행진했다. 기업들은 시위대가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문을 걸어 잠궜다. 1997년에는 토론토의 부동산 업자들이 임대료를 올리자 아파트 수백 채가 텅 비었다. 온타리오연합의 활동가 300여 명은 홈리스들을 위해 아파트의 문을 강제로 열기 위해 버려진 아파트로 행진했다. 기마경찰까지 동원되었고 시위 참가자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고발되었지만 1년 후 그 건물은 저렴한 사회주택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이처럼 온타리오연합은 과거 캐나다의 ‘점잖은 방법으로 로비에 급급한’ 기존 운동을 거부하고 빈집점거, 공원점거, 거리시위 등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을 발견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문제삼지 않았다.

직접행동은 하나의 씨앗

캐나다와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온타리오연합의 직접행동 방식이 캐나다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 이런 운동은 체제의 아주 작은 일부를 강력하게 위협할 수는 있었지만 그 자체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온타리오연합도 이런 한계를 알고 있지만 직접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복지국과 맞서 싸워서 체제 전반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곳에서 자발적인 봉기가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도 했었다. 이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체제에 의해 부당하게 대우받는 사람들의 수에 비하면, 우리의 행동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만 이득을 준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 활동이 가진 힘을 알고 있고, 그 행동이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직접행동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