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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전소희의 인권이야기] 인권과 민주주의, 공공재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으로서의 반WTO 투쟁

필자는 얼마 전 외교통상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실장인 이재길 대사를 여러 단체 대표단과 함께 면담을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공공부문 관련 대표들은 WTO의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 물, 교육, 의료 등 공공서비스가 시장화·사유화된다는 점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한 외교통상부의 답변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공공서비스는 WTO 협상대상이 아닌데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여태까지 한국의 외교통상부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정부들이 공공서비스를 협상해 전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거센 저항과 투쟁이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WTO와 정부의 거짓 선전이 폭로된 샘이다. WTO 서비스협상을 관장하는 GATS 협정문은 "정부의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공급되는 서비스를 제외한다"는 명쾌하면서도 모호한 구절을 포함하고 있긴 하다. 이에 기반해 외교통상부도 "공공서비스가 협상대상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협정문의 다른 모든 조항이 이런 구절을 교묘하게 무력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서비스협상의 대상이 되는 서비스는 현재 약 160가지인데, WTO의 공식 분류표 곳곳에 '기타' 항목이 있어서 사실상 무한정 확대 가능하다. 최근 '가치'가 높아진 물은 '환경서비스'의 '기타'로 분류되어 있으며, 에너지도 '기타'이다. 협정은 또한 '내국민대우' 원칙을 담고 있어 국내외 자본을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특정 서비스를 자유화 내지는 시장화한다는 것은 곧 초국적 자본에 해당 서비스를 고스란히 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협정은 '국내규제'를 철폐하라고 주문한다. '국내규제'는 관세의 형태가 아니지만 엄연한 무역장벽이며, 여기에는 노동규제, 환경규제 등 자유로운 기업활동에 방해가 되는 각종 '규제'가 포함된다. 정부의 규제개혁위원회가 하는 일을 상기시켜보자.

"공공서비스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외교통상부의 말은 여기서 한 술 더 뜬 거짓선전이다. 면담 참가자들의 추궁에 마지못해 외교통상부가 인정했듯이, 국내법으로 사유화·시장화하고 나면 그 때는 더 이상 '공공'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WTO의 협상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의료산업화전략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법인화하고 시장화하면 이는 더 이상 공공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WTO를 통해 초국적 자본에 개방하면서 국제법의 위상을 부여받게 된다. 상수도를 수자원공사에 넘기면 더 이상 공공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WTO에 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외교통상부의 논리인 것이다. 즉, 정부의 각 부처는 서로 손발을 척척 맞추어 국내법과 국제협정을 상호보완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결국 모든 것을 초국적 자본에 넘길 수 있는 것이다. 협정문의 한두 구절을 들이밀면서 '공공서비스를 보호한다'고 선전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자본에 '합법적'으로 넘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WTO의 핵심이자 본질인 것이다.

올해 6월, 아시아지역 노동자들이 모여 "물과 에너지는 인권이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동조합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물론, "물은 인권이기 전에 생명"이라는 환경활동가들의 지적도 있었지만, 본 회의의 목표는 신자유주의의 사유화, 시장화 정책이 어떻게 물, 전기, 대중교통, 교육, 의료, 복지, 문화, 육아 등 엄연한 '인권'을 말살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마저 앗아가는가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 WTO는 협소한 의미에서의 '무역'에 관한 것도 아니고 '산업정책'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WTO에 대한 싸움은 특정 산업을 보호하자는 싸움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WTO에 대한 싸움은 보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하며, 우리 모두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공동의 소유 구조와 공공재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싸움이다.
덧붙임

전소희 님은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