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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신자유주의에 저항한 홍콩투쟁은 정당하다

폭력과 빈곤, 차별만을 가져다준 신자유주의에 더 이상 내몰릴 곳 없는 전 세계 민중들이 12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린 홍콩에서 '가진 자 중심의 무역과 투자'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우루과이라운드의 뒤를 이어 새로운 세계무역질서로 등장한 WTO가 결국 강대국과 초국적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왔음은 지난 10년의 세월이 증명하고 있다. 자유무역의 확대가 개도국과 최빈국의 성장을 촉진하고 전 세계 빈곤을 감소시켜 소득의 불균형을 해소할거라는 환상은 깨진지 오래다. WTO 농업협정은 초국적 농업기업의 이윤보장을 앞세워 자신의 노동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WTO 서비스 협정은 물, 전력, 통신, 보건의료, 교육 등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공공영역의 기초 서비스를 기업의 이윤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사유화시켜 노동자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삶의 조건을 하락시켰다. WTO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은 자원에 대한 집단적 권리, 종자, 원주민들의 지식과 삶의 권리를 강탈해 갔다.

열악해진 생존의 조건을 감내할 수 없는 사람들은 1999년 시에틀에서, 2003년 칸쿤에서, 2005년 홍콩에 모여 'WTO DOWN', 'ANTI WTO'을 외쳤다. 시위대는 삼보일배로 촛불시위로 해상시위로 WTO 홍콩각료회의를 무산시키기 위한 '비폭력 직접행동'을 다양하게 펼쳤으며 그 가운데 한국민중투쟁단 1천명이 홍콩경찰에 연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들의 외침은 홍콩시민들의 열렬한 환영과 연대를 나누는 공감의 자리였으나 홍콩경찰은 WTO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불법집회'로 규정해 이들을 사법처리 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찌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불법'이란 꼬리표를 붙일 수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가져다주는 것이 평화이고, 억울하게 묶여있는 사람을 풀어주는 게 정의이다. 지금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WTO로 상징되는 '그들의 폭력'을 전 세계에 알려내고자 한 투쟁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공정하지 못한 국제질서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해 배를 불리는 WTO에 대한 저항이 어떻게 불법인가!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르게 나눌 수 없어 굶주리고, 의약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주고 사기에는 너무 비싸 죽거나 아픈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평화와 정의를 지키고 인권을 옹호하는 저항은 정당하다. 정당한 저항에 대한 압살은 결국 해당정부의 부도덕성으로 상징되고 있음을 홍콩정부가 잊지 않기를 바란다. 홍콩정부는 기소된 14명을 사법처리 없이 본국으로 안전하게 귀국시켜야 한다.

집회 참여자를 향한 홍콩경찰의 폭력에 대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17일 각료회의 회담장으로 행진하고자 한 집회참여자들에게 홍콩경찰은 고무총, 전기봉, 최루탄과 페퍼스프레이로 막았고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지극히 평화로운 집회에 홍콩경찰은 끊임없이 참가자들을 위협했고 결국 18일 새벽 1천여 명을 전원 연행했다. 홍콩경찰은 연행자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줄곧 위협적인 태도로 조사했으며 지문찍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구타까지 자행했다. 알몸 몸수색을 하는가 하면 1인 독방에 17∼20여 명을 몰아넣었다. 변호인 접견, 통역서비스도 제공되지 않았다. 홍콩경찰은 기본적인 인신보호 절차에서 지켜져야 하는 인권 기준을 모두 무시했다. 이 같은 인권침해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홍콩정부는 연행 및 조사과정에서 일어난 인권침해에 대해 명확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자국민에 대한 인권보호에 나몰라라한 한국정부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불구속 수사를 받기 위해 자국민의 신원보증을 요구한 변호인의 요청을 거절한 점은 국외 영사업무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23일 가톨릭 홍콩교구 조셉 쩐(陳日軍) 주교의 신원보증으로 14명은 보석을 허가받았다. 한국정부는 국외에서 적절하게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점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홍콩각료회의는 농업분야에서 일부 성과를 이뤘다고는 하지만, 비농산물의 시장접근 분야의 관세감축에 대해서는 의견접근을 이루지 못한 채 18일 폐막했다. WTO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는 선에서 회의는 끝났고 내년 제네바에서 임시 각료회의를 개최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빈곤과 불평등,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변화를 일궈내기 위한 싸움은 지금 여기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 어떤 물리력도 변화를 요구하는 저항을 막을 수 없다. 그 길 가운데서 모든 사람을 위한 길을 만드는 홍콩투쟁단들, 홍콩 유치장에 수감된 구속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마음과 힘을 모아준 얼굴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WTO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제네바에서도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