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노동절에 노동자가 없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대선을 앞둔 노동자의 날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이다. 노동자의 날이라니 어색하다. 달력에 적힌 '무역의 날', '정보통신의 날'처럼 '근로자의 날'이 더 익숙하다. 산업이나 기업체와 관련된 정부 지정 기념일이라는 그 느낌말이다. 실업, 고용, 노동, 일자리와 같은 말들은 정부 정책이나 언론을 통해 회자되고 심지어 민주노총, 한국노총도 익숙하지만 노동자, 노동자의 날, 노동자의 권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말이다. 그래서일까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이 발표하는 여러 노동 공약에서 각종 수치 나열과 알아듣기 어려운 법제도 개선 과제는 잔뜩 보이지만 노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131만 개 일자리를 만들지어니...

가장 유력한 후보인 문재인의 노동 공약은 공공부문 81만 개,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 개의 일자리를 임기 내에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다. 안철수는 IT 사업가답게 중소기업 창업 지원을 통한 민간 일자리 창출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방식은 사뭇 다르지만, 이들의 노동 공약은 결국 일자리 정책으로 수렴된다.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 정책은 언제나 정부 노동 정책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정책이 집행되는 방식은 일자리의 총량을 줄이거나 비정규직-파견을 비롯한 간접고용 형태를 늘려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실업률이 아닌 고용률 70% 달성을 정책 지표로 처음 제시했지만, 그 결과는 초단시간,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대거 늘리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일자리, 즉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은 극도로 위계화되고 분리되어 있다. 엄청난 재화를 투자하며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교육 경쟁은 인문계-특성화고(실업계)로 나뉘면서 고졸 노동자가 먼저 등장한다. 대학 서열화는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 직종 진입과 연결되고, 민간기업보다는 교사, 공무원 일자리가 최고 희망 직종이 된 지 오래다. 소수의 대기업-정규직 일자리를 제외하고는 고용 불안 속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이야기하는 일자리 부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일어나서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있어서 일자리가 없는 것인가? 대학을 10년 다니는 한이 있어도 의사가 되고 싶고, 수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이들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건,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230만여 명에 달하는 택배, 대리기사, 학습지 교사, 배달원, 판매사원이 모두 개인사업자인 데다가 30%에 육박하는 자영업자 비율을 더하면 안철수의 창업국가 공약은 이미 실현된 거나 다름없다.

이들은 언제나 그랬다. 노동자는 경제를 위해서 동원되어야 할 자원이었지, 주권자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그래서 노동정책은 노동자의 권리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노동자라는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동원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즉 일자리 정책으로 드러났다. 실업 대책만 일자리 정책이 아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파견노동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규율한 각종 법률도 모두 일자리 정책이다. 정부가 볼 때 높은 실업률과 저임금은 노동자-사람의 권리 침해 문제이기보다는 사회 불안과 연결될 수 있으므로 공안 문제가 된다.

노동 정책의 출발은 노동자의 권리에서

4월 14일 광화문 광장 옆 건물 광고탑에 6명의 노동자가 올랐다. 일하는 곳도, 투쟁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만, 해당 업체의 노동조합 탄압과 정부의 외면 속에서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식 고공 농성을 시작하게 됐다. 불법파견이니 직접고용하라는 법원 판결을 무시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는 현실, 노동조합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측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을 사용해도 부당노동 행위는커녕 그냥 회사 내부 일에 그친다. 결국 문제는 얼마나 촘촘한 법제도를 구비하느냐가 아니라, 이렇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고립되고 광고탑에 오르게 되기까지 무너진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새롭게 조직하고 세워낼 것인지다.

노동자를 고용해서 실제로 이윤을 취하는 기업은 뒤로 빠진 채, 하청업체를 내세워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문제가 생기면 업체를 폐업하거나 일감을 끊어버리는 현실이 바로 온갖 형태의 간접고용문제이고 원하청 수탈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권리를 요구하고 조직에 나서기도 어려울뿐더러 어렵사리 나서더라도 실제로 이윤을 누가 가져가느냐와 상관없이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대기업을 만나게 된다. 이게 제조업의 현실이라면 아예 고용 관계를 개인사업자 간의 계약관계로 대체하는 게 서비스업의 현실이다. 오랜 싸움으로 그나마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름은 얻게 되었지만, 정치권의 대책은 언제나 고용보험, 산재보험 적용과 같은 시혜성 정책에 그친다. 학습지 교사, 택배, 대리기사, 판매원, 배달원이기 때문에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한 게 아니다. 이들이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조직하고 모여서 싸우지 못하도록 개인사업자로 각자도생하게 정부와 자본이 만들어온 결과다.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은 임금, 노동시간을 비롯한 노동 조건의 절대적 수준 문제 그 이상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책임져야 할 의무 주체로서 기업(자본)은 보이지 않고, 이들에 의한 감시와 탄압 속에서 노동자는 없고 종업원, 개인사업자만 있는 일터의 현실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는 비정규직-파견 문제가 불거지면 관련 법률을 제정해 몇 가지 보호 조항과 차별 시정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남녀고용평등법, 고용 상 연령차별금지법과 같은 고용관계법도 마찬가지다. 고용형태, 성별, 나이로 인한 차별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능력, 조건까지도 제한한다는 것은 애초에 고려되지 않았다. 보장되어야 할 권리의 내용과 함께 이를 조직하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 주체-책임 주체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은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도록 하겠다는 문재인의 약속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동안 이들을 통해 돈을 벌어온 회사가 실질적인 고용 주체로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회사와 협상하고 싸울 수 있는 권리 주체로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나설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단체행동을 하고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집행 의지도 없는 법률만 잔뜩 만들고 근로감독관이 부족하다는 말만 반복하느니,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조직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는 것이다. 사측의 부당노동 행위로부터 노동조합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누구라도 자유롭게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조직할 수 있도록 노동자 단체행동, 쟁의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회사를 비판하고 동료들을 모으는 일이 해고를 감수하고 죽음을 각오하는 비장한 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죽지 않고 인간답게 일하기 위해서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건 비유가 아니다. 한 해에 2500여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는다. 한 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1만3500여 명에 이른다. 인간답게 일할 수 없는 일터의 문제가 이 비극적인 숫자의 일부를 채우고 있음에 틀림없다. 사측의 노조 탄압에 목숨을 끊은 갑을오토텍, 유성기업 노동자, 엘지유플러스 상담센터로 파견 갔다가 목숨을 끊은 현장 실습생,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의 관리자 역할이 고통이었던 tvN 프로듀서의 죽음이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일터의 현실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저임금이나 일의 고됨 이전에 노동자-사람으로서 권리를 말하고 상상하는 게 불가능한 일터, 이미 인간이 아닌 채로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이들이 있었고, 우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5월 1일이 유일한 법정 유급 휴일로만 생각되는 지금,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노동자의 날'이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도록 한 걸음 내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