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삶_세상

[삶_세상] “빈곤은 차별로부터 옵니다”

HIV/AIDS 감염인 강석주 씨의 적자 생활

옛말에 ‘삼 년 구병에 불효 난다’고 했다. 집안에 병든 사람이 생겨 오래 가게 되면, 정성을 다하는 간병이란 자식이라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간병도 간병이지만 오랜 치료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았을 테니 이런 말이 나왔겠다. 건강할 권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오늘날에도 친밀한 사람 중에 앓는 사람이 생기면 돈 걱정부터 앞서기 마련이다. ‘삼 년 구병에 부자 없다’고 고쳐써도 말이 된다. 그런데 그 병의 치료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비싼 것은 물론, 아직 완치시킬 수 있는 치료제가 아니라면? 게다가 그 병에 걸렸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꺼내놓을 수 없을 만큼 ‘몹쓸’ 병이라면 어떨까? <인권오름>은 6월의 비 내리는 날 저녁,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한 HIV/AIDS 감염인을 만났다.


직장으로부터 내몰리다

2003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강석주(가명) 씨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HIV/ADIS 감염인임을 알게 됐다. 그해 여름 정기 직장검진 시기가 다가오자 석주 씨는 자신의 감염사실이 알려질까 고민했다. 검진 후 감염됐다는 결과가 나오자 곧 석주 씨는 중앙공급실(CSR)로 일자리를 옮겨야 했다. 중앙공급실은 의료물품을 소독하고 공급하는 곳이라 환자를 직접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기피하는 곳이다. 석주 씨는 “일하다가 상처가 나지 않으면 (감염인이어도) 문제가 없지만 만약의 상황이란 게 있으니까…”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업무를 바꿈으로써 사실상 퇴직을 강요한 셈이지만 석주 씨는 항의를 하지 않았다. “이미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어요. 이의를 제기할 상황도 아니었구요.” 결국 업무를 바꾼 지 한 달 만에 석주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환자에게 투철한 간호사로 일하는 게 오랫동안 꿈이었어요. 성차별에 반대하면서 남성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으로 학교 때부터 8년을 준비해왔지요.” 간호사 말고 다른 일은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는 석주 씨는 갑자기 퇴사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동료들에게 그냥 개인사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학원 준비하는 걸로 아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빚을 내 떠난 여행

“간호사였지만 HIV/AIDS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어요.” 감염사실에 절망한 석주 씨는 퇴직금에다 대출까지 받아 해외여행을 떠났다. 중국으로, 인도로, 기간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다. “몸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도피였어요.”

여행에서 돌아온 석주 씨는 그 전과는 달라졌다. 상담을 받기 위해 한 감염인 단체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활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감염인들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HIV/AIDS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 빠져 있을 때는 저도 괴로웠거든요.” 3명이 일하는 작은 단체여서 활동비는 따로 없었다. 하지만 간호사였던 석주 씨는 단체를 찾아오는 감염인들과 의료에 대한 지식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었다.


감염인을 둘러싼 가난

하지만 생계는 녹록치 않다. 감염인의 생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비용은 의료비. 석주 씨의 경우 첫 입원했을 때는 아직 감염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여서 한 달에 400만원이나 들었다. 등록된 후에도 HIV/AIDS에 대해 잘 아는 의사가 적다보니 선택진료비가 꼬박꼬박 들어가지만,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 감염인에게 꼭 필요한 여러 특별검사에 드는 비용도 비급여 항목이라 환급도 받지 못한다. 한 달 약값만 무려 100~150만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치료제 비용의 절반은 정부가, 절반은 지자체가 부담해 환급한다. 하지만 일단 카드라도 긁어서 치료를 받아야 15~30일 지나서 환급받을 수 있단다. 게다가 면역체계 저하로 인한 기회감염이나 시엠브이(CMV) 바이러스는 감염인에게 치명적이지만 연관관계가 입증되지 않으면 지원이 되지 않는다. “한 달 약값만 30만원은 되는 것 같다”는 석주 씨는 “적자가 안 날래야 안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의료비만 드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족들과 따로 살다보니 월세 25만원에 각종 공과금까지 35만원은 고정비용이다. 여기다가 병원비 본인부담금에 생활비까지 합하면 아무리 줄여 잡아도 달마다 60만원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살아남으려면 드는 돈이 그 정도일 것 같아요.”


생활이 어렵다고 해도 가족들에게 감염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구할 수는 없었다. 석주 씨는 아버지가 장로인 기독교 집안의 장남이다. 감염사실을 안 초기에 한 달 입원했을 때도 집에는 알리지 않고 혼자 입원했다. 퇴원한 후에는 집에서 나와 따로 살기로 했다. 하지만 계속 숨길 수는 없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비 과다청구 병원을 가리기 위해 환자에게 발송한 과다청구내역서가 집에 도착한 것. 병명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병원비 액수가 크고 진료횟수도 잦은 내역서를 본 어머니는 에이즈가 아니냐고 물었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나이도 들었으니 이제 결혼하라고 하시지만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으려구요.”

그렇다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도 될 수 없다. 석주 씨는 가족과 떨어져 살지만 가족에게 재산이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리기 때문. 석주 씨는 사회복지사와 만나 상담하기도 했지만 재산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연락이 가게 된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결국 엄청난 빚을 졌다. 많을 때는 1500만원까지 지기도 했다. 최근 석주 씨는 한 커피전문점에서 시급 35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루 5시간, 매주 3일씩 커피를 나른다. 수입이 얼마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계산이 나온다.


빈곤은 차별로부터 온다

석주 씨는 “감염인의 빈곤은 차별로부터 옵니다”라고 지적한다. 감염인을 질병의 피해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또는 예비 가해자로 차별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빈곤이 따라온다는 것. “정부가 HIV/AIDS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어 감염인들이 떳떳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것을 막고 생활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석주 씨는 “돈이 없어 가난한 게 아니라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정부 정책이 감염인들을 빈곤으로 내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하나의 질병일 뿐인데도 정부와 사회는 HIV/AIDS에 대한 공포를 재생산한다. 25년전 처음 국내에 알려졌을 때부터 HIV/AIDS는 동성애를 공격하는 도구로 이용됐다. 하지만 석주 씨는 “HIV/AIDS는 동성애자의 질병도 이성애자의 질병도 아니에요”라고 못박았다. 이성애자에 비해 동성애자의 감염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동성애에 대한 억압정책이 낳은 환경 때문이라는 것. 석주 씨는 “고위험군이라고 부르면서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HIV/AIDS를 이용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실명 관리가 감염인 숨어들게 한다

감염사실을 알고 아득해진 석주 씨에게 보건소는 이름, 학교, 직장뿐만 아니라 지난 몇 달간의 성관계 사실 등 민감하면서도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그리고 관리번호를 붙였다. 그 후로도 주기적으로 전화해서 별일 없냐고 물어본다. 이사한 후 주소이전 사실을 통보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석주 씨는 “이런 실명관리체계가 오히려 감염인을 위축시키고 숨어들게 만드는 것 아니겠느냐”라며 “외국은 사회복지사가 포함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취업을 알선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한다는데 한국정부는 약값을 지원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꼬집었다.


한미FTA, “감염인은 그냥 앉아서 죽으라는 얘기”

얼마 전 석주 씨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개시 소식에 놀랐다. 한국사회의 HIV/AIDS 감염인은 3500여명에 이르고 하루 2.1명꼴로 증가한다. 이렇게 전체 약값은 계속 늘어나 치료제를 생산하는 초국적 자본은 돈을 벌고 있지만 특허권으로 보호되는 혁신적인 신약은 너무 비싸거나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한미FTA가 특허권을 강화하게 되면 신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약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한편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전국민 건강보험 가입의무제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없어지면 그 공백은 민간보험이 메우게 될 것이다. 석주 씨는 “현재 상위 부유층 12%만 건강보험에서 탈퇴해 민간보험으로 가버리면 건강보험 재정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는데, 의료비 축소의 첫 번째 표적은 감염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약값이 비싼데다 사회적인 편견도 심하기 때문이다. 석주 씨는 “(그렇게 되면)약을 먹을 수 없을지도 몰라요”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