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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탈북, 북 체제 위기가 아니라 남 체제 무능을 보라

탈북자의 삶에서 출발하는 인권의 관점이 절실하다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평양 복귀를 앞둔 북한 외교관이 대한민국으로 왔다. 소문이 무성하던 중, 지난 17일 통일부는 공식적으로 입국 사실을 밝혔고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탈북 동기에 관한 주장들이 언론에 펼쳐졌다. 국정원은 그가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탈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국가자금 횡령 등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 두려워 도주한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국정원이 ‘보호’를 이유로 태영호와 외부의 소통을 막고 있으니 그의 내심은커녕 그가 어떻게 말하는지도 들을 수가 없다. 이미 그의 탈북 사실은, ‘핵심 엘리트층인 최고위급 외교관조차’ 탈북할 정도로 북한 체제에 붕괴 조짐이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로 소비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체제 동요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에 이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누구를 위한 ‘탈북’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남한에서 탈북은 북한 붕괴의 신호이자 남한 우월성의 증거로 국내 정치에 이용된다. 정작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오는 사람들의 권리는 내버려져있다. 체제 대결 구도에서의 접근은 탈북자의 삶과 탈북 현실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탈북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길을 차단한다. 탈북 문제에 접근하는 출발선은 인권이어야 한다. 그리고 인권의 보장은 탈북 문제를 둘러싼 현실의 구조를 직시할 때 시작될 수 있다.*

떠나는 사람들

누구나 그렇듯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에 터를 잡는 것은 삶의 큰 도전이다. 가려는 곳이 어떤 곳인지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고, 낯선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살던 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찾아들 때가 있다. 2015년 해외이주 한국인 수는 6,858명이다. 그/녀들의 이주 동기를 두어 줄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듯이 탈북 동기 역시 몇몇 단어로 환원될 수 없다.

탈북이 문제가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혹독한 기근과 식량난이 북한에 찾아들고 문자 그대로 '탈출'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했다. 다행히 북한도 식량위기로부터 점차 탈출하면서 탈북자 수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급감한 것으로 파악된다. 탈북의 성격도 삶의 다른 기회를 찾고 만들려는 일반적인 이주의 양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탈북은 이민과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일반적인 이주에서는 정착국의 허가가 관건이다. 탈북이 문제인 이유는 북한이 떠나는 것부터 쉽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법령에 따르면 누구나 출입국사업기관에서 여권이나 비자 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여권 발행은 쉽지 않다. 또한 북한 형법 제221조는 '비법국경출입죄'를 두고 있어 '1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할 수 있다. 떠나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부담이 크다.

한편, 합법적으로 해외에 파견되는 노동자들도 있다. 지난 4월 남한에 들어온 식당 종업원들처럼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해외로 보내진 사람들이다. 아산정책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16개국에 5만 2~3천 명(2013년 1월 기준) 가량이 공식적으로 북한을 떠나 있다.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체류국에서 겪게 되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조건은 이들을 피해가지 않는다. 견디지 못하고 작업장을 이탈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떠도는 사람들

비법으로 국경을 벗어났든 합법적으로 나간 곳에서 이탈했든, 그/녀들은 이제 탈북자가 된다. 이들이 일차적으로 피해야 하는 위험은 강제송환이다. 북한으로 돌아가게 되면 '비법국경출입죄' 또는 '조국반역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2년 "탈북자를 다시 데려다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하라"는 방침을 내리는 등 처벌은 완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떠났던 곳으로 '잡혀' 돌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자유를 빼앗기는 경험이고 피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주변국들의 대응은 다양하다. 태국과 몽골은 강제 송환을 하지 않지만 중국에서 넘어가는 경로가 만만치 않다. 국경이 닿아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공식적으로' 북한에 돌려보낸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북한의 변화나 국제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재량을 행사해왔다. 탈북자 중 일부는 난민 신청을 한다. 2014년 전 세계에 난민 자격으로 체류하는 탈북자는 1,282명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탈북자 난민 인정 여부는 강제송환 여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정치적 쟁점이다.

탈북자들이 어느 국가에서든 체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면 '사실상의 무국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앞 다투어 이들이 자국 국민임을 주장하는 이중국적 상태이기도 하는 역설 속에서 정작 탈북자들은 어디에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북한을 떠났으나 남한으로 오지 않는 재외 탈북자가 탈북자의 대다수인 만큼 이에 대한 해법 모색이야말로 절실하다.

특히 탈북자 중 여성의 비율이 증가하는 탈북의 여성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모성사망률이 증가 추세이며, 여성들의 탈북 동기에서 '배가 고파 먹고 살기 위해서'와 같은 응답이 큰 비중인 점으로 미루어볼 때 탈북의 여성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게 되는 인권침해뿐만 아니라 이들이 낳은 아동의 무국적 상태 등이 맞물리며 여성과 아동의 인권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들어오는 사람들

사실상의 무국적 상태로 체류하는 탈북자 중 일부가 남한으로 입국을 시도한다. 이때에도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진짜' 탈북자인지 위장탈북자인지 조사하는 과정이다. 지금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름을 바꾼 '합동신문센터'가 하는 일이다. 탈북 문제는 이제 안보 문제가 된다. 인권침해가 당연해진다. 가족의 면회나 변호사 접견도 보장되지 않는 구금 상태인 데다가, 욕설이나 성희롱, '바보 취급' 등의 무시와 반말도 자연스럽다. 조작간첩사건이 만들어지는 곳도 여기다.

간첩을 전제하는 조사도 문제지만 국적 신청 과정에서 탈북자들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 또 있다. 북한을 탈출했다는 것, 즉 '북한적을 가진 북한 공민'이라는 점이 확인되어야 '북한이탈주민'으로서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탈북한 엄마와 조선족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이 국적 신청을 했으나 엄마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나, 북한에 거주하는 부친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이유로 중국으로 강제퇴거된 사례 등이 국적 인정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북한을 떠나서 어딘가를 떠돌다가 남한에 들어오는 과정을 모두 마치고 거주지가 정해지면 탈북자들의 주민등록이 이루어진다. 2016년 3월 기준으로 국내 북한이탈주민은 29,137명이다.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며,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국내 탈북자의 월평균 임금은 전체 평균에 한참 못 미치고 일용직 비율은 전체 비율의 세 배 이상이다. 고단한 삶이다.

2014년 북한이탈주민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들이 "현재 남한에서 살 때보다 오히려 북한에서 살았던 때가 생활수준이 더 높았다고 인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남한으로 입국한 탈북자의 10% 가량은 다시 해외이주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5년에는 "속아서 입국했다"며 북송을 요구하는 탈북여성도 등장했다. 물론 그녀는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다. 대한민국은 자국 국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 취득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한민국 헌법은 탈북자를 잠재적 국민으로 간주한다. '한반도 전체와 부속도서'를 영토로 명시한 헌법 제3조에 따른 논리적 귀결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반도에 하나의 국가만 존재한다는 전제는 탈북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 궁극적으로 방해가 될 뿐이다. "시혜적인 민족주의 기조의 동화정책 자체"가 탈북자들이 한국의 시민으로 정착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는 점도 분명하다. 남한 정부가 탈북에 접근하는 관점은 국제사회에 아무런 지혜를 주지 못한다. 그리고 북한을 떠난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에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탈북은 북한 체제의 문제만도 아니며 남북 관계의 문제만도 아니다.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누리기 위해, 살던 곳을 떠나 어딘가에 정착하는 도전을 하는 사람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야 하는 국제 문제다. 그러나 남한에서 탈북문제는 체제 대결 구도 속에서만 접근된다. 1990년대 동유럽 난민의 존재가 이념 경쟁의 수단이 되어 '반-사회주의'를 입증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전략적 가치가 감소하면 사람들은 버려진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북한의 '급변사태'를 강조한다. 북한 붕괴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현저히 낮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런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국제법상 남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별로 없다. 그러나 '급변사태'를 거론하는 효과는 작지 않다. 남북 관계의 경색이 직접적인 결과겠지만, 북한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남한인 접촉은 생명을 건 결단"이 되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탈북자의 인권 보장을 위해 어떤 정책과 제도가 의미 있고 효과적일지 다양한 제안들이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 모색에 앞서 인권을 기초로 탈북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을 세워야 한다. 지금 남한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남북문제와 관련해 유의미한 행위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미일 동맹 강화를 꾀하고 대내적으로는 건국절 주장 등으로 한반도 역사에서 북한을 삭제하려고 한다. 북한을 반인도적 범죄국가로 몰아가는 유엔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으며 심지어 북한을 배척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남한은 북한을 떠난 사람들을 받아주는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북한을 떠나 무권리 상태에 처하게 만드는 국가가 될 뿐이다.

무능은 유죄

탈북 문제를 다루는 남한 정부의 무능이 탈북자의 삶을 대가로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체제 대결 구도는 탈북자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으며 궁극적으로 남북 양국 국민의 인권현실에 악영향을 미친다. 교류협력을 증진시키며 탈분단 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존중을 이끌어낼 때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도 증진될 수 있다.

여러 이유로 북한을 떠난 사람들이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면 정착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과도한 기대일까? 함께 살던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북한에 남은 사람들이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면 믿고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할 수는 없을까? 사실상 무국적 상태에서 고난에 처한 사람의 인권 보장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온 사람을 환대하는 과정으로서 국적 인정과 시민권 보장은 어때야 하는지, 남한 정부가 국제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 이 글에서 쓰는 용어는 여러모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공식 국호는 따로 강조할 이유가 없는 한 '남한'과 '북한'으로 쓰겠다. 공식 국호를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대결적 구도를 환기하기 위해서다. '탈북자'는 그야말로 정치적인 용어다. 남한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을 공식 용어로 쓰고 있으나 국제적 성격을 반영하기 어려워 보인다. '북 출신 이주민'처럼 실제 성격에 착안한 용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을 떠나는 것에 '탈출'의 성격이 있음을 부인할 수도 없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탈북자'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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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