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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호적제 대신할 목적별 공부안 수면 위로

목적별공부에관한법률안 공청회 열려

호주제 폐지 이후 새로운 신분등록제를 규정하는 법안 마련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목적별신분등록법 제정을 위한 공동행동'과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은 22일 국회 도서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목적별공부에관한법률안(아래 목적별안)'을 공개했다.

22일 열린 공청회

▲ 22일 열린 공청회



목적별안은 지난 3월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호주를 기준으로 하여 가별로 편제"(호적법 제8조)되는 현행 호적을 대신하는 새로운 신분등록제도이다. 발제에 나선 윤현식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현행 호적법에 대해 "호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그 승계에 관한 규정 등을 통해 가족 내에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규정함으로써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의 이념 내지 인권보장의 원칙에 위배"되고 "과도하게 많은 개인정보를 한꺼번에 외부에 유출시키게 함으로써 개인정보의 침해와 함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소위 '정상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보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본인 기준으로 출생·사망·혼인 공부 따로 작성

목적별안에 따라 구성되는 새로운 신분등록제와 기존 호적의 가장 큰 차이점은 출생·사망·혼인 등 개인의 신분확인을 위한 모든 공부를 본인을 기준으로 작성하고 가족 등 관계자의 인적사항을 최소한으로 기재하는 것. 윤 정책연구원은 "개인의 신분확인을 위한 증명에 불필요한 가족의 정보를 함께 담고 있을 이유가 없다"며 "개인의 신분이력사항을 하나의 공부에 일괄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어 "(출생·사망·혼인 등) 사건마다 따로 공부를 작성하여 필요할 때 목적에 따른 증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목적별안은 출생부에 △본인의 성명 △부모의 성명 △출생연월일 등을, 혼인부에는 △본인의 성명 △배우자의 성명 △신고일자 등을, 사망부에는 △본인의 성명 △사망지 △사망일자 △사망사유 등을 기재해 오직 본인의 현재 신분상황만을 보여주도록 했다.


민감한 정보는 신분변동부·혼인변동부에 기재

또 입양·파양·개명 등 신분변동과 이혼·재혼 등 혼인관계의 변동은 각각 신분변동부와 혼인변동부에 기재하도록 하되 재판 진행을 위해 법원이 허가한 경우나 수사기관이 적법절차를 거쳐 요청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서는 어떤 경우에도 열람·교부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위반할 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가족관계 증명은 본인 필요에 따라 가족증명원 발급

한편 윤 정책연구원은 "(본인을 기준으로 하는) 목적별 공부의 문제점은 가족관계의 확인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사유가 발생했을 경우 불편이 초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목적별안은 △세제감면·연금 등 복지수급 △소득공제, 가족수당 등의 수급 △취학에 관한 증명 △상속 등 가족관계의 증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가족증명원을 발급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윤 정책연구원은 "미리 해당 가족들을 대상으로 작성해 두는 것이 아니"라며 "신청자가 가족관계에 관한 사항을 공부사무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제출하면 담당자가 신청서의 내용과 전산정보를 바탕으로 가족증명원 양식에 정보를 기입해 교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가족관계의 외부유출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 가족증명원은 원칙적으로 본인 또는 위임자에게만 발급되며, 발급목적에 어긋나게 활용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본적·주민번호 삭제한 목적별안

한편 기존 호적에서는 기재대상이었던 본적과 주민등록번호가 목적별안에서는 제외됐다. 윤 정책연구원은 "애초 본적지의 개념은 가(家)의 주 소재지가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본인을 기준으로 한 목적별안에서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번호 또한 과거 본인 식별을 쉽게 해 행정사무의 효율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전산처리기술의 발달로 다른 식별자에 비해 효율이 높지 않다는 것.

이외에도 목적별안은 목적별공부에 관한 사무의 관장을 현행 호적법과 같이 시·읍·면장이 행하도록 하며, 사무의 감독은 소재지 관할 가정법원장이 맡도록 했다. 윤 정책연구원은 "법무부는 행정부의 고유권한을 사법부의 관장 하에 두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자신이 관장·감독하려 하지만 왜 굳이 법무부가 그 담당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방정부가 사무를 관장하는 현재의 구조가 더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가 전 국민의 가장 민감한 신분정보 일체를 직접 관장하는 것은 이들 정보를 수사에 임의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생겨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 안고 있는 대법원안

토론자로 나선 김종민 대법원 호적과장은 새로운 신분등록제 도입에 대해 "가족의 해체를 가져온다는 사람들과 개인정보유출이 심하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선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며 "우리나라만큼 효율적인 신분등록제를 가진 나라가 없고 이런 효율성도 어떻게 채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과장은 관련된 예로 사람이 사망하면 상속문제가 생기는데 미국 같은 경우 사설변호사에게 의뢰하는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한국은 국가 공기관의 증명서로 충분해 효율적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또 "개인 정보를 함께 가지고 있는 대법원 안과 마찬가지로 목적별안 역시 분리되어 있지만 조합 가능성이 있다"며 "먼저 합쳐져 있는 것과 나중에 합쳐질 수 있는 것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정책연구원은 "개인정보 관련 데이터베이스는 분리해서 관리하는게 원칙"이며 "행정 효율을 먼저 생각하고 주민 복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민 복리를 위해 효율이 필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토론자로 나선 조은희 교수(제주대 법학)도 "중요한 것은 그 증명서의 공시내용이 어떤 것을 담고 있는가"라며 "공시된 증명서가 적절한 요구에 적절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와 무관한 정보를 유출하도록 하고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혼인과 관련해 목적별안에서는 혼인부에 혼인상태만을 나타내도록 하고 있지만 대법원안은 혼인증명서에 이혼내역까지 나타난다.

한편 대법원안이 각 지방에서 보내온 신분등록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신분등록전산정보중앙관리소'를 설치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조 교수는 "굉장한 정보의 집중"이라며 손쉽게 집중된 개인정보의 악용 가능성과 전산망 해킹 가능성 등 위험성을 지적했다.


목적별안의 보완점도 지적

공청회 참석자들은 목적별안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보완점도 함께 지적했다. 조 교수는 "목적별안에서는 출생부에 부모의 이름이 기재되도록 하고 있다"며 "(출생연월일만을 증명하고 싶은 경우) 부모의 성명은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열람·교부가 쉬운 출생부·혼인부·사망부의 기재사항이 고정되어 있어 증명목적보다 과다한 기재사항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조 교수는 "증명서를 개인정보보호에 적합하게 최소한 몇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지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한다며 "전산화는 이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구사유를 밝히고 "청구가…사생활의 비밀침해 등 부당한 목적임이 분명"(제15조 제5항)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교부받을 수 있는 이들 공부에 대해 조 교수는 "교부대상을 너무 폭넓게 인정한 것"이라며 "본인이나 배우자 직계비속 등 제한적인 사람들에게만 열람 교부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목적별안의 가족증명원 기재사항에 △배우자의 성명 △부모의 성명 △자식의 성명 등이 포함된 점에 대해 유경희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정상가족' 형태의 가족관계를 기재하는 것은 다양한 가족형태의 보호라는 원칙에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한부모 가족, 자녀를 두지 않는 부부 가족, 비혼모를 비롯해 동성애자 공동체, 장애인 공동체 등 비혈연 공동체에 대한 차별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가족의 범위나 경계, 내용과 성격을 규정하는 '하나의 가족 개념'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

유 대표는 "민법에 규정된 혈연중심의 가족범위나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의 사회복지 체계로 인해 다양한 가족형태 보호라는 목적별안의 원칙을 담아내기에 한계가 존재"한다며 "혈연관계 안에서의 상속 및 부양·돌봄이 전제된 상속법, 세법, 사회복지법 등에 대한 보완, 개정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공청회를 거쳐 다듬어진 목적별안은 9월 중 노 의원에 의해 발의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