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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 닫힌 미로에 있는 그들

포일동 주공아파트에서 쫓겨나는 심종둘 씨를 만나

“포일 주공 아파트요.” 택시 문을 닫은 뒤 자연스레 나온 말인데, 택시 기사는 웬일인지 고개를 갸우뚱 한다. 아무래도 왜 그곳에 가려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뷰를 하러 가는 곳은 바로 의왕시에 철거 예정인 아파트 단지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의왕시 포일 주공아파트는 지난 해 3월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GS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되었고 용역철거업체 직원들이 상주하면서 이주를 강제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5월 31일 심종둘씨의 딸아이가 단전된 복도에서 굴러 크게 다친 일이 벌어져 강제 퇴거의 비인간성이 드러나기도 했다. 삶 세상에서는 심종둘 씨를 만나 그녀와 포일주공아파트에 남아있는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그녀가 미로에 빠진 날

현재 포일동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심종둘 씨

▲ 현재 포일동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심종둘 씨

심종둘 씨는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한 후 86년 아시안 게임 때 선수들 비자발급을 하기 위해 필요한 아랍어 통역을 하며 간간히 과외를 했다. “과외하면서 한 달에 4백여만 원을 벌기도 했어요. 과외 하면서 버는 돈이 많아져서 틈틈이 하던 영어 번역 일을 그만두고 안양 1번가에 있는 고려학원을 꾸리게 되었어요. 그 때는 한 달에 3천만 원 수익이 생기고 남편도 은행에서 일하고 있어서 아파트를 사고 은행에 여분을 저금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지요.”

그런 그녀가 큰 시련을 겪게 된 것은 아는 사람으로부터 ‘경매 건물을 사라’는 권유로 모텔을 사면서부터다. 심종둘 씨는 빚을 내가며 집을 사고 수리하는데 많은 돈을 들였는데 결국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은행의 과장으로 근무하던 심종둘씨의 남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게 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반복해야 했다.

설상가상이라고 했던가. 심종둘 씨 큰 아이의 선천성 심장병 치료를 위한 막대한 수술비용은 그녀의 가족을 빈곤의 굴레로 내몰았다. “큰 애는 제가 시험관 아기로 낳았는데 당시에 650그램밖에 안되었어요. 선천성 심장병에는 네 가지 증상이 있는데 우리 애는 약한 증상 2가지를 앓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심실에 구멍을 막고, 폐동맥으로 가는 곳에 새는 구멍을 막는 수술을 했고, 이번에 폐동맥을 넓혀주고 판막을 갈아 준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슬며시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병원비가 없어서 백방으로 뛰어 수술비 1천만 원 정도를 모았거든요. 수술비가 얼마나 될지 몰라서 집을 줄였죠. 그리고 심장재단에서 도움을 받고요. CT 촬영도 83만 원인가 하는데 여의치 않아서 그곳에서 도움을 받고요.” 그녀는 당시의 힘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눈가에 맺힌 눈물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이윽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해는 큰 애가 제부도에 놀러갔는데 폭죽 막대기 가지고 놀다가 왼쪽 눈에 맞아 눈썹이 찢어져서 온 거예요. 그런데 이 녀석이 눈이 안 보인다는 말을 안 하고 10일이 지나서야 아침에 밥을 먹는데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거예요. 직감적으로 큰 일 났다 싶어서 안과에 갔더니 시신경이 끊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5차례 수술로 1,540만 원 정도를 카드로 끊고 기초생활보장 80만 원 나오는 것으로 생활하면서 과외로 번 돈으로 갚아나가고 있어요. 다음 달까지 갚으면 150만 원까지 내려가서 내년 3월까지 다 갚으면 되지요.”

미로는 닫혀 있었다.

그녀는 이미 공공성을 잃어버린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하여 주거비용을 줄이고 카드로 빚을 지면서 아이의 수술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난 뒤 심종둘 씨와 가족들의 삶은 산산조각 나있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어요. 빚은 늘어 가는데 아이 치료비도 만만치 않고 아이 아빠는 외상 스트레스 장애로 병원을 4년 동안 수시로 입원하면서 증상이 심해져서 결국은 한정치산자(**)가 되었지요. 입는 옷마다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핸드폰도 목에 걸어주고 했어요.”

심종둘 씨와 그의 가족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도 언제라도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맘 편히 쉴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녀는 “어느 날 아파트 벽이 '꽝 꽝' 하는 큰 소리가 들려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지 보았더니 아이들은 방에서 자고 있고 용역들이 6동의 우리 라인(7,8)의 벽과 유리창을 부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런 용역들을 바라보며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어쩌다 젊은 나이에 저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하는 연민이 든다는 말에 마음 한 구석이 아프게 울렸다. 나의 생존을 위한 화폐를 얻기 위해 다른 이의 주거공간을 부수는, 인간이 인간을 적대하는 상황.

심종둘 씨는 어려서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장애인 임대 아파트에 살 수 있을까 해서 의왕시 복지과에 문의를 한 적이 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한번은 장애인을 위한 임대 아파트가 30채 나왔어요. 저희 식구가 6명이고 무주택 기간이 5년 정도 되었는데다가 제가 장애이어서 조건에 맞게 입주할 수 있을까 알아보았더니 민간건설회사가 지은 아파트에 1억5천만 원의 보증금에 월세가 58만 원이었어요. 보증금 1억5천만 원이 있다면 누가 여기서 살고 있겠어요.”

포일주공 세입자에 대한 인권탄압 규탄 기자회견<출처; 참세상>

▲ 포일주공 세입자에 대한 인권탄압 규탄 기자회견<출처; 참세상>



닫힌 미로에는 함정이 있다.

심종둘 씨는 “세입자 대책위에 가입한 사람들은 진짜 오갈 데 없는 사람들만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세입자 대부분이 암과 같이 꾸준히 높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의료서비스를 주거비용을 줄이면서까지 부담하게 되고 실업 등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결국 남아 있는 보증금마저도 거의 다 써버리고 마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세입자 대책위의 부위원장의 남편은 암에 걸렸고 조직부장 댁은 남편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죠. 홍보부장 부인은 심장 수술하시고 한 할아버지는 부인이 암 수술을 4번 해서 보증금도 거의 다 써버렸지요. 여기사는 사람들 보증금 따 까먹고 임대 아파트를 구할 여유도 없어서 눌러 앉은 사람 많아요. 이주 계획을 세울 수가 없죠. 그래서 우리 수준에는 안 맞으니깐 제일 적은 평수를 달라고 요구를 하는 거죠. 그리고 가수용 단지라도 지어 달라 하구요.”

설사 임대아파트가 지어진다 하더라도 입주를 신청하는 이들은 곧 함정에 빠지게 된다. 임대아파트는 공영개발에 해당하는 재개발이 아닌 한 민영 재건축인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제공될 수 없다. 또한 심종둘 씨와 같은 세입자가 재개발 지역의 임대아파트에 입주하려고 해도 높은 보증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료비나 생활비를 위해 보증금을 써버린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종둘 씨는 빈곤의 악순환을 겪는 이들에 대한 신용 대출 문제도 지적했다. “저를 포함한 두 세대를 제외하고 나머지 14세대는 ‘신용불량’인데 누가 은행 가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겠어요? 누가 보증을 서 주는 것도 아니고요. 정부의 임대보증금대출을 받으려 해도 조건에 열 개 항목이 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만족하는 항목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깐 결국 이자율이 20-30%를 넘나드는 돈을 끌어다 쓰게 되고요. 텐트 치고 거지같이 살면 좀 줄라나.”

닫힌 문을 어떻게 열 것인가

심종둘 씨는 간간히 과외를 하고 학원의 강사 자리를 알아보면서 빚도 갚고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장애인인 그녀에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학부모를 상담할 때 저 다리 저는 거 보면 아이를 안 맡기고 그냥 가버려요. 실력도 있는데 학원 찾아가면 면접은 아예 안 봐요. 엊그제에도 영어 과외를 했는데 과외 끝나고 배웅할 때 아이 엄마가 제가 다리 저는 것을 안 후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안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엄청 기분이 안 좋았지만, 저는 ‘당신들이 나같은 좋은 선생한테 못 배우니 당신이 손해야’하며 위안을 삼았죠.” 장애를 향한 우리의 편견이 그녀의 빈곤을 부르는 것이다.

심종둘 씨를 비롯한 포일 주공아파트 세입자들이 겪는 아픔은 주거와 의료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심종둘 씨는 “명도 소송이 9월 4일에 법원에서 판결나면 언제 용역들이 우리를 끌어낼지 모른다”며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호강하는 것”이라고 말한 뒤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오직 부를 축적하기 위해 상품화된 공공재를 인간의 필요에 의한, 인간단운 생활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저항, 그것이 우리가 그 쓴 웃음 뒤에 가려진 슬픔의 깊이를 이해하는 길이 아닐까.

(*) 신체적인 손상 및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가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질병. 증세는 크게 과민반응, 충격의 재경험, 감정회피 또는 마비로 나눌 수 있다. 타락, 분노, 피해의식, 수치심을 잘 느끼게 되며 알코올이나 약물남용, 자해적 행동과 자살 시도, 직업적 무능력, 대인관계 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다.
(**) 한정치산선고의 요건은 실질적 요건으로서 심신(心神)이 박약하거나, 재산의 낭비로 자기나 가족의 생활을 궁박하게 할 염려가 있어야 하고, 형식적 요건으로서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후견인 또는 검사의 청구가 있어야 한다(민법 9조). 한정치산자의 행위능력은 미성년자의 그것과 동일하여, 법률행위를 하려면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후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동의 없이 한 경우에는 그 행위를 취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