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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나라, 남한

[삶_세상 2] 남한에 정착한 북 출신 이주민 손정훈 씨

2001년 버마 상공을 떠난 비행기가 남한에 도착할 무렵 손정훈(가명) 씨는 “천국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도로가 막힐 정도로 많은 승용차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대형건물들, 호화스럽게 장식된 상업 간판들, 사람들의 화려한 옷차림 등” 남한의 낯선 모든 것이 그에게 ‘천국’에 온 것 같은 감정을 갖게 했다.

북한의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정훈 씨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배도 고프고 마음 놓고 편안히 살고 싶기도 해서” 친구 세 명과 같이 ‘조중 국경’을 넘어 ‘탈북’을 했다. “굶주림 속에 자유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고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땅에 혈혈단신으로 정착”했지만 처음부터 한국은 애초의 기대와는 다른 곳이었다.

정훈 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 정훈 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남한에 오자마자 먼저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 받으면서 진짜 무서웠어요.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 가면 안기부에서 온갖 고문을 당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국정원에서 감방 같은 데서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관들도 엄청 위압적으로 대해요. 잘못 말했다가는 고문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공포를 느끼기도 했어요.”

정훈 씨는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은 후 하나원으로 옮겨 ‘남한 사회 적응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국정원과 하나원에서 ‘남한 사회 적응 교육’을 받은 기간은 4~5개월 정도 되었던 셈이다.

“남한의 고등학교에서 난 외계인이었어요”

열아홉 살이라는 ‘좀 많은’ 나이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되고 보니 학교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남한의 문화가 북한의 문화와 너무 달랐기 때문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남한에 와서, 공부는 둘째 치더라도, ‘스트레스, 커리큘럼’ 등과 같은 외래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그러니 학교 친구들과 만나도 대화가 통할 리 없었죠. 그럴 때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에서부터 수학공식에서 사용하는 용어 등 모든 것이 나에겐 생소했고, 수업시간에 설명하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수업시간 동안은 정말 지루했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서 심심했죠. 나는 학급 친구들보다 세 살이나 많은 형이었고, 북한에서 온 이방인이었고, 대화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계인이었던 거예요. 나와 놀아줄 사람도, 나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도, 나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도,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죠.”

2002년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 결국 ‘큰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학교 가는 내내 서해교전 소식을 접하고선 참담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는데 한 수업 시간에 교사가 서해교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그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북한을 쓸어버려야 한다”, “정부가 탈북자는 왜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교사와 학급 친구들이 내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거든요. 그 교사의 말을 들으면서 총구 앞에 선 사형수처럼 손과 발이 덜덜 떨렸고 머릿속은 윙윙 울리는 것 같았어요.”

정훈 씨는 이러한 일들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좋은 추억도 많았다고 한다. 여러 교사들은 정훈 씨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잘 해주기도 했고, 고등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지식을 배웠다기보다는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주민등록번호만 봐도 ‘새터민’인 줄 알아

정훈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냐고 묻자 정훈 씨는 “내 능력이 부족해서 취직하는 게 어려웠죠”라고 말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탈북자라는 이유 때문에 더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했다.

피엠피(PMP) 만드는 회사에 취직하려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회사 사람이 “우리 회사는 중국 시장이 중요한데 중국에 갈 수 있겠냐”고 물어보길래 정훈 씨는 바로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남한에 정착한 북 출신 이주민들은 중국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새터민’들에게는 중국 비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 북 출신 이주민이 남한에 들어오면 먼저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치게 되는데 ‘새터민’들은 모두 하나원이 있는 지역으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받아왔다. 그러다보니 주민등록번호가 모두 ‘125’나 ‘225’로 시작됐고 이 번호를 통해서 중국 정부도 북 출신 이주민을 ‘식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러한 제도가 바뀌긴 했지만 그 이전에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새터민’들은 모두 여전히 중국에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정훈 씨의 ‘새터민’ 친구 중 한 명은 중국에 계신 어머니가 몸이 아픈데도 중국 비자가 나오지 않아 어머니를 만나러 갈 수 없다고 한다.

이 외에도 ‘새터민’들끼리 주민등록번호가 비슷하기 때문에 생년월일만 알면 서로 주민등록번호 도용도 가능하다. 실제로 정훈 씨의 경우, 알지도 못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경우들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정훈 씨를 비롯한 많은 ‘새터민’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해왔지만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하나원이 있는 지역의 ‘남한 사람들’이 ‘새터민’들과 비슷한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중국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호적등본을 내야 한다거나 중국에서 억류되는 일이 발생했다. “비로소 ‘새터민’들에 대한 주민등록 제도도 바뀌었다”면서 정훈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탈북자라는 걸 먼저 밝히지 않으면 불안해요”

“한 회사 면접 보는데 회사 직원이 ‘학력이 좋은데 수능 보고 실력으로 대학 들어간 거냐’ 묻더라고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탈북자’라는 걸 썼으니까 다 알고 일부러 그런 걸 물어본 거겠죠. 남한 사람이 그 학교 나왔다고 하면 그런 질문을 안했겠죠. 또 같은 특별전형 입학이라고 하더라도 영어권 나라 출신 특별전형이라면 오히려 우대를 받았겠죠. 그런데 기업들은 탈북자 출신들을 별로 안 좋아해요.”

정훈 씨는 취직할 때 ‘탈북자’라는 게 밝혀지면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일부러 밝혔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밝히지 않더라도 면접을 하게 되면 어차피 다 밝혀질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출생, 부모님 직업, 재산, 가족사항 등 이런 것들을 자기소개서에 쓰게 하는 게 인권침해라고 해서 못 쓰게 하도록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의외로 그런 걸 요구하는 데가 많더라고요. 자기소개서에 안 쓰더라도 면접 볼 때 그런 질문들을 다 해요. 그게 아니라도 내가 먼저 ‘탈북자’라고 밝히지 않으면 왠지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남한 사람의 경우에는 굳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 밝히지 않아도 사람들을 속이는 기분이 들지 않겠지만, 난 내가 ‘탈북자’라는 걸 먼저 밝히지 않으면 불안했어요. 나중에 사람들이 알게 되면 내가 속였다고 생각할 거 같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으면 왠지 내 출신이 탄로난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생길 것 같았거든요.”

정훈 씨는 막연하게 ‘자유’를 위해 남한에 오게 됐지만 정작 남한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훈 씨가 남한에서 정착한 7년 동안 정훈 씨에게는 줄곧 ‘담당 보호관’이라는 이름의 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처음 1~2년 동안에는 서울을 벗어나기만 해도 담당 보호관에게 통보를 해야 했다. 지금도 해외에 나가려면 담당 보호관에게 통보를 해야 한다. 정훈 씨는 “담당 보호관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사생활에 대해 너무 꼬치꼬치 캐물어서 친구들 중에는 굉장히 싫어하는 경우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심지어 정훈 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리인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북 출신 이주민들에 대해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남한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타자

“말을 하면 사람들이 내가 탈북자라는 걸 알게 되는데 그러고 나면 남한 사람들이 노골적이진 않지만 은근히 무시하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게 있어요. ‘우리나라가 너희 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니까 내가 더 우월한 사람’이라는 듯한 뉘앙스. 지금은 내 말투가 많이 바뀌어서 덜해졌지만, 내 말투가 더 북한 말투 같을 때엔 훨씬 더 심했어요.”

정훈 씨는 남한으로 온 걸 별로 후회하지는 않지만, 남한이 더 이상 처음 꿈꾸던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제라도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상대적 가난, 그리고 외로움은 정훈 씨를 힘들게 한다. 또 ‘탈북자’라는 ‘출신성분’에 따른 보이지 않는 차별과 문화적·언어적 차이는 정훈 씨를 이중, 삼중으로 힘들게 하기도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천국은 “태어난 곳이 달라도, 가진 것이 없어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정훈 씨에게 남한은 여전히 ‘천국보다 낯선’ 곳이다. 남북의 정상이 두 번이나 서로 만나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했다지만, 남한에 정착한 북 출신 이주민들은 남한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타자, ‘디아스포라’들이 되고 있다.
덧붙임

박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http://sarangbang.jinbo.net)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