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엄정한 체류질서 확립을 통한 APEC 2025 KOREA 성공적 개최 기원’이라는 명분 아래서 정부합동단속이 시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10월 28일, 대구 성서공단의 공장에도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장장 3시간에 걸친 단속 과정에 25세의 베트남 이주여성 뚜안이 단속을 피해 3층 창고의 실외기 뒤에 숨어 있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뚜안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국가의 폭력을 규탄하는 마음으로 ‘이재명 정부 강제단속 규탄! 故 뚜안님 추모 촛불행진’에 함께 했다.
집회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 세 분의 추모 기도로 시작되었다. 10분이 넘는 시간동안 느리고 깊게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그제야 이 죽음이 실감되었다. 기사나 뉴스에서 “이주노동자 한 명이 사망하였다”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한 줄의 헤드라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게로 다가왔다.
‘불법 사람’과 ‘합법 죽음’이란 것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불법 사람’이었기 때문에 합법이자 적법한 절차를 거친 단속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람이 여기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어떻게 사람의 죽음을 법 아래에서 합리화할 수 있으며, 사람을 몰아내는 행위가 합법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공공연하게 허용될 수 있을까. 사람을 몰아내고 죽이는 법으로 세운 질서는 올바를 수 없고, 그 질서 안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다치는 동안에도 법무부는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단속을 고집하고 있다. 심지어 전년 대비 7만 명 규모의 이주민이 감소했다는 소식을 자랑하듯 보도했다. 한편, 정부는 불법(미등록)이라는 이유로 단속을 실시하면서도 정작 그 미등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잘못된 제도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본집회 사회를 맡은 경기이주평등연대 박희은 활동가의 말을 빌리자면, 자본에 의해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왔지만 불합리한 통제와 관리에서 벗어나면 폭력과 죽음으로 내쫓는 행위를 국가의 이름으로 반복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을 오롯이 개인의 탓으로 떠넘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뚜안의 죽음은 절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故뚜안 사망사건 대응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대책위원회의 김헌주 활동가는 2003년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장에서 결성된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노래 ‘친구여 잘 가시오’를 2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프다고 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우리 친구여, 동지여, 얼마나 힘들었나. 더 이상 이런 죽음 없게 널 위해 기도하네.”
집회가 끝난 후 찾아 들어본 노래 가사였다. 언제까지 다시는 이런 죽음 없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 노래가 발표되고 난 이후에도 죽고 다치고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노래에 담긴 이야기가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아서 김헌주님의 발언이 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또한, 우리가 정말로 바꾸고자 한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용어가 아닌 그런 차별적 용어를 만들어낸 현실이며, 국가는 국민을 핑계로 삼지 말고 평등한 공존의 전제를 무너뜨리고 있는 스스로의 행태를 단속하라고 말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사랑방 몽 활동가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국가가 ‘국민 안전’을 운운하면서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나와 시민들의 존재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답답함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노동자에게 법을 지켜야한다고 말하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법제도가 얼마나 차별적이고 문제인지는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와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 또한 정부와 기업이 행하는 인권침해는 이주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정부가 나서서 자본과 결탁해 노동자를 위계화하고 혐오를 양산하고 있는 사회의 문제임을 비판하였다. 베트남 공동체의 원옥금 대표님은 단속반을 마주치고 여전히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존재를 지우는 나라가 아니라 존재가 존중받는 나라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의 넋을 기리는 동시에 국가가 져야할 책임을 짚어내며 앞으로 제2의, 제3의 뚜안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서울 출입국사무소 앞의 공기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 속엔 국가폭력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그러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공존했다. 물론 모든 집회가 안 그러겠냐만은, 그날따라 유독 그런 분위기가 크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이 연대를 만들어내고 조직하는 투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것 같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이의 영정 앞에 건네는 국화가 조금은 낯설기도 했지만, 뚜안을 기억하고 애도하겠다는 마음과 함께 다른 곳에서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또 다른 당신과 연결되겠다는 다짐으로 헌화했다.
“힘이 없는 나여도 동지들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짧은 행진을 마무리하고 난 이후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양한웅 위원장의 발언이다. 양한웅 동지는 스스로 힘이 없다 말하였지만, 소위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이 20년이 넘도록 이주민을 비인간화하며 나몰라라 할 때, 멈추지 않고서 자신과 동료의 권리 보장을 외쳐 온 이들이야말로 가장 강한 사람들이다. 매번 마주하는 죽음과 폭력 앞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면서도, 그 슬픔 속에서 다음을 이야기하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힘이 센 사람들이다. 그들의 강함에 사회적인 힘을 쥐어줄 수 있도록 함께 모이고 다 같이 싸우자. 차별과 혐오 세상을 바꾸고 모두가 사람답게, 안전하게 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평등 세상을 쟁취하자.
▲ 오는 12월 14일(일) 오후 2시 서울역에서 세계 이주노동자의날을 기념하는 전국이주노동자대회가 열린다. 뚜안 님을 추모하며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강제단속 추방 중단 요구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함께 만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