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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반테러라는 이름의 국가 테러리즘을 중단하라"

<기고> 5회 세계사회포럼 현장(1)

[편집자주] 지난달 26일부터 31일까지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레에서 열린 5회 세계사회포럼 참관기를 4회에 걸쳐 싣는다.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안보(Human Security)이다"
"테러에 대한 대처는 국제법과 인권의 틀 안에 있어야 한다"

세계사회포럼에 모인 국제적인 인권단체들이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인권탄압을 폭로하며 이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인권연합(International Federation of Human Rights)과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국제법률가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지난달 28일 '테러리즘에 맞선 싸움과 인권'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을 하루 내내 개최했다. 다른 워크숍이 주로 주최측 참가자들만이 모이는 한산한 모습인데 반해 이 워크숍은 하루 종일 사람들이 가득 차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른바 테러리즘에 대한 싸움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권탄압이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전지구적으로 심각하다는 반증이었다.

먼저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인권탄압 사례들이 쏟아졌다. 미국,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네팔 등에서 참가한 인권활동가들은 앞다투어 자국의 반테러법안을 소개했다. 이들은 반테러법안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고문, 납치, 영장 없는 체포와 구금, 법원의 동의 없는 구금 연장 등을 들며 반테러리즘 분위기에서 시민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무제한적인 통제가 자행되고 있음을 고발했다. 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비민주적이고 인권을 무시하던 정부들이 9.11 이후 인권탄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국가안보를 악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사례를 소개한 휴먼라이츠워치의 리드 브로디(Reedy Brody) 씨는 "미국을 더 안전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관타나모에서 무슬림 구금자들에게 고문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짓을 자행했다"며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안전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피묻은 보복만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을 지하드(성전)로 끌어들일 뿐"이라고 맹비난했다.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인권운동가들

이번 워크숍에서 특히 참석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위험에 처한 인권운동가들의 사례였다. 특히 체첸 전쟁과 관련된 러시아의 사례는 참석자들의 많은 관심과 연민, 그리고 연대를 불렀다. "지난 10년간 체첸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고 말문을 연 체첸 출신 변호사 리디아(Lydia Yusupova) 씨는 올해만 하더라도 당장 지난 20일에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인권운동을 하는 변호사가 실종되었고, 여태 아무런 소식이 없어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고 애를 태웠다.

국제인권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위협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법에 의한 독재(Dictatorship of the Law)' 정책을 입안한 후 더욱 심각해졌다. 푸틴은 집권 후 미디어, 정당, 시민사회, 심지어는 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왔다. 특히 시민사회와 관련해서는 "국가와 시민단체의 건설적인 관계 설립"을 주장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단체에 대해 시민단체 등록 취소 위협과 함께 조세 법령에 의한 간접적인 압력도 행사하고 있다. 물론 직접적인 탄압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일례로 '시민자유와 인권 보호를 위한 종교간 운동 연합'은 2002년부터 러시아 정부의 감시를 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인 구스코프 씨는 2002년, 차브라이로프 씨는 2003년에 실종되었으며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 2003년 1월에는 이 단체의 사무실이 군인들에 의해 습격을 받기도 했다. 체포된 활동가 무르스탈리에 씨는 검문소에서 마지막 모습이 목격된 후 총알이 박힌 시체로 발견되었다. 제1차, 제2차 체첸전쟁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저명한 인권운동가 쯔라 비티에바(Zura Bitiyeva)씨는 2003년 21일에서 22일 사이에 그녀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몰살당했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연합의 사무총장 페리즈(Luis Giuillermo Perez)씨는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의 전세계적인 제한은 테러리즘에 대한 대처의 비인간적이고 위법적인 면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며 "인권활동가들이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혀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법률가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테러리즘에 대한 법안을 하원에서 토의중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테러 위협'이 선포되면 군대가 60일 동안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테러리스트 활동'기간에는 독립된 언론의 활동은 제한된다. '테러 위협'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은 주지사에서부터 총리에까지 주어진다. 비록 이 법안이 아직까지 하원에 정식으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검찰총장은 공공연하게 "인질 사태의 경우에는 인질법의 친척들을 구금해야한다"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소수자는 잠재적 테러리스트"

워크숍에서는 인권운동가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소수부족, 난민, 외국인 등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의심받고 있으며, 특히 이들의 활동에는 초법적이고 무제한적인 감시와 탄압이 강화되고 있다는 증언이 유럽에서부터 남미까지 줄을 이었다. 특히 영국의 2001년 '반테러 범죄 및 안보' 법안은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 외국인을 무제한 구금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악명 높은 법안이다. 모로코에서도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 사람들은 판사와의 면담 없이 96시간 구금하고 이것을 두 번 연장 가능하게 하는 것을 허락하는 반테러법안이 통과되었다. 칠레에서는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던 마푸치(Mapuche) 부족의 지도자가 반테러법 상 불법단체 구성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각국 정부들의 이러한 인권탄압과 억압의 법제화는 곳곳에서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정부기관, 특히 사법부에 의해서 도전을 받으며 속속 무력화되고 있다. 영국의 상원은 외국인에 대한 무제한적인 구금이 차별적이고 부적절하다고 결정했다. 미국의 연방법원은 오사마 빈 라덴의 전 운전수로 기소된 살림 아메드 함단(Salim Ahmed Hamdan) 씨에 대한 군사위원회가 제네바 협약을 위반했으며, 미 군법재판의 과정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칠레 지방법원도 마푸치 지도자를 반테러법안으로 기소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결했다. 각국 사법부들의 연이은 판결은 위협적인 분위기에서 면밀한 검토 없이 졸속 통과된 대부분의 반테러법안들의 반인권적·초법적인 요소를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법률가위원회의 니콜라스 호웬(Nicolais Howen) 사무총장은 "정부는 시민들을 보호해야한다. 그러나 지금은 테러에 대처한다고 마련된 수단 그 자체들이 인권에 대한 엄청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는 안보라는 이름의 미사여구에 맞서야 한다. 법에 의한 지배가 없는 지구적 안보란 속 빈 강정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워크숍 참석자들은 "정부야말로 반테러라는 이름으로 초법적인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며 각국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높일 것을 결의했다. [포르투 알레그레=엄기호]
덧붙임

엄기호 님은 팍스로마나(Pax Romana) 동북아시아 담당(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