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독자와 인권활동가가 뽑은 <2002년 인권 10대 소식>


<인권하루소식>은 인권하루소식 독자와 인권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올 한해동안 발생한 국내인권사건(총 58문항)에 대해 설문조사(각 10개 문항 응답)를 벌여 '2002년 인권 10대 소식'을 선정했습니다. 11월 28일부터 12월 3일까지 실시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모두 118명의 독자와 인권활동가가 참여했습니다.[편집자 주]


1. 주한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불평등한 한미관계 재확인 (80.5%)

6월 13일 길을 가던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궤도차량)에 치어 사망했다. 이 사건에 대해 한-미 양국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전형으로서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6월 19일 주한미군과 의정부경찰서는 "운전병인 워커 병장이 관제병 니노 병장의 교신을 듣지 못해 일어난 우발적 사고"라고 합동조사 결과를 내놓았고, 이는 국민들의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에 형사재판관할권을 한국정부에 넘길 것을 미군당국에 요구하는 사회여론이 들끓었고, 7월 10일 한국 정부도 주한미군 쪽에 재판권 이양을 요구했다. 그러나 8월 7일 미군은 '공무 중 일어난 사고'라며 재판권 이양을 거부했고, 11월 20일과 22일 주한 미8군 군사법원 배심원단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워커 병장과 니노 병장에게 각각 무죄를 평결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반미의식이 범국민적으로 확산됐다. 미군으로만 구성된 배심원단이나 미군 검찰의 소극적 태도도 문제로 지적됐지만, 근본적으로는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소파)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재판무효 △주한미군지위협정(소파)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전국각지에서 연일 계속되고 있다. 12월 4일 정부가 소파 운영상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밝히고, 한미 양국이 5일 제34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이같은 내용에 합의했으나 소파의 전면적 개정이 아닌 단지 운용상의 개선 약속은 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2. 국가인권위 점거한 장애인이동권투쟁 … 저상버스 도입 등 성과 거둬(62.7%)

5월 19일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1급 중증장애인 윤재봉씨가 리프트에서 추락,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추락참사에 이어 또 다시 리프트추락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안전하고 편안한 이동의 권리 보장'을 촉구해 왔던 장애인들의 분노는 격화됐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즉각 서울시측을 상대로 "발산역 사고에 대한 공개사과와 실질적인 이동권보장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5월 31일 월드컵경기장 진격투쟁, 7월 1일 광화문 천막농성, 7월 29일 서울시청 식당 점거농성 등 다양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서울시측은 '발산역 사고에 대한 책임인정'을 거부했으며, '저상버스 도입'을 비롯한 이동권보장 대책에도 성의 없는 자세로 일관했다. 결국 장애인이동권연대는 '국가인권위 점거, 무기한 단식농성'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8월 12일부터 시작된 국가인권위 점거농성은 9월 18일 서울시측에서 '저상버스 도입 추진위 구성 계획'을 밝힌 것을 계기로 마무리됐다. 박경석 이동권연대 대표는 무려 39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했고, 이 기간 동안 각계의 동조단식이 이어졌다. 서울시측은 끝내 '발산역 사고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으나, 9월말 저상버스도입추진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장애인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고 나섰다. 이르면 내년 7월부터 서울시 내에서 장애인 및 이동약자를 위한 저상버스가 운행될 전망이며, 인천시에서도 저상버스도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2년여에 걸친 장애인이동권투쟁이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있다.


3. 의문사위, 공권력에 의한 죽음의 진실 하나둘 밝혀내(50%)

국정원(과거 안기부), 검찰, 경찰, 국방부, 기무사 등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기관의 범죄사실과 의문사의 진실들이 하나 둘 드러났다.

의문사진상규명위는 73년 '유럽거점 간첩단'에 연루된 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던 중 숨진 '의문사 1호'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 사건과 97년 숨진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 씨 사건 등이 각각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경찰의 폭력으로 숨진 사실을 밝혀냈다. 70년대 전향공작, 80년대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삼청교육대 등 국가기관들이 공동기획, 집행했던 대규모 반인권 범죄의 실체를 규명해내는 데도 상당히 근접했다. 74년 '민청학련'을 배후조종해 국가를 전복하려했다는 혐의로 8명이 사형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이 당시 중정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밖에 84년 숨진 허원근 일병이 타살된 뒤 군 상부에 의해 은폐됐다는 조사결과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자료제출 거부, 시간 끌기 등 가해기관의 조사방해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의문사위의 조사권한은 충분하지 못했다. 그 결과 30건이나 되는 의문의 죽음들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남겨둔 채, 의문사위는 9월 16일 법으로 정해진 조사기간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의문사 유가족과 사회단체들은 의문사위의 조사권한 강화와 충분한 조사기간 보장을 요구하며 36일간 국회 앞 노숙농성을 전개했고, 국회는 11월 14일 통화내역 요청권 신설과 조사기간 1년 연장을 골자로 한 '생색내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조사권한 강화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고, 의문사위는 내년에도 '실탄' 없이 진상규명 활동을 재개하게 됐다. 한편, 국방부가 허 일병 사건 관련 의문사위의 조사결과를 정면반박하고 나서 의문사위가 짊어져야 할 '진실 찾기'의 짐은 더욱 무거워졌다.


4. 빈곤의 늪, 여성장애인 최옥란 씨의 죽음(49.2%)

2001년 겨울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던 최옥란 씨가 3월 26일, 자살을 시도한 지 한달 여 만에 사망했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최 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에 따라 26만원의 생계급여를 받아왔다. 그러나 치료비 20여만원, 영구임대아파트 임대료 16만원을 포함해 다달이 60여만원의 생계비를 지출해야 했던 최 씨가 26만원으로 최저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적은 생계비마저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최 씨를 엄습했다. 이혼한 남편에게서 아들의 양육권을 찾으려면 양육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통장에 돈을 넣어둬야 하는데 이 경우, 현행 제도상으로는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돼 수급권자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양육권과 수급권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던 최 씨는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다.

사실상 유언이 돼버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라던 최 씨의 말은 수급권 운동에 작은 불씨를 지폈다. 고 최옥란 씨의 49재를 맞는 5월 13일, 서울지역실업운동연대 등 장애인·복지단체들은 "국가가 결정·공표하는 최저생계비가 실질적으로 빈곤계층의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해 행복추구권 등 헌법 상의 기본권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02년도 4인가구 기준 최저생계비는 98만9천원이었다.


5. 서울지검, 고문치사 사건-피의자 인권보장 문제 전면 부각(44.9%)

고문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았음이 드러나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10월 26일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조사 받던 피의자 조천훈 씨가 구타 등 가혹행위 끝에 사망했다. 대검찰청은 직접 고문에 가담한 수사관들을 기소한데 이어 홍경령 주임검사를 고문 사실을 알고도 방임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추가로 대검 감찰부는 조씨 등 공범 혐의자들이 물고문을 당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피의자 인권보장을 위해 검찰의 수사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인권사회단체들은 △자백위주가 아닌 증거확보 위주로 수사방식의 근본적 전환 △밤샘조사·밀실조사 등 반인권적 관행 철폐 △피의자 신문 과정에 변호사 참여 보장 △법원의 자백의 증거능력 엄격 제한 △고문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배제 입법 등을 요구했다.

한편 법무부는 11월 15일 신문 시 변호인 입회보장·서울지검 특별조사실 폐지 등 고문방지대책을 발표했으나, 수사권 강화를 위해 참고인 강제구인제 도입, 허위진술 처벌 위한 '사법방해죄' 신설 등을 고려해 또다른 인권침해 우려도 함께 낳았다. 법무부가 피의자 인권보호 대책이 수사권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그런 대책을 내세우는 것은, "지금까지의 수사가 피의자의 인권유린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6. 전쟁반대의 신념 등 비종교적 이유 병역거부 선언 잇따라 (42.4%)

여호와의 증인과 오태양 씨처럼 종교적 이유만으로 여겨지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운동이 비종교인들의 거부 선언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전쟁반대의 신념에 따라 7월 유호근, 임치윤 씨가 병역거부선언을 한데 이어 8월 나동혁 씨와 더불어 입영통지서가 나오지 않은 대학(원)생 14명이 집단적으로 예비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여성해방연대와 노들장애인야학 등 소수자 단체들도 이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 동안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병역거부권운동은 지난 5월부터 학생단체들이 결합해 대학가로 확산됐다. 8월부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보장'을 위한 대국민 홍보 캠페인과 함께 '대체복무법안 및 병역법 개정안'에 대한 지지서명 운동이 거리와 온라인 상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엔 병역거부권 인정을 둘러싼 찬반 토론이 인터넷 게시판과 신문 지상에서 활기를 띠었다.

한편, 1월 29일 서울지법(박시환 부장판사)은 "양심과 병역의 의무는 공존"해야 한다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했고 병역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이모씨를 보석으로 석방했다. 이 영향으로 오태양 씨를 시작으로 유호근, 임치윤 씨 등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불구속 재판이 하나의 추세가 되고 있다.


7. 전원추방 방침에 맞선 이주노동자 권리 투쟁 활발(40.7%)

미등록이주노동자 전원출국 방침과 단속에 대항해 이주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이 도드라진 한 해였다. 3월 정부는 1년 후에 26만 이주노동자를 모두 내쫓겠다며 '불법체류자종합방지대책'을 내 놓았다. 이에 항의하는 1천 여명의 중국동포들이 4월 12일 촛불시위를 벌이고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소속 조합원들 역시 합법적인 체류보장과 노동을 요구하며 자진신고를 거부하고 4월28일부터 석달 남짓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전개하는 등 정부 방침에 강하게 반발했다.

또 7월, 정부는 현대판 노예제도로 불려 온 산업연수생제도를 그대로 유지, 오히려 총 정원을 확대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을 내 놓았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등 관련 단체들은 정부 방침의 철회와 노동허가제 실시를 요구하며 7월 22일 농성에 들어갔다. 이 와중에도 불법체류자에 대한 정부의 단속은 계속됐고,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는 활동가에 대한 표적단속이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한편 10월에는 민주노총과 외노협,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에서 그 동안 쟁점이 돼왔던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실질적인 노동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외국인 근로자 노동허가 및 인권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의원 입법청원 했다.


8.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 여성들 무참히 희생(35.6%)

1월 29일 군산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로 14명의 여성들이 사망했다. 조사결과,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는 소화기를 비치하는 등 기본적인 소방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은 물론 1층 출입구는 이중 잠금장치로 굳게 잠겨 있었고, 각 방의 창문은 온통 쇠창살로 둘려 싸여있음이 확인됐다. 즉 화재로 숨진 여성들은 불법으로 개조된 1평도 되지 않은 쪽방에서 감금된 채 강제노동에 시달려온 것이다. 또한 여성들은 업주에게도 성적 갈취를 당하며 목욕탕과 미용실 출입조차 통제당해 왔다. 이에 따라 경찰은 성매매업소 업주와 관련 공무원들을 구속했으나, 업주와 공무원의 유착 의혹을 전혀 밝혀내지 못한 채 두 달도 안돼 수사를 종결했다. 이 사건은 2년 전 군산 대명동 성매매업소 화재사건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같은 지역에서 감금 성매매가 계속되고 있음을 드러내 충격을 더해주었다.

이에 경종이라도 울리듯 7월 4일 서울지법 민사합의 13부(재판장 김희태 부장판사)는 대명동 성매매업소 화재로 숨진 여성들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 국가는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피해여성들의 감금과 성매매 강요 행위를 막아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하고 업주로부터 뇌물을 받으며 불법행위를 방치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경찰의 직무유기에 대해 처음으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를 밝혔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여성계는 성매매방지법 제정 등 성매매근절을 위한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9. 공무원 노동자, 정부 탄압 속 노동조합 결성(33.9%)

복지부동의 철밥통으로 상징됐던 공무원들이 '공직사회개혁과 공무원노동기본권 쟁취'를 내걸고 올해 정식으로 노조를 결성했다. 노동조합 결성은 헌법 상의 기본권이자, 98년 국제노동기구가 한국정부에 촉구한 사항이기도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공무원노조 합법화를 허용하지 않았다. 정부의 불허방침과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하고 3월 공무원노조는 '직장협의회'의 꼬리표를 떼고 노동조합을 정식 출범했다.

그러나 정부의 탄압은 계속됐다. 9월 정부는 공무원들의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공무원조합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공무원조합법은 명칭부터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공무원조합'으로 대체하고 있으며, 내용 면에서도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고 있어 노동자들의 입법저지 투쟁이 이어졌다. 10월 3일 차봉천 위원장이 전격 구속되자 노동조합 지도부는 구속결단식을 연데 이어 7일 6명의 대표들이 행정자치부장관실을 기습점거했다. 11월 노동자대회에는 3만여명의 조합원들이 연차휴가를 내고 상경투쟁을 벌였다. 매번 경찰의 원천봉쇄와 폭력진압, 조합원들의 대거연행과 구속이 잇따랐다. 최근 행정자치부는 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참가한 공무원 5백여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이들을 징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공무원노동자들은 각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징계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 발전노조 민영화반대 파업…사측, 보복성 인권유린(30.5%)

2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전력산업 초유의 장기파업투쟁이 전개됐다.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아래 발전노조) 소속 노동자들은 전원해고의 위협 속에서도 38일간 '산개파업' 전술을 통해 정부의 '발전소 매각과 민영화 방침'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이 투쟁으로 인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고조되고, 소강국면에 빠져있던 노동자들의 투쟁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4월 2일 민주노총이 "민영화 문제는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으로 정부와 굴욕적 타협을 하면서 파업은 종료되었다. 발전노조의 파업은 필수공익사업장에서의 파업이라는 이유로 '불법'의 멍에를 쓰게 됐고, 이는 파업참여자들에 대한 대량해고와 구속, 재산가압류 등 일련의 보복성 조치로 이어지게 됐다. 318명에 달하는 해고인원은 노동쟁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였고, 파업종료 후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무려 560여명에 대한 견책·감봉·정직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특히 회사측은 파업참가자 대부분을 대상으로 재산가압류 결정을 내림으로써 노조를 무력화하고 조합원들의 저항의지를 굴복시키기 위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가압류는 조합원은 물론, 가족과 보증인에게까지 압박을 가하는 조치로써, 노동권을 탄압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정착되고 있는 추세다.

한편, 회사측은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서약서' 작성을 강요하는가 하면, 파업참가자 행동기록표 작성 및 등급분류를 통해 노동감시를 강화했다. 또한 조합원들의 일상적 집회와 회합 방해, 노조 홈페이지 접속 차단 등 전 방위에 걸친 보복성 인권탄압이 잇따랐다.


이밖에 10대 소식으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장기파업(27.1%)' '인권단체들의 테러방지법안 입법저지(27.1%) '경제자유구역법 국회통과(23.7%)' 등이 올해의 주요 인권 소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한편, 많은 사람이 10대 인권소식 중 하나로 응답하지는 않았지만 '구금시설 수용자들 의료문제로 잇따른 사망(16.1%)' '사회보호법 폐지 요구 청송감호소 수용자 집단단식(15.3%)' '국가인권위 구제활동 시작(13.6%)'도 올해의 중요한 인권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