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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죽어야 국익이 산다?

[기획] 차별금지법안 뜯어보기 (12) 이주노동자

지난 10월 2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성별, 장애 등을 이유로 고용 등 다양한 차별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면서 피해자 구제 절차를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최초의 종합적인 차별금지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과 함께 성적지향 등 다수의 차별사유를 제외함으로써 차별금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또한 존재해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그동안 반차별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이 과연 다양한 ‘소수자들’의 차별 현실을 바꾸고 반차별 의식을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점검한다. <편집인주>


사례 하나…밉보이면 끝날 줄 알아!

베트남 출신 H와 C는 한국에 온지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은 이주노동자이다. 두 사람은 하루빨리 돈을 벌어 고향인 베트남에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릴 꿈을 가진 평범한 청년들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며칠 전부터 사업주의 부당처우에 대항하여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선동하여 집단적인 작업거부를 한 ‘노동투사’가 되었다.

이야기는 이랬다. 회사가 처음 작성했던 계약서의 노동시간에 비해 1시간 이상씩 초과해서 일을 시키면서 며칠이 멀다하고 야간작업에 토요일·일요일에도 일을 시켜 이들은 제대로 쉬는 날도 없었다. 몇 차례에 걸쳐 무리한 잔업요구와 일방적인 연장근무, 휴일근무 배치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제대로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데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다른 베트남 사람들의 만류도 있어서 매번 참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문제가 된 토요일에도 본래는 오후 7시까지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회사는 갑작스럽게 1시간을 연장해서 일을 더하라고 지시했다. 참다 못한 베트남 노동자 6명이 그대로 퇴근하자 회사는 괘씸죄로 H와 C를 지목하여 ‘합리적인 사유 없이 집단적인 작업거부’를 주동하여 회사에 피해를 입혔다며 일방적으로 해고하고 노동부와 출입국에 출국조치를 의뢰했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의 법적지위에 관한 모든 권한은 사업주에게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그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상상조차 어렵다. 사업주는 감히 자신의 지시를 거역한 이주노동자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방적 조치에 당황한 H와 C는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찾아 직장이동을 의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통역도 없는 상태에서 노동부 직원은 전화로 사업주의 일방적인 말만을 듣고는 두 사람에게 “온갖 이유를 만들어서 이 회사 저 회사로 옮겨 다니며 피해를 주는 쓰레기들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출국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주의 든든한 대변인이 노동부에 근무하고 있는 격이다. 이런 노동부 직원의 태도에 놀란 H와 C는 한국에서 알게 된 베트남 사람을 통해 이주노동자인권센터를 찾았다. 이곳 활동가를 통해서야 간신히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하고 노동부 직원의 사과를 받은 후 사업장을 옮겨 ‘불법체류자’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난 12월 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2007 세계이주민의 날 기념집회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지난 12월 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2007 세계이주민의 날 기념집회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사례 둘…기회는 세 번, 후회할 짓은 하지 마라!

스리랑카 출신 L은 한국에 온지 2년이 넘었다. 이제 한국말도 꽤 잘하고 일도 많이 익숙해져서 일하는 목재 공장에서 충분히 자기 역할을 다해 왔다. 악취와 먼지가 심해서 한국 사람은 물론 외국 사람들도 피하는 도색작업을 도맡아 하는 그는 사업주와 한국인 동료들이 심한 욕설로 멸시해도,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종종 한국 사람들에게만 월급을 줘도 묵묵히 참으며 고된 일을 해 왔다.

그런데 그렇게 2년이 지났는데도 처음이나 지금이나 급여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일을 하는 한국인 동료의 월급보다 훨씬 적은 데다 그나마 최근 2개월 월급마저 체불되어 고향으로 돈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용기를 내어 사업주에게 밀린 급여 얘기를 꺼냈다가 오히려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만 먹었다. 너무 마음이 아파 술을 마시고 이틀 동안 회사를 나가지 않고 있다가 다시 일을 하러 나갔더니, 사업주는 필요 없다며 나가라고 했다.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업주는 지시거부에 무단결근 등을 이유로 노동부와 출입국에 이미 신고를 해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답답한 것은 L은 이미 고용허가제 하에서 용인되는 3회의 작업장 이동 기회를 모두 써버린 상태라 더 이상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 들어와서 일을 시작한 뒤 두 달 만에 회사가 도산했고, 다음 회사는 일주일 만에 한국인 동료에게 폭행을 당해 옮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은 작업이 도저히 맞지 않아 사업주와 합의하여 회사를 옮긴 것으로 3번의 이동 기회를 이미 다 사용한 상태였다.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1회의 추가이동을 하려면 이전 3회의 이동 사유에 본인의 귀책이 없어야 하는데 L의 경우는 3번째 이동이 본인의 귀책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불가한 상태이다.

L은 자신에게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옮긴 공장에서는 꾹 참고 더 열심히 일을 해 온 것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업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고되면서 더 이상 한국에 체류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야 간신히 빚을 갚아가고 있는 L은 남은 1년을 더 일해야 돈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을 것인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쉬면서 “그냥 조금만 더 참고 있을 걸 괜히 사장님한테 불평을 했다”며 후회하고 있다.

차별을 제도화하는 이주노동자 정책

2007년 현재 한국사회에는 100만여 명의 이주민이 살고 있다. 그 중 약 45만여 명이 흔히 말하는 3D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은 이미 주지하다시피 온갖 인권침해와 노동착취로 얼룩져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서구사대, 물질만능이라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단일민족, 순혈주의 등 왜곡된 민족주의의 팽배로 인한 사회적 멸시는 물론, 해외로부터 들여온 값싼 노동력의 활용을 통해 국가경제를 유지하려는 목적의 제도적 차별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부추겨 왔다.

1991년 도입된 해외투자법인연수생제도를 시작으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중소영세업체의 인력난 해소’라는 절박한 국내적 필요에 의해 이주노동자를 도입했음에도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며 그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로 악명을 떨쳐 온 ‘현대판 노예제’인 산업연수생제도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2003년 입법을 거쳐 2004년부터 본격 실시된 고용허가제 역시 산업연수제의 폐해로 인한 이주노동정책의 파행을 개선하고 이주노동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또 하나의 노예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업장 이동의 원칙적 금지’라는 고용허가제 최대의 독소 조항은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의 원칙적 금지’ 조항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업장 안에서의 각종 부당한 차별적 처우와 끊임없는 인격모독, 멸시 등은 이동의 사유로도 인정되지 않는다. 못 견디겠으면 나가면 되지만 이것은 무단이탈이며 곧바로 미등록의 신분이 되어 서슬 퍼런 단속과 추방의 대상이 되어 더욱 열악한 인권의 사각지대를 전전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법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난 16년의 한국 이주노동정책은 차별의 제도적 정당화를 중심기조로 하고 있다.

차별의 제도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행되는 영장도 없는 자의적 연행과 무단 가택침입 단속, 그리고 범죄인보다 못한 취급으로 재판도 없이 무기한 인신을 구금하다가 강제로 추방시키는 근거로 사용되는 출입국관리법, 같은 외국인임에도 외국적 ‘동포’에게만 특혜성의 취업허가와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방문취업제,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이주민을 함께 살아가는 주체가 아니라 동화와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하며 한국화를 강요하는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등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에 대한 차별의 제도적 정당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천부인권’은 없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천부의 권리를 확인(제1조)하고 그 권리를 누림에 있어 어떠한 차별도 인정되지 않음(제2조)을 밝히고 있다. 지난 12월 10일은 바로 이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어 공포된 지 59년을 맞은 날이었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날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개최하며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인권의 국제적 보장을 약속한다. 그런데 지난 59년간 확인되고 또 각인된 기억은 이것이 그저 선언일 뿐이며, 그 약속은 기념행사에 참가한 몇몇 유명 인사들의 연설문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매년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는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선언이 약속한 ‘모두에게 동등한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이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일이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4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친 차별금지법안의 구체적인 입법과정에서 그 취지가 무색해지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인권위 권고안의 차별금지 실질화를 위한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부과,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법무부 입법예고부터 제외됨으로써 법의 실효성을 의심케 하더니, 이후 법제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차별금지사유라 할 수 있는 ‘출신국가, 언어, 성적 지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학력, 병력,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의 7개의 사유마저 삭제되어 버렸다. 이어 12월 4일 전국의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의 심각한 우려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해 정부안으로 확정해 버렸다.

정부는 이 법의 제정 취지에 대해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 예방하고 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인권의 기본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이주노동자 차별의 제도화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있다. ‘합리적 이유’가 그것이다. 그간 정부는 이 ‘합리적 이유’를 이렇게 말해 왔다. “임금상승 및 내국인일자리 잠식 등 국내노동시장 교란요소 제거, 언어 및 기술숙련도 미달로 인한 생산성 차이 인정, 외국인밀집지 우범화 방지, 국가안보 등”이다. 좀 더 거창한 말로 표현하면 ’국익우선‘이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부가 차별금지법안을 확정하면서 ‘출신국가, 언어 등’에 대한 항목을 차별금지 적용대상에서 삭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었을 게다. 왜냐면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즉 출신국적과 언어로 구분되는 사람들에 대해 ‘국익우선’이라는 ‘합리적 이유’에 따른 차별의 법제화를 정책기조로 삼아 온 정부가 이를 근간부터 흔들지도 모를 새로운 법을 입법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전체 이주민 100만을 넘어 향후 더 많은 이주민의 유입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법무부를 필두로 정부는 세계 최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미래적 대안을 운운하며 ‘다문화사회’, ‘다민족사회’, ‘이주민들과 더불어 사는 차별없는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들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배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현행 제도의 개선은 안중에도 없다. 오히려 인권의 기본법이라며 내놓은 차별금지법안 마저 이주자들의 인권을 외면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대로라면 이 땅에 이주자들의 인권은 설 곳이 없다. 국가주의에 밀착한 국익논리로 차별과 착취로 얼룩진 현실을 외면하는 다문화, 사회통합은 허구일 뿐이고 그저 현실의 모순을 가리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인권은 투쟁의 산물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구체화된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그간 인권운동진영의 노력이 가져온 하나의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법 제정을 둘러싼 역학 관계에서 운동진영은 자체적인 힘의 결집과 광범위한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의제형성에 미흡했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금 각종의 차별법제에 대한 철폐 또는 개선운동을 ‘반차별 인권운동’의 이름 아래 하나로 모으고, 이를 하나의 전체적인 사회운동으로 확산시키는 데 힘을 기울여 나가야 할 때다.

2007년 12월 5일 ‘국익’ 논리를 앞세워 더욱 강압적인 양태로 이주노동자들을 옭죄고 있는 정부의 정책에 맞서 10여 명의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20여 명의 노동인권활동가들이 반인권적 단속추방의 중단과 이주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중단, 출입국관리법의 개악시도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는 늘 한가지이다. “우리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천부인권’은 없다. 인권은 투쟁의 산물이다.
덧붙임

◎ 최현모 님은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