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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피부색에 따라 다르게 대해요”

[삶_세상 2] 이주노동자들 한국의 인종차별을 말하다

“식당에 갔는데 상한 음식을 주는 거예요. 외국인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상한 음식을 줘도 그냥 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죠.”

방글라데시에서 온 압둘(가명) 씨는 한국음식을 좋아한다.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1997년에 한국에 와 10년 넘게 한국음식을 먹다 보니 이제 한국음식은 뭐든지 잘 먹게 되었다. 압둘 씨는 21살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돈을 벌려고 산업연수생을 지원했다.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항상 해요”

“그 당시 산업연수생 때 한 달에 34만원 받았어요. 그런데 사장이 그 중에서도 15만원을 떼고 줬어요. 그걸 모아놨다가 귀국할 때 주는 거죠. 그 전에 도망갈까 봐 그런 거예요. 한국 사람들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해도 한국 사람들은 120만원을 받는데, 우린 34만원 받았어요. 명절 보너스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2백 프로, 5백 프로 주면서 우리는 겨우 2만원, 3만원 줄 뿐이었죠.”

34만원 월급으로는 산업연수생 기간인 3년이 지나도 충분한 돈을 모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돈을 벌면서도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2004년부터 단속이 심해지면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주간에 일하던 친구가 단속돼 강제추방당하면서 불안해서 주간에는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일자리를 찾은 곳에서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공장에 왔다 간 후 사장이 불러서 “한국에 있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라고 물었다. 한국에 좀 더 있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면 회사를 그만 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회사에서 계속 일하다간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때 회사를 그만 둔 후로는 안정된 직장을 거의 갖지 못하고 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지금은 허리 디스크에 걸려 돈도 벌지 못하고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가족들도 보고 싶고요. 그런데 돌아가지 못해요. 방글라데시에 가면 다시 한국으로 못 들어오니까요. 2~3년 한국에서 돈을 좀 더 벌고 방글라데시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런데 벌써 10년을 한국에서 지냈더니 한국 생활에 더 익숙해졌어요. 방글라데시로 돌아가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10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다 보니 한국 생활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어려움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로 힘들 때가 많다. 피부색이 검다고 욕 하는 경우도 있었고, 외모가 다르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 보는 한국인인데도 반말을 하는 건 예삿일이다. 압둘 씨는 대부분 그냥 넘어가는 편인데, 간혹 같이 있던 한국인들이 오히려 반말 하는 사람에게 항의를 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대부분 그 한국인은 뭐라 대꾸를 못 하면서도, 반말은 고쳐지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항상 해요.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오래 있는 걸 싫어하죠. 이유도 말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라는 말을 할 뿐이에요.”

“한국인들이 보자마자 반말하는 건 예삿일”

한국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산업연수생제도 등을 통해 외국에서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수입’했다. 처음엔 한국으로 이주해온 노동자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고,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강력한 통제·관리 정책을 실시한 결과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는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존재.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투명인간’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면서 기업은 인건비를 계속 줄여나갔고 이주노동자를 통해서 노동력을 값 싸게 채워나갔지만, 다른 한편으론 모순적이게도 이주노동자들을 적대시하면서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들을 ‘값 싸게’ 받아들였지만, 마치 1회용처럼 그들을 간단히 ‘쓰고 버렸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오래 머물면서 정주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불법체류’라는 굴레를 씌운 결과 30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 산업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일하게 되면서, 저임금 산업 분야에 있던 한국인 빈곤층과 경쟁하는 관계에 놓이게 되는 한편 이주노동자 집단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빈곤 계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저임금 산업 분야에서 한국인과 이주노동자들이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자 정부는 민족주의를 불러일으켜 ‘한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고 불법화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불법체류’라는 딱지를 붙여 ‘불법사람/합법사람’으로 나누어 반인권적인 이주노동자 단속과 강제추방을 정당화했고, 이주노동자 범죄를 부각시켜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마치 범죄 집단인 양 편견을 조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문화정책’을 내세우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커녕 한국 문화에 적극적으로 동화되기만을 강요했고 동화되지 못한 혹은 동화를 거부한 이주노동자들을 배타시했다.

“길에서나 식당에서 친구들과 베트남어로 이야기하고 있으면 한국 사람들이 ‘야, 시끄러! 조용히 해!’라고 할 때가 있어요. 기분 나쁘지만 뭐라고 하지도 못해요. 한국 사람들은 (미등록이라는) 우리 약점을 아니까 우리가 대들면 출입국에 신고해버리거든요.”

베트남에서 온 레아남(가명) 씨는 한국인들이 무시하거나 차별할 경우 그래도 참지 않았던 때가 많다고 했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 그런 레아남 씨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시당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고급식당에 간 적이 있었는데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내 외모만 보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데 백인 손님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더라고요. 정말 기분 나빴어요. 피부색과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에 따라 한국 사람들이 다르게 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의 한국의 인종주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선진국’에 대해서는 동경심을 가지는 동시에 ‘후진국’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갖게 되었다. 경제력의 차이에 따라 국가 사이에서도 위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국가들 사이의 위계는 사람들 사이의 위계로 이어졌다. 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주로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낮은 동남아 국가에 대한 한국인들의 우월의식은 동남아 출신 이주민들에게로 이어졌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그들 대부분 저임금 업종에서 일하고 있고 또 외모도 달랐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난한 나라’에 대한 우월의식과 차별은 그대로 ‘사람’에게 이어져 ‘가난한 나라 사람들보다 우월한 한국인/까만 피부의 열등한 동남아 사람들’이라는 인종주의가 형성되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인종 문제는 미국과 백인에 대한 동경으로 표현되는 ‘자발적 복종’의 노예적 인종주의 문제이거나 혹은 서구-제국주의의 백인 인종주의 피해자로서의 한국인의 문제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사회적 집단으로 등장하면서 한국인들은 전 세계적인 인종주의의 위계질서 속에서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의 위치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는 국가별 경제력에 따라 위계가 결정되는 경제주의와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인종주의 그 자체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버스를 타고 버스 기사에게 서툰 한국어로 얼마인지 물었는데, 버스 기사가 인상을 쓰면서 한국어로 욕을 했어요. 그런데 영어로 말을 하면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줘요.”

자메이카 출신 모하메드 씨가 경험을 털어놓았다. 한국에 온지 11개월 됐다는 모하메드 씨는 “한국 사람들은 경제력이 낮은 나라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1년 비자가 만료되면 다른 나라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누가 인종주의를 조장하고 이용하는가

한국 사회의 강력한 단일민족주의는 자연스럽게 다른 ‘민족’에 대해 배타성을 갖는 인종주의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인종주의는 경제주의와 결합되어 더 강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낳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증가와 더불어 저임금 산업에서 이주노동자들과 경쟁 관계에 놓인 한국의 빈곤층이 인종주의와 경제주의적 편견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다. 한국의 빈곤층은 국내의 사회 구조적인 원인에 의해 빈곤에 내몰리고 있는 것인데도 마치 경쟁 관계에 있는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인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인종주의적 편견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조장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지위는 구조적으로 빈곤에 내몰리는 자신의 처지를 자기만족적으로 은폐하면서 기존의 차별적인 권력 구조에 더욱 동조하게 하는 효과를 낳기도 쉽다. 그럼으로써 저임금 노동력을 마음껏 이용하기를 원하는 한국의 기업과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계속해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음으로써 더욱 값싸게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저임금 한국인 노동자들을 비교적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계속 가면, 10년 후에는 작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과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을 거예요.”

레아남 씨가 한국 사회에 던진 충고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덧붙임

박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