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독자가 뽑은 `98 10대 인권뉴스


<인권하루소식>은 12월 16일부터 26일까지 인권하루소식 독자를 상대로 98년 한해동안 발생한 국내 인권사건(총 54문항)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여, `98 10대 인권뉴스를 선정했습니다. 이번 설문에는 모두 119명의 독자들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편집자주>


1. 정리해고 시행, 실업자 150만 넘어(설문응답도 82%)
2. 신(新)사상전향, 준법서약제 도입(64%)
3. 국가인권기구 설립 비틀(57%)
4. 도마에 오른 조선일보 사상공세(54%)
5. 군 의문사 의혹, 세상밖으로(48%)
6. 육지위의 노예선, 양지마을(45%)
7. 소리만 요란했던 양심수 석방(43%)
8. 초·중·고등학교 ƒ왕따„ 현상(42%)
9. 불법검문 시민불복종 운동 전개(40%)
10. 김대중 정권, 국보법 구속자 오히려 증가(36%)


■ 정리해고 시행, 실업자 150만 돌파
노숙자·가정해체·어린이 결식 급증

98년 2월 정리해고제의 시행과 함께 우리는 본격적인 '실업의 시대'로 진입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50-60만명 수준이었던 실업자가 올해엔 1백50만명을 넘어섰으며, 실업률도 2-3% 대에서 7% 이상으로 치솟았다.

정리해고가 가져온 결과는 단순히 일자리의 상실만이 아니었다. 실업에 따른 한 가구의 생존 위기는 곧바로 가정의 해체(이혼율 및 시설의탁 어린이 증가)로, 그리고 어린이·청소년들의 학업포기와 결식, 나아가 노숙자의 급증과 사회범죄 및 자살의 증가 등 충격적 문제들을 파생시켰다. 또한,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현실은 노동자, 서민들을 더욱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았다.

이처럼 사회·경제적 권리를 박탈당한 노동자·서민들은 곳곳에서 저항의 몸짓을 보였다. 그러나 9월 만도기계 파업시 정부당국의 강경폭력진압처럼 정당한 파업과 시위의 권리마저 짓밟히는 결과가 빚어졌다. 내년이면 경기가 바닥을 치고 다시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가 제시되고 있지만, 이미 실업과 그에 따른 인권문제는 구조화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 신(新)사상전향, 준법서약제 도입
양심의 자유 침해 논란

지난 7월 1일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사상전향제도'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준법서약제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비롯한 시국·공안사범을 대상으로 "법질서를 준수하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문서로 서약받는 제도다. 법무부는 "준법서약이 '대한민국의 법을 지킬 것이냐'를 묻는 것이기에 사상의 포기를 요구하는 전향제도와는 다르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민변·민가협등 인권단체들은 준법서약제가 더욱 교묘해진 형태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권'에도 위배되는 반인권적인 제도라며 즉각 반대입장을 밝혔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의 대다수가 확신범인 이상, 그들에게 국가보안법을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상전향과 다를 바 없으며, 이에따라 준법서약을 거부하는 양심수들은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준법서약제를 실시한 결과, 8.15 사면에서 3백명 가까운 양심수들이 제외됐으며, 준법서약서를 쓰고 풀려난 양심수들도 여전히 '보안관찰법'의 적용을 받게되는 등 운신의 폭을 제한당하고 있다.

한편 준법서약서를 제출하고 석방된 양심수 가운데 일부는 '준법서약제 폐지'를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장기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비틀'
법무부 '인권위 장악' 고집

98년은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 인권정책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온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문제가 법무부의 오만과 욕심 때문에 비틀거린 한 해였다.

지난 9월 25일 법무부는 '국민인권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인권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법무부 인권법안은 인권위원회를 특수법인 형태로 설치하고 시정권고 수준의 권한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는 독립적 국가기구로서의 인권위원회 위상을 요구한 국내외의 의견에 반하는 것으로 법무부가 '인권위원회'를 자신의 수중에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 민간단체는 물론, 여당인 국민회의와 국제앰네스티, 그리고 언론 등으로부터 잇따라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러나 법무부는 끝까지 '특수법인' 형태의 인권위를 고집했고, 이러한 논란 속에 당초 12월 10일로 예정됐던 인권법 제정 문제는 결국 내년의 과제로 넘겨졌다.

인권위 설립을 둘러싼 법무부의 태도는 인권대통령이라고 자부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인권정책에 대한 국내외적 신뢰와 기대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 도마에 오른 조선일보 사상공세
최장집 교수 마녀사냥 파문

<월간조선> 11월호가 '사상검증'이란 이름 하에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교수의 역사관을 친북적인 것으로 몰고 가 사회적인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월간조선>의 진보 인사 흠집내기가 이번만큼은 수월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 교수 보도를 계기로 매카시즘적 언론 폭력을 일삼는 조선일보에 대한 규탄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국내외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토론회를 개최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월간조선의 '사상공세'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보였고, 11월 11일엔 서울지방법원이 <월간조선> 11월호에 대해 판매·배포금지 가처분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한편 시민사회단체들은 최 교수 건에 국한하지 않고 과거부터 되풀이돼온 조선일보사의 반민주적 허위·왜곡보도 전반에 대응하기 위해 11월 19일 '조선일보 허위 왜곡보도 공동대책위'를 구성했다. 현재 공대위에 속해 있는 40개 사회단체들은 조선일보 취재 거부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 군 의문사 의혹, 세상 밖으로
김훈 중위 사건 등 올해만 30여건

지난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아들의 죽음에 의혹을 품은 예비역 3성 장군 출신의 아버지(김척 씨)와 인권단체의 집요한 추적 끝에, 올 12월 이 사건에 대한 국회, 국방부, 민간 공동의 대규모 진상조사단이 구성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김훈 중위 사건은 그동안 철책에 가려져왔던 숱한 군 의문사 사건 가운데 한 점에 불과하다. 올 한해에만 군내에서 발생한 자살사건이 70여 건이고, 그 가운데 30여 건에 대해 유족들이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같은 의혹들은 군 특유의 폐쇄성에서 기인한다. 민간의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특수성 때문에 사건 직후의 처리 및 조사과정에서 군 당국의 은폐 및 왜곡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김훈 중위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 군 의문사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쏠렸지만, 이 또한 냄비현상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내년 초 설치될 것으로 보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권 보장, 나아가서 군내 자살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구타와 가혹행위의 근절 등을 위한 제도적인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 육지 위의 노예선, 양지마을
사회복지시설 인권유린 잇따라 폭로

에바다농아원 사태가 2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사회복지시설 내의 인권유린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와 충격을 주었다.

7월 16일 인권단체들의 긴급현장조사로 세상에 알려진 충남 연기군의 부랑인수용시설 양지마을과 정신질환자 수용시설 송현원의 경우는 지금껏 알려진 사회복지시설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담장과 쇠창살, 밖에서 열고 닫는 감금장치, 폭행과 욕설, 의혹의 사망사건, 노임착취, 국가보조금의 횡령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속에 5년에서 10년 이상 강제 구금되었던 수용자들은 오히려 감옥에 보내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이들 시설의 법인 이사장과 시설장 등이 구속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지도·감독을 책임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공무원들은 시설과의 뿌리깊은 유착관계에도 불구하고 법적 처벌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양지마을 사건 이후에도 충남의 구생원과 뿌렌나애육원(9월), 전주의 동암재활원(12월) 비리문제 등이 잇따라 폭로되었다. 올해 들어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시설 인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 소리만 요란했던 양심수 석방
초장기수 17명 여전히 구금

양심수 출신의 김대중 씨가 정권을 잡게 되면서, 양심수 석방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 들어 두 번에 걸쳐 단행된 사면조치는 양심수 대통령에게 가졌던 기대를 배신감으로 바꿔놓았다.

3월 13일 '새 정부 출범 기념 특사'에서는 단 74명(양심수 4백78명 가운데 15%)만이 석방됐고 이는 김영삼 정부 출범 당시 석방된 144명(28%)의 절반 수준이었다.

준법서약제도가 도입된 '8·15 광복절 특사'때에는 1차에 비해 많은 94명이 석방되었고 박노해, 김낙중, 김성만 씨 등 유명 인사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하지만 우용각(41년째 구금) 씨 등 17명의 초장기수(28년 이상 복역)들을 비롯해 13년 이상 구금중인 장기수 39명 가운데 21명이 사면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석방된 이들마저도 사면이 아닌 가석방 또는 형집행정지 처분에 의해 출소함으로 언제든지 재수감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새 정부 출범 기념 특사', '8·15 광복절 기념 특사', 양심수 출신 대통령의 화려한 말 잔치는 양심수들과 그 가족들에겐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길 뿐이었다.


■ 초·중·고등학교 '왕따' 현상
자살사건, 손배소송 잇따라

올해는 어두운 교육현실과 병든 사회의 단면을 응집해 보여준 '왕따' 현상이 급격히 증가했다.

교육부가 올해 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료 학생들 사이의 집단따돌림을 일컫는 이른바 '왕따' 현상이 4천여건 정도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서울시청소년종합상담실이 지난해 서울지역 중·고생 2천5백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11%가 왕따를 경험했고 16%가 친구를 따돌려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월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온 한 초등학생이 자살하면서 '왕따'현상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또 못생겼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던 여고생이 자살하고,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집단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왕따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사법당국의 대응도 발빨라졌다. 지난 10월 30일 서울지법 민사합의22부는 심장병을 앓던 급우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괴롭혀온 가해학생의 부모와 학교측에게 각각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12월 22일에는 몸이 아픈 학생을 따돌리면서 상습적으로 괴롭혀 온 혐의로 고등학생 6명을 처음으로 구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왕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교육적 대안은 부재하며, 폭력과 이기주의에 물든 교육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 불법검문 시민불복종운동 전개
법원도 국가배상 판결

지난 한해, 경찰의 부당한 불심검문에 대항하는 불복종운동이 대학생들과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됐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불심검문 시 경찰은 자신의 소속과 성명, 검문의 목적 등을 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러한 절차 등을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검문검색을 벌여왔다. 이에 따라 불심검문이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가로막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이에 인권운동사랑방 등 인권단체와 대학생들은 '법대로 하자! 불심검문' 캠페인과 법적 대응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법검문 불복종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경찰의 불법적인 검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소송이 잇따랐고, 법원은 이에 대해 국가의 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경찰은 불법검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지난 4월 '친절검문' 지시에 이어 11월 초 '무분별한 검문을 지양하라'는 지시를 일선 경찰에 내리기도 했지만 불법검문의 관행은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다. 경찰의 태도에 근본적 변화가 오지 않는 한 불법검문 불복종운동은 계속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국가보안법 구속자 오히려 증가
국민의 정부, '문민정부'의 3배 구속

김대중 씨의 대통령 당선 이후 기대됐던 것 가운데 하나가 국가보안법에 대한 전향적 태도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에 대한 이같은 기대는 김 대통령의 취임 직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사실상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2월, 관악노동청년회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국제사회주의자그룹(5월)·안양민주화운동청년연합(6월)·진보민중청년연합(6월)·영남위원회(7월)·민족통일애국청년회(11월)·민족사랑청년노동자회(12월) 사건에 이르기까지 국가보안법에 의한 연행·구속 사건은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었다. 또한 한총련에 대해서도 이적규정이 계속 내려진 가운데,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생들의 구속이 양산되었다.

지난 2월 새 정부 출범시 김대중 대통령의 "(국보법을) 폐지할 수는 없어도 남용하지는 않겠다"는 약속은 1년 내내 지켜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김영삼 정권 때보다도 국가보안법 구속자 수는 증가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93년과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올해 8개월 동안 국가보안법 구속자는 각각 67명과 310명이었다. 9월말 현재 국보법 위반관련 수배자도 182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올해로 국보법 제정 50년을 맞게 되면서 국보법 개폐논란이 재개되었다. 여기에 최근 유엔인권이사회가 '찬양·고무' 등을 규정한 국가보안법 7조 위반사건에 대해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조약 위반' 결정을 내림으로써 내년 초 국보법 개폐논란은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 10대뉴스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도원동 강제철거 및 철거폭력 사건' '고문경감 이근안 공소시효 연장' '만도기계 파업에 대한 폭력진압' '마산 초등학교 어린이 손가락 절단사건' '영남위원회 사건' '교도소 인권실태 조사 및 발표' '제주 4·3항쟁 진상규명 운동' 등이 올해의 주요 인권뉴스로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