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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삭제된 차별, 방치된 혐오를 넘어서려면

- 차별금지법, 더는 우회할 수 없다

“철저하게 대응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반갑지만 낯선 풍경이었다. 지난 달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의 SNS뿐만 아니라 수석보좌관 회의, 국무회의, 주한외교단 만찬에서까지 이주민 혐오와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국가 차원의 대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지게차에 매달려 괴롭힘을 당하는 이주노동자 영상에 공분이 일던 때였다. 또한 중국 국적의 이주민과 재중동포가 밀집한 서울 건대입구역과 대림동, 주한중국대사관이 있는 명동에서 연일 혐중․반공 집회가 이어져 사회적 우려가 높던 때였다. 지난 9월 1~7일 ‘양성평등주간’에는 차별과 혐오 대신 존중과 포용으로 ‘모두가 존중받는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자고도 했다. 이같은 장면이 낯선 건,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혐오차별 대응의 책임에서 가장 멀리 비껴나 있던 주체가 바로 정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변화가 시작되려는 걸까.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정책과제를 수립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달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을 발표했다. ‘모두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되는 인권선진국’이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설정됐고, 사회통합을 위한 ‘혐오․차별 방지’가 세부 계획으로 담겼다. 이를 위해 혐오표현 실태를 파악하고, 혐오를 방지하기 위한 범정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혐오․차별 방지를 위한 법제화 검토와 함께 공론장을 마련해가겠다고 한다. 기대를 품기엔 자연스러운 의문이 뒤따른다. 노골적으로 ‘나중에’를 표명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유보적인 이재명 정부의 ‘혐오․차별 방지’와 사회통합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것은 ‘차별금지’를 외면하는 정치가 오히려 ‘혐오 규제’에 적극 나서는 모순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과제다.

 

사회적 맥락이 삭제된 혐오

‘혐오는 주류화 되고 있다’는 유엔의 진단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공적 담론에서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혐오를 ‘무기화’하는 경향은 한국 사회에서도 더 이상 특수한 현상이거나 소수 과격집단의 전략이 아니다. 국가가 혐오에 대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이며 다층적인 법정책을 통해 개입․대응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누적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차별과 혐오가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는 진단 속에서 혐오에 대응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활발하게 이루어진 영역은 바로 입법이다. ‘혐오표현규제법안’이나 ‘증오범죄 통계법안’처럼 혐오에 대응하는 새로운 단일법이 발의되기도 했으며, 형법, 정보통신망법, 집시법 등 기존 현행법 개정을 통해 혐오·차별·비방 표현을 포섭하고 불법화하려는 흐름 또한 계속 이어져왔다.

그런데 사회적 갈등과 적대가 심화되고 혐오표현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혐오표현․증오범죄를 규제하려는 정치권의 시도가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혐오의 확산과 급진화를 저지하는 데는 별다른 효용을 가지지 못하게 됐을까. 실제로 위 법안들은 모호한 혐오․차별 개념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와 상충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혐오․차별을 방지하려는 법정책이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혐오 대응은 차별의 개념과 그 사회적 해악에 대한 전제 없이, 차별에 맞서려는 시도를 우회해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실패해왔기 때문이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혐오표현 리포트>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일반화된 혐오표현의 규정을 담고 있다. 혐오표현이란 한마디로 성별, 장애,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지향 등 ‘특정 속성을 가진 집단(표적 집단)’을 향해 ‘부정적인 관념과 편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면서 ‘차별을 정당화하고 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이다. 다수의 연구자들이 강변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욕설, 비방, 모욕과 ‘혐오’를 가르는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마지막 요소,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한다는 점이다. 개인이든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에서 발생한 것이든, 혐오표현은 ‘구조적 차별’ 위에서 표출되며, 따라서 역사적으로 배제․소외되어 온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효과가 전제되지 않는 ‘표현’은 ‘혐오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국제인권단체 아티클 19(ARTICLE 19)가 “‘혐오’는 단순한 편견과는 다르며, 반드시 차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권은 혐오표현을 차별과 연관된 개념이 아니라 ‘막말’로 대체하면서 차별금지와 평등증진이라는 목적을 삭제해왔다. 또한 혐오표현의 주체로서 ‘개인’에게 책임을 부과하면서 혐오 전반에 대응할 국가의 책임과 역할은 희석해왔다. 그 사이 혐오의 확산에 대한 문제의식은 주로 혐오표현을 어떻게 ‘형사처벌’할 것인가를 규정하려는 법제도 차원으로 갇혔고, 편견-혐오-혐오표현-차별행위-증오선동-증오범죄라는 연쇄고리를 끊어내며 차별을 해소해나가려는 정치적 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의적 선택과 규제, 방치된 혐오

혐오표현․증오범죄를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지만, 지난 15년 여 시간 동안의 정치적 대응은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고 재생산하는 ‘혐오의 정치’라 해도 무방하다. 이는 ‘차별’이라는 전제를 삭제하면서 혐오를 자의적․임의적으로 규정하고, 혐오에 대응한다는 목표를 철회하면서 오히려 차별을 방관․재생산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혐오 대응 제도를 허울로 만들어온 과정이었다.

혐오 정치의 주전장이 된 여성혐오(misogyny)야 말로 ‘성차별 구조’라는 쟁점이 사라진 대표적인 의제다. 2010년대 초부터 여성․지역․인종적 혐오표현의 온상지가 된 일베를 규제․폐쇄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고,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인해 여성혐오가 증오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회적 경각심이 극에 달했다. 이로 인해 20대 국회에서는 성별을 이유로 한 혐오규제 입법이 다수 등장했다. 사실 ‘여성혐오’는 사회적 소수자로서 여성이 겪는 현실이 모두 ‘혐오’에 기인한다기보다, 사소해 보이는 편견, 혐오와 멸시가 차별과 폭력, 증오범죄로까지 진화하는 연쇄 구조를 가시화하고 이에 대항하는 사회적 언어였다. 그렇기에 여성혐오에 대한 정치의 대응은 젠더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직장 내 성차별과 성차별적 괴롭힘 규제, 일상적인 편견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까지 다양한 법제도적․비제도적 노력을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성별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 규제 입법은 성차별 구조에 대한 인식과 성평등 실현 의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구성원의 존엄한 삶을 파괴할 수 있는 해악이 아니라 ‘거친 말’로 치환되었다. 여성혐오 대응 또한 젠더화된 권력관계와 성차별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개인의 도덕적 ‘배려’로 남겨졌다. 2018년 김부겸 의원이 발의한 「혐오표현규제법」이 보수개신교에 의해 공격받자 “타인에 대해 증오가 아닌 배려를 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하며 철회한 과정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성혐오’만큼이나 ‘남성혐오’도 문제라는 식의 사회적 왜곡은 이러한 차별의 탈정치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성소수자를 범죄화 혹은 병리화해 온 역사 속에서 동성애․트랜스 혐오의 스펙트럼은 일상적인 혐오표현부터 직접적인 차별행위, 증오범죄까지, 여성혐오와 마찬가지로 매우 전방위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가 혐오선동의 최전선에 놓여있다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러한 성소수자 혐오가 성소수자의 평등권을 부정하며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제도와 정치의 실천을 통해서 구조적으로 반복․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위협받고 있으며 공동체의 민주적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는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혐오표현규제법안에서 ‘성적 지향’은 삭제된 채로 발의됐다. 혐오를 곧장 규제하지 않으면 사회에 큰 일이 벌어질 것처럼 나섰던 정치인들은 보수개신교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모두 “기독교 윤리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사회적 토론이 부재”하다는 변명을 하며 혐오의 해악에서 거리를 뒀다. 2016년 이종걸 의원의 ‘증오범죄 통계법안’, 2018년 김부겸 의원의 ‘혐오표현규제법안’과 신용현 의원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발의가 그렇게 철회됐다. 그리고 올해 조인철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또한 보수개신교 반대 민원이 쏟아지자 ‘성적 지향’만을 뺀 채로 재발의를 하겠다며 철회됐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혐오라는 정치적 현실이 삭제된 대응이 선택되었고, 혐오에 기반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되는 경우는 없었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조건 자체를 정치가 파괴하면서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를 ‘괜찮다’고 여기게끔 만드는 일들이 반복됐다.

더욱 더 문제는 ‘혐오표현의 해악’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하고 자의적으로 왜곡함으로써, 역으로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 했다는 점이다. 2022년 6월, 21대 국회에서 연달아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위 법안들은 모두 혐오표현 및 혐오․증오․폭력 조장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하면서 국가권력이 집회시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는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 앞 집회를 금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혐오 대응과 무관하게 여야를 막론하고 전․현직 대통령의 사저와 집무실을 지키기 위한 집시법 개정안들이 범람하자, 혐오선동에 대한 규탄은 여야 간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전락하며 오용됐다. 더구나 혐오에 ‘국가나 사회에 대한 불만’ 혹은 ‘정치적 의견’까지 포함시킨 법안들은 정치권력을 보호하거나 정치권력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달을 뿐, 소수자의 유일하고 강력한 수단인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가능성 또한 높다. 이렇게 목표를 잃은 정치의 혐오표현 규제는 오히려 혐오표현 확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정당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수렴됐다.

 

차별금지법 없이 혐오 방지가 가능할 것이란 착각

12.3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 이후 한국에서도 극우 정체세력과 대중운동이 급부상하며 극우의 전략으로서 ‘혐오’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혐오’의 사회적 맥락을 삭제하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선택적으로 동원하는 정치의 역사는 한국사회의 혐오 대응이 극우의 지반을 약화시킬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무색하게 한다. 현재 극우는 전후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반공주의와 더불어 반동성애․반페미니즘․반이주민․반노조 등을 적극적으로 접합시키며 독자적인 세계와 세력을 구축해가고 있는데 반해, 이를 제어하겠다는 정치세력은 반동성애․반페미니즘이 극우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조차 외면하고 있다. 이렇게 누적된 과정이 여성, 성소수자를 비롯해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을 ‘민주주의’에 대해 실망하고 냉소․회의하도록 만들어왔다는 점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의 ‘혐오․차별 방지’ 정책이 이전 윤석열 정부와는 다른, 훼손된 민주주의와 평등의 원칙을 복원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으려면, 국가가 혐오표현으로 인한 차별을 허용․확산하고 평등을 증진시키려는 적극적 노력을 방기했던 패착을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혐오․차별 방지’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은 더욱 긴요해졌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혐오를 방지하는 것과 차별을 해소하는 것은 정치권에 단일한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자격 따지기를 정당화하는 ‘차별금지사유에 따른 사회적 논란’을 돌파하는 것이다. 이 논란을 넘어설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서 사회통합을 이룰 방법은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혐오․차별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가 20여 년 간 ‘사회적 논란’을 핑계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회피하면서 혐오․차별 선동이 조직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을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때로 사회적 소수자의 평등권과 시민권을 부정하는 주장조차 정당한 사회적 의견 중 하나로 격상하며 혐오․차별을 재생산해왔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인류학자 서보경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나중에 체제’, 즉 “시간적 제한이 없는 유예의 감옥 속에 비규범적인 존재들을 가두고, 이를 통해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구성할 수 있다고 여기는 억압 체제”를 지속하는 한, 혐오와 차별에 대항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차별금지법이 국가 차원의 확고한 차별금지 ‘규범’과 ‘의지’를 드러내는 출발선이자,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토대로 제시되어 왔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바로 그 규범과 의지를 사회적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 왔다. 혐오의 맥락을 가시화하고 부당한 차별을 차별로 제기해올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체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워온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에 놓인 소수자들이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지원하는 과정,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반이 혐오․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촉진하는 과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혐오를 지목하며 대응하는 것은 결국 ‘보편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모두가 평등을 요구할 수 있는 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혐오에 대한 규탄과 규제, 방치의 굴레를 벗어날 출발점은 이미 그려져 있다. 이재명 정부가 혐오․차별을 방지하겠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결코 우회할 수 없다.


[참고자료]

김수아, "미디어의 성차별 및 혐오표현 규제 실태와 차별금지법",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 속 혐오표현 개선과 차별금지법> 토론회, 2025. 4. 11.
서보경, "확인, 분리, 퇴치의 기제들과 ‘정상 상태’로서 미시 파시즘", <반동성애와 안티페미니즘 그리고 우리사회의 파시즘> 공동포럼, 2025. 8. 22.
아티클 19 저, 김대엽, 김주민 역, <'혐오표현' 해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2017.
이승현 외, 「혐오표현 리포트」, 국가인권위원회, 2019.
정다영, 「혐오표현과 민주주의」, 『법학논총』 제31권 제2호, 2018.
홍성수, 「혐오(hate)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혐오에 관한 법과 정책」, 『법학연구』 제30권 제2호,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