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은 지난 2월부터 ‘사람이 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에 결합해 활동하고 있는데요. 기계도 노예도 아닌 동등한 노동자, 동등한 사람으로서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앞장서서 만들어내고 계신 정영섭 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에 전부 싣지 못한 것이 참 아쉬울 정도로 이주운동의 생생한 역사를 담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주셨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주노동조합 활동가 정영섭입니다.
오랫동안 이주노동에 대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처음에 어떻게 이주운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2002년에 사회단체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해 4월에 단체 선배가 어느 집회를 나가보라 해서 갔더니 그 집회가 이주노조 전신인 ‘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 지부’가 주최한 집회였어요. 그 집회에 이주노동자 한 천 명 모여있는데, 알고 보니 그분들이 다 비자가 없는 미등록 노동자이셨던 거예요. 명동성당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는데 한 분이 “외국인 노동자 피도 빨갛고 한국인들 피도 빨간데, 여기 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왜 우리를 무시하느냐”며 절절하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이게 뭔지는 잘 몰라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당시가 미등록노동자 투쟁이 되게 활발하게 벌어질 때였고, 고용허가제 정책 생기면서 이주노동자 투쟁도 많았거든요. 그때 연대활동을 시작해서 2003년 겨울부터 2004년 겨울까지 1년 넘게 명동성당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에 맞서는 농성을 할 때, 특히 많이 다녔죠. 2005년에 이주노조 만들어지면서 더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왔는데 그때 이주노조 지도부들이 표적 단속 대상이 되면서 선출하면 잡아가고 다시 선출하니 또 잡아가고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할 사람이 없는데 누가 와서 활동하면 좋겠다’는 제안에 2008년에 이주노조에 들어왔죠. 바깥에서 연대활동 하는 거랑 노조 조직 안에서 노동자들하고 부대끼면서 활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요.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2012년부터 ‘이주노동자 운동 후원회’라고 개인이나 단체 후원자를 조직해서 이주노조 지원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이주노조 외에 연대체로 함께 하고 계신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사람이 왔다_이주노동자 차별철폐네트워크(이하 사람이왔다)는 각각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일단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20여 개의 노동단체들과 이주노동 문제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대체이다 보니 이주노조가 중심이 되어 끌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사람이왔다는 노동운동 내에서의 차별과 배제에 대한 비판점을 가지고 출발한 연대체라 인권단체나 사회단체, 전국 지역 연대체 등이 조금 더 폭넓게 들어와 있어요. 서로 중복되는 부분들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포괄하는 단체의 범위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요.
그렇군요. 작년부터 이주노조나 연대체가 중심이 되어 여러 투쟁을 이어오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러한 투쟁을 거치면서 현재 이주운동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의제가 무엇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우선 수십 년간 이주노동제도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지목된 것은 사업장 변경의 문제, 조금 더 인권의 언어로 말하면 ‘강제노동의 문제’가 있어요. 계약기간 동안 노동자는 사업주 동의 없이 다른 사업장으로 일터를 옮길 수가 없다 보니까 근로조건 개선이나 노동자 권리 보장 등을 신경쓰지 않아도 사업장에 묶어놓고 부려먹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거죠. 그래도 고용허가제는 폭행이나 임금체불 등의 위법사항이 있었음을 노동자가 증명하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게 절차라도 마련이 됐는데 계절노동제도나 선원취업제도 등은 그마저도 없어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외국인력통합지원TF’라는 걸 만들어 여러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사업장 변경 관련해서는 계약 1년 6개월 후에 사업장 변경을 자유화해주겠다는 안을 내놓고 있어요. 근데 1년 6개월이나 지금의 3년이나 강제노동은 강제노동이잖아요. 이에 맞서서 지금 저희는 계속 전면 자유화를 요구하고 있고요.
또, 해마다 반복되는 산업재해 문제가 있죠. ‘가난한 나라에서 10배, 20배 되는 돈 벌러 왔으니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뎌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 인식이 퍼져있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이 위험한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또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전 설비나 장치가 부실하거든요. 이러한 열악한 산업 구조에서 이주노동자의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많이 나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면서 산업 안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신 의제들이 너무 고질적인 문제라 20년 전의 슬로건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그래도 분명히 달라지고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투쟁의 현장에서 계시면서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게 있을까요?
무엇보다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나 중요성이 가장 많이 변했죠.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주노동자는 단순노동력, 정해진 기간 일하고 돌려보내는 존재였어요. 사실 단기순환노동제도 자체가 그렇게 설계된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점점 장기체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인구소멸 흐름이 맞물리면서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죠. 하지만 더 많이 유치하려는 움직임만 있고 그 전에 기반이 되어야 할 기본권 문제, 돌봄과 교육을 받을 권리나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 등 의 논의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보니 아직 부족한 점은 많이 있죠.
또, 제도적으로 개선된 부분이 있냐고 하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 부분들은 분명히 있어요. 예를 들어 이주노동자 숙소 같은 경우에 비닐하우스 같은 가설건축물 등이 위법적일 경우엔 일단 형식적으로는 허용하지 않게 되어 있고, 사업장 변경에 대한 사유도 확대되고 있어요.
하지만 다 좋게 변하지는 않고 개악된 것도 있죠.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적립할 수 있게 하는 출국만기보험은 원래 퇴직 후 14일 이내에 줘야 하는데 출국장 내에서 받을 수 있도록 바꿨어요. 공항에서 받거나 아니면 어렵게 본국 계좌를 신고해야 받을 수 있는 거죠. 장기체류를 원하는 분들, 혹은 제도가 바뀐 걸 모르는 분들이 많다 보니 사실 받지 못한 보험금이 300억 원이나 쌓여있다고 해요.
추가로 하나 더 말씀드리면 2015년에 이주노조가 합법적 지위를 획득해서 두려움 없이 활동할 수 있게 된 게 있겠네요. 그전에는 지도부가 잡혀가는 걸 봐왔으니까 이주노조 가입하면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에 가입도 간부도 잘 안 하려고 했는데 정식 등록이 된 이후에는 조합원 수도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거든요.
‘이주운동’이라고 하면 활동 범위가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넓은 주제들이 이주민 혐오의 문제 아래서 연결되고 있는데 운동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돼요.
사실 당장은 명확한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혐중 정서로 생각하면, 2010년대에만 보더라도 사실 한국 경제 성장의 요지로 중국을 바라봤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중국의 성장 흐름과 기술 발전 등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과 결합해서 복합적으로 작동하며 반대 정서로 발현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런 반대 정서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게 지금의 사회 분위기인 것 같아요. 그러니 앞에서 저희가 계속해서 차별을 이야기하고 혐오가 아닌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사실 이주노동자 혹은 이주민 차별 문제들이 들어보면 낯설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이주민 문제는 멀게만 느껴지는 분들이 많잖아요.. 이 문제들을 어떻게 더 많은 이들에게 닿게 할 수 있을까요?
이주운동 진영에서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는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다, 똑같은 노동자다”하는 당위적인 슬로건이었어요. 요즘은 잘 먹히지 않는 것 같지만요. 두 번째는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건데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외국인들은 세금도 안낸다’ 하는 편견에 가로막혀요. 마지막으로는 한국 사회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이주민이 없으면 산업이 안 돌아가고 지역도 소멸된다”가 있어요. 이 말에서는 이주민의 필요성이 조금 받아들여지긴 해요. 근데 필요한 것하고 존중하고 공존하려는 노력은 다른 거니까요. 여전히 이주민은 정주민보다 ‘하층민’, ‘죽은 듯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은 있지만 슬로건의 변화 속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도 같아요.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 차별에 대한 인식이 대표적이죠.
요즘은 이주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주민 2세들이 이제 성인이 되면서 노동시장에 나오고 있는데, 이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존재로서 자리한다는 사실만으로 다가오는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대세라면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저희가 그런 말을 꾸준히 해야죠.
사랑방도 최근 사람이왔다에도 결합해서 이주운동에 함께 하게 되었는데 사랑방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면요?
사랑방은 앞서 언급했던 이주노조와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사람이왔다 같은 이주운동, 이주민당사자 중심 단체나 연대체보다 진영 바깥과 접촉면이 훨씬 많은 단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사랑방은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더 대중적인 언어로 더 많이 여기저기에 전해줄 수 있는 역할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지방선거가 두 달 정도 남았는데, 이주민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 의견을 나눠주실 수 있나요?
우선 출입국관리법 17조에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조항이 있어요. 물론 이 법으로 실제 처벌된 이주민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런 조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협되거나 스스로 위축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법 조항을 개정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정치 참여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고 의사표현의 자유 영역인 것 같아요. 정당 혹은 정치권으로 표현되는 영역 내의 정치를 넘어서 추방과 처벌의 위험 없이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인거죠. 이주노조의 경우에는, 사무국장님께서 박근혜 퇴진 투쟁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가셨어요. 윤석열 퇴진 투쟁 때도 위원장님이 여러 번 발언하셨고요. 한국의 민주주의 쟁취와 인권을 위해 이주민도 함께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됐는지는 모르겠네요. (웃음)
그렇다면 이주민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정책이라기보다도 내외국인 사이의 사회적 교류를 만들어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10년 가까이 산 이주노동자들도 한국인 지인이나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이주민들이 가볍게 혹은 쉽게 정주민을 만날 수 있는 장도 없고, 기껏해야 교인들은 교회나 성당 정도가 있는데 요즘에는 이주민 미사 시간 따로 있고 그러거든요. 그래도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고 하면 어느 정도 자기표현이나 항변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상황이 이러니 이주민들이 한국말도 잘 안 늘고요.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어요.
요즘 이주노동자 산재 사고가 계속되고 있어요. 이에 대한 대응활동을 하시다보면 마음이 힘드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이나 팁이 있나요?
활동을 계속하는 힘은 일반 노동운동 혹은 사회운동 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비슷할 것 같아요. 내국인 노동자도 똑같이 산재 사건 많으니까요. 제가 원래 눈물이 많지 않은데 한 5~6년 전부터는 그렇게 눈물이 나요. 작년에 돌아가신 강태완 씨나 뚜안 씨도, 이번에 또 다른 뚜안씨 일도 마찬가지고…. 또 산재가 아니어도 자살 사건도 많아요. 본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 했었던 기대와 가혹한 한국의 노동환경은 180도 다르니까요. 그런 사건들 마주할 때마다 어렵고 힘들죠. 그럴 때 개인적으로는 심리적 거리 두기를 의식적으로 하고 있어요.
또 다른 팁이라고 한다면, 운동하기 힘들다, 그만두겠다고 하는 상근자들한테 설렁설렁하라고 해요. 설렁설렁 그 시기를 잘 넘어가라고. 저도 그렇게 계속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한 마디 남겨주신다면?
살아생전 딱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활동가들이 희망과 낙관을 품고 재미있게, 재미있게 활동하시면 좋겠어요. 저는 무슨 일이건 재미가 없으면 못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주운동도 재미가 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요. 아무튼 활동과 꼭 연관된 게 아니더라도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서 그런 재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또 이제 건강을 위해서 다들 자기한테 맞는 운동을 하나씩 하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