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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의 인권나무 키우기] “천문학적인 액수”로 노동을 죽이는 사회

2년 만에 스웨덴을 다시 찾아서 그리워했던 사람들과 해후했다. 이곳에서 드넓은 자연을 체험하며 평온하게 지내다 보니 한국에서 고생하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라서 부채감이 든다. 한국인들은 직업을 망라해서, 혹은 직업이 있든 없든, 과로와 만성 스트레스, 직장 내 인간관계 갈등, 야근과 주말 출근 압박, 해고 및 재취업 불안 등을 호소하며 살아간다.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한국은 산업재해 비율이 우려할 만큼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높은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공사현장에서 죽고 다친 수많은 이들의 희생은 은폐된다. 자연자원이 부족한 데다 인구가 많은 한국은 경쟁을 치열하게 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노동자들의 죽음과 부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들로 쉽게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기업에서는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관심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을 해도 힘들어지고 실업자가 되면 더욱 불행해지는 딜레마 속에서 고행처럼 삶을 살기도 한다.

본 글에서는 우리와 사뭇 다르게 일하는 스웨덴 노동자들의 삶을 우리의 노동자들과 비교해본다. 스웨덴과 한국의 노동조건이 너무 달라서 비교할 수 없다는 주장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 고민해본다.

감시받고 훈육 받는 한국의 노동자

1983년생 남자는 대학졸업 후 각종 단기알바를 하며 연명하다가 1년 만에 간신히 잡지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는 출근 첫 날 편집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직감했다. 다른 기자들과 직원들은 일과 관련된 일을 가끔 나지막하게 이야기할 뿐, 사적인 대화나 농담을 삼갔고 자리를 뜨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는 사장이 직원들의 동태를 상시적으로 감시해서, 근무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화장실에 오래 있거나 지각하면 질책을 받을 뿐 아니라 해고될 수 있다는 점을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다. 사장은 직원들이 미덥지 못할 때마다 “대학마다 기자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널렸다.”고 호통을 쳤다. 사장이 기자들을 집요하게 옥죄며 해고를 경고한 탓에 그는 의기소침해져서 제대로 일하기 힘들었다. 나날이 침울해지는 그를 보며 친구들은 걱정했다. 수도권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학력을 가진 그는 퇴사 이후 알바를 전전할 것 같아서 2년 반을 참고 근무했다. 퇴사자들이 속출한 그 잡지사를 떠날 때 그는 가장 오래 근무한 편이었다. 퇴사 이후 종합 건강검진을 받은 그는 온몸이 성한 데가 별로 없는데 대부분 스트레스와 관련된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한국을 일시적으로 벗어난 이후 달라진 것들

스웨덴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는 남자는 3년간의 스웨덴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곧 돌아가야 한다. 그는 귀국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앞선다. 특히 스웨덴 학교생활에 완연히 적응한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국에서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광역버스에 몸을 실은 뒤 꼬박 한 시간 이상을 붐비는 버스에서 시달린 뒤 직장에 도착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피로가 온몸을 휘감았다. 일상화된 야근과 회식으로 퇴근이 늦어져서 그는 주말을 제외하고 집에서 식구들과 저녁을 먹는 것이 불가능했다. 부부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폭등하는 전세가격과 커가는 자식의 사교육비 부담으로 인해 풍족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부부는 만성피로와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 자식을 잘 길러야 한다는 걱정이 사무쳐서 마음뿐 아니라 몸이 골골했다. 부부는 아파도 내색하면 안 된다는 판단으로 회사에서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일관했지만, 눈동자에 실핏줄이 터지고 허리와 목에 디스크가 생겼고 하루가 다르게 새치가 늘고 체중이 늘었다.

그러나 이 가족의 일상은 스웨덴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가족끼리 함께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평일에 가족은 오붓하게 아침을 먹은 뒤, 아버지가 출근길에 집 근처 초등학교에 아들을 태워주었다. 아들은 아침잠을 좀 더 자고 싶을 뿐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와 달리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것이 당연시되는 스웨덴 학교에서 아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펼쳤다. 평등사회의 초석 역할을 다지는 스웨덴 학교에서는 이해가 더딘 학생들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며 모두 함께 가는 길을 보여주었다. 명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사교육이나, 성적이 나빠서 생기는 열등감, 학업성적이 양호한 학생들만 모아놓은 학급, 학생들을 권위주의적으로 닦달하는 교사들을 아들은 스웨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하교 후 여러 학원을 전전할 필요가 없어진 아들은 방과 후 친구들과 놀았다.

평사원인 아버지는 한 평 남짓한 전용사무실에서 혼자 일을 할 수 있었다. 비좁은 사무실이나마 혼자 쓸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 많았다. 일보다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퇴사나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적잖은 한국과 달리, 일인 사무실은 이러한 문제를 상당 부분 경감시켰다. 한국 직원들과 달리 스웨덴 노동자들은 직위에 상관없이 수평적으로 행동했고 서로 이름을 불렀다. 대부분 오후 네 다섯 시 무렵에 퇴근했는데, 퇴근 이후 회식을 하는 것은 대단히 드물었다. 아버지 역시 다섯 시에 일을 마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귀가했다. 아버지는 지하철에서 졸지 않고 독서하거나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부부가 함께 준비한 저녁을 세 식구는 대화를 하며 먹었다. 저녁을 먹은 이후 각자 취미를 만끽할 시간이었다. 아들은 아이스하키와 탁구를 하러 집근처 스포츠센터에 나갔고, 운동을 즐기는 아버지는 초등학교 학부형들로 구성된 축구단에서 공을 찼다. 신앙생활이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즐기는 어머니는 지인들을 종종 집에 초대해서 담소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한부모가정을 꾸리는 세 아이들의 어머니 아말리아를 알게 되었다. 아말리아는 아이가 아프면 회사에 전화를 건 뒤 직접 아이를 돌보며 집에서 일을 했다. 더불어, 그는 집안의 기념일이나 아이들의 학교행사, 병원진료가 있을 때마다 조퇴하거나 몇 시간 늦게 출근하는 날이 잦았다. 아내는 아말리아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면서도 내심 그러한 조건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집안 사정으로 조퇴나 결근을 자주 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느냐고 아내가 묻자, 아말리아는 스웨덴의 일터에서는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노동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을 우선시한다고 답했다. 아내는 집에 오는 길에 일과 병행하느라 몹시 힘들었던 자신의 육아체험이 떠올라서 욕지거리가 났다.


노동조건은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

스웨덴은 여러 조사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국가로 손꼽힌다. 노동을 통한 경제적 자립은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결정적이다. 현실정치에서 평화주의와 인권, 평등을 실현하려 노력했던 울루프 팔메 전 수상은 청년실업률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판단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 진출하려는 야망을 품은 젊은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면 청년 실업자들이 사회가 자신들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웨덴에서는 ‘평등’의 기조 하에 저마다 일을 함으로써 ‘전 국민의 중산층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복지국가의 선결과제임을 파악했다.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도정에서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각자 양보와 희생을 감수함으로써 상생하는 길을 꾀했다.

작금의 스웨덴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늘고 평등사회의 염원이 차츰 빛을 바래면서 과거와 달라진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스웨덴도 다른 선진국들과 유사하게 실업문제나 양극화, 노동 유연화, 기혼여성들의 비정규직화, 저임금으로 인한 상대적 빈곤으로 부모의 집을 떠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인들은 인간답게 노동해야 한다는 점을 지지하며, 양질의 노동조건과 최저생계비 확보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

스웨덴의 노동체계는 가정과 노동의 조화로운 결합, 정해진 근무시간에 맡은 일에 몰입함으로써 효율적인 생산성을 내는 합리성, 노동자들이 최대한 안락하게 일하도록 돕는 노동조건 (인간중심적인 인테리어와 공간배치, 산업재해 예방), 매년 4주에서 6주 동안 주어지는 휴가, 근무시간 중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다른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는 합법적 휴식시간인 피카(Fika), 양성이 균등하게 쓸 수 있는 유급 육아휴직, 정규직 노동자들과 큰 차이 없이 아이를 기르는 부모에게 걸맞은 시간제노동제, 불리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이 민사상 배상이나 구속될 위험 없이 실행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보기에 스웨덴인들의 노동패턴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다. 스웨덴 노동자들은 융통성 있게 일하는 유연함도 없어 보이고, 노동속도도 느린 편이며, 다른 직원들의 일을 상관하지 않고, 직장에 대해서 소속감이나 애정도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스웨덴 점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일만 하며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몇 년 전에 편의점에서 휴대폰 유심카드를 사는 와중에 일군의 젊은이들이 커피와 빵을 먹은 뒤 계산하지 않고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 점원에게 왜 제지하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묻자, 자신은 상품을 계산하라고 고용되었을 뿐 경찰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또한, 스웨덴의 기준으로 보자면 저임금을 받는 점원으로서 매장 내 범죄행위까지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편의점 전체를 총괄해서 책임지는 한국의 사정이 떠올랐다.

스웨덴의 노동조건 한국에서 불가능한가?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과 스웨덴은 매우 다르다. 스웨덴이 한국보다 부유해진 데는 광활한 영토에 가득 찬 풍부한 자연자원,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세계대전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역사적 조건, (스웨덴에 관한 긍정적 이미지와 달리) 전 세계에 고가의 무기를 팔아 거대이윤을 거머쥔 이면, 영토에 비해 적은 인구, “우호적” 이웃국가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스웨덴의 국제적 이미지로 인한 높은 부가가치 창출 등이 한몫 했다. 자본과 노동의 이상적인 타협으로 평가되는 살트셔허바덴 협약(Saltsjobaden Agreement)이나 낮은 실업률, 높은 노동참가율 등도 스웨덴의 ‘운 좋은’ 조건과 직간접적으로 결부돼 있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경제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한국은 더 이상 빈곤하지 않다. 여전히 대기업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정부는 ‘선성장 후복지’의 기조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노동유연성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은 쉽게 직장을 잃거나 동일노동을 하면서도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낮은 저임금을 받으며 고용불안을 걱정하고 있다. 일자리가 있는 노동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일하며 회사에 노동력을 희생한다. 하지만 온갖 노력을 기울여서 노동하는 희생은 자본가의 답례로 귀결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세상으로부터 차단된 것 같다는 고독과 극단적인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고 고공농성을 하는 이들의 일관된 주장은 일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다. 일 년 내내 거리에서 쪽잠을 자며 시위를 지속하는 이들의 주장 역시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다. “불법파업”을 벌여서 회사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피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노동자들이 갚아야 하는 징벌적 배상액은 평범한 사람들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만일 이들이 일정 기간 성실히 일하면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었거나, 노동자로서 응당 갖는 권리가 억압될 때 집단행동을 통해서 문제를 시정하려는 행동을 정부가 주축이 된 노사정위원회에서 중재해주었거나, 노동자도 자본가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점을 사회가 이해했더라면, 이들은 지금 일터나 가정에서 소소한 일상을 지속하고 있을 것이다.

노예를 뽑는 사회

필자의 친구는 모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2년간 일하다가 최근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친구는 회식자리에서 인사담당자의 고용철학을 엿들을 수 있었다. “기업이 흥하려면 극소수의 팅크탱크만 있으면 돼. 나머지는 노예들로 충분히 가능해. 신입사원 공채할 때 몇 명 정도 특출 난 인재들을 뽑은 뒤, 나머지는 우리 회사 아니면 다른 데 못갈 사람들 체용하면 노예처럼 군말 없이 일해. 이들은 야근을 시키든, 야근수당을 안 주든, 계약직이든, 지방이나 해외 오지에 발령을 내든, 휴일 없이 일주일 내내 출근을 시키든, 맘대로 부려 먹든, 절대로 자기발로 회사를 안 나가. 요즈음 이러한 일자리 마다하지 않는 대학졸업자들이 넘치니까 이들을 임시직으로 고용하고, 너희들(친구가 포함된 소수의 정규직 입사자들)이나 우리는 이들을 잘 조종하며 살면 되는 거야.”

한국에서 이러한 생각을 지닌 인사담당자들이 과연 희귀할까.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는 자본의 현실은, 오늘날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처한 벼랑 끝 삶의 원인을 시사해준다.

스웨덴에서는 가능한 노동조건을 한국에서는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한국도 경제성장을 어엿하게 달성한 데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가진 이들이 약자들에게 양보할 의지 없이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희생과 극기를 강요하고 있다. 한국 경제구조의 당근을 얌체처럼 독식한 뒤 거인이 되어버린 기업은 과거 공언했던 사회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기업이 잘 되어야 노동자도 잘 살게 된다는 약속은 시효를 상실했다. 선진국 노동자들이 누리는 인간적인 삶을 한국의 노동자들도 누리려면, 기업과 자본의 특권을 당연시하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경영 성공을 위한 부산물로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한국의 자본가들에게는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권리를 부여하는 스웨덴 노동시장이 비효율적인 사치와 낭비로 비칠지 모른다. 스웨덴 정부는 기업과 노동자가 비교적 공평하게 화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함으로써 노사 간의 갈등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액수”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대 기여했다. 이제 한국에서도 무엇이 진정 노동시장에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낭비하게 하는 원인인지 재고해야 한다. 그 답을 인간답게 해고걱정 없이 성실하게 일하고 싶다고 절규하는 고공농성장의 노동자들이 몸으로 알려주는 것 같다.
덧붙임

나이테 님은 인권운동사랑방을 후원하는 자유기고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