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한일 관계 회복이 아닌 재구축이 필요하다

동아시아 연대가 중요하다

한일 관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양국 갈등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니,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이니 하는 문제들이 등장할 때마다 한국에선 분노했고, 일본에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반복되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한 것을 문제 삼으며,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핵심 소재를 규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베 총리는 “현재의 한일관계를 생각할 때 최대의 문제는 국가 간 약속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것”이라며 한일 양국 간 신뢰관계가 흔들리고 있음을 피력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고 있기에 양국의 관계가 이렇게 심각해지고 있는 것일까?

2017년, 한국 사회는 촛불을 통해 정권을 교체했다. 이는 정권교체에 그치지 않고 외교 관계의 변화로 이어졌다. 2015년에 맺은 한일위안부 합의는 폐기 수순을 밟고, 합의에 따라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은 해체되었다. 또한 박근혜-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으로 미뤄져온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이 재개되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하며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1965년에 맺은 한일 청구권협정에서는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따른 배상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식민지배로 인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위자료는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껏 한일 간의 풀지 못한 식민지배의 책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일 관계의 시작, 1965년 한일 협정

한국과 일본의 수교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으면서 이루어졌다. 이 조약에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의 조약들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명시되었다. 단순한 문구지만 애초에 한일 병합 조약부터 부당한 식민 지배였는지, 일제에 의한 한일 병합 자체는 정당하지만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무효가 된 것인지 확인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한국 정부는 부당한 식민지배에 따른 피해에 대해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통해 6억 달러의 유무상 차관을 받고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해석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가 불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이 제공한 차관은 독립축하와 경제지원을 명분으로 지급하는 것이고, 청구권은 대가성 지불이 아니라 협약에 따라 해결된 것으로 해석했다.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은 덮어둔 채, '피해'에 대한 청구권만을 6억 달러로 해결하려고 했던 어설픈 봉합이 한일 국가 관계의 시작이었다.

해방된 지 겨우 20년이었다. 엄혹한 군사 정권 시기임에도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본 정부도 아닌 한국 정부가 식민지배에 대해 제대로 사과도 받지 못하고 6억 달러로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인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 정부는 “원수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며” 계엄을 선포하고 시위를 진압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을 거래하고 받은 차관의 대부분은 전범기업이 만든 설비를 들이거나 정치자금으로 이용됐다. 차관의 일부만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지급될 뿐이었다. 냉전 구도에서 반공의 선봉을 자처한 한국 정부는 안보와 경제성장을 위한 결정이라 한일기본조약을 자찬했다. 역사의 정의나 피해자의 권리는 한국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안보와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식민지배 역사를 봉합한 한일 관계의 틀은 이후에도 양국 외교에 기본구조가 되었다. 반성도 사과도 없는 일본을 탓하기 전에 이러한 한일 관계를 만들어 온 한 축으로서 한국 정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변화의 기회는 있었다

물론, 변화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원폭피해자 등 냉전 시대 안보 논리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피해자들이 탈냉전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1년 김학순님의 위안부 피해 증언을 전후로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이어지며 일본의 전쟁 범죄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제기되었다.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에서 한일 양 국가가 덮었던 식민지배의 책임과 피해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 결과 1993년 일본 내각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담은 담화가 발표됐고, 1995년에는 무라야마 총리의 전쟁 범죄에 대한 사과담화가 이어졌다. 그간 봉합되어온 강제 동원 피해자, 원폭 피해자 문제도 재조명 받으며 식민지배 시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펼쳐졌다. 목소리를 낸 피해자들과 한일 시민사회가 열어젖힌 장이었다. 1965년을 넘어서는 새로운 한일 관계가 구축될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양국 정부는 국가 간 새로운 합의를 만들지 못했다.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선언, 간 나오토 담화 등이 이어졌지만,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졌다. 1997년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같은 건으로 2000년 한국 법원에도 소송이 제기되었지만, 양국 모두 청구권이 인정되지 않아 패소했다. 양국의 시민사회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압박할 때, 한국 정부는 오히려 한일 관계의 안정을 더 우선시하며 위안부 문제 등을 외교적 민감 사안으로만 다루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1965년 한일 협정에서 크게 달라지지 못한 채, 양국 모두 우경화된 정부가 들어섰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나왔다. 한국 정부가 소녀상 철거와 성노예 표현 자제, 배상이 아닌 재단 출연금을 받고 위안부 피해자 단체를 설득하겠다는 내용에 합의한 것이다. 또다시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지 않고, 국가가 피해자의 권리를 막았던 1965년 한일 협정을 노골적으로 반복한 것이다. 지난 50년 한일 관계의 본질이 경제 성장과 냉전시대 안보동맹 수호를 위한 양국 정부 간의 공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50년간 이어진 양국 정부의 공조 관계가 크게 흔들리면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한일 관계 회복이 아닌 재구축이 필요하다

50년 남짓이다. 보수, 개혁 정부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는 시간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원폭 피해자들은 국가 안보와 경제 성장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일부터 가로막혀왔다. 힘겹게 목소리를 내도 일본 정부는 이들의 삶을 부정했고 한국 정부는 외면했다. 이제 더 이상 이 시간을 연장해선 안 된다. 한일 양국이 왜곡하고 훼손한 역사 앞에서 우리 모두가 사과를 받아야 하는 주체이며, 동시에 정의를 세워야 하는 주체임을 분명히 하자. 그 시작은 기존 한일 관계의 회복이 아니라 재구축이어야 한다.

한일 관계를 재구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일본의 극우보수 정권을 상대로 사과는커녕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한일 관계 재구축을 장기적 목표로 두면서 기존 한일 관계가 배태한 우리 안의 구조와 역사를 청산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껏 일본 정부와 공조하며 기존 한일 관계를 만들어 온 세력들은 여전히 경제를 이유로 '자존'보다 '생존'이라며 1965년에 구축한 한일 관계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이제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단호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단호함은 엉뚱한 곳을 향하는 게 아닐까하는 우려가 든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대비한다면서 반도체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화학물질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한다. 반도체 노동자가 안보와 경제논리의 새로운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정부가 보여야 할 단호함은 안보와 경제성장을 내세우며 피해자를 외면해온 국가가 이제는 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이에 기초한 협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외교적 해결이라는 핑계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배제해 온 50년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정말 일본이 변하길 바란다면

식민지배 책임의 과제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을 포함한 구미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여러 식민지를 거느리며, 말 못할 폭력을 휘둘러 왔다. 이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고 배상했다고 할 만한 나라는 아직 없다. 지금 한국과 일본이 갈등하는 문제가 두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제의 식민 지배를 겪은 동아시아인들의 문제이자, 전 세계의 제국주의-식민지배 책임을 묻는 과제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일본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반대한다면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도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를 반성하고 책임지려는 일본의 민중들과 연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일본이 달라지기를, 다시는 비참한 전쟁과 점령이 없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는 동아시아 민중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한일 협정을 맺기 1년 전에 이루어진 베트남 파병은 한국이 베트남에 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이러한 힘들이야말로 국가 간 갈등을 자원 삼는 한국과 일본의 극우 정치세력을 청산하는 원동력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