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차별금지법안 뜯어보기

질병과 차별, 이제 ‘법대로’ 좀 해보자

[기획] 차별금지법안 뜯어보기 (11) 병력과 구조적 불평등

지난 10월 2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성별, 장애 등을 이유로 고용 등 다양한 차별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면서 피해자 구제 절차를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최초의 종합적인 차별금지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과 함께 성적지향 등 다수의 차별사유를 제외함으로써 차별금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또한 존재해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그동안 반차별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이 과연 다양한 ‘소수자들’의 차별 현실을 바꾸고 반차별 의식을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점검한다. <편집인주>


우리가 참아야 하는 것들

‘정당한 차별대우’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왜 과장은 부장보다 월급이 적은 것이냐고 말하지 않는 것은 바로 ‘정당한 사유’에 의한 차별대우이기 때문이다. 그 둘은 같은 내용의 같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의사결정의 수준과 책임성이 다르다.

‘차별’이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정말 어려운 이야기지만 우리는 스스로 어떤 것이 정당한 차별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공감할만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부당한 차별조차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다.

제약시장이 다루는 질환영역

▲ 제약시장이 다루는 질환영역



<그림>은 현재 제약기업들이 다루고 있는 건강문제들의 영역을 표시한 것이다.

A영역은 암, 심혈관질환, 정신신경질환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면서 제약기업들이 가장 주요하게 연구하는 질병영역을 의미한다. 비록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고루 분포한다고는 하지만,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의약품을 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필요(need)는 상당부분 제약기업들에 의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B는 소위 ‘무시되는 질환들’의 영역이다. 여기에는 말라리아, 결핵 등이 속하게 되는데, 이 중 제약기업들이 실제로 다루는 부분은 한정적이다. 선진국에서도 어느 정도 유병률이 있다고는 하지만 개발도상국에 훨씬 더 많이 분포하는 질환들이기 때문이다. C는 ‘가장 무시되는 질환들’이다. 수면병, 샤가스병, 리슈마니아처럼 거의 개발도상국들에만 영향을 미치는 질병영역이고 이에 대한 연구개발은 거의 수행되고 있지 않다. Z는 치료적 목적이라기보다는 상태에 대한 것으로 탈모, 주름, 다이어트, 스트레스나 비행시차증 등의 영역이다. 선진국에 많은 비만약이나 우울증약 하나를 만들어 내면 훨씬 더 많은 돈이 되기 때문에 시장성이 없는 약은 제약회사의 개발목록에서 우선순위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희귀질환자들이나 무시되는 질환들을 가진 환자들은 그것이 제약회사가 “재화를 공급”하는데 있어 부당한 차별이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그저 하나라도 만들어 주기만을 목매달고 기다리고 있다. 더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약값에 대해서는 토를 달 엄두도 내지 못한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각종 민간보험들은 ‘따지지도 않고’ ‘다 보장’해준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약관을 읽어보면 ‘건강상태와 관련 있는 질병성 보장’은 해주지 않고 보험지급확률이 낮은 상해 같은 것만을 보장하는 것이거나 ‘5년 이내에 특별한 병이나 고혈압, 당뇨 등의 진단 또는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을 단다. 어찌된 일인지 보험사는 가입할 때는 묻지도 않던 건강을 보험료를 청구하면 5년 전 기록까지 들이대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고는 약관에 다 써있다면서 윽박지른다. “금융서비스의 공급 및 이용”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은 것 같아서 억울한데, 내가 잘못했다고 하니 좀 이상하지만 어디다 호소할 데도 없고 그냥 참는다.

가끔 내가 아는 HIV감염인 단체의 사무실을 방문할 일이 있는데, 처음에 이 사무실을 찾아갈 때 아주 애를 먹었다. 사무실이 외진 곳에 있는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간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가 주인한테 HIV감염인들의 친목사무실이라고 말하면 절대 빌려주지 않는단다. 그나마도 주인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출입할 때 한꺼번에 몰려다니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한다. 에이즈는 일상생활에서 전혀 감염되지 않는 질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시설 및 주거시설의 공급과 이용”에서 제한당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나마도 사무실을 꾸릴 수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만 참으라는 법 있냐?”고 한마디 하고도 싶은데, 씁쓸하게도 그건 아닌데 ‘안 참아도 되는 법’이 없단다.

신화(神話)는 스스로 말할 필요가 없다

차별은 삶을 위한 기본적 조건인 건강권, 주거권을 비롯한 기본적 권리들을 제한한다. 더구나 그 영향은 나 개인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B형간염이 술잔을 돌리는 것 같은 일상적 접촉으로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늦었지만 2000년 정부에서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B형간염을 취업제한질병에서 제외했다. 그런데도 보균자의 취업 실패율이 38%로 비보균자들의 취업 실패율 12.2%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많은 B형간염 보균자들이 신체검사결과 제출 후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물론 기업들은 B형간염 보균자라서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사회의 특정 집단에게 불리한 결과들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지속적으로 집중되고 이것이 재생산되는 것을 ‘구조적 불평등’이라고 한다. 부당한 차별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부당한 차별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할 때가 많고 자신의 권리가 보장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주장조차 말도 안 된다고 면박당하기 일쑤다. 이것은 차별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 차별의 결과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며 그 결정에 ‘이의 있다’고 말할 통로가 부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지난해 7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안을 정부에 권고할 때만 해도, 이제야 우리도 한마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물론 20개의 차별금지사유 중에 하나로 들어가 있는 ‘병력’의 정의가 너무 협소했던 것은 아쉬웠다. 그리고 차별금지영역에서 우리가 현재 문제로 느끼고 있는 ‘취업과 교육기회, 재화와 서비스를 비롯해 교통수단, 상업시설, 토지, 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과 같은 영역이 충분히 반영되지는 못한 것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심 반겼던 것은 차별의 구제와 관련해 시정명령권, 이행강제금, 손해배상을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라면 질병에 대한 차별에 대해 누구라도 완벽한 무시는 못할 듯싶어서였다.

그런데 이 권고안이 주무부서인 법무부에 이관되면서 차별시정 및 구제제도가 대폭 삭제되었으며 지난 10월 입법예고 후에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와 재계의 반대로 성적 지향을 비롯한 출신국가, 학력, 가족 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등 7가지 차별금지사유도 빠져버렸다. 더구나 그러한 삭제과정에서 우리들의 입을 막고 일방적으로 참기만을 요구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도 명확해졌다. 이른바 재계, 그리고 보수기독교우익이 그들이었다. 더 추상화해 보자면 자본과 그를 옹호하는 혹은 영합하는 이데올로기들이 법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신화였던 것이다. 신화는 스스로 말할 필요가 없다. ‘구조적 불평등’을 만드는 ‘구조’ 그 자체니까.

누가 결정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말해야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차별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결국 또 다시 ‘영원히 침묵할 것’이 강요되고 있다. 무엇이 차별인지 아닌지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판단은 무시되고 그들이 하는 결정만이 유효하다. 우리가 지금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을 말할 때도 이 모든 것들을 누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냐의 문제로 사고해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차별금지법은 바로 그 문제를 정확히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건강권과 노동권이 기업의 사적재산권보다 혹은 그 만큼이라도 중요하다고 주장할 마땅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차별의 사유와 영역에서도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들이 가능한 한 상세히 적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실효성 있는 구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구제 대책은 아무 말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지금도 취업 등에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들이 있지만 적절한 구제절차가 없고 이는 그저 국제사회에 대한 면피용 장식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는 자의 상대방에게 입증책임이 지워져야 하고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어려운 소송의 길을 걷기 전에 차별구제기구가 이행강제권을 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이른바 사회적 약자가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는 방법은 콘크리트 바닥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어딘가를 점거하거나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심지어 억울함에 목숨도 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었다면,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덧붙임

◎ 변진옥 님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