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전소희의 인권이야기] 어렵기도 간단하기도 한 WTO와 반세계화

오는 12월 13일부터 18일까지 홍콩에서 세계무역기구(WTO) 6차 각료회의가 개최된다. 많은 이들은 지난 1999년 시애틀에서 벌어진 시위를 알고 있을 것이며, 또 많은 이들은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WTO는 농민을 죽인다"며 자결하신 이경해 열사를 기억할 것이다.

1995년에 발족한 WTO가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빈곤 철폐와 제3세계 개발, 부의 공정한 분배'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이제 전세계적으로 공유된 엄연한 진리이다. 많은 이들은 이제 WTO, 나아가 자유무역협정이 나쁘다는 것 정도는 잘 안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몇 년 동안 소위 '반세계화'한다면서 가장 많이 듣는 것은 WTO와 자유무역협정이 나쁘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제대로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어렵긴 하다. 법조항처럼 생긴 협정문을 읽어봐야 하기도 하고, 관세 계산법은 계량경제학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을 것 같고, AoA(농업협정), GATS(서비스협정) 등 왜 이렇게 영문 약자는 많은지? 또는 대충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당장 코앞에 떨어진 투쟁사안들이 있는데, 당장 내가 굶게 생겼는데 국제적인 무엇에 어떻게 신경 쓰겠느냐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래서 <인권하루소식>에 첫 글을 쓰면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나름대로 제언을 해보려 한다.

먼저, WTO(자유무역협정도 마찬가지)를 이해하기 위해 전문적인 경제학을 굳이 알 필요는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무역'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정치경제 또는 사회 상식 정도면 충분하다. WTO는 '무역'을 빌미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세계에 강제하고 초국적 기업을 실질적인 통치자로 만드는 정치적인 기구이며, 집행권·사법권·입법권을 모두 갖는다. 식량주권을 앗아가고 농업을 초국적 기업에 넘기는 농업협정, 모든 공공서비스를 시장논리에 내맡기는 서비스협정, 초국적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의약품과 정보 접근권을 제약하는 지적재산권협정 등 각종 '법안'을 의결하여 통과시키고 집행한다. 협정을 위반했을 경우 재판부(분쟁해결기구)에 회부해 판결을 내리고 강력하게 처벌한다. 실제로 WTO의 축소판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기 직전 멕시코와 캐나다는 자국 헌법을 뜯어고쳤고, 여러 정부가 기업들에 의해 제소 당했고, 캐나다 정부의 경우 환경을 파괴한 미국 화학회사에 수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도 했다. WTO가 '초국적 자본을 위한 헌법'이란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정부'를 자처하는 이 막대한 기구와 항상 직접 싸워야 하는가? "WTO 해체하라!"라는 구호는 왠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한편 WTO를 직접 타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일상적인 투쟁이 바로 반WTO 투쟁과 연장선상에 있으며 나아가 그 자체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의료와 교육의 공공성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들, 노동유연화를 중단하고 비정규노동을 철폐하기 위한 싸움들, 먹거리와 물, 에너지 등 공공서비스와 공공재에 대한 민중적 통제와 보편적 인권을 쟁취하고 수호하기 위한 투쟁 모두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들이다. 다만 이런 크고 작은 문제의 배후에 WTO가 항상 직간접적으로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WTO는 규범이 체결되기 전부터 각국 정부와 그 정책에 개입한다. 때로는 WTO가 직접 강제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부가 '선수'를 쳐 기업에게 '이윤활동을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기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WTO의 모범생인 한국 정부는 WTO와 견고한 파트너쉽을 형성하여 국제적·일국적 수준에서의 시장화·사유화 정책을 상호보완적으로 내지는 복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각료회의 두 달 전인 10월 19∼20일에 WT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기적 의사결정기구인 일반이사회 회의를 개최한다. 현재 교착상태인 협상을 일차적으로 타결짓기 위해 회원국들은 이 회의에서 가능한 한 노력할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12월 홍콩 각료회의에서 합의문을 도출하려 할 것이다. 협상이 지속적인 난관에 부딪혀 휘청거리고 있는 WTO에게 12월 각료회의는 결정적인 회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료회의가 또 다시 결렬되면 WTO의 정당성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때문에 주요 강대국들은 합의를 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WTO에 그야말로 마지막 '반격'을 가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민중행동'이 여러 단체들과 함께 '한국민중투쟁단(가칭)'을 준비하고 있다. 농민 1500명을 포함해 2300여명의 투쟁단이 홍콩 현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선전전을 진행하고 아시아민중결의대회 등 대중시위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IMF-WTO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는 한국 민중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예정이다.

그렇다. 어렵기도 하지만 또한 너무나 간단하다. WTO에 대항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려야 마땅한 기본적 권리, 보편적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덧붙임

전소희 님은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