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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성’/‘정상가족’ 이데올로기 깨기

[기획] 차별금지법안 뜯어보기 (9) 가족구성권

지난 10월 2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성별, 장애 등을 이유로 고용 등 다양한 차별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면서 피해자 구제 절차를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최초의 종합적인 차별금지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과 함께 성적지향 등 다수의 차별사유를 제외함으로써 차별금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또한 존재해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그동안 반차별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이 과연 다양한 ‘소수자들’의 차별 현실을 바꾸고 반차별 의식을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점검한다. <편집인주>


차별금지법안 정부안이 12월 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성소수자 부문을 비롯한 많은 여성/인권 등 시민사회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삭제된 7개 차별금지사유는 복원되지 않은 채, “등”을 “그 밖의 사유를 이유로”로 수정했을 뿐이다. “특이사항없음/토론사항없음”이 수많은 시민들의 반대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공식문건(차별금지법 법제처 결제안 071116)의 표현이었다.

차별금지법 정부안의 차별금지사유 중 가족구성권과 관련된 조항은 ‘혼인 여부’,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임신 또는 출산’, ‘성적 지향’ 등이며, 그 이외에 ‘성소수자 혐오차별저지 긴급행동’이 주장하는 ‘성별정체성’(성전환자에 관한 차별금지사유) 역시 가족구성권과 무관하지 않다. 이 중 확정된 정부안은 ‘혼인’과 ‘임신’ 만을 차별의 범주로 남겼고, ‘성적 지향’과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성별 정체성’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국가와 자본이 강화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성’은 인간 행동, 감정, 지식의 한 영역으로서, 종종 자연스럽고 사적이라 여겨지지만 성권력과 시민 사이의 관리와 통제, 순응과 저항의 장이다. 성은 광범위한 의학적 법적 사회적 종교적 제도의 다스림을 받으며 또한 문화에 따라 상당 정도 달라진다. 사회는 성을 규범과 법, 정책과 관습 등으로 관리하고 견고한 성/성별체계를 반복적으로 재구성한다. 이 성/성별체계를 가장 철저하게 학습하여 대물림하는 공간이 바로 ‘가족’이다. 따라서 가족은 성권력이 ‘정상의 성’/‘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지배적 성담론을 보존/재생산/확산하여 국가와 자본의 관점에서 효율적이고 순응하는 시민을 만들어내고자 관리/통제하는 사회의 기초 단위이다. 미쉘 푸코에 따르면, 성권력의 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국가와 자본은 ‘육체의 규율’과 ‘인구조절(수와 질)’이라는 두 가지 극을 중심으로 ‘생체(생명)-권력’을 이용하여 ‘생명의 정치적 배치’를 관리/통제하는 것이다.

국가와 자본은 ‘국가권력’과 ‘생산수단’을 소유한 채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의 성’을 통제하여, 가능하면 최고의 노동력(국민)을 끊임없이 가장 싸게 제공받음을 통해 그들에게 궁극의 이익(국가경쟁력, 자본의 효율성)을 줄 수 있는, ‘정상의 성’/‘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생산 강화하고 있다. 그 정상의 맨 위에는 가부장에 기반을 둔 결혼한/비장애/성인/이성애자/남성이 있고 그 옆에 그 남편에게 성과 자식과 안식처를 제공하는 혼인한 아내가 있다. 그리고 이들과 차이가 있는 다양한 성적 주체들이나 관계들은 그 차이의 정도에 따라 지지받지 못함/비정상/비시민/법외/불법의 존재나 관계들로 배치되는 것이다.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장애인/아동과 청소년/노인/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들과 함께 혼인관계 이외의 성/성매매 등은, 이른바 ‘비효율성’의 정도에 따라 ‘지지받지 못함’에서부터 ‘불법’의 범주 어딘가에 배치되는 것이다.

국가와 자본은 그들의 권력 유지의 근간이 되는 ‘노동력’을 생산하고 수급할 수 있는 ‘정상가족’만을 가족으로 치부하고 법 제도와 정책에 포섭하는 방식을 통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유지 강화하고 있다. 또한 혈연과 이성애적 성적 결합 이외의 ‘다양한 가족 혹은 공동체’들을 불온시하고 배제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소위 ‘비정상의 성’ 영역의 시민들(넓은 의미의 성소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은 헌법에나 존재하는 조항에 불과하며 다양한 성적 존재들은 배제되어 ‘비 가시화’되고 그들의 인권은 말살된다.

따라서 차별금지법 정부안에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 조항이 포함되지 않음으로써 아예 자식 생산을 하지 않(못하)고 ‘정상의 성’ 이데올로기에 위반하는 동성애자(양성애자)와 성전환자를 배제하거나,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함으로써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에 기반을 둔 ‘정상가족’이외의 다양한 동반자관계와 생활공동체들을 배제한 것은 현 정부가 생각하는 시민이 누구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위 세 조항의 복원을 위한 투쟁은 그 주체들의 ‘성적 시민권’과 ‘가족구성권’ 확보투쟁이라 할 수 있고, 이는 단지 정체성에 기반을 둔 끼어들기의 싸움을 넘어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이성애주의와 ‘정상의 성’/‘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그 패러다임을 바꾸어내는 사회변혁 투쟁인 것이다.

진보와 성 그리고 가족

우리는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예비군훈련에서 정관수술을 받도록 종용받았다. 또 낙태수술을 종용하기 위해 가난한 동네의 골목길을 누비는 보건소 차량을 만날 수 있었다. 이른바 ‘둘만 낳아 잘 기르기’로 대표되는 ‘출산통제정책’이다. 그러나 근년에 우리는 또한 온 국가 부처를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저출산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유아수출국’(90% 이상이 비혼모의 자식)이라는 오명은 벗지 못하는 현실을 볼 때, 우리 사회의 혈연중심주의와 ‘정상의 성’/‘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견고하며 국가의 인구 정책 역시 이에 기반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까지 부당한 국가권력과 자본주의에 저항해 온 ‘진보진영’은 ‘계급적 적대’를 핵심 축으로 반국가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는 모든 시민이 소유하고 있고 또한 향유할 권리가 있는 ‘성’(性)과 그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성원이 되고 마는 ‘가족’을 철저하게 사적 영역으로 은폐하여 그 안팎의 차별과 억압 나아가 성권력 관계를 간과한 채, 소위 공적 영역(노동, 정치, 시민사회 등)에서만의 담론과 실천을 진행해 온 것이다.

한편, 국가와 자본의 권력유지의 핵심적 근간을 이루는 ‘노동력’(육체규율과 인구조절)이 어떻게(어떤 경제주의적 관점으로) 재생산되고 투입되고 퇴출되고 조절되는지(육체의 규율과 인구조절), 그것을 위해 국가와 자본은 어떻게 ‘성’을 관리(통제)하고 자신들에게 궁극적인 이익을 유지/확대해 주는 ‘정상의 성 이데올로기’를 확산해 왔는지에 대한 담론 연구는 진보진영 전반에 그 문제의식을 확산하지 못하고 페미니즘진영과 성소수자진영 및 성정치학 등 극히 일부에서 소규모적이고 비연속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최근 ‘언니네트워크’는 ‘비혼여성의 사회적 차별에 관한 공식질의서’(가족구성권과 다양한 경제 영역에서의 차별 등에 관한 질의)를 각 대선후보캠프에 전달하고 그 답변을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2006년 말부터 당 안팎의 여성/성소수/학계/시민사회진영 등과 함께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을 진행해 오면서 동성동반자뿐 아니라 혼인을 선택하지 않은 이성동반자 및 성적 결합이나 혈연과 상관없는 다양한 생활동반자 및 공동체(예를 들어 장애인자립생활공동체)들이 겪는 이른바 ‘정상가족’과의 차별의 지점들을 연구해 왔고, 이번 대통령선거를 통해 ‘동반자등록법 도입’을 공약과 정책으로 제출했다. 이러한 활동과 연구들을 계기로 당사자 진영 뿐 아니라 시민사회진영 및 사회 전반에 지배적 성담론과 가족담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가장 오래되고 견고한 사회적 모순인 이성애중심/가부장제의 틀을 깨는 다양하고 지속적인 논의와 활동들이 촉발되어 구체적인 법제도의 변화까지도 이루어내기를 기대한다.
덧붙임

◎ 최현숙 님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