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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파리 테러와 재난자본주의 세력

테러로부터 안전한 세계를 만드는 것은 지역 민중들의 몫

캐나다 출신의 사회운동가이자 저술가인 나오미 클라인의 저서 <쇼크 독트린(The Shock Doctrine)>에는 원래 ‘재난 자본주의의 부흥(the Rise of Disaster Capitalism)’이라는 부제가 따라 붙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재난 자본주의’란, 대중들이 9.11이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같은 엄청난 재난에 직면해서 겁에 질리고 당황해 있을 때 그 사회의 기득권 집단이 그런 불안 심리를 이용해 평소 자신들이 원하던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임으로써 이득을 얻는 걸 뜻하지요.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의 비극이 있은 이래, 한국의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테러방지법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밀어붙이는 상황을 보며 저는 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정말로 테러 방지법이 있으면 미래에 있을 지도 모를 테러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아니면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가 사그라지기 전에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안보기관의 권한을 대폭 확대해 권력 재창출의 기반을 튼튼히 다지고 싶은 걸까요? 저는 단언컨대 후자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스스로를 이른바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이하 IS)’라 칭하는 극단주의자들이 탄생하고 힘을 키워간 역사적 과정과 오늘날 중동 지역을 둘러싼 정세를 정부와 정보기관 내의 그 수많은 전문가들도 모르지 않을 진대, 그럼에도 테러방지법이 국민들을 안전하고 무사하게 지켜줄 거라는 순진한 환상에 사로잡히지는 않을 테니 말이죠.

물론 이런 ‘재난 자본주의’적 현상이 비단 한국에서만 대두되는 건 아닙니다. 당장 프랑스만 보더라도, 테러 당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국가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경 폐쇄와 모든 집회 및 대규모 모임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하자, 제1야당인 공화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1만 1천명 이상의 소위 급진주의 성향 무슬림들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강제로 가택연금 시키는 “야만적인 지하디스트들(jihadists)과의 전면전”을 요구했다지요. 그에 뒤질세라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당수는 “이 나라에서 증오를 설파하는” 이슬람 사원들과 단체들을 폐쇄하고 관련 외국인들(즉 무슬림과 난민들)을 당장 나라 밖으로 추방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다가오는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현재까지 당선 가능성 1,2위를 다투는 유력 후보들입니다. 즉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희생시키고 테러에 대한 자국민들의 공포와 혐오를 극대화해 자기 정치에 활용하는 쪽을 택한 거지요. 그러자 프랑스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중 하나였던 올랑드 대통령은 나라 밖 시리아에서 연일 대대적인 공습을 강화하고, 안에서는 70개 도시 수만 명 시민들의 항의 시위에도 아랑곳없이 국민들의 자유를 대폭 제한하는 비상사태를 석 달 더 연장하겠다는 방안으로 맞불을 놓습니다. ‘나도 저들 못지않게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거든’하는 걸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인 거죠.

터키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2002년부터 세 번의 선거에서 잇달아 압승을 거두며 장기집권해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AKP)은 2015년 6월 총선에서 좌파와 쿠르드 정치세력이 연합한 인민민주당(HDP)의 약진에 밀려 단독정부 구성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자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대신 11월에 다시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했는데, 때마침 파리 테러가 있기 한 달 전인 10월 10일에 수도 앙카라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일어나 102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부는 그 사건을 반대파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는 기회로 활용했고, 미래에 또 있을지 모를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안정된 정부가 필요하다며 유권자들에게 표를 몰아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불과 5개월 전보다 무려 59석이나 늘어난 집권당의 안정적인 과반수 확보였습니다.

BBC 홈페이지에 게시된 파리테러 현장 모습(http://www.bbc.com/news/world-europe-34818994)

▲ BBC 홈페이지에 게시된 파리테러 현장 모습(http://www.bbc.com/news/world-europe-34818994)


테러방지법이 테러를 막을 수 없는 이유

위의 두 나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테러가 일어나면 그걸 이용해 국민들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유무형의 이익을 취하려는 ‘재난 자본주의’ 세력이 꼭 고개를 쳐들곤 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부작용은 실로 심대하고 장기간 지속됩니다. 정보기관이 막대한 예산과 권한을 주무르면서 언제든 은행계좌를 뒤지고 SNS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생각과 양심을 자유로이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단지 무슬림이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해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받고 낙인찍혀도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한 채 나라 밖으로 쫓겨나는 사회, 그걸 보고도 모두가 침묵하는 사회는 그야말로 통제되고 닫힌 사회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화재를 예방한다고 소방관들이 집집마다 마음대로 들어가서 가스와 전기를 임의로 끊을 수 있게 하고 방화 전력이 의심되는 외국인들을 추방하거나 아예 입국하지 못하게 하자는 발상을 누군가 내놓는다면, 아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한국에서 테러방지법이 없어 테러를 못 막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 0.000001퍼센트도 안 되는 가능성 때문에 난민 전체를 되돌려 보내고 자기네 사회에서 나고 자란 무슬림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딱 그 수준인 것입니다.

설령 백 번, 아니 천 번 더 양보해서 국민들의 불안감을 고려해 테러방지법이나 그와 유사한 정책을 도입한다고 칩시다. 그럼 그것이 앞서 말한 엄청난 사회적 부작용을 감수할 만큼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그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만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작년 11월 미국 교통안전청(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이 실시한 테스트에 따르면, 무기와 폭발물을 포함한 각종 밀수품의 95%가 당국의 검색에 걸리지 않고 공항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작년 12월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 동쪽 샌 버나디노라는 마을에서 송년파티 도중 한 부부가 총기를 난사해 14명이 숨지고 21명이 다친 사건을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발표에 따르면, 가해자 부부는 스스로 IS의 이념을 추종해 범죄를 저지른 ‘자생적 테러리스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IS가 2014년 6월 이라크의 모술을 점령한 다음 그해 10월부터 직접적인 영토 확장 전술에서 “멀리 떨어진 적들”을 공격하는 전술로 전환한 뒤, 터키를 포함한 서구 세계에서 발생한 그들의 테러 25건 가운데 2014년 5월 벨기에 브뤼셀 박물관 테러를 제외한 나머지는 죄다 IS 지도부의 직접적인 지시가 아니라 그 조직을 추종하는 이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었습니다. 즉 9.11 이후 흔히 애국자법이라 불리는 ‘테러를 저지하고 막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단결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법(USA PATRIOT Act)’이라는 긴 이름의 법률을 제정하고 국토안보부를 신설하는 한편, 인권침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특정 지역 출신이나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에 막대한 인력과 자금을 쏟아부어온 미국 정부조차도 공항으로 몰래 들여오는 폭발물이나 유튜브에서 IS 동영상을 시청하며 그들에게 빠져든 사람들의 일탈행위까지는 막지 못했고, 또 막을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IS에 대한 공격이 답일까
그렇다면 백주대낮에 사람들을 참수하고 그 장면을 버젓이 온라인에 띄우는 테러조직 IS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결국 IS에 대한 군사공격을 강화하는 게 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014년 8월부터 미국과 그 연합군은 현재까지 이라크에서 약 6천회, 시리아에서 약 3천회, 모두 합쳐 9천 여 차례에 걸쳐 IS와 그들이 장악한 지역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공습을 쏟아 부었고 그 결과 1만 명에서 2만 5천 명의 IS대원과 지지자들을 살해했다고 최근 미 중앙정보국(CIA)이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최첨단 전투기가 한번 뜰 때마다 IS 대원 한 명이나 두 명을 제거한 셈인데, 그 비용 대비 효과(?)도 미미할뿐더러 희생자들 중 상당수가 민간인들이거나 민간인 희생자는 아예 집계조차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큽니다. 그에 비해 모두가 알다시피 IS는 이제 이라크와 시리아, 중동지역을 넘어 파리와 브뤼셀, 자카르타까지 위협할 정도로 날로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그럼 과연 IS로 대표되는 극단적 이슬람주의 테러세력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그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의 전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로 IS는 그 자체가 질병(즉 원인)이 아니라 어떤 질병에서 비롯된 증상(혹은 현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IS의 탄생과 성장을 논할 때, 역사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결정적 장면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2003년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략과 뒤이은 점령으로, 그에 관해서는 예전에 인권오름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해당 기사 보러가기) 다음으로 두 번째는 2011년 초부터 2,3년 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쓸었던 민중들의 대규모 항쟁(‘아랍의 봄’)의 좌절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서 급진 이슬람주의가 득세한 시기는 외세의 침략과 간섭, 그리고 외세를 등에 업은 반민중적 독재세력에 의한 불의와 불평등이 판을 치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제국주의 열강이 오토만 제국의 영토를 넘보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가 그랬고, 미국의 지원으로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1960년대 말이 그랬으며,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있었던 197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가 그렇습니다. 현실의 고통과 불의에서 벗어날 길 없는 민중들은 7세기 이슬람 정통 칼리프 시대의 순수하고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이슬람주의자들의 목소리에 귀가 솔깃할 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러나 아랍의 봄을 통해 민중들은 전례 없는 새로운 변화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 급진 이슬람주의나 알 카에다 류의 테러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와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이 곧 물거품으로 변하는 걸 그들은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어렵게 독재자를 몰아냈던 이집트에서 또 다른 친미 군부독재가 들어서고, 리비아는 서구의 군사개입으로 나라가 산산조각이 나고, 바레인에서는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의 친미독재 왕정들의 개입으로 민주화가 좌절되고, 이라크에서는 수니파 주민들의 평화적인 민주화 운동이 무력으로 짓밟히고, 시리아에서는 아사드 정권을 몰아내려는 미국 및 지역의 친미국가들과 그들로부터의 고립을 탈피하려는 이란에 의한 시아파 정권 지원으로 수년 째 유혈내전이 지속되는 현실을 지켜본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한번 품었던 희망이 좌절된 민중들 가운데 일부, 그 중에서도 특히나 현상유지(status quo)를 깨야할 절박함과 변화에 목마른 청년들 중 일부가 IS같은 급진 테러세력에게서 탈출구를 찾는 것은 어찌 보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중동 지역에서 IS를 비롯한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의 성장판을 닫아 버리는 동시에 그들의 테러로부터 세계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지역 민중들의 몫이고, 우리가 할 일은 그들 내에서 민주주의와 평등과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얻을 수 있게 더 이상의 개입과 편견과 차별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일 것입니다.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서구와 한국의 정치인들이 그동안 해오지 않았고 한사코 외면하려는 행동이 바로 이것입니다.

덧붙임

최재훈 님은 '경계를 너머'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