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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학생인권 마술피리

인권이 꽃피는 학교를 만드는 10가지 열쇳말

[삘릴리~ 학생인권 마술피리] (1) 변화의 설계도를 그리기 위한 원칙

<편집자 주> <인권오름>은 ‘인권교육센터 들’과 함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연속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지만 학교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고 뒷짐 진 국가의 태도 역시 여전합니다. 학생인권을 지원하는 법률과 정책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학생과 교사들이 일어선다면 일구어낼 수 있는 변화는 많습니다.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설계도로서 학생인권에 관한 종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가이드라인이 학생인권을 부르는 마술피리가 되어 인권이 꽃피는 학교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배틀 로얄’의 교육으로부터 벗어나자

“오늘, 처음으로 친구를 죽였다”는 섬뜩한 문구가 눈길을 잡는다. 영화 <배틀 로얄>의 포스터.

▲ “오늘, 처음으로 친구를 죽였다”는 섬뜩한 문구가 눈길을 잡는다. 영화 <배틀 로얄>의 포스터.

“오늘, 처음으로 친구를 죽였다.” 헉, 이 끔찍한 말은 대체……. 몇 년 전 국내에 개봉됐던 영화 <배틀 로얄(Battle Royal)>은 등교거부와 교내 폭력이 넘쳐나는 가까운 미래의 일본 이야기다. 수학여행을 가던 42명의 학생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무인도로 납치된다. 어리둥절한 학생들 앞에 나타난 교사. 그는 3일 동안 최후의 1인이 살아남을 때까지 각자 주어진 무기를 갖고 서로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친구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어야 하는 섬뜩한 상황으로 학생들을 몰아넣은 건 정부가 만든 ‘배틀 로얄 법’. 더 끔찍한 건 영화 속 이야기가 한국 교육의 현실을 그대로 닮아있다는 것이다.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만 승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경쟁교육에서 우정(연대)의 가치가 들어설 자리가 있을까?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공간에 대체 누가 신뢰와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2007년 한해 중고생 20명 가운데 1명이 실제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 나라. 교사와 학생이 적대감과 공포만 키워가는 학교. 이런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 정부는 ‘학교자율화’ 조치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가혹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물아 넣고 있다. 이 한국형 ‘배틀 로얄 법’은 학생의 건강뿐 아니라 평등한 교육에 대한 권리마저 시궁창에 내던져 버린다. 생각할 짬과 우정을 나눌 여유를 빼앗고, 사회에 참여할 기회는 물론 그 동기마저 꺾어버린다. 생각을 하지 않는데 사상의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참여할 사람이 없는데 참여권이 보장된들 뭐하나.

‘인권이 사라진 교육’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1996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거듭 지적한 바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어떤 교육으로 초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략된 사회. 경쟁에서 살아남은 1%만 챙겨서 데려가겠다는 학교. 배틀 로얄의 교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인권이라는 주춧돌 위에 교육을 다시 세우기 위한 마술피리를 힘차게 불어야 한다.

학교자율화 조치에 반대하는 청소년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청소년들 [출처: 교육희망]

▲ 학교자율화 조치에 반대하는 청소년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청소년들 [출처: 교육희망]



삘릴리 마술피리의 첫 소절 : 열 가지 열쇳말을 기억하자

마술피리의 첫 소절은 뚝딱뚝딱 학교를 고치기 위한 설계의 원칙부터 분명히 하는 일이다. 철학이 올바르고 명확해야 기반공사가 탄탄해진다.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에 관한 국제기준들과 교육 관련 국제회의의 결의들 속에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남은 일은 그 원칙을 거르개 삼아 학생인권을 갉아먹는 학교 구조와 문화를 걸러내는 일뿐.

학생인권 마술피리 첫째 소절 :

1. 학생을 권리의 존엄한 주체로 대하는 학교
2. 참여와 결정을 경험할 수 있는 학교
3. 차이를 존중하고 차별에 맞서는 학교
4. 감당할 만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
5.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책임 있는 삶의 자세를 배우는 학교
6. 학생의 삶에 대한 총체적 돌봄이 있는 학교
7. 인권의 상호불가분성을 존중하는 학교
8. 네트워크와 연대가 꽃피는 학교
9. 교사의 권한과 역량을 존중하는 학교
10. 권리를 회복할 권리가 보장되는 학교


첫 출발은 학생 역시 권리의 존엄한 주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기억하는 데 있다. 학창시절은 인권이 유보된 대기실로 간주되어선 안 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일반논평 8>을 통해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지위를 독립된 인격체이자 인권의 주체로 단언”하고 있음을 재확인한다. 첫째 원칙의 거르개에 학교를 집어넣어 볼까. 학생의 인격과 가능성을 무시하는 언어폭력들, 차가운 복도 바닥에 엎드려 반성문을 쓰게 하는 관행들, 모든 학생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일제 소지품검사 등이 걸러내야 할 찌꺼기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학교가 참여와 결정을 배울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는 것. 학생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수준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변화를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 장식에 불과한 참여, 이름뿐인 참여, 결과를 이미 조작해둔 참여는 진정한 의미의 참여가 아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일반논평 5>에서 “아동의 의견을 듣는 것처럼 가장”하지 말고 “적정한 비중을 부여”할 때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원칙의 거르개로 학교를 걸러볼까. 왜 학생의 동의가 아니라 부모의 동의를 받나, 학교생활규정을 만들고 고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은 왜 참여하지 못하나, 머릿수 채우기 위해 학생을 이런 저런 행사에 동원하는 게 교육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셋째, 학교는 학생의 다양성을 사랑하고 차별에 맞서야 한다. 유엔 교육의 권리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2004년 12월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E/CN.4/2005/50)를 통해 “다양성은 교육의 초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학교 현실은 어떠한가. 학생을 성적순으로 갈라놓고 우등생만이 학교의 명예를 빛낼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나. 장애를 가진 학생이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하고 교육과정에서 배제되고 있지는 않은지, 성정체성을 탐색할 기회가 자유롭게 열려 있는지, 학교 환경과 교사들의 발언이 여성의 존엄성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를 세 번째 원칙은 되묻고 있다.

넷째 원칙은 교육은 학생이 감당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학생에게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주는 교육은 정당한 교육의 궤도에서 이탈한 것이다. 학생은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교육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동료를 고발하고 적발하도록 만드는 선도부의 존재,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왕따, 견디기 힘든 학습부담, 운동기계로 내모는 학생선수 육성 관행 등과 단호히 결별해야 하지 않을까.

경기도 한 초등학교의 모습. 선도를 맡은 학생들이 일일이 친구와 후배들을 쫓아다니며 동태를 살펴 보고한다. [출처: 교육희망]

▲ 경기도 한 초등학교의 모습. 선도를 맡은 학생들이 일일이 친구와 후배들을 쫓아다니며 동태를 살펴 보고한다. [출처: 교육희망]


다섯째 원칙은 ‘책임 먼저, 자유는 나중’이라는 공식의 잘못을 꼬집는다. 책임 있는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은 질서에 대한 강박증이나 강압적 지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행사하는 경험으로부터 길러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그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격려 받을 때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힘도 기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학교는 학생의 입을 틀어막고 과도한 규정으로 학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 생각을 거짓으로 고해야 하는 학교, 전단지나 서명용지 하나 돌리면서 쫓겨날 각오까지 해야 하는 학교는 과연 정의로운가.

여섯째 학교는 학생의 삶을 총체적으로 돌볼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중요한 인격적, 사회적 환경인 만큼, 학교에 오기 전과 학교를 떠난 후에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젯밤 술 취한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휘청거리는 마음으로 겨우 학교를 나온 학생을 수업 태도 불량으로 벌주는 학교, 도와달라고 보내는 학생의 간절한 눈빛을 읽지 못하는 학교, 최저임금도 안 되는 헐값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온갖 모욕을 감내해야 하는 학생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학교에서 과연 돌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일곱 번째는 인권의 상호불가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 학생에게 ‘무엇을 얼마나 주었나’뿐 아니라 ‘어떻게’ 주었는지도 함께 질문되어야 한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일반논평 14>에서 ‘건강권 실현을 위해서는 적절한 보건서비스의 제공뿐 아니라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도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한다. 상호불가분성의 원칙은 학생의 건강이나 안전을 보살핀다는 명분으로 학생의 자유를 구석에 몰아넣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를 묻는다. 이를 테면 안전사고를 예방한다는 이유로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놀지도 못하게 하는 조치는 과연 정당한지 말이다.

여덟 번째 원칙은 네트워크와 연대가 꽃피는 학교이다. 학생 인권 보장을 교사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미뤄두는 것은 가혹할 수 있다.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로 질문을 옮겨야 한다. 학교 안 자원만으로 부족하다면 정부에 지원을 요구함과 동시에 적극적 네트워킹을 통해 학교 밖 자원을 끌어들이면 어떨까.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를 교실수업으로 초대하는 학교, 지역사회의 현안에 학생의 참여를 독려하는 학교, 법률 지원이 필요한 학생이 도움을 받을 만한 기관을 적극 소개해주는 학교에서 학생은 연대의 가치를 자연스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똥 쌀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학교 앞 시위에 나선 충암고 교사들. 학생인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교사들의 권한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출처: 교육희망]

▲ ‘똥 쌀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학교 앞 시위에 나선 충암고 교사들. 학생인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교사들의 권한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출처: 교육희망]

아홉 번째는 교사를 학생인권의 옹호자이자 변화의 촉매자로 초대하려면 그들이 충분한 권한과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 2000년 세계교육포럼에서 채택된 <다카 행동계획>(Dakar Framework for Action)은 “어떤 교육 개혁도 교사의 능동적인 참여와 주인됨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교사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책임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700명의 학생이 단 한 개의 화장실밖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비리와 인권침해로 얼룩진 충암중고의 현실은 징계 위험에도 거리로 나선 교사들의 용기 덕분에 알려질 수 있었지만, 그런 용기를 모든 교사에게 요구할 순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의 입을 막고 길들이는 교원정책은 교사의 인권은 물론 학생의 인권까지 후퇴시키게 된다. 인권을 옹호하는 교사들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학생인권에 관한 분명한 법적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다.

마지막 원칙은 권리를 회복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인권침해를 예방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학생은 인권침해를 겪었다 해도 침해를 호소할 기회도, 그 호소를 경청받는 경험도 갖기 힘들다. 2006년 유엔총회에 제출된 <아동폭력에 대한 유엔 연구 A/61/299> 보고서는 ‘아동과 그 대리인이 접근하기 쉬운 절차가 마련되는 것은 물론 모든 아동이 그 절차를 알고 있어야’ 아동폭력에 맞설 수 있다고 말한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맞서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처벌이나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학생을 침묵과 체념 속에 가둬두게 하는 것은 또 한 번 인권을 침해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열 가지 열쇳말은 학생 인권 설계도를 그리는 기본 원칙이다. 마술피리의 다음 소절에서는 구체적인 인권지침을 만나볼 수 있다. 삘릴리 삘릴리~ 무슨 소리가 들려올까?

덧붙임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http://dlhre.org)의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