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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홍콩 WTO 각료급회담을 저지하자

[기고] 반세계화운동 국제전략회의 열려

올 12월로 예정된 홍콩 세계무역기구(WTO) 각료급 회담을 저지하기 위한 전세계 반세계화운동의 전략회의가 2월 26, 27일 홍콩에서 개최됐다. 'WTO반대를 위한 홍콩민중연맹'(HongKong People's Alliance on WTO, 아래 홍콩민중연맹)이 주최한 이번 국제전략회의(International Coordinating Network Meeting)에서는 12월 11일 각료회담의 개최를 앞두고 홍콩에서 대대적인 지구적 민중저항을 벌릴 것을 결의했다. 지구 곳곳에서 모인 300여명의 참가자들은 '자본만을 위한 WTO의제를 즉각 중단하라(Stop WTO Cooperate Agendas)'는 전체 구호아래 다양한 운동들이 각자의 구호와 요구를 내걸고 공동행동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참가자들은 27일 미디어와 출판, 개막식과 폐막식 행동, 직접 행동과 참가 등으로 다양한 실행모임(Working Group)을 형성해 구체적인 행동 중심의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이번 홍콩 각료급 회담을 무산시키기 위한 투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각별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투쟁은 '마지막 각료급 회담'을 저지함으로써 WTO를 정식으로 타결하려는 시도를 분쇄하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난 2003년 칸쿤에서의 협상 실패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제네바에서 정책결정권한을 일반이사회(General Council)로 이행하려는 '쿠데타'를 저지하는 의미도 갖는다. 실제로 미국과 EU는 WTO의 만장일치제와 경제의 비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각료들이 의사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비효율적' 의사결정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일반이사회를 통해 WTO 의제를 타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칸쿤에서 타결에 실패했던 농업과 비농업, 서비스분야(GATS)에서의 의제들이 2004년 7월 제네바 일반이사회에서 7월 구조(July Framework)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합의되어 버렸다. 따라서 이번 홍콩 각료급회담 투쟁은 WTO 협상과 운영을 보다 더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시도를 파탄내기 위한 중요한 싸움인 것이다.

이번 국제전략회의에서는 이번 싸움이 단순히 WTO라는 기구만을 겨냥한 싸움이 아니라 WTO로 대표되는 자본만을 위한 세계화를 저지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큰 공감을 얻었다. 태평양 섬나라들을 대표하여 발제한 뉴질랜드의 활동가 제인(Jane)은 태평양의 조그마한 섬나라들 중에서 WTO에 가입한 나라는 단 3개국 밖에 안되지만, 뉴질랜드나 호주와의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지역협정 등을 통해서 실제로 WTO의 의제들은 더 악화된 형태로 강요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 과정을 통해 섬나라들의 자연자원 통제권이 점점 더 인근 호주나 뉴질랜드의 초국적 기업들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 그는 "12월의 지구적 민중투쟁은 WTO라는 기구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WTO의 의제들을 실행하고 있는 모든 과정들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태국에서 온 활동가들 역시 이 문제에 크게 공감하면서 태국의 운동은 WTO보다는 현재 진행중인 미국과 태국간의 FTA 반대를 위한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홍콩에서의 투쟁은 그 하나의 과정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활동가 피터(Peter)는 '시애틀에서 브뤼셀까지 네트워크'(The Seattle to Brussels Network)가 펴낸 <칸쿤에서 홍콩까지>라는 책자의 'WTO를 넘어 주목하라'는 글에서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WTO에 대한 EU의 대안적 전략으로서 양자간, 다자간, 지역간 무역협정에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는 "이처럼 WTO 협상이 저지 당한다면 EU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양자간, 다자간 협상과 같은 대안적 접근을 진지하게 검토해야한다"는 2003년 피터 칼(Peter Carl)의 말을 상기시키며, 단지 WTO 협상과정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EU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구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협상과 전략들에 동시적으로 주목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WTO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된 이유로는 민중들의 직접행동이 지닌 파괴력과 함께 정부들 사이에서 이해관계의 충돌과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점 또한 지적될 수 있다. WTO가 출범할 당시 미국과 EU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밀어붙이던 것과는 달리 현재는 자신들의 이해에 근거하여 다양한 연합들이 합종연횡하고 있다. 농산물에 대한 협상만 하더라도 크게 인도와 브라질, 중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G20, 한국과 일본, 스위스가 가담하고 있는 G10, 호주 등 농산물 수출국들의 연합인 케인즈 그룹, 여기에 미국과 EU 등 여러 연합들이 있다. 따라서 바깥에서의 시위와 저항으로 WTO를 무산시켰던 시애틀에서의 투쟁과는 달리 점점 더 회의장 안팎을 아우르는 연합 투쟁의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와 브라질 등을 통한 로비와 압력 행사 등의 전략들도 중요하게 논의되었다.

한편 WTO 협상 저지를 위한 홍콩 투쟁을 조직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홍콩이 '자유무역항'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WTO의 의제에 대해 별반 문제를 못 느끼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도전이다. 자칫 시위 과정에서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면 가뜩이나 취약한 홍콩의 시민운동이 큰 타격을 받을 공산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구적 민중 운동이 어느 정도 연합하여 힘을 모을 것인가 하는 데 있다. 먼저 인도와 브라질 등을 중심으로 WTO 내부에서 자국 정부의 발언력이 강해진 것에 희망을 가지고 직접 행동보다는 정부와의 로비와 협상을 통한 개입에 더 무게를 두려는 경향도 있다. 북미와 유럽의 반세계화운동 역시 WTO 각료급 회담보다는 스코틀랜드에서 열릴 예정인 G8정상회담 투쟁에 더 무게를 실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런 이유로 한국 민중운동 진영의 치밀한 계획과 지구적 연대의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포럼아시아(FORUM ASIA)의 이성훈 사무처장은 "WTO내부의 협상과정이 복잡해질수록 각국 민중운동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진다"며 "한국의 민중운동도 대규모 참가를 조직하는 것만큼이나 보다 더 치밀해져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시급한 과제로 "한국의 운동진영이 다른 나라에 비해 WTO나 FTA 내부협상에 대한 정보나 모니터링이 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제네바에서의 실제 협상 과정에 대한 보다 자세하고 꼼꼼한 관심이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세계화 운동진영이 한국의 민중운동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남반구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와 브라질에서 온 활동가들은 "이번 투쟁의 성공여부는 한국의 민중운동이 얼마나 선도적으로 직접 행동을 조직하는가에 있다"고 단언했다. 홍콩노조연합의 사무총장이자 홍콩민중연맹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탄은 "홍콩 경찰 당국과의 면담에서 경찰들은 특히 한국의 이름을 몇 차례나 거론하며 한국의 민중행동에 대해 신경을 썼다"며 "그만큼 한국 민중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회의에는 한국의 전국농민회총연맹, 다함께, 우리신학연구소 등에서 10여명이 참석해 농업협상, 서비스분야, 지적재산권분야 등의 주제별 토론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등의 전략회의, 행동계획 등과 관련된 실행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홍콩=엄기호]
덧붙임

엄기호 님은 팍스로마나(Pax Romana) 동북아시아 담당(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