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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 교육부도 노동부도 외면하는 실업계 학생들

실업계 학생들의 인권 찾기에 나선 박남규 학생을 만나

언젠가 현장실습 중이던 학생을 만났을 때 “사회생활은 혼자 하는 거예요”라는 그의 말은 학교와 회사, 정부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그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실업계 학생의 대다수가 빈곤층 자녀인 상황에서 ‘저임금 장시간 중노동’의 현장실습 경험은 빈곤의 재생산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2006년 1월 현장 실습 과정에서 사고로 죽은 학생의 소식이 전해진 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정상화 방안’(*)이라는 조치를 내놓았다. 그러나 그 조치도 현장실습의 시기와 대상에 관해서나 강제할 뿐, 실업계 학생들이 겪는 제반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주로 청소년 관련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뉴스 <바이러스>에서 실업계 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고발하고 이들의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박남규 학생을 만나 실업계 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마주보고자 했다.

2006년 2월 21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있었던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기자회견

▲ 2006년 2월 21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있었던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기자회견



현장실습에서 배제되는 실습생들

현장실습은 실업계 학생이라면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실습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는 없다.

“전공을 살려서 실습 나가는 경우요? 그건 매우 드물어요. 한 반에 3-4명 정도면 많은 거죠. 공부를 좀 열심히 했던 모범생틱한 친구들에게는 그나마 거리 등의 편의성이 제공되는 업체를 소개시켜주죠. 전공과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돼요. 무엇보다 문제는 실습 나갈 업체에 대한 정보를 실습생들이 전달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거의 업체명만 알고 나가는 거죠. 한 친구에게 월급 얼마 받는지 물어보니까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얼마를 받고 일하기로 했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기본적 노동 조건이 어떠한지, 업체가 어디에 위치해있고 어느 정도 규모인지, 하게 될 일은 무엇인지 아예 모르고 무작정 나가는 거죠.”

사정이 이렇다보니 막상 실습 나가서 겪는 어려움 때문에 중도에 그만 두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한다. 청소년개발원 김기헌 연구위원의 발표에 따르면, 신체적·정신적 부적응이 중도 탈락의 이유 중 50% 이상을 차지한다. 업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무작정 실습에 나가 이들이 겪을 신체적·심리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떠올려보면 이런 통계 수치는 당연한 결과이다. 실업계 학생들은 교사와 학생,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이중의 권력 구조 안에서 질식당하고 있다.

정부의 ‘정상화 방안’도 피해가는 간접 고용의 문제점

“현장실습이 갖는 문제가 많지만 그 중 주변에서 접하게 되는 가장 흔한 사례가 바로 간접 고용이에요. 학교에서 소개해 현장실습을 나갔는데 막상 나가보면 회사에서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회사에서 마트같은 데에 일자리를 알아봐줘요.”

교육부의 ‘정상화 방안’은 간접 고용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간접고용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학교와 회사의 연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 상황,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장실습을 이수해야 하는 상황 등이 맞물려 간접고용의 폐해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학교에서 알게 될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학생이 지게 된다. 방학 중에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방학 이전에 학교에서 간접고용 사실을 알게 될 경우 학생은 곧바로 ‘실습’을 그만 두고 등교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학교에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무엇을 하든 무조건 학교 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하고, 어쨌거나 시간을 채우면 이수를 인정해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실에는 활력은 없고 휑한 기운만 가득할 뿐이다.

“중도에 실습을 그만 둔 학생들을 위한 기회요? 원래 상황이 바뀌어 예정된 실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다시 학교에 서류를 내야 해요. 그러나 실제로 학생들이 하지는 않죠. 왜냐면 학생들도 학교에서 일일이 규제하는 것에 대해 싫어하고, 교사들도 바뀔 경우 다시 결재를 올려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묵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노동인권과는 거리가 먼 현장실습 사전 교육

“현장실습 전에 관련 교육을 36시간 이수해야 해요. 학교에서 진행하는 데도 있고 다른 단체에 의뢰해서 진행하는 데도 있죠. <현장실습>이라는 이론서로 하는데 앞부분은 예절, 실용한자 등이, 뒷부분은 실습 관련 필요한 서식 쓰는 법이 나와 있어요. ‘기업을 위한 매뉴얼’일 뿐인 거죠. 최저임금이나 노동기본권 같은 얘기는 전혀 나와 있지 않고 수업에서도 진행하지 않아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직업탐구영역에 포함되는 <공업입문>이라는 교과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박남규 학생이 본 <공업입문> 교과서는 산업구조, 회사 경영원칙 등 기업에 관한 내용이 19쪽, 노사관계에 관한 내용이 3쪽 정도 되었는데 이 정도도 그나마 다른 교과서에 비해 나은 편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수업 시간에 ‘노사관계’ 부분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차라리 <법과 사회> 과목은 수능에서 노동법 관련 문제가 한 문제 이상 나오기 때문에 그래도 다루는 편이라고 한다. 이는 실업계 학생들의 수업이 실습 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요구할 수 있는 노동권에 대한 설명과 이해보다 수능 문제에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마저도 <법과 사회>가 선택 과목이라 학교에서 이를 선택하지 않으면 노동인권 관련 내용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차단되고 만다.

노동부도 교육부도 외면하는 실업계 학생들

“교육부에서는 실습생도 ‘학생’이라고 노동법 적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에요. 실제로는 실습 과정이 일반 노동과 다를 바 없는데도 말이에요. 노동부도 실습생은 ‘학생’이기에 노동법 적용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들을 교육부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하죠. 법의 영역에서도 실습생들은 노동부의 직업안전교육법과 교육부의 교육법시행령 둘 다에 걸쳐 있어요. 이렇다보니 실습생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도 안해요. 국가청소년위원회도 해마다 청소년 취업 상황을 보고해야 하지만 실제로 실습생들의 문제에 대해서 제기하거나 책임지지는 않고 있죠.”

실습생들은 실습 과정에서 노동자와 똑같이, 아니 오히려 더 오랫동안 더 힘들게 일하고 있지만 교육부와 노동부는 이런 실습생들에게 ‘학생’의 굴레를 덮어씌운 채 이들이 처한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

“두 부처 다 책임 회피에나 급급할 뿐 학생들 얘기를 듣지 않는 것이 문제에요. 현장실습은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데 제도적 방안은 없고…학교에서도 이도저도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요. 정부 역시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대안이라고 내놓았지만 그것도 현장실습이 낳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실업계 현장 실습생을 포함한 청소년에게 근로기준법을 지켜 노동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출처; 국가청소년위원회>

▲ 실업계 현장 실습생을 포함한 청소년에게 근로기준법을 지켜 노동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출처; 국가청소년위원회>



우선적으로 실습생의 노동인권이 보장되어야

“물론 정부가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현장실습생들의 인권 보장이라고 봅니다.”

실업계 학교를 기피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방 교육청은 특성화고등학교를 추진하고 있고, 또 현장실습을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제도화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박남규 학생은 실업계에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는 외면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한때 2+1 공고가 대안처럼 제시되었죠. 그러나 실제로는 일반 현장실습과 전혀 다른 게 없어요. 노동시간만 늘어났을 뿐이죠. 내용은 별 차이 없는데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에요. 2+1제도를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학생들을 위한 대안도 없고. 회사 승인에 있어 정부가 개입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여전히 학생들의 권리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렇다보니 2008년에 2+1 공고가 전면적으로 폐지된다고 하는데도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없는 거죠. 지금 불고 있는 특성화고 바람도 실업계 학생들이 겪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려워요.”

현장실습의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고, 학생들을 향한 학교의 진심어린 관심과 애정이 담보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우선적으로 현장실습생들의 노동인권 보장이라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명목뿐인 현장실습이라면 차라리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제 경우도 그렇지만 취업을 빨리 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친구들이 실업계로 온다고 봅니다. 물론 실업계 학생들의 반이 수능을 보고 대학진학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취업시켜줄 것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도 다수에요. 이들을 고려했을 때도 실습 기간을 조절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등 제도를 개선할 필요는 있지만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인권 찾기에 나선 그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노동시간 초과에, 산재도 적용이 안되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것이 실습생들의 현실이에요. 그 ‘일부’에 해당하는 이들은 매우 소수이며 그나마 행복한 거죠.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실습생들은 매우 다수이며 불행한 거구요.”

그러나 그 ‘일부’의 조건도 성인 노동자들과 노동조건을 비교해 보면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실습수당이라는 이름 하에 아예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대부분이 최저임금 선이고, 그 이상이라고 해도 성인 노동자 초봉의 80%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 실습생의 현실이에요. 그리고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똑같이 일을 하고도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아요. 임금도 적고, 발언권도 없고, 야간 근무를 시켜도 노동법 보장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찍소리도 못하죠.”

현장실습에는 그것에 참여하는 학생 수만큼이나 다양한 욕구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실습을 통해 얻게 되는 수당과 경험은 고된 노동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벗어나 스스로 일구어낸 결과라는 성취감과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을 동시에 맛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그런 기쁨은 좌절을 동반하고 있다. 이미 노동자인 실습생들에게 ‘노동권’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학생들에게 학교와 회사,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맞서 스스로 권리 찾기에 나선 박남규 학생같은 이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학생인권 보장을 목표로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논쟁하고 행동한다. 교사와 학생,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이중의 억압 구조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희망 찾기에 나서고 있다.

(*) 2006년 5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내놓은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은 크게 ⑴ 취업이 보장되고 3학년 2학기 교육과정의 2/3이상 이수한 경우에만 현장실습이 가능토록 하고 있으며 ⑵ 파견업체 통한 간접고용 형태를 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