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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제네바 소식> ③ 제51차 유엔인권위원회 모니터1 미국의 인종주의 국제적 비난받아

51차 유엔인권위 2주간 회의 주요 쟁점들

제51차 유엔인권위원회(인권위) 전체 6주의 회기 가운데 첫 2주가 지나면서 인권위 전체에 열기와 긴장이 더해가고 있다. 첫 주는 10년을 넘게 끌어왔지만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팔레스타인(항목 4)과 민족자결권(9)에 대한 토론이 별다른 쟁점 없이 끝났으며 남아공(5,6,15) 문제는 아예 의제에서 제외되었다. 둘째 주에는 인종주의(16), 경제․사회․문화적 권리(7), 발전권(8), 외국인노동자(13), 소수집단(20), 종교적 불관용과 차별(22)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회의장 밖에서는 셋째 주 후반부터 이루어지는 결의안에 대한 투표를 앞두고 결의안 초안의 내용을 둘러싼 협상과 로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첫째 주에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 레네 펠베(Rene Felber)씨의 보고서 결론이 파문을 일으켰고 기대했던 남아공 민주화 및 불처벌(Impunity)에 대한 토론은 제외결정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째 주에는 유럽의 인종주의와 외국인배척(Xenophobia) 및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 그리고 미국내의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이 주목을 받았으며 작년에 이스라엘, 미국 그리고 유대교 민간단체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발언이 있었다. 한편, 3월초 열리는 코펜하겐 사회발전 정상회의(WSSD)의 영향으로 발전권에 대한 논쟁이 가장 뜨겁게 이루어졌으며 발언자 수 또한 가장 많았다.


1. 특별보고관 제도는 ‘면죄부’ 구실에 불과한가
-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 레네 펠베 씨 ‘폭탄’ 선언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 펠베 씨의 보고서가 특별보고관 제도의 효과와 한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위스 전 외무부장관이었던 펠베 씨는 인권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특별보고관 제도는 인권위가 나름대로 일하고 있다는 면죄부 구실을 제공할 뿐 실질적인 인권침해를 개선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 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는 평화협상이 단계적으로 실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당국에 의한 인권침해가 계속되고 있으며 경제적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의 다소 ‘충격적’인 결론은 성급한 것이라는 국제법률가위원회(ICJ)의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펠베 씨는 나중에 보고서의 결론에서 “인권위의 지나친 정치화 경향에 경종을 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정치적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고 설명하였다.


2. 남아공 인권문제 의제에서 제외
-불처벌(Impunity) 문제 거론 가능성 사라져

10년이 넘게 인권위에서 다루어진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작년 4월 만델라 정부의 등장과 함께 공식의제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인권위의 각 지역대표는 첫주에 협의를 거쳐 ‘남아공의 인권침해’(의제항목 5)와 ‘남아공 민주화 이행과정 모니터와 지원’(6), 아파르트헤이트 조약 이행(15)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인종차별을 법제화했다는 점에서 인종주의와 차별성을 지니는데 제도적 인종차별문제는 앞으로 인종차별철폐조약(CERD)에서 다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국제인권봉사회(IS) 아드레안 졸라(Adrien Claude Zoller)씨는 발언을 통해 “지금까지 남아공 내부에서 아파라트헤이트 범죄에 책임있는 사람 또는 그러한 정권을 외부에서 지원한 사람들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위원회의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아파르트헤이트 범죄에 대한 불처벌을 승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3. 유엔인권위가 점점 정치화되고 있다
-국제법률가위원회(ICJ)사무총장 아다마 디엥(Adama Dieng)경고

지난 2월3일 주제네바 미국대표부의 주선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국제법률가협회 사무총장 아다마 디엥 씨는 “대다수 정부가 인권위에서 점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인권에 대한 순수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어서 인권위가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인사말에서 “지난 48년 대다수 정부가 합의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 또는 실천하다 희생당한 전 세계의 많은 인권운동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 뒤 그는 “민간단체(NGO)는 국제인권기준의 제정이외에도 구체적 적용과 실시를 감시하는 감시자(Watch Dog)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 보여졌듯이 민간인권단체의 공헌이 너무나 ‘성공적’인 나머지 그 대가로 오히려 인권위에서 작년에 60개 좌석이 12석으로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정부의 독선과 횡포를 막는 방법의 하나로 국제노동기구(ILO)의 장점을 이용해 “정부와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민간단체가 대등하게 참여하는 세계의회(World Parliament)”의 구성을 앞으로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토론회에는 인권고등판무관 호세 아얄라 라소 씨와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미셀 한센 씨도 참석했으며 전 세계에 텔레비젼으로 30분동안 생중계 되었다.


4. 인종주의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인권침해
-미국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전국적 캠페인 나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전 세계적 수호자로 자처해온 미국이 인종주의 문제 때문에 인권위 안팎에서 집중적인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미국 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단은 2월7일 오후 회의장 21호에서 작년 10월 미국 전역을 돌며 가진 인종주의 추방 캠페인 설명회를 가졌다. 미국감리교회의 대표인 앤 마샬(Anne Marshall)씨는 “그동안 미국인들 사이에 인종주의를 인권침해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인권은 남아공 등 제3세계 고유의 문제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번 캠페인을 계기로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주의를 국내법 차원의 민권(Civil Rights)이 아닌 보다 보편적인 국제인권법 차원의 인권(Human Rights) 문제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캠페인의 성과를 설명했다. 한편 지난 2월2일부터 시작된 인종주의(의제 항목 16)에 관한 토론에서 멕시코 등 일부국가의 많은 민간단체들은 캘리포니아주의 187호 법안(일명 SOS법안)등을 예로 들면서 미국내의 인종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베닌(Benin) 출신의 인종주의에 관한 특별보고관 마우리스 글레레-안한조(Maurice Glele- Ahanhanzo)씨는 지난 94년 10월 가진 미국방문보고서(E/CN/4/1995/78/Add. 1)에서 “지난 30년간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국사회에 특히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제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인종주의 단체의 설립이나 인종주의 선전금지 등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또한 80년대 건강, 주택, 교육 및 고용분야에서 추진된 정책들의 부정적 결과를 제거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아울러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정부대표는 발언을 통해 미국정부가 지난 94년 인종차별철폐조약(CERD)을 비준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보고관의 일부 권고안은 결사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실시하기 어렵다”고 말해 보고서를 부분적으로 반박했다.


5. 발전권 둘러싸고 남북간 뜨거운 ‘공방전’ 벌여
-보편적 권리에는 합의, 해석은 제각각

코펜하겐 사회발전을 위한 정상회의(WSSD)를 불과 몇 주 앞두고 열리고 있는 인권위에서도 발전권(Right to Development)의 해석을 둘러싼 남북간의 공방전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항목 7)과 함께 진행된 발전권(항목 8)에 대한 토론에는 과거와 달리 대다수 국가와 민간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인권위 둘째 주 내내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발언이 문제점을 나열하거나 과거의 논리를 되풀이하는 등 내용 면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측을 대표하는 중국은 “발전권이 개인과 집단의 권리 양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개도국이나 선진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원칙적으로 주장하면서도 “개도국의 입장에서 경제성장을 통한 기본적 경제적 권리의 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정부가 우선적 책임을 지닌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영국 외무장관 더글러스 허그 (Douglas Hogg)씨는 ‘민주주의-발전-인권’ 삼자의 상호연관성을 설명하면서 이제 발전권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권리의 일부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모든 인권이 동등하며 인권에 대한 관심은 정당한 관심이므로 내정간섭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전제하고 나서 “경제개발이나 국가안보를 우선시하여 다른 권리를 제한 또는 부정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간접적으로 중국의 논리를 반박하였다.

한편 대부분의 민간단체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주도하고 있는 구조조정계획(SAP)의 무차별 적용에 의해 제3세계 곳곳에서 대량실업 등 대규모 인권침해 사태가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들을 유엔의 통제 하에 둘 것 그리고 개도국의 발전권 실현을 구조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외채를 탕감하고 원조를 증가할 것을 주장하였다. 자의적 구금, 고문, 언론자유 등 시민적․ 정치적 권리 분야에서와 달리 경제권과 발전권에서는 민간단체와 남측 정부가 대체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6. 남북한 정부대표 나란히 인권위 참석
-남한 대표 2회 발언, 북한대표는 ‘아직’ 침묵

이번 51차 유엔인권위에 처음부터 남북한 정부 모두가 참석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은 정회원국으로 지금까지 2번 발언을 했으나 참관자 자격의 북한대표는 아직까지 한번도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인권위 넷째 날인 2월 2일 허승 대사가 의제항목(item) 4번 팔레스타인 인권문제와 9번 민족자결권에서 첫 발언자로 나서 “지난 93년 9월 서명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의 평화협정을 지지한다”고 말하였다. 이어서 둘째주 첫날인 2월 6일 이준희 참사관은 의제항목 16 ‘인종주의와 인종차별 철폐 제 3연대(年代)행동계획 실시’ 에서 인종주의에 관한 특별보고관 마우리스 글레레-안한조(Maurice Glele-Ahanhanzo)씨의 임명을 환영하면서 “한국정부는 무엇보다도 현시대에 관용과 상호존중을 증진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였다.

첫 주에 개막식과 발언이 예정된 날을 제외하고 한국정부를 대표하여 주 제네바 대표부의 이준희 참사관과 서울 외무부 인권사회과의 임재홍 과장 두명만이 참석하였다. 둘째 주에는 줄곧 이준희 참사관이 혼자서 한국정부를 대표하여 자리를 지켰다. 이에 반해 북한은 참관자(observer)자격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2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북한의 민간단체(NGO)인 북한인권연구소의 대표가 첫날부터 회의를 참석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에 남북한 인권문제를 두고 낯뜨거운 설전을 벌인 적이 있는(하루소식 119호, 93년 3월 10일 참조) 남북한 정부대표는 조문파동의 후유증 탓인지 별다른 공식 및 비공식 접촉없이 지내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10일부터 북한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 박성옥 부서기장은 이번 주에 본격적으로 거론될 정신대 문제 사전로비와 준비를 위해 다른 동포 한명과 함께 인권위에 참석하고 있다. 한편 북한인민군 소속 전쟁포로(POW)출신의 비전향 장기수인 김인수(68), 함세환(62), 김용태(63) 3인의 북한송환을 위한 재일조선동포회의 사무국차장 서충언 씨가 인권위 회의장 외부에서 관련 팜플렛을 전시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제네바=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