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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외국인의 '무임승차'? 차별적인 건강보험제도의 ‘문제’!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의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통해 시정 방향을 찾아가야 할 국회가 언론의 이목 끌기에 급급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본격적인 국정감사 일정을 앞두고 지난 9월 21일 이용호 의원실에서 배포한 외국인이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는 ‘수박 겉핥기’, 부실’, ‘전문성 부족’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외국인 건강보험정책은 최근 몇 년 동안 국정감사의 단골 이슈였다. 외국인이 건강보험료는 제대로 납부하지 않은 채 과도한 급여 혜택을 받고 있으며, 이것이 곧 건강보험의 재정을 위협한다는 식의 논리가 반복되었다. 왜곡된 근거로 외국인을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해 온 국회는 외국인 건강보험제도 이용을 ‘무임승차’나 ‘먹튀’로 보는 인식을 확산시킨 본거지다. 이런 인식은 이주민 차별을 강화하는 건강보험제도 개정의 근거로 작용했다. 그 과정에서 건강보험제도와 같이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사회보장을 구성원 모두가 함께 책임지면서도 국가의 책무를 강화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기에 십상이다.

건강보험, 외국인은 무임승차?

‘무임승차’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은 ‘공정’의 훼손을 예감한다. 건강보험 재정에 적정한 기여가 없는 대상에게 건강보험 급여를 과도하게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건강보험제도는 ‘내가 낸 만큼’ 개인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사보험이 아니다. 건강보험이 공적제도인 ‘사회보험’인 이유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조건을 고려하는 것처럼 ‘적정 부담능력 있는 곳에 적정 부과’ 원칙을 적용하고, 모든 가입자가 동일한 형태의 필요 급여를 받도록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코로나19로 경제적 피해가 큰 경우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고 이 지역의 소상공인이나 저소득층에게 건강보험료를 경감해주지만, 건강보험을 이용할 때 받는 보험급여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 코로나19 시대에 국민건강보험제도에 사람들이 높은 신뢰를 보낸 이유도 바로 이러한 사회보험의 원리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건강보험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부도덕한 무임승차의 주범이 외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나 이주민으로 지목되어온 과정이다.

이주민이 내국인과 비슷한 수준 혹은 과도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된다. 이주민의 피부양자 등록 자격은 내국인보다 제한적이기 때문에 평균 피부양자 등록자 수 역시 적다는 점, 건강보험료 체납세대 비율은 이주민이 세대주인 경우보다 내국인이 세대주인 세대가 더 높다는 점은 역시 마찬가지다. 매년 큰 폭으로 갱신되는 이주민 대상 전체 건강보험 흑자로 나날이 늘어나는 내국인의 적자를 메우고 있다는 통계는 선택적으로 무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국정감사 시기가 되면 건강보험제도 운영의 문제를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외국인 무임승차 문제’라고 호도하는 국회, 별다른 검증 없이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의 기사를 복제하고 확대재생산 하는 언론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호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권은 무임승차론을 ‘국민적 공분’이자 승격시키는 디딤돌로 ‘외국인’ 대 ‘내국인’이라는 이분법을 적극 활용한다. ‘유리지갑’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료를 성실납부하고 매년 오르는 보험료를 감당하고 있는 ‘국민’과 사회공동의 책임을 회피한 채 공공재를 자신의 이익으로 취하는 부도덕한 ‘이주민’ 구도가 공고해지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제도 의미가 시장의 사보험 수준으로 한정되는 사이, 이주민에게 건강보험은 건강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으로서가 아니라 정주를 위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차별과 징벌로 자리 잡아 갔다. 2018~2019년 외국인 건강보험제도 개편이 대표적이다.

무엇이 사회보험의 의미를 훼손하는가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전 국민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고 가입자의 보험료로 대부분의 재정을 운용한다. 기본적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2005년 건강보험 당연적용 사업장에 고용된 이주민의 의무가입을 시작으로 2019년 직장가입자가 아닌 장기체류 이주민의 지역가입까지 의무화함으로써 이주민을 포괄하게 됐다.

이주민에 대한 지역건강보험 가입 의무화는 주로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 열악한 노동환경과 같은 건강위험요인이 높은 직종에 종사하는 이주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주민의 많은 수가 임시직이나 일용직과 같은 불안정 특수고용 부문이나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농축산어업에 종사한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낮은 건강보험 직장가입률이라는 한계 속에서 그나마 가능한 사회안전망의 틀이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9년 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은 이주민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외국인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재정적자 증가와 내국인과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는 이주민에게 실질적인 보건의료 서비스의 접근권을 보장하고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보험료 납부와 더불어 보험급여의 제한, 체류자격의 불안정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주민의 정주화 경향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뚜렷하게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이주민을 한국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한 외부인으로,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회경제에 기여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주체로, 그래서 삶과 존엄에 필수적인 권리까지 제한되는 것이 당연한 존재로 지목되는 집단이 이주민만일까?

무임승차론의 타켓, 위협받는 건 이주민의 권리만일까

2014년 집주인에게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송파 세 모녀의 월 건강보험료는 47,060원이었다. 우리는 죽음 이후에야 세 모녀의 삶의 조건을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2021년 6월,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장기 체납한 지역가입 세대 가운데 70%가 월평균 체납액이 5만원도 되지 않는 ‘생계형 체납자’로 나타났다. 이는 73만 3천 가구에 달한다. ‘무임승차이나 ‘도덕적 해이’라는 손쉬운 진단을 들이밀기 전에, 적지 않은 건강보험 체납자의 숫자를 통해 우리 사회는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2017년 시민건강연구소의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에 따르면, 건강보험료의 체납이 발생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확인된다. 첫째는 주로 저소득층이고 불안정 직종에 종사하는 지역가입자들의 취약성이고, 둘째는 여기에 가중된 실직, 파산, 건강문제 등 위기 사건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러한 취약성과 위기 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건강보험제도다. ‘표준 노동자’, ‘표준 가족’, ‘정보능력을 갖춘 표준 시민’에 맞춰 구성된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건강보험료 체납자는 예외적 일탈자로 간주, 방치되거나 배제되는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고, 이는 연구진이 건강보험 체납을 개인의 책임이나 운명이 아니라 ‘제도적 과실’로 명명한 이유다.

2020년 코로나 이후 고용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해고와 실직, 무급휴가의 처지에 내몰리게 된 불안정 노동자들, 일자리가 아니라 일감을 전전하며 지역가입을 유지하고 있을 청년 세대와 여성들의 삶은 생계형 체납자의 숫자의 큰 부분을 차지할 테다. 하지만 건강보험제도는 직장근로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에게 특히 더 가혹하다. 과거에는 질병·사고로 인한 실직이나 낮은 소득으로 보험료를 낼 수 없어도, 성별·연령 등으로 경제활동 가능성을 추정해 매긴 소득으로 건강보험료를 징수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제도가 일부 개선되었지만, 최저보험료 도입과 한시적인 경감 제도 운영으로 생계형 체납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월급은 120~150만원에 건강보험료는 12만원, 실직이나 휴직하면 그래도 12만원이야’

건강보험이 이주민에게 차별적인 제도로 탈바꿈한 배경에도 차별적인 보험료 산정 문제가 있다. 2020년 통계청과 법부무의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의하면 이주민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 이유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것은 바로 ‘치료비의 부담’으로, 이는 다른 연구조사에서도 일관적으로 확인되는 조건이다. 주로 소득과 재산에 따라 보험료를 책정하는 기준에 따른다면, 이주민의 보험료 또한 그 기준의 예외에 있지 않다. 하지만 정부는 이주민의 소득과 재산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영주와 결혼이민을 제외한 이주민의 보험료 부과 기준을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로 일괄 적용해버렸다. 소득과 재산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건강보험공단이 소득과 재산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무를 요구할 뿐, 이주민에게 평균 이상의 과도하고 차별적인 보험료를 전가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차별을 강화하고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안전망?

건강보험제도는 혈연과 혼인이라는 정상가족 제도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올해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 박탈에 문제제기하며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한 게이 커플이 행정소송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비정상 가족이라는 이유로 생계와 돌봄을 책임지는 관계가 사회보험 내에서 인정되지 못하는 차별을 경험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저 제도에서 인정되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연대납부 의무를 지고 다른 여타 사회보장에서 배제되는 고령층, 장애인, 홈리스, 저소득층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국인과 달리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을 ‘동일 세대’로 인정하는 차별적인 기준 때문에 부모나 성인 자녀와 함께 거주하는 이주민은 인당 부과되는 보험표의 폭탄을 맞고 있다. 이들에게는 건강보험이 건강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제도다.

낮은 월수입에 비해 높은 보험료는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차별을 양산한다. 2019년 이주민 건강보험정책이 ‘개악’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주민의 경우 1회라도 보험료를 미납하면 그 즉시 보험급여를 제한하고, 일정 횟수 이상 체납 시 체류기간 연장을 제한하는 정책이 함께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주민은 아파도 높은 비급여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진료를 받기 더 어려워졌고, 항상 급여제한 상태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회보장을 체류자격의 연동시키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이주민을 빈곤과 미등록 상태로 내모는 인종차별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의 원칙과 의미를 훼손하는 것은 ‘이주민’ 혹은 건강보험 내 개별 가입자들이 아니라, 애초에 차별적인 기준과 정책 추진으로 인해 사회보험으로서 제 역할을 못 하는 건강보험제도의 운영방식이다. 정치권의 무능력, 무책임, 무임승차라는 낙인찍기는 불공정은 유지하고 차별은 심화시키고 있는 제도 자체의 문제를 가리는 변명일 뿐이다.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의 의미를 세우는 출발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으로서 건강에 대한 사회공동의 책임을 강조하여 비용(보험료)부담은 소득과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가입자 모두에게 균등한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 직장 가입자들처럼 누군가는 매달 보험료를 내면서도 1년에 한 번도 병원을 이용하지 않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문재인 케어’ 정책을 발표하며 만났던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소아들처럼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랫동안 수십억의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그 누구도 후자를 건강보험 ‘무임승차’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도 미래에 나에게 닥치거나 사회에 찾아올 건강위험에 대비해서 각자의 능력에 맞는 책임을 함께 지고, 누구나 최선의 건강상태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사람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보험으로서 의료보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적정 부담능력’이 없거나 낮은 사람들에게는 공공부조로서 의료급여를 비롯한 건강보험제도의 접근성을 낮추는 다양한 정책들을 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국고를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건강보험제도는 외국인이든 아픈 사람이든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이든 사회구성원 누구나 보편적으로 최소한 건강할 권리를 보장받고 보건의료에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의 약속, 국가의 책무를 확립한 역사적 제도다.

건강보험제도에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이용호 의원의 말에 건강보험정책의 취지를 되돌려 줄 수 있는 사회적 원칙과 태도가 중요하다. 이주민을 비롯해 건강보험 가입자를 피땀 흘리지 않은 무임승차자로 왜곡하는 정치는 지금까지 사회안전망을 함께 만들어 온 누군가의 삶을 침해하고 존엄을 상실하게 하는 차별이다. 누군가를 무임승차자로 낙인찍는 차별의 정치가 바로 그 사회적 약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무임승차자의 태도다. 이런 태도를 근절하고 공공의 권리로서 보편적이고 실질적인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한 출발은 외국인 건강보험제도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