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삶_세상

[삶_세상] “의료수급권자로 살아보니 이 나라가 싫어진다”

의료수급권자 남우섭 씨를 둘러싼 차가운 현실

돈으로도 못사는 것이 건강이라고 했다. 하지만 첨단의료기술의 발전에 축포를 울리고 앞다투어 ‘좋은’ 약들을 광고하는 요즘, 건강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우리 모두에게 장밋빛 건강을 보장해줄 것 같은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비싼 상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근 의료수급권자 남우섭 씨는 건강센터에 불만을 토로하는 상담을 했다. 다니고 있는 병원의 약값이 비싸니 싼 약을 먹으라는, 구청 복지과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더 깊게 살 속으로 파고드는 저녁, 직접 남 씨를 만나 의료수급권자들의 현실을 들어 보았다.

“벌써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요”

남우섭 씨는 8년 전 갑작스런 사고로 목을 다쳐 지체장애 1급을 받고  2종 의료수급권자가 됐다.

▲ 남우섭 씨는 8년 전 갑작스런 사고로 목을 다쳐 지체장애 1급을 받고 2종 의료수급권자가 됐다.

남 씨는 8년 전 일을 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목을 다쳤다. 가슴 밑으로 전신마비가 된 그는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고 몇 달 뒤 2종 의료수급권자가 됐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계능력을 잃게된 데다가 마비로 인해 온갖 합병증을 앓게 된 남 씨는 하루에도 네 번 약을 복용해야 한다. 2~3개월에 한 번씩 재활과 방광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고역이다. 뿐만 아니라 제 시간에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금세 몸에 고통이 덮쳐든다. 호흡을 담당하는 경추 4번을 다친 그는 이렇게 추운 겨울날씨에 감기라도 잘못 걸리면 호흡이상 증상이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서러운 것은 의료수급권자란 이유로 받는 차별이다.

“약국에 가면 의료보험약하고 수급자들에게 주는 약 자체가 달라요. 가격도 그렇고. 쉽게 말해서 의료보험환자한테 100원짜리 약을 줄 것 같으면 우리 수급자들한테는 50원짜리 약 밖에 안줘요. 병원에 가도, 수급자라고 얘기를 하면은 대하는 태도가 벌써 달라져요. 그런 게 몸에 와서 닿아요.”

병원과 약국의 선택에도 제한을 둬

그에게 올해 들어 구청 복지과에서 두 건의 전화가 걸려왔다. ‘왜 굳이 비싼 병원에 가서 비싼 약을 타먹느냐, 약값이 싼 동네의원에서 약을 타먹으라’는 것이다. 의료수급권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의료수급권자들의 의료이용이 감시를 받게 됐다.

“왜 지금 다니는 그 병원까지 가냐고 그러더라고요, 가까운 동네 의원에서 약을 타먹으라고. 병원도 치료비 비싸다고 제한을 둬요. 병원도 가지 말고 보건소에서 진료하고 감기약도 보건소에서 되도록 타먹으라고 한 적도 있어요.”

남 씨는 좋은 치료 받고 좋은 약 먹으면서 빨리 낫고 싶은 것이 모든 환자의 심정이 아니겠냐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료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좋지만, 치료에 차별을 두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불만을 터뜨렸다. 질 좋은 의료서비스란 환자의 몸에 맞고 적절한 것일텐데 단지 비싸다는 이유로 선택을 제한하는 것을 보면 의료급여가 수급권자들의 권리로 여겨지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6개월 받았는데, 의사가 친절하고 거기서 내가 몸이 확 좋아졌거든. 다른 데서는 꼼짝도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무시하고 내가 가고 싶은 병원 가고 싶어요. 하루 이틀 다닌 것도 아니고 6년이나 다닌 병원인데 비싸다고 가지 말고 동네의원 가라는 게 말이 되냐고.”

휠체어를 타고 등산을 하듯

“나 같은 환자는, 대부분 2층, 3층에 위치한 동네의원은 다닐 생각조차 못해. 몇 달 전엔 이 치료 받으려고 몇 시간 걸려 다른 동네 치과엘 갔어요. 엘리베이터가 있는 치과가 아니면 휠체어가 움직이질 못하니까.”

남 씨처럼 지체장애1급인 환자가 동네의원을 찾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휠체어를 타고 등산을 하는 것과 같다. 그가 굳이 큰 병원을 찾는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병원의 선택에 제한을 받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장애인으로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장애인에게는 병원의 진입부터가 고난이다.

입원 보증금 없어 치료 못 받아

최근 남 씨는 손가락을 다쳐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응급실에서는 응급처치도 전혀 해주지 않고 입원을 해야 하는데 보증금을 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입원을 하려면 나한테 백만 원 보증금을 걸고 입원하라더라고. 수급자니까 돈 안내는 게 문제 생길까봐. 엄청 힘들어요. 수급자는 어딜 가든 대우 못 받고. ”

모아둔 돈이 있을 리 없는 수급권자에게 입원보증금을 내라는 요구는 당장 치료해야 할 병을 돈 때문에 미루게 되는 부당한 일이 발생하게 한다. 진료거부와 다름없었던 입원보증금 때문에 이날 남 씨 가족은 곪아 썩은 냄새가 나는 손가락을 들고 입원할 병원을 찾아 헤매야 했다.
지난 달 30일 ‘병원의 보증금 요구가 의료급여환자들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보증금 청구가 불법임을 명시하는 내용의 의료급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병원에서는 이를 어길 시 1년 이하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병원마다 관행적으로 요구했던 보증금 때문에 당장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건강을 잃게 되는 일이 사라질 지 지켜볼 일이다.

주는 대로 먹은 것도 죄

몇 달 전 남 씨는 이비인후과를 찾은 적이 있다. 코가 휘어서 옆으로 누우면 숨을 못 쉬었던 것이다. 당시 의사가 약물치료를 하자고 해서, 그는 두세 달 동안 주는 약을 계속 먹었다.

“어느 날 복지과에서 전화가 왔어요. 무슨 약을 이렇게 먹느냐고, 먹긴 다 먹었냐고 버리지 않았냐고 따지더라고.”

남 씨가 먹고 있던 약은 비염약이었는데, 비염약은 일주일 정도만 복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무슨 약을 먹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약을 많이 먹는다고 항의를 받자, 그 일로 속이 상한 남 씨의 부인 양행덕 씨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직접 동사무소 복지과를 찾아가 항의했다고 한다.

“비염약 2개월 치 먹은 걸 환자한테 따지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는 무슨 약인지 모르고 의사가 약물치료하자고 해서 먹은 것이지, 비염약을 일주일 먹는 건지 한 달 먹는 건지 우리는 모른다고. 복지과에서는 비염약은 일주일만 먹는 거라 길래 그건 의사한테 가서 따지라고 했어요. 약 많이 먹는다고 다짜고짜 따지는 것도 서러운데 그때까지 비염약을 그렇게 오래 먹고 있는지도 몰랐으니…….”

이 나라가 싫어질 정도

2007년이 지나면 남 씨는 딸의 부양능력이 인정되어 더 이상 의료수급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의료수급자라고 차별 받는 게 서러워도 그나마 돈에 대한 부담은 적었는데 그마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미래가 막막하다.

“딸이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자기 부모님 부양만 계속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아저씨는 계속 아플 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정은 더 나빠질 것 같다”는 남 씨의 부인 말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빈곤과 건강 문제의 악순환을 절감할 수 있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성취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는 것이 인종, 종교, 정치관, 경제사회적 조건의 구별 없이 전 인류의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라고 선포했다. 즉 건강을 더 이상 개인의 짐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온 세상을 잃는 것’이라고 말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급여 제도혁신에 대한 국민보고서’를 통해 “의료급여 수급자에 대해서 주치의나 병원을 지정”하고 “본인부담금을 내게 하”는 “근본적 제도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가난해서 건강을 잃고, 건강을 잃어 가난해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의 하한선을 받쳐주어야 할 의료급여제도가 오히려 수급권자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상한선을 못 박고 있는 것이다. 의료수급권자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건강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 그 상황 속에 고립되고 만다. 이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의료수급권자라고 낙인찍는 차별적인 시선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혜적 차원이 아닌 건강권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변화가 없다면 건강을 잃고 세상마저 잃는 사람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인터뷰가 마무리 되어 가는 지점에서 남 씨는 조용히 마지막 말을 꺼냈다. “장애인으로, 의료수급권자로 살아 보니까 이 나라가 싫어질 정도입니다”

(*) 세계보건기구 ; 보건·위생 분야의 국제적인 협력을 위하여 설립한 UN 전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