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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 “해고되고 나니 세상이 보이대요”

하청업체라는 빈곤의 덫과 싸우는 삼성 해고노동자 한명선 씨

하루 내내 내리쬐던 햇볕이 건물들 사이로 사라지고 거무스레한 구름들이 기지개를 켜며 살랑 바람을 일으키는 늦은 저녁, 수원역에서 서울을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웃음기 섞인 그 말이 귓속을 왔다갔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할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덜컹거리는 소음과 함께 반복되는 환청은 피곤함으로 좌석에 쭉 뻗어 있던 몸을 곧추 세우고 손바닥만한 취재수첩을 넘기게 한다.

삼성SDI 사내하청 삼명RT 해고 노동자 한명선(26) 씨. 그녀는 삼성SDI 사내하청업체인 삼명RT에서 일하다 지난 5월 회사가 폐업하는 과정에서 난데없이 해고됐다. 그녀는 현재 동료 3명과 숙식을 함께 하며 삼성SDI 측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27일 명선 씨등은 여성인권단체들과 연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을 넣기도 했다.

▲ 지난 6월 27일 명선 씨등은 여성인권단체들과 연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을 넣기도 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주는 줄 알았어요”

“전라도 담양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졸업한 후에 화성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일을 했는데 회사 규모도 작고 교통도 불편해서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죠. 그 때는 월급의 20%를 통장에 넣으면서 열심히 일을 했죠.”

화성에서 일하던 업체를 그만두고 그녀는 친구 소개로 2000년 3월 삼성SDI의 사내하청 기업인 3A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입사하게 된다. “삼성이라고 하니까 들어갔죠. 나만 바라보는 남자랑 결혼도 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 싶었거든요.”

3A는 삼성SDI가 지난 98년 수원사업장 브라운관 생산공정 가운데 ITC(브라운관 화면조정과 보정) 공정을 여러 별도 법인으로 분사시킨 사내하청 기업 중의 하나다. 당시 삼성SDI는 이 공정을 맡았던 노동자 350여명에게 퇴사와 재입사 형식을 거쳐 각 분사업체로 소속을 옮기도록 했다. 그 후 삼성SDI는 이들 분사업체와 1년 단위로 도급위탁계약을 체결하면서 분사 이전과 똑같은 일을 계속 하도록 했다. “보정 일을 맡아했는데, 브라운관 화면이 잘 나오게 하는 일이에요. 처음 2년 동안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았어요. 3년짜리 적금에 매달 50만원을 넣다 보니 20-30만원 가지고 생활을 했어요.” 삼성은 이렇게 분사화를 통해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 수준을 밑바닥에 묶어둘 수 있었다.

빠듯한 살림이었을 것 같은데, 명선 씨는 당시 열심히 일한 만큼 회사도 월급을 주는 줄로만 알고 부당하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기숙사에서 매달 3만원 내고 살았고 그곳에서 밥도 해 먹으니까 크게 불만이 없었어요. 공장 안에 기숙사가 있고 출퇴근 버스가 그 안에서 움직이니까 내가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모르고 있었거든요. 지금도 삼성 SDI의 공장에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고 해요. 지금 생각하면 노예 같은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구조조정과 성차별의 이중고통

최근 브라운관 시장이 축소되자 삼성SDI는 수원사업장의 브라운관 생산공정을 폐쇄, 부산사업장으로 통합하고 이곳을 LCD, TFT, PDP 등 새로운 생산공정으로 바꾸는 업종재배치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분사업체들은 단계적으로 구조조정을 통한 폐업을 진행해 왔다. 그렇게 신흥ITC(주)와 3A(주)가 통합한 삼명RT(주)는 마지막 분사업체로 남았다.
 
“삼명RT에서 일할 때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직급이 주어졌어요. 하지만 공장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직급이 전혀 없었고 남성 노동자들의 관리 하에 일을 해야 했죠. 경력이 10년 된 언니가 있었는데, 저보다도 경력이 짧은 남성이 언니를 제치고 남자라는 이유로 조장 일을 맡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남녀 차별이 심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지난 2005년 10월부터 삼명RT(주)는 남은 노동자 50여명에게 위로금과 퇴직금 명목으로 410만원∼7천여만 원을 제시하면서 개별적으로 퇴직을 권고하고 사직서를 받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특별히 고용불안을 느끼지 못했어요. 회사가 사내하청업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티가 안 나게 은근히 라인을 없애면서 인력감축을 해왔기 때문에 회사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지난해 10월부터 대규모 인력 감축이 시작되면서 엄청 불안해지더라고요.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안되겠다 싶어서 올해 1월쯤에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모임에 있던 사람들도 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사직서를 강요받았기 때문에 제대로 활동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죠.”

난데없는 사직 요구에 명선 씨를 비롯한 4명의 노동자는 ‘강제퇴직이 부당하다’며 끝까지 버텼다. “회사에서 분사처우 남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알선하는 등 회유를 해서 여성 노동자들을 강제로 퇴직하도록 했어요. 여성노동자들에게 너 이런 모습 엄마가 알면 좋아하시겠냐는 말도 서슴지 않았고 한번은 사무실에 가두어 놓고 퇴직서를 쓸 때까지 밖으로 내보내 주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명선 씨와 동료들이 회유와 협박에 넘어오지 않자, 삼명RT는 삼성SDI와 도급계약이 끝나는 시점인 지난 5월 25일, 이들을 해고(근로관계 해지 통보)하고 아예 폐업했다. 이렇게 도급계약 해지라는 방식을 통해 삼성SDI는 해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저항 부담에서 손쉽게 벗어난 것이다.

우리 사회 경제단체들과 주류 언론은 노동자들이 저항하면 강성노조의 폭력성으로 경제가 불안해진다, 산업평화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폭력이란 무엇일까. 삼명RT와 사내하청업체들의 ‘숨은 운영자’, 삼성이 이들을 내모는 과정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평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임금 같은 문제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저 주는 대로 받고 열심히 일하면 되는 줄만 알았죠. 하지만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아무 이유도 모르고 너무 쉽게 해고가 되는 거예요. 진짜 묻고 싶어요. 삼성SDI가 사내하청화로 그렇게 쉽게 해고하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이냐고요.”


해고되니 세상이 보이더라

명선 씨는 5월 해고되면서 받은 퇴직금 400만원을 들고 동료 3명과 함께 생활하면서 삼성SDI가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하며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실제 고용주는 삼성이잖아요. 삼성이 이렇게 큰 것도 다 비정규직이 있었기 때문인데 비정규직 해고가 너무 쉬운 것 같아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해고 되어도 뭐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삼성SDI에서 사내하청업체로 분사한 기업들이 몇 되는데 그런 곳에서 저와 같은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죠.”

복직투쟁을 하면서 명선 씨는 대기업이 무얼 노리고 사내하청업체들을 만들어내는지 똑똑히 알게 됐다고 한다. ‘저임금’과 ‘불안정성’이 바로 그것. “삼성이 왜 사내하청을 계속 하겠어요? 사내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하면 똑같은 일 시키면서도 인건비 줄일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배부른 회사의 이익을 더 많이 가지려고 머리를 쓴 거죠. 삼성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회사가 그런 사실들을 모르게 하기 때문에 일만 계속 하게 되는 거죠. 오히려 해고된 지금은 세상이 보여요.”


사내하청의 구조는 빈곤의 덫을 만든다

동료들과 퇴직금을 한데 모아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지금 당장 입에 풀칠할 걱정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복직투쟁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사 복직이 된다하더라도 다시 또다른 삼성의 사내하청업체에서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몇 년을 일해도 임금은 고만고만하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삶, 언제 빈곤의 나락에 빠질지 모르는 삶,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기회를 빼앗겨버리는 삶, 그것이 바로 사내하청 구조가 만들어낸 빈곤의 덫인 것이다.

사내하청의 폐해는 지금도 명선 씨와 같은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금씩 죄어 오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귓속에는 그녀의 한 마디가 맴돌고 있다. 일하고 싶다고, 그래도 일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