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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결혼이주여성의 임무는 한국 남성 혈통 지키기?

한국 사회가 바라는 결혼이주여성의 삶을 거부한다

“누가 (내 결혼생활이)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했겠어요. 하느님이 정말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2007년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결혼이주여성 후인마이 씨가 살해되기 하루 전 남편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후인마이 씨는 편지에서 평소 폭력적이던 남편에게 작별을 고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붙잡힌 가해자는 “돈을 들여 데려온 아내가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 홧김에 때렸다”고 밝혔다. 최근 한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무참히 폭행당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한국인 남편은 아내의 서툰 한국말 때문에 폭력을 행사했다고 진술했다. 2007년 사망한 후인마이 씨가 2019년의 한국사회에 건네고 싶은 말은 변함이 없다. 그 어느 누구도 가정폭력 피해를 감수하고 결혼이주를 선택하지 않는다.

넘지 말아야 할 선

지난 7일 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한 한국 남성이 구속됐다. 긴급 체포되던 그는 “다른 (다문화 가정)남자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서 어떤 억울함마저 느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국과 한국 남자 망신을 시킨다는 식의 국격론이 가세하며 가해자를 강력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이 등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게시판에 피해여성에게 국적을 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피해 여성이 국적을 얻기 위해 폭력 영상을 의도적으로 촬영했다는 것이다. 마침 피해 여성이 베트남에 있는 모친을 한국으로 초대해 아이와 함께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보도되자,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비난과 피해여성을 꽃뱀이라고 부르는 이들마저 등장했다. 한국인 체면까지 거론하며 피해 여성을 구제해야 한다던 주장이 무색하게 어느덧 피해여성은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도구삼아 한국 사회에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으로 둔갑해 있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정도의 선언에는 주저함이 없는 듯하다. 국적과 인종에 따른 폭력도 용인할 수 없다는 대중적 인식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민이 선주민의 권리를 욕구하는 것이 감지되는 순간 한국 사회는 엄격하게 이들에게 권리의 자격을 묻기 시작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여론은 피해여성을 체류권이라는 잿밥에만 관심 있는 사람처럼 매도했다. 한국 사회가 결혼이주여성을 재생산 노동력을 제공하는 몸으로만 간주한 탓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결혼이주여성 또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길 원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결혼이주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지 권리 포기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한 다문화 가정 남편의 폭력 성향이 만들어 낸 일탈적 사건이라기보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차별과 폭력의 구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사건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역할과 책임

한국의 결혼이주민 정책은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학적 위기를 더 이상 ‘단일민족’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기초해 탄생했다. “다문화가족 구성원이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들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른바 다문화가족지원법의 목적이다. 이 법이 말하는 결혼이주여성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다해야 할 역할과 책임은 무엇일까?

다문화가족지원법 상 다문화 가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려면 배우자 중 한 사람은 반드시 한국인이어야 한다. 이때 외국인 배우자의 안정적 체류는 한국인 남성 사이에 낳은 자녀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국제결혼 커플의 80% 이상이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이 정책은 지극히 부계 혈통 중심적이다. 지자체의 출산장려 정책이 곧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이 된지 오래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했다는 건 달리 말하면 어떤 식으로든 출산과 양육, 봉양을 중심으로 한 한국 사회 재생산 노동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는 말이다. 전국에 200개가 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제공하고 있는 프로그램 대부분이 한국어 교육과 자녀양육에 관한 교육, 한국요리 교실로 집중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가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재생산 노동을 잘 수행토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엇보다 한국인 남성의 혈통을 물려받은 자녀를 국가 경쟁력에 기여하는 인재로 육성하는 일이다. 최근 결혼이주여성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익산시장의 ‘잡종강세’,‘예쁘고 똑똑한 아이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지도’ 하라는 요구는 한국 사회가 결혼이주여성들에게 강요하는 역할과 책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잡종’운운한 그의 발언은 사회적 차별을 공직자의 입을 빌어 공식화한 것이다.

어떤 다문화인가

한국의 다문화 가정이란 다양한 문화가 상호 존중되고 교류하는 사회 기초 단위라기보다는 외국인 배우자의 출신국 문화를 한국문화로 덧씌운 가정을 의미한다. 한국어를 잘 하는 이주여성에게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 같다’는 칭찬은 아무리 애를 써도 ‘진짜 한국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만을 확인해주는 위계적 언어다. 그러다가 막상 한국어가 어눌하면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사회적 비난에 쉽게 맞닥뜨리게 된다. ‘가난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얼마나 힘드냐’는 걱정은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연민과 공감이라기보다 계급적 인종적 우월감이 깃든 동정과 시혜에 가깝다.

한국문화를 체화하는 것이 다문화의 척도가 될 때 이주민이 한국 사회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성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2등 시민일 뿐이다. 이번 가정폭력 사건의 피의자인 한국인 남편이 외국인 아내에게 보인 일종의 적개심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 놓여있다. 감히 결혼이주여성 주제에 한국어도 빨리 배우지 않고, 한국 음식도 아니고 베트남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 한 것은 한국사회가 정한 다문화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여기 베트남 아니라고 했잖아”라는 피의자의 윽박은 한국의 다문화 정책이 지향하는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응축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문화가족 정책이 권리에 있어 선주민 중심의 위계를 작동시키는 한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더 큰 사회적 목소리가 필요하다

“내가 평등해야 내 아이도 평등하다”, “차별하지 마라, 평등을 원해” 익산시장의 ‘잡종’ 발언 이후 광주와 익산 그리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모인 결혼이주여성 집회의 구호다. 단지 고위 공직자 말 한마디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언감생심 권리로 여기게 해 온 한국 사회를 향한 외침이었다. 그 동안 죽음으로만, 가정폭력 피해자로만 사회에 등장했던 이들과 우리는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 집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결혼이주여성에게 한국사회가 강요하는 역할과 책임이 만들어낸 차별과 폭력을 돌아보게 된다.

사회적 관계라곤 남편밖에 없었던, 아니 그것만을 강요했던 한국사회 그리고 그 유일한 관계에 의해 목숨을 잃은 후인마이 씨를 기억한다.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이 굴레가 아니며 동시에 자신을 설명할 유일한 언어가 아닌 세상을 바란다. 결혼이주여성들의 사회적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