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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의 인권이야기] 빈 수레처럼 요란한 신빈곤대책

‘신빈곤층’이 새삼스레 거론되고 있다. ‘100년 만에 처음 겪는 위기’라는 세계적 경제침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오히려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심각할 우리나라 경제상황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97-98년 외환위기를 겪은 상흔이 아직도 짙게 드리워져 있는 상태이다. 신빈곤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6일 전국 사회복지전담 공무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신빈곤층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사회안전망에서 이탈한 계층은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대책을 지시한 이후부터란다. 그 이후 재정경제부는 ‘경제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위한 2009년 업무추진계획’에서 10대 과제의 하나로 ‘서민생활안정 지원’ 계획을 제출하고, 신빈곤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보건복지가족부도 2009년 업무보고에서 현행 제도와 대책이 신빈곤층 대책으로 미흡하다면서 ‘선제적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관계자들 입에서 ‘신빈곤층’이란 개념이 자주 거론되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강조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빈 수레가 요란하듯 정부에서 내놓는 대책이 실효성 있고, 경제위기에 고통 받는 ‘서민’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선제적 대응’인가에 대해선 부정적인 것을 넘어서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분노를 자아내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우선 ‘신빈곤층’에 대한 인식부터 한심하다. 언론에 보도된 ‘신빈곤층이란 용어는 그전에 없었다’라는 재정부 관계자의 언급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에서 나온 말이라고 간주하더라도, 업무보고 문서에서 제시된 "기초생보자는 아니지만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라는 ‘신빈곤층’에 대한 규정은 재정경제부의 인식이 10년 전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기초생보자’란 용어는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기 전 ‘생활보호법’에서 언급된 ‘생활보호대상자’를 일컫는 말이다. 현재는 기초생활보장(지원이 아니다)이 국가의 ‘보호나 시혜’가 아닌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라는 의미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또한 ‘신빈곤층’은 최근에야 금융위기로 인해 새롭게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노동시장유연화로 말미암아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급격하게 늘기 시작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노동빈곤층이 대표적인 신빈곤층이다. 현재 빈곤층 10명 가운데 3명은 일을 안 하거나 못해서가 아니라,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자리가 워낙 불안하고 임금도 적어서 빈곤상태에 처한 노동 빈곤층이다. 이들 가운데 임시직과 일용직 등 비정규직이 56%로 가장 많고, 자영업자가 26%를 차지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문제가 노동빈곤 문제의 핵심이다.

이러한 불철저하고 잘못된 인식은 실제 빈곤층에 대한 복지대책을 관장하는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되풀이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기초수급자 등 기존 빈곤층 외에 의식주, 의료, 교육 등 기본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라고 규정을 짓는다. 이 규정에 따르면 ‘1% 강부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빈곤층에 속한다. 사실 대부분의 국민이 의료·교육·주거 등으로 고통 받고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가 ‘궁핍’에 내몰리게 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보건복지가족부가 받아들인 것인가?

기본 인식부터 잘못된 정부 신빈곤 대책

이런 인식이다 보니 정부가 제출하고 있는 대책도 대부분은 ‘선제적’이라기보다는 이전 정부시절 이미 확정되었거나 시행중인 대책이나 제도를 되풀이하는 것일 뿐, ‘100년 만에 겪는 위기’에 걸 맞는 긴장감을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오히려 과거로의 퇴행도 엿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민생을 촘촘히 챙기는 따뜻한 국정’이란 국정운영방향에서 언급한 근로장려세제의 시행으로 저소득층에게 연 120만 원을 지원하는 대책은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에 도입이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근로장려세제(영어로는 EITC라고 부른다)에 대해서는 소득지원과 노동유인이라는 효과는 미미한 반면, 기업으로 하여금 신빈곤(노동빈곤)의 원인인 저임금 노동시장을 유지시키고 최저임금인상을 가로막는 효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이미 이 제도를 30년 이상 시행해온 미국에서조차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긴급복지지원제도도 이명박 정부에서 새롭게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 이미 시행해 오고 있는 제도일 뿐이며, 새롭게 추가하는 89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갖고서 예상되는 빈곤층 증가에 대처한다는 것은 ‘탄력적’이라기보다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런 데에 더하여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위기에 대한 버팀목으로 ‘가족’을 강조함으로써, 빈곤에 대한 대응이 ‘개인과 가족’에서 ‘사회와 국가’의 책임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인식을 보여줬을 뿐이다.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의 ‘따뜻함’이 아니라 차가움만을 느끼도록 했음직하다.

더욱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노동부의 대책이다. 노동부장관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현재의 비정규직 관련 법률에 대해 ‘세계 최첨단으로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있다’는 망언을 내뱉더니, 최저임금을 낮추는 최저임금 개악과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하는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늘리고,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대책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특히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최저임금개정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차별금지조항에도 부합하지 않고, 노인빈곤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생계유지에 한계상황에 놓인 노동자의 임금을 실질적으로 떨어뜨린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그러면서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를 후퇴시키고 국제규약에도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현행 최저임금이 다른 나라 수준에 비해 높고, 노인일자리를 감소시킨다며,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낮추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신빈곤, 다시 말해서 노동빈곤층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연구기관을 비롯한 전문가, 노동계, 그리고 대부분의 국민이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라는 것을 강조해도 이 정부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인 셈이다. 하긴 ‘기업 프렌들리’를 강조하는 현 정부에겐 산업평화에 앞장서는 ‘산업역군’이나, 고분고분 말 잘 들으며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만 보일 뿐,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주장을 하는 ‘노동자’나, 국가가 기본적인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권리를 외치는 ‘국민’은 안 보일지도 모르겠다.

‘선제적’, ‘따뜻함’, ‘예방적’, ‘맞춤형’ 등 복지정책을 포장하는 온갖 용어가 단지 말뿐에 그칠 것임을 단언케 하는 새해 초반이다.

덧붙임

* 강동진 님은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