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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되는 차별, 그 무서운 영향력

[기획] 차별금지법안 뜯어보기 (8) 광고

지난 10월 2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성별, 장애 등을 이유로 고용 등 다양한 차별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면서 피해자 구제 절차를 담고 있는 이 법안은 최초의 종합적인 차별금지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과 함께 성적지향 등 다수의 차별사유를 제외함으로써 차별금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또한 존재해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그동안 반차별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의 연속기고를 통해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이 과연 다양한 ‘소수자들’의 차별 현실을 바꾸고 반차별 의식을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점검한다. <편집인주>


한 국제결혼업체의 광고 [출처] 여성주의저널 <일다>

▲ 한 국제결혼업체의 광고 [출처] 여성주의저널 <일다>



“베트남 신부와 결혼하세요. 100%후불”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끔찍한 현수막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걸렸다. 한국의 국제결혼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광고문구들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봉건시대의 노예제도를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광고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인권과 평등의식 수준이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권과 평등의식은 태어날 때부터 평생에 걸쳐 올바른 정보를 얻고 배움으로써 성숙한다. 그런데 편견과 차별 역시 그릇된 정보를 제공 받고 공유함으로써 조장되고 확산된다. 편견과 차별을 확산시키는 강력한 도구 중 하나가 바로 광고다.

전봇대와 밤거리, 화장실 벽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신문과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까지 버젓이 실리고 있는 성매매 알선 광고들은, 여성의 몸을 매매하는 일이 ‘일상적’이며 ‘괜찮다’고 끊임없이 귓속말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들어서지 못한 여성들을 성 산업으로 끌어들이거나, 그 여성들의 고객이 되도록 권하는 메시지가 숨 쉬는 공기처럼 가까이 있는 사회, 한국이 성 착취 산업을 세계에 전파하는 국가로 악명을 떨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무직 여성, 28세 미만, 용모단정” 따위의 너무나도 익숙한 채용공고는 또 어떠한가. 기업체에서 젊고 예쁜 여성들을 고용하여 ‘여성들의 직무’에 사용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공식인양 자리 잡고 있다. ‘취업성형’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많은 여성들이 취직하려면 ‘못생기지 않은’ 외모를 가져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한 20대 후반만 되도 취업이 물 건너갈 수 있기 때문에, 20대에 여행하거나 ‘딴 짓’ 하거나 방황해선 안 된다.

광고에 대한 모니터링과 규제 필요해

차별을 광고하는 행위는 그것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무척이나 크기 때문에, 차별을 예방하고자 한다면 광고에 대한 모니터링과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법률에도 광고를 규제하는 내용들이 있다. 먼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한다는 목적 하에 허위, 과장 광고와 기만적인 내용, 부당한 비교, 비방적인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앞서 예를 든 성매매 알선과 유인 광고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을 통해 처벌 대상이 된다. 성차별 채용공고 역시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해 노동부의 규제를 받고 있다. 국제결혼광고의 성차별, 인종차별적인 문구들도 지난 11월 23일 국회를 통과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개정안’을 통해 금지 대상이 됐다.

법률이 금지하고 있다는 것과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담은 광고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비극이다. 하지만 차별적 광고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회적 합의를 법률 상에 명시하고 있다는 것과, 차별행위 중단이나 피해 구제의 조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차별을 구제하고 예방하며 인권의식을 키우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틀을 세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 틀을 제대로 세우는 것과 더불어, 과연 실제로 그 틀을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하느냐 여부가 또한 중요한 것이다.

‘가진 자’와 ‘예쁜 자’ 그리고 ‘아버지’

그런데 인신매매에 가까운 국제결혼업체의 광고나 성매매 알선 광고, 그리고 성차별 채용공고만이 인권침해적인 광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산업의 발달에 따라 세련되어지는 영상만큼이나 갈수록 노골적인 차별의식을 드러내는 광고들이 우리의 모니터를 채우고 있다.

아파트 래미안 광고의 한 장면

▲ 아파트 래미안 광고의 한 장면



“우리 집에 갈래?”
“내일 또 와도 돼?”
“창준이네 집은 래미안입니다”


최근에 등장한 이 ‘비싼’ 아파트 광고는 남자아이가 여자친구에게, 젊은 여성이 애인에게, 자신이 비싼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자랑하고 상대방이 이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돈 많은 집에 태어나는 것이 짱!’ 광고들의 수준을 넘어, 이 광고는 아이들의 친구관계 모델까지 동원해 가난한 집을 창피하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한편 “외모가 경쟁력”이라고 강력히 세뇌시키는 화장품과 다이어트, 각종 미용제품 광고들은 “주먹만 한 내 얼굴” “여자의 피부는 권력” 등 시기별로 부위를 바꿔가며 용모차별을 강화시키고 있다. 최근엔 “영원히 늙지 않는 법” 등의 표현까지 등장해 주름살이나 흰머리가 생기면 여자 인생 끝장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나이 듦에 대한 공포와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심어주고 있다.

아름답고 정겨운 느낌을 주는, 그래서 간혹 감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차별’ 광고들도 있다. 네 가족이 아버지, 그 위에 어머니, 그 위에 아이 둘, 이렇게 순서대로 무등을 타고 걷다가, 한 모델이 등장해 “힘드시죠?”하며 아이 둘을 자신의 어깨 위로 옮기는 농협 광고는 한국사회 특유의 가족주의와 성차별이 서로 녹아 든 가부장제를 구현하고 있다.

가족구성원들의 생계를 부양하는 ‘아버지’는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민주노총이 109주년 노동절 기념으로 제작한 “이제 당신만이 희망입니다” 포스터조차 ‘철의 노동자’를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로 구현하지 않았던가. 그런가 하면 4인 가족이 등장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기법의 광고인 삼성 “또 하나의 가족” 시리즈를 비롯하여, 혼인과 출산을 통한 핵가족을 ‘정상적’이며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광고물들은 넘쳐난다.

한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패스트푸드 광고들도 그 위험성이 상당히 크고, 환경 파괴와 동물학대를 당연시하는 광고들도 별 생각 없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차별적 광고’를 금지할 수 있을까

소수자 차별과 배제, 인권침해의 내용을 담고 있는 광고들이 유포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는 무엇인가. 최근 정부안으로 확정된 차별금지법안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 구별. 제한. 배제 등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 행위”를 차별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 조항은 그러나 누가,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실제 차별을 조장하는 광고들을 규제하고 예방할 수 있을지 여부가 달려있을 텐데, 현재로선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남성들의 성문화를 개선한다면서, 일부일처제를 지키고 가족을 보살피는 ‘신사’인 늑대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늑대만큼만 하자”고 광고한 여성가족부의 캠페인이나, 악성 댓글이 ‘테러보다 더 잔인하다’며 다른 인종, 다른 국가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을 전시한 공익광고협의회의 공익광고 수준을 감안해 보았을 때 그러하다.

더구나 성적 지향, 학력,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그리고 용모, 혼인여부, 사상 등의 조항이 제외되거나 변경되어버린 차별금지법안이 과연 위에 나열한 광고들을 ‘차별로 간주’할 수 있을까? 정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서, 차별금지법안이 확정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드러난 차별의식부터 점검하고 시정해야 할 듯싶다.
덧붙임

◎ 조이여울 님은 저널리스트로,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