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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호적 '문제' 그대로 껴안은 법무부 안

국회 법사위, 새로운 신분등록제 공청회 개최

호적을 대신할 새로운 신분등록제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21일 국회 법사위는 신분공시제도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해 호주제 폐지 이후 새롭게 마련될 신분등록제에 관해 국회 차원의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공청회는 정부안이라고 불리는 법무부의 '본인기준 가족기록부'에 대한 인권·여성단체들의 입장 발표와 함께 법사위 의원들의 질의와 의견표명으로 이뤄졌다.


법무부안, 본적·가족사항 등 과도한 개인정보 담아

법무부 안은 개인별 편제를 기본으로 신분등록원부에 본인의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는 신분변동사항(출생, 입양, 혼인, 입양, 이혼, 사망 등)이 기재되고, 가족사항으로 본인의 부모,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 본인의 형제·자매, 자녀의 인적사항(주민등록번호와 생년월일) 및 사망여부가 표시되도록 했다. 법무부 안의 또 다른 특징은 본적을 유지하도록 하고, 특히 미혼 자녀의 경우 부의 본적에 따르며 이혼 시 미성년 자녀는 친권자의 본적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무부는 목적별 증명방식을 다양화해 개인의 신상정보를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법무부 안은 기존 호적에서 호주만 없애고, 기준인을 본인으로 한 채 기존의 호적보다 많은 신분정보를 포함시키고 있다.

공청회에 참석한 진술인들은 법무부 안이 개인정보 보호에 미흡하고, 가족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남인순 대표는 "가족사항에 대한 신분 정보 내용이 필요이상으로 기재되어 사생활 보호 원칙이 충실하게 지켜질 수 있을 지 의심"이라며 "부부와 미혼자녀가 동일본적을 유지한다는 원칙은 현행 호적의 '자의 부가 입적' 및 '처의 부가 입적'을 유지하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또한 "업무의 효율성만을 고려해 기존 호적보다 더 많은 정보를 기재하고 있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 타리 활동가도 "호주제 폐지를 통해 민법 상의 가(家)개념이 폐지될 상황에서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호주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은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구성과 호주를 통한 신분증명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국가가 가족의 범위를 일괄적으로 규정해서 국민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어 "법무부 안은 정보수집의 목적범위를 넘어섰고, 관리·접근에 있어서 정보를 한곳에 집적시키고 있어 정보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보호 장치 필요

법사위 의원들 역시 새로운 신분등록제를 마련하는 데 있어서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주문했다. 우선 다수 의원들은 신분등록원부에 본적이 기재되는 것을 우려했다. 열린우리당 우윤근 의원은 "현재 본적은 가(家)의 소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본적은 지역감정을 유발시키고 있으며, 기록소재지의 의미라면 본적이 가진 고루한 이미지가 있으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신분등록원부에 기재될 개인정보의 범위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하고, 취직 시 기업 등이 개인정보를 어느 범위에서 요구할 수 있을 지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밖에 의원들은 국민이 자기정보에 대해 수정·열람·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될 필요가 있고, 목적별 증명에 대해서도 무엇을 공시할지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러나 신분등록원부 자체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정보수집과 가족을 통해 신원을 증명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의원들 사이에서 다뤄지지 못했다.

한편 호적사무 관장과 예산, 소요기간에 관한 논의도 제기됐다. 법원행정처 강일원 법정국장은 "신분등록 업무의 기능과 관리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대법원이 관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신분등록방안 확정후 예상소요 기간은 2년 6개월, 소요비용은 약 350억원이 들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4년 12월 국회 법사위는 호주제 폐지에 대비한 '호적' 대안에 대해 대법원과 법무부에 검토 의견을 요청한 바 있다. 이에 지난 1월 10일 대법원은 '혼합형 1인1적'을 발표했고, 이어 대법원과 법무부의 협의 결과 1월 26일 법무부는 이른바 정부안이라고 불리는 '본인기준 가족기록부'를 제시했다. 현재 법무부는 대법원과 협의하여 법개정을 위한 실무작업을 진행중이며, 관계부처·학계·실무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신분등록법제정위원회'를 발족, 2005년 상반기까지 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법무부가 내놓은 <본인기준 가족기록부>의 신분등록원부 [출처]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 www.altersystem.or.kr

▲ 법무부가 내놓은 <본인기준 가족기록부>의 신분등록원부 [출처]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 www.altersyste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