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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가 보는 차별금지법안

[기획] 차별금지법안 뜯어보기 (7) 성전환자

지난 10월 2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성별, 장애 등을 이유로 고용 등 다양한 차별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면서 피해자 구제 절차를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최초의 종합적인 차별금지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과 함께 성적지향 등 다수의 차별사유를 제외함으로써 차별금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또한 존재해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그동안 반차별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이 과연 다양한 ‘소수자들’의 차별 현실을 바꾸고 반차별 의식을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점검한다. <편집인주>


“차이는 차별을 낳지 않아요.”
“그렇지만, 차별이 시작되는 곳도 차이 아닌가요?”
“차이는, 그저 그 ‘다름’이라고 생각해요. 차이는 그저 차이일 뿐이라는 거죠. 그렇게 인정해야 하는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잘못된 것 혹은 틀린 것이라 생각해요. 차별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는 거죠.”


모 언론사의 기자와 트랜스젠더가 사회에서 겪는 차별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그 아집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의 기자수첩에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지요.

‘차별’이란 것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합니다.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건 아니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차별’은 ‘폭력’으로 작동하죠. 결국 ‘차별’은 ‘너를 인정할 수 없음’에서 출발하고 어떤 식으로든 한 개인을 훼손하고 상처 내는 일입니다. 그 일환으로 어떤 이들은 ‘차이’를 이유로 고용을 거부하기도 하고, 언어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심지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사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겠지요. 그 중 하나인 ‘차별금지법안’은 여러모로 중요한 작업입니다.

산 채로 잘려나가다 못해 차별을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안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서는 3년의 작업 끝에 차별금지법안의 내용을 확정하고 정부에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2007년 법무부에 의해 하나하나 잘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10월 2일 입법예고안에서 법무부는 인권위가 구제조치의 실효성을 위해 규정한 입증책임의 배분, 징벌적 손해배상, 시정명령과 강제이행금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이것은 그나마 구제조치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조항을 통째로 들어낸 것으로, ‘법안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하는 우려를 더욱 깊게 하는 조치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법무부는 실효성 없는 차별금지법안의 선언적 효과조차 무색하게 차별금지항목마저 축소했습니다. 20개 차별금지항목에서 13개 차별금지항목만을 ‘예시적’으로 규정하면서 “성적 지향, 학력, 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의 7개 항목을 삭제한 것이지요.

전국 101개 사회단체가 1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차별금지법안의 훼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출처]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www.lgbtact.org)

▲ 전국 101개 사회단체가 1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차별금지법안의 훼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출처]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www.lgbtact.org)



트랜스젠더에게 ‘성별 정의 규정’의 의미

법무부가 가차 없이 잘라낸 것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인권위가 제출한 차별금지법안에는 애초 트랜스젠더를 향한 차별을 금지하는 항목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유추를 통해 기대를 할 수 있는 조항이 ‘성별 정의 규정’이었지요.

인권위가 제출한 법안은 ‘성별’을 “여성, 남성, 기타 여성 또는 남성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성”으로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법무부는 구제조치 조항, 7개의 차별금지항목과 함께 이 성별 정의를 포함한 6개의 정의 규정도 삭제한 것이지요.

물론 “기타 여성 또는 남성으로 분류하고 어려운 성”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의 해석과 관련한 입장이 없으니, 이러한 ‘성별’ 정의가 트랜스젠더를 포함하는가의 여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성별 정의 규정’은 ‘생물학적’인 여성과 남성으로만 분류하는 성별이분법이 더 이상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일 수 없음을 인권위가 고민했음을 드러내는 최소한의 방편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런 정의를 삭제해 그 고민조차 잘라냈습니다. ‘성별 정의 규정’을 삭제한 이유를 묻는 민원에는 “차별사유가 지나치게 망라되어 있다고 판단,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규정되어 있는 차별금지사유 중 1. 둘 이상의 국내법에서 차별금지사유로 규정하거나 2. 세계인권선언 및 자유권규약에 차별금지사유로 규정된 사유”에 근거해 만들어졌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차별금지법안 중 차별금지사유에 대한 법무부의 공식적 입장을 되풀이하여 밝힌 것뿐이지요.

‘성별 정의 규정’이 애매한 규정이라 삭제했다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기 때문에 인권위의 취지와 고민을 살려 다른 방식으로 ‘성별 정의 규정’을 설정하겠다는 답변도 아니었습니다. 법무부는 아예 답변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기타 여성 또는 남성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성”

인권위의 ‘성별 정의 규정’은 ‘여성’과 ‘남성’으로 우선 나눈 후, 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기타 여성 또는 남성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성”으로 (재)분류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인권위의 이런 정의는 성별을 반드시 둘로 분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고민을 표현하며 이분법을 충실하게 실행합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질문하지 않는/질문할 수 없는) 성별은 이미 있고, 이에 부합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여부를 묻고 있으니까요. 더욱이 이런 규정에 따르면 트랜스여성이나 트랜스남성이 자신을 ‘여성’ 혹은 ‘남성’으로 주장하는 것조차 힘듭니다. 트랜스여성이나 트랜스남성이 자신을 ‘여성’ 혹은 ‘남성’으로 얘기하기 위해선 누구도 ‘흠’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여성’ 혹은 ‘남성’에 부합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외부성기수술‘까지’ 해야만 ‘여성’ 혹은 ‘남성’이 되고, 그렇지 않을 땐 자신의 주장과는 상관없이 ‘기타’로 분류되는(분류해야 하는) ‘성별’이란 의미일까요? ‘기타’였다가 ‘여성’ 혹은 ‘남성’이 ‘된다’는 의미일까요? 그래서 이러한 ‘성별 정의 규정’은 곤란합니다. 인권위가 제출한 법안에서의 성별 정의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간성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트랜스젠더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때에도 트랜스젠더 자신의 주장을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듯 한계와 문제들이 자명한 상황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운동을 진행하는 것은 참으로 고민입니다. ‘성별 정의 규정’의 복원을 요구해야 하는 것인지, ‘성별정체성’이라는 또 하나의 차별 금지 항목을 요구해야하는 것인지, 그런데 ‘성별정체성’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긴 한지….

그럼에도 ‘성별 정의 규정’을 통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지 않는다면 차별금지항목에 ‘성별정체성’을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성별정체성이 개인이 자신을 어떤 성별로 인식하고 있느냐의 문제로, 이는 트랜스젠더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자기인식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별 정의’나 ‘성별정체성’은,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과 재계의 압력에 의해 삭제된 7개의 조항과 함께 다 같이 논의해야 할 사안입니다. ‘성별정체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트랜스젠더만이 아니라 모두가 경험하는 ‘항목’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