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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인권선언'이 필요하다

[인권을 꿰고 깨고] 세계인권선언 제28조를 되새기며

아무래도 이번 주말을 주목해야겠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획기적인 이벤트가 북한에서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의 MBC를 비롯해 5개국의 방송사를 초청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변 핵원자로의 냉각탑을 파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26일에는 북한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 신고서를 제출하고, 27일에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는 점을 의회에 통보한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을 방문하고(혹시 북한에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지는 않을까?), 다음 달 초순에는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인데, 외무장관 회담이 될 가능성도 높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지난 4월 8일 싱가포르 합의가 있었고, 여기서 북-미간에는 이와 같은 프로세스가 합의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핵 신고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미국 내의 강경파들의 반대로 인해서 시간이 다소 지연되었는데, 북한의 핵 신고가 이루어지면 미국이 거기에 상응하는 조처로서 테러지원국 해제를 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를 하며, 그 뒤에 에너지와 식량 지원 문제들이 연이어서 풀리게 된다. 6자회담에 참여하는 북한을 제외한 5개국도 이런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서고, 에너지와 식량 등의 지원에 비용을 분담할 것으로 보인다.

평화로 가는 한반도?

그리고 관심을 끄는 대목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든 어떤 외교적 선언을 하느냐이다. 한국 보수 세력들은 마치 부시의 ‘방한’이 목적인 것으로 보려 하지만, 이번 방한은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 의례적으로 들르는 것으로 보인다. 부시의 방한 일정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과 이후 프로세스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3국 순방은 미국 측의 입장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다. 막판에 어떤 돌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북-미간의 외교관계 개선, 북일 국교정상화 논의, 그리고 동북아에서 다자간 안보협력 틀이 논의되는 수순은 피할 수 없는 아주 가까운 미래의 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럴 때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은 대대적인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이전의 정권을 ‘친북좌파’ 정권으로 규정한 보수 세력의 비현실적인 입장을 반영하여 ‘비핵 3000’, ‘상호주의’를 전면적으로 내걸었다. 이로서 남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실용적인 접근이 아니라 친미라는 가치에 따른 이념적 접근을 한 대가로 중국 방문 시에 당했던 외교적 수모를 다시 한 번 더 당할 수 있다.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을 인정하고, 이를 실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그토록 부인하고 싶었던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잇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한국 정부가 설 자리는 없기 때문에 결국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의 변화는 한반도의 평화를 예고하는 것일까? 그렇게 단언할 수만은 없다. 북핵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지,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들은 곳곳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북미 간의 관계가 개선된다고 해도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하면서 재배치되어 본격적으로 한반도 남단을 전쟁기지로 활용하는 일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낡은 군사무기들을 고가로 구입하는 일을 자주국방으로 호도하는 정권이 있는 한 한반도에서 평화를 앞당기기는 어렵다. 평화운동이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맞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촛불의 향방을 결정지을 주말

이명박 정권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 선두에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대처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따라서 경찰과 검찰 등의 공안기관들이 나서기 시작했고, 한나라당도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며 미국산 쇠고기 관보 게재 강행을 주문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검찰은 조중동 불매운동을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행위로 보고 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의 부추김을 그대로 따라서다.

보수 세력들은 지금의 촛불 정국이 ‘친북좌파’ 세력들이 주도하는 판으로 변질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들의 집회장에서 나오는 홍보물들은 광우병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괴담’으로 묵살하고, 이런 괴담을 퍼뜨리는데 나선 KBS와 MBC를 대대적으로 공격한다. 조갑제가 이미 오래 전에 군대까지 동원할 것을 주문하였는가 하면, 뉴라이트는 1인시위에 나선 여성을 폭행하였다. 6월 23일 밤 그들의 트럭에서는 각목이 그득 실린 것이 발견되었다. 거기에서는 불을 지르려고 했는지 석유통이 나왔고, 화염병이라도 만들려고 했는지 소주병도 나왔고, 톱도 나왔다. 보수단체들의 행동전이 6월 6일과 10일 집회 방식으로 나타났다가 이제는 백색 테러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찰은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국민대책회의 주요 실무자들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다고 하고, 지금까지 파손된 장비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검토한다고 하는데, 그 액수가 무려 3억 원을 넘을 것이라고 하여 경제적인 압박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연행자가 6백 명을 넘어섰고, 이들에 대한 벌금이 부과될 것을 생각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경제적 부담을 지우겠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권의 탄압 방식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촛불집회 참여자를 집계하는 경찰의 방식도 그렇다. 경찰은 민노총, 대학생, 중고생, 네티즌, 시민으로 구분하여 집계를 하는데, 그래서인지 지난 6월 10일 서울에서만 수십만 명이 넘는 인파가 시위에 참여했음에도 경찰은 8만 명으로 집계했고, 이후 경찰은 촛불집회에 시민들은 거의 없다는 식의 집계를 흘리고 있다. 결국 지금의 촛불집회와 거리시위는 전문적인 시위꾼들인 운동권이 주도하는 것이고, 따라서 ‘친북좌파’가 국법질서를 파괴하려는 불순한 성격으로 변질되었으므로 묵과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이런 전 방위적인 탄압이 예고되어 있는 상황에서 촛불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정권퇴진운동으로 갈 지는 미지수

이미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6월 20일까지 추가협상을 하지 않으면 정권 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고 공개 천명하였다. 그리고 촛불운동의 승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27일까지 세 차례의 국민대토론회를 서울광장에서 새벽까지 열고 있다. 네티즌과 촛불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데, 사회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의료보험민영화 저지, 교육자율화 저지, 언론장악음모 저지, 교육, 대운하 저지와 같은 이명박 정권의 주요 정책에 반대하는 데까지 의제를 확대하고, 비폭력 직접행동을 통한 정권퇴진운동을 지속해야 한다는 데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제의 확대는 공영방송 장악 음모에 맞서서 여의도로 향한 촛불의 행진과 조중동 광고주에 대한 압박운동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김종훈 통상본부장이 급하게 미국에 날아가 해왔다는 추가협상도 ‘협상이 아닌 논의’에 그친 것이고,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을 차단했다는 품질체계평가(QSA)도 민간자율규제 이행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라는 미국 통상대표부의 설명까지 있는 상황이고 보면 정부가 할 만큼 했다고 우길수록 국민들은 재협상 요구를 넘어설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정권 퇴진운동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여간 만만한 게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이후의 촛불시위를 어떤 방향으로 전개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계의 임단투와 맞물리는 7월

이번 주가 지나면 7월이다. 그러면 청계광장에 촛불이 켜지기 시작한 때로부터 두 달이 경과하게 된다. 시위에 나섰다 하면 매일 밤을 꼬박 새우는 통에 시위대는 지쳐가고 있다. 이번 주말인 28일이 촛불시위가 지속될 것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7월에 접어들면 시험기간을 마친 중고생과 대학생들이 합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민주노총은 하루 정치 파업을 예고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의구심을 잠재우지 못한 채 고시를 강행하게 되면 이에 대한 여론도 악화될 수 있다.

만약 주말에 다시 촛불이 힘을 얻는다면 촛불은 당분간 계속 갈 힘을 충전할 수 있다. 그리고 광장 토론의 결과 의제 확대에 대해 동의를 얻게 된다면 투쟁은 이명박 정책 전반에 대한 투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계속 말 바꾸기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대운하를 포기하겠다고 하는데, 청와대에서 물러난 추부길 씨가 중심이 된 ‘새물길새물결운동본부’가 최근 결성되었는가 하면, 의료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는 의료선진화 또는 산업화 한다고 하고, 공공부문 민영화 대신에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라고 말 바꾸면서 정책의 계속 추진을 외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권은 국민과의 소통은 아예 포기하고 자신들이 정책을 조금 더 세련되게 추진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선진한국당 등의 의원들 99명이 합류한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주목 받고 있다. 아직 뚜렷한 개헌 방향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체로 대통령 중임제와 같은 권력구조를 바꾸고, 신자유주의 질서를 헌법에 반영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이런 개헌을 내년 7월에서 2010년 지방자치 선거 전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연구회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광장에서 싹트고 있는 사이 보수정치세력들은 다시 저들만의 정치의 성을 견고하게 하려는 개헌논의에 골몰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정당들이라는 게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자신들의 지분을 확대하느라 이전투구하는 모습만 보이는 구태를 재연하고 있어서 이들이 과연 이후에도 정치세력으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18대 국회는 촛불에 막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라 국회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실종되어 버렸고, 국민의 기대 저편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런 그들이 만드는 법률들이 얼마나 권위를 가질 수 있을까?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더욱 더 한국에서는 존립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광장에서 만드는 인권선언

이런 한심한 한국판 대의제 민주주의가 촛불시위로 분출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수렴할 수는 없다. 당장 국민적 지지를 받는 정당이 출현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광장의 정치는 지속되어야 하고, 직접행동의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광장에서는 대표에게 주권을 위임하지 않았으며, 직접 자신을 통치한다는 민주주의의 이념이 고스란히 구현되고 있지 않은가. 이때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광장에서 제안되고, 토론되고, 합의되어서 만드는 ‘시민인권선언’과 같은 구상이다. 누군가 기초해서 서명하는 선언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과정이 되어서 광장에 제출되었던 과제들을 권리로 명제화하고,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자는 데 합의하는 그런 선언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넘어선 권리 주체를 명시하고, 직접민주주의가 우선되며 이를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보완하는 민주주의를 구상하고, 광장에 제출되었던 과제들을 시민의 권리로 선언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또는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 원칙을 만드는 것이다. 광장은 다시 서울시에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정치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장이어야 하고, 이런 정치의 광장은 각 구와 동마다 만들어지고 토론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정치집단들의 의회와는 별도의 시민의회가 구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부, 국회, 사법부를 광장의 정치를 통해서 통제할 수 있는 길,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만이 아니라 사법부도 리콜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상상할 수 없을까. 온라인, 오프라인 광장에서 시민의 인권선언을 만들어진다면, 그래서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가 거기에 촛불의 언어로 정리되어 담길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가 만드는 헌법이 되지 않을까.

마침 올해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이다. 세계인권선언을 한번 뒤져 읽어보면서 우리에게 맞는 인권선언을 그려보자. “사람들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에 호소하도록 강요받”는 이 현실에서 꼭꼭 새김질하며 읽어볼 조항은 제28조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덧붙임

박래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