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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무엇을 위한 인권기본정책인가?(1)

NAP의 수립 원칙과 후퇴된 2기 NAP

지난 3월 30일, 2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이하 NAP)이 소리소문 없이 발표되었다. NAP는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실현을 위한 전 세계 인권옹호자들의 노력이 1993년 비엔나선언과 행동계획으로 모아져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은 2001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NAP를 수립하라는 권고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졌다. NAP는 국가가 인권보장의 의무주체로서 인권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국제사회에서 합의이다. 그래서 국가의 인권정책은 다양한 인권행위자들의 충분한 토론과 합의, 시민사회의 의견수렴이 중요하다. 그러나 2기 NAP는 최소한의 시민사회의 의견수렴도 없이 만들어졌다. 내용은 당연히 1기 NAP에 비해 후퇴되었고, 부실하다. 도대체 NAP가 왜 필요한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권’정책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한...

[사진: 2기 NAP 공청회 거부 기자회견]

▲ [사진: 2기 NAP 공청회 거부 기자회견]


3월 30일 발표된 2기 NAP를 보면, NAP에는 국제적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가입․비준한 7대 인권조약을 기준으로 하며, 국제인권조약기구의 한국보고서 심의 후 최종견해와 권고, 유엔인권이사회의 국가별 인권상황정기검토(UPR)의 한국 심의결과를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2기 NAP에는 국제인권기구의 권고조차 반영되지 않았다. 심지어 1기 NAP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권고안보다 후퇴한 인권위 2기 권고안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2기 NAP가 만들어지기 전(1월 18일)에 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최소한의 2기 NAP 방향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 정부가 반영하지 않았던 1기 NAP 인권위 권고안의 내용이 여전히 유효하므로 포함되어야하며, 둘째, 1기 NAP에 대한 평가를 통해 시정․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포함되어야하고, 셋째, 2011년까지 사회권 규약, 여성차별 철폐협약, 아동권리협약의 심의에 따른 권고와 국가별 인권상황정기검토, 표현의 자유특별보고관의 권고 내용이 포함되어야하며, 넷째, 표현의 자유 등 2008년 이후 후퇴된 인권상황에 따른 인권정책이 포함되어야한다고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NAP를 수립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 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기준으로 다음을 제시함.

① 국가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국가가 의무를 수행한다는 관점에서 다뤄져야 함.
② 구체적 현실에서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집단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기초해야 함.
③ 자유권, 사회권, 반차별 등 인권의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함.
④ 지난 10여 년간 국제인권기구가 한국정부에게 권고한 국제인권규범(자유권규약, 사회권규약, 아동권리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인종차별철폐협약, 고문방지협약 등 국제조약기구와 유엔인권이사회의 국가별인권상황 정기검토 UPR 등)이 국내에서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강제되어야 함. 지난 10여 년간 국제인권기구가 한국정부에게 권고한 사항이 아직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함. 따라서 이들 권고사항을 시급히 이행해야 할 국가적 책무가 있음을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함. 또, 비준하지 않은 국제인권조약을 비준계획이 발표되어야 함.
⑤ 인권에 반하는 법률, 제도, 관행의 폐지 및 개정이 포함되어야 함.
⑥ 권리를 쉽게 침해받는 집단으로서 사회적 소수자가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향유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
⑦ 아직도 인권침해역할을 하는 국가기구인 국정원, 경찰, 기무사 등의 민주적 재편을 중심에 두고 추진되어야 함.
⑧ 사회필수서비스인 식량, 주거, 의료, 교육 분야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는 방식으로의 사회공공성 확보가 이루어져야 함.
⑨ 5년 동안 추진할 핵심이행과제가 실효성 있고 명료화해야 함.

그러나 2기 NAP에는 국제인권기구의 권고가 반영되지 않았으며, 1기의 내용보다도 후퇴했다.

1기 NAP 인권위 권고안에서 지적한 인권침해적 법․제도 유지해

국가가 사회구성원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권정책, NAP라면 최소한 인권침해적인 법․제도는 폐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인권침해법인 국가보안법과 사형제도 폐지를 담고 있지 않다. 1기 NAP와 마찬가지로 사형제 폐지는 쟁점사안이라며, 검토하겠다는 계획만을 담고 있다. 인권의 가치와 기준은 다수결의 합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고,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것이 인권침해가 분명하다면 이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그러한 법은 폐지하고 인권교육과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인권기구에서도 수차례 폐지를 권고한 사형제와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2기 NAP에서도 폐지할 계획이 없다.

추진과제로 사형제의 위헌성을 검토하고 국민여론을 보겠다고 한다. 사형폐지 특별법안이 지난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의결되지 않았고, 2010년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에 합헌판결을 내림으로써 국제인권기준을 전면 부인하여 부끄럽게 하고도 정부는 위헌성 검토로 축소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1992년, 1996년, 1999년 유엔 자유권위원회에서 폐지를 권고한 이후에도 2009년, 2010년 사회권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인권기구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법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2004년 폐지를 권고한 바 있지만, SNS를 비롯한 온라인에 북한관련 글만 써도 이적단체 찬양이라며 공안기관의 수사를 받고, 정부를 비판하는 단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압수수색하고 체포하는 등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 북한계정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를 리트윗했다는 혐의로 박정근 씨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한 것은 프랑스 언론에도 보도되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또한 인권침해적 법․제도로 직접적인 침해를 받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병역거부 부정이다. 이로 인해 819명(2011년 3월 기준)의 병역거부자가 수감되는 등 처벌받는 상황에서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시급하다. 2005년 12월 인권위가 국방부에게 대체복무제를 권고하여, 2007년 9월 국방부는 2009년에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정권이 바뀐 후 백지화되었다. 그럼에도 2기 NAP에는 국민여론을 수렴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추진하겠다고 한다. 유엔 자유권위원회에서도 병역거부 부정은 문제가 있다고 개인통보를 통해 수차례 말했음에도 ‘국민적 합의’라는 핑계로 대체복무제 도입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과도하게 금지하는 법을 개정하여야 한다는 1기 NAP 인권위 권고안은 2기 NAP에서는 아예 빠져 있다.

통제정책을 정보인권과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으로 둔갑시켜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후퇴한 영역이 바로 표현의 자유이다. 특히 집회시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후퇴되었다. 2011년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정부를 공식방문하고 표현의 자유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고 우려하고 개선을 권고하였지만, 이러한 내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형법상의 명예훼손죄 폐지, 인터넷상 의사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기능 이양과 인터넷실명제 폐지, 선거전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공무원의 의사표현의 자유 ,언론매체의 독립성 등에 대해서 특별보고관이 권고했지만 어느 것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특히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도 신고제로 허가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허가제처럼 운용되고 금지되는 현실이다.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준법 집회는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것만이 추진계획으로 나와 있다. 이는 집시법을 여전히 허가제처럼 운영하겠다는 말에 다름없다. 누가 준법집회를 판단하는가! 경찰청은 신고대상이자 행정기관일 뿐임에도 자의적으로 집회금지통보를 하여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1기 NAP 인권위 권고안에 있었던 정부에 의한 인터넷의 내용규제 최소화와 자율규제의 원칙 적용은 1기에도, 2기에도 없다.

정보사회에서 정보인권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정보가 공적․사적 기관에 집적되어 본인이 결정을 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유통되고 거래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일뿐더러 프라이버시권까지 침해한다. 따라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나 사업자를 포함한 공공기관 및 민간 영역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제한하고 오남용 방지하고, 이용자의 자기정보통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제도 폐지 등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2기 NAP에는 마치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이러한 모든 것을 해소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특히 아직도 정부가 추진 중인‘ 전자주민증’ 추진을 중단하겠다는 일언반구도 없다.

삭제된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

인권은 약자의 언어이다. 그래서 인권정책 수립과 제도마련에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소수자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제도가 빠진 1기 NAP나 2기 NAP는 인권정책이라 말할 수 없다. 장애인권분야에서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시설장애인의 거주이전의 자유 보장은 1기에도 빠지고 2기에도 빠졌다. 나아가 시설장애인의 탈시설을 돕고 장애인이 사회복지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선택권 보장과 정부의 지원 등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장애인등급심사제 도입으로 장애인의 사회복지서비스는 더욱 제한되고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주민의 경우도 미등록 이주노동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수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단속과정에서 다치고 죽고, 최소한의 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지만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인권에 관한 계획은 1기에도, 2기에도 전혀 없다. 이주노동자의 강제노동을 근절하고 직업선택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일반고용허가제 하의 사업장 이동 사유 및 변경 횟수를 제한하는 현행 고용허가제도를 개선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내용은 없다. 경제위기 이후 이주노동자 및 이주민에 대한 차별, 혐오 범죄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도 없으며 UN이주노동자인권협약을 비준하겠다는 계획도 없다. 정부가 최근 다문화정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 인권을 외면한 다문화는 사실상 배제일 뿐이다. 또한 이주민의 노동권을 비롯한 사회권 보장정책이 없는 다문화는 인권적일 수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한국을 들썩이게 했던 청소년인권과 성소수자인권에 대해서도 2기 NAP에 담겨있지 않다. 인권단체들이 의견을 냈지만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인권을 돌아보게 했던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법으로서 보장할 방안도 검토하지 않았으며, 청소년의 교육권에 해당하는 무상급식에 대한 내용도 빠져 있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권고한 일제고사의 폐지조차 담겨있지 않다. 그저 2011년 아동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 등을 나열했을 뿐 권고에 맞는 계획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성소수자의 인권증진계획은 아예 빠져 있으며 HIV/AIDS 감염인 인권계획은 1기보다 후퇴했다. 1기 NAP에는 성소수자 인권문제가 단지 “성적소수자 관련 교육과정 및 교육교재 내용의 수정, 보완”과 “형법상 강간죄 개정 문제에 대한 신중한 검토”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형법상 강간죄 검토’만 2기 NAP 계획이다. 2008년 유엔인권이사회와 2009년 사회권위원회 등 여러 국제인권기구에서 성적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지만 아직도 5년째 검토 중이고, 차별적인 군형법 92조 5항 계간 금지 조항이 여전히 존치되고 있다. 인권단체가 제출한 성소수자의 건강권, 주거권, 노동권 보장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정부는 성소수자 인권 보호 의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HIV/AIDS 감염인 인권의 경우도 노동권 보장이나 차별, 강제검진 금지 등의 방향성은 없이 그저 국내 관련법 보장으로 뭉뚱그려 제출했다. 그동안 「에이즈예방법」이나 관련법(출입국관리법, 형의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등)에서 감염인들을 차별하고, 취업을 제한하는 「에이즈예방법」규정이나 노동권 보장 방안, 외국인에게 HIV 강제검사를 하고 입출국을 통제하는 「출입국관리법」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핵심은 비켜간 노동권,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한국에서 노동3권은 형해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적 권리로서 보장된 단체행동인 파업권 행사이지만 형사처벌을 받고, 파업 전에도 정부와 언론이 파업을 불법으로 단정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설립에 행정기관의 과도한 심사재량권이 있고, 쟁의행위 등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형법상 업무방해죄와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억압하고 있다. 그래서 2009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업무방해죄 적용을 하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여전히 노조활동이 업무방해로 처벌받고 있다. 또한 수차례 유엔 자유권위원회와 사회권위원회에서 권고한 교사․공무원․교수․이주노동자의 노동3권 제한을 개선하기 위한 내용은 2기 NAP에 없다. 단지 대학교원의 단결권 보장 방안만이 있을 뿐이다. 2009년 쌍용차 강제진압으로 극명히 드러났듯이 정부는 쟁의행위 사업장에 경찰 등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연행하여 쟁의를 중단시키는 등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했지만 쟁의행위 시 경찰투입 금지 등의 개선 계획도 없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인권은 방향도 없이 그저 보호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추상적인 문구만 한 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2기 NAP에는 한국의 비정규직이 전체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현실을 시정하기 위한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1기 NAP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고용을 일반화시키는 악법임에도 마치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인 양 포장되어 2기 NAP에도 여전히 담겨있다. 비정규직법은 폐기하는 것이 인권정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비정규직에게 계약해지나 재계약 거부는 해고와 마찬가지임에도 합법적으로 해고되는 상황이므로, 비정규직을 계약만료 등의 사유로 해고하는 것에 대한 제한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 상시고용․직접고용 원칙이 수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차별시정 지도감독 강화는 실질적인 대책이 되지 않는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