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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현장실습제도, 안전대책만 반복하는 것이 정답일까?

지난 10월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홍정운 학생의 사망소식이 알려졌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현장실습에 대한 전수점검에 나서겠다고 발표하고, 현장실습생을 대상으로 부당대우 신고센터를 열었지만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재발방지대책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기대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현장실습제도를 통해 일의 세계에 진입하는 학생들의 사망 소식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왜 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할까. 이제는 현장실습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현장실습? 인력공급!

 

직업교육을 받는 고등학생들이 기업 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가 만들어진 것은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을 통해서다. 하지만 당시 제도는 직업교육이 어떤 목표와 교육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조차 없는 상태였다. 이는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직업교육의 차원으로 현장실습을 진행하려면 무엇을 준비하고, 교육해야 하는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제도도 현장도 준비되어있지 않았지만 현장실습이 도입되고 실행되는 이유는 분명했다. 직업교육 과정이 아니라 그저 노동력을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산업화 시기에 최대한 빠르게 노동력을 투입해 숙련된 노동자를 길러내겠다는 목표 아래 현장실습제도를 운영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한국경제가 성장하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현장실습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1993년 신경제개발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는 현장실습제도를 확대하기 시작하며 ‘2+1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에 참여하는 학교는 교육 기간을 2년으로 줄이고 1년을 산업체 적응과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조기에 일터로 내보냈다. 1997년에는 직업교육의 과정에서 필요한 전문교과 학습을 현장실습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서 고시하기도 했다. 현장실습제도라는 제도가 어떻게 운용되어야 하는지 그 내용은 텅 빈 채 직업교육을 위한 시간마저 줄이면서 학생들을 일터로 내몬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장실습생제도는 저임금, 고강도 노동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요구할 수 없는 노동력을 원하던 기업들의 수요를 채워주는 제도로만 작동했다.

 

현장실습제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9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까지도 현장실습제도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의 막무가내 현장실습의 확대는 결국 산재와 성폭력 피해 등을 초래했고,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에 대한 학습권 침해라는 목소리 역시 높아졌다. 이에 정부에서도 현장실습이 교육의 과정이 아니라 취업의 경로로만 작동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현장실습 전담교사를 배치하고 원칙적으로 고3 수업의 2/3 이상을 이수한 경우에만 현장실습에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실습 전 산업안전보건 교육과 현장실습협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문제는 이러한 대책들이 이십여 년에 걸쳐 도입되었다가 철회되고, 사고가 발생하면 다시 도입되는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실습제도 안전 대책이 나오면 현장실습제도에 참여하는 기업이 줄어들고, 기업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며 정부가 다시 규정을 완화하면 사고는 다시 발생한다. 2005년 현장실습생이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져 사망할 때도 그러했으며, 2011년 현장실습생이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도, 2012년과 2014년, 2017년에 현장실습생이 사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현장실습제도가 취업 알선일 뿐이며, 직업교육을 위한 제도로써 어떤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10월 홍정운 학생 사망 소식도 마찬가지다. 2017년 LG유플러스 하청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과 제주도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의 연이은 죽음 소식으로 정부에서는 현장실습생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당시 현장실습제도 개편안은 현장실습생이 학생임에도 실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으로 투입되는 게 사고 발생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따라서 노동자로서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학생 신분으로 학습형 현장실습만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장실습생은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하고 현장실습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도 실습생을 교육할 준비가 된 기업만을 선별하겠다는 개편안을 들고나온 것이다. 하지만 2017년 강화된 기준에 따라 현장실습생을 받겠다는 기업은 급감했고, 정부는 불과 1년 만에 기업의 현장실습 참여 기준을 완화시켰다. 바로 그 완화된 기준으로 참여한 회사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이번 홍정운 학생 사망 사건이다. 교육과 실습을 제공하는 제도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현장실습제도는 비숙련 노동력 공급경로일 뿐이다. 기어코 또 한 명의 현장실습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실습이 실습다워지려면

 

이제 정부는 인정해야 한다. 현장실습 학생을 받아달라며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고 학교는 영업을 다니고, 학생은 학습이 아니라 취업전선에 뛰어들어도 기업은 현장을 ‘실습’시켜 주지 않는다. 그저 임금을 적게 줘야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영세업체나 단순 반복 작업만 시킬 업체가 현장실습생을 받아주겠다고 유세를 부리지만 실상은 저임금 단기 노동력을 구매하는 행위를 허용하고 있는 꼴이다. 이 와중에 직업계 고등학교는 취업률 경쟁 속에 학생들을 어떤 현장이든 상관없이 내보내는 데 혈안이 되었고, 현장실습의 질은 더욱 떨어졌다. 그 결과 직업계고에 다니지만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2016년 특성화고에서 6만여 명(약 58%)이 현장실습을 나갔지만 2019년에는 2만2천여 명(약 23%)으로 급감한 상태다. 반면 30%대를 유지하던 직업계고 학생의 대학진학률은 2019년 42%까지 늘어났다. 현장실습제도가 학생들에게 점점 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실습제도는 이제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폐기해야 한다. 현장실습제도를 폐기하자는 주장이 직업교육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이나 현장을 멀리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이 실습다운 실습을 할 수 있을지를 질문해보자는 것이다. 지금껏 직업교육이 풀어나가야 할 질문들에 대해서 학생을 일터로 내보내기만 하면 그래서 학교의 취업률만 올리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이었다. 직업교육을 위한 전문성을 학교가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부터, 실습환경이 부족한 문제, 졸업해서 취업하더라도 단기 일자리에 그치는 문제까지 직업교육 과정이 답해야 하는 문제를 국가는 현장실습제도라는 방식으로 얼버무려온 것이다. 그 얼버무림은 결국 학생이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받을 권리와 일하는 사람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 모두를 박탈당하도록 만들어왔다. 현장실습제도 폐지 주장은 이를 끊어내자는 요구다.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이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학습형’ 현장실습이라고 하지만 결국엔 개별 기업에 책임을 내맡기는 게 현실이다. 직업교육을 위한 실습은 교육부와 학교가 직접 진행하고 실습다운 실습이 이루어지도록 그 책임도 져야 한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공교육의 일환으로 직업교육을 마친 학생들이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고용노동부에서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사고가 난다고 폐지해 버리는 것은 올바른 해결방법이 아니다.”

 

홍정운 학생의 사망사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실습제도를 두고 한 말이다. 현장실습제도를 보완하고, 산업안전에 대한 법규가 준수되도록 대책을 살피라는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사고가 났으면 문제가 무엇인지 살피는 것이 먼저다. 제도는 고스란히 둔 채, 관리감독을 더 잘 할 수 있는 대책, 안전 대책을 내놓겠다는 이야기는 이미 수십 년째 반복됐다. 현장실습제도의 문제는 안전대책 미흡이 문제가 아니라 안전대책을 스스로 허물어뜨려야 유지되는 제도 자체가 문제다. 동일한 사고가 반복의 반복을 거듭하면 이제는 다른 답을 내놓아야 한다. 앵무새같이 똑같은 대책만 내놓은 것이야말로 정치의 무책임 그 자체다. 지금이라도 현행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하고 직업교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로드맵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