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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인권이야기] 미국의 군사공격은 이슬람국가(IS)를 도와주는 결과를 낳을 뿐

작년 이맘때쯤, 내가 활동하는 단체에서는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이 빚어낸 잔인한 현실들을 정리하는 보고서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 당시 우리의 걱정은 딱 하나, 침공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 지나고 미군 전투 병력도 이미 2년 전에 죄다 철수한 마당에 이런 생뚱맞은(?) 작업에 누가 관심이나 기울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최근 들어 보고서를 받아보고 싶다며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 물론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조직인 이슬람국가(IS)를 “분해하고 없애버린다(degrade and destroy)”는 명분을 들어 이라크와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한 뒤부터 일어난 변화였다. 그렇다고 새삼 우리가 공들여 만들어낸 결과물에 쏟아진 그러한 관심에 고마워해야 할까? 아니, 절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사막 한 가운데서 미국인 기자 두 명과 영국인 구호 활동가 한 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그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버젓이 온라인에 올리는 이슬람 국가(IS)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에 치를 떨었다고 말이다. 또한 무고한 시아파 주민들 수십 명을 줄지어 꿇어앉힌 채 일일이 뒷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에도 ‘알라 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영원히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고 분노를 토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경악과 혐오의 감정으로 지켜보는 이슬람국가(IS) 같은 잔인하고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세력들은 정확히 미영과 그 동맹국들의 이른바 ‘글로벌 테러와의 전쟁’이 낳은 괴물이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미국과 영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이라크라는 주권 국가를 침략해 초토화시킨 뒤에는 당연히 그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이 뒤따를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탄압받던 시아파와 쿠르드족들을 지배층으로 끌어올리는 대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수니파들을 무력화시키면 점령에 대한 저항이 자연스럽게 잦아들 것이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자 선택이었다. 그 결과,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거의 선택의 여지없이 집권 바트당에 가입해야 했던 수니파 주민들은 각종 공공기관과 군대, 정유시설, 발전소, 병원, 학교에서 일제히 해고돼 실업자 신세가 됐다.
[사진 설명] 2013년 3월 이라크 전쟁 10년을 맞아 한국의 평화운동단체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였다.

▲ [사진 설명] 2013년 3월 이라크 전쟁 10년을 맞아 한국의 평화운동단체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점령당국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도시의 중산층 엘리트에서 하루아침에 이등 시민으로 전락한 수니파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이 더욱 거세게 일어난 것이다. 그러자 당황한 미영 점령당국은 수니파들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이번엔 시아파들의 물리적인 폭력을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3만 5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1차 내전 기간 동안, 시아파 민병대들은 700만 바그다드 인구의 45%를 차지하던 수니파 주민들을 차례로 ‘청소’한 뒤 도시 외곽 지역으로 내몰거나 북쪽의 모술이나 서쪽의 팔루자 등지로 내쫓았다. 그 바람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동네에서 이웃으로 어울려 살던 시아파와 수니파 주민들은 이제 상대방 지역으로는 야채조차 사러갈 수 없을 만큼 갈라지고 적대적인 원수가 되어 버렸다.

2014년 1월과 6월, 흰색 토요타 픽업트럭을 탄 채 시리아에서 건너온 검은 복면의 이슬람국가 무장대원들이 천여 명이 채 되지 않는 병력으로 이라크 정부군 4개 사단 5만 명을 불과 며칠 만에 궤멸시키는 놀라운 군사적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바로 미국과 영국 정부가 자신들의 점령을 유지하기 위해 ‘종파간의 분열과 갈등’이라는 위험한 카드를 꺼내들었던 지난날의 과오가 자리 잡고 있다. 듣자 하니 석 달 전만 해도 중동 전체를 통틀어 7천 명 정도에 불과하던 이슬람국가 대원들의 수가 그 사이 최대 5만 명까지 늘었다고 하는데, 그 절대 다수가 지역의 수니파 청년들이란 게 그 방증이다. 오랜 내전에 지치고, 미영 점령군이 만들어놓은 지금의 종파 간 불균형 구도 아래서는 영원히 실업과 빈곤과 차별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젊은이들이 잔인한 테러리스트들에게 자신들의 유일한 생명과 희망을 내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지켜보는 수니파 부모들은 ‘옳다구나 우리 아들, 돈이나 많이 벌어 와라’하며 반기고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단언컨대, 비폭력 저항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까지 무참히 짓밟힌 수니파 주민들이 지금은 일시적으로 이슬람국가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 역시도 이슬람의 그 수많은 가르침 가운데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만 철석같이 신봉하는 근본주의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반기를 들게 될 날이 조만간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 이슬람국가의 지도부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래서이다. 이슬람국가가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서구 인질들을 차례로 예고 살해하는 장면을 계속 연출하는 이유가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자면, 그들은 지금 미국과 영국 정부를 향해 “드루와, 드루와(들어와, 들어와)”하고 도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미군과 그 동맹군들이 이라크와 시리아 상공에서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붓게 하는 것, 그 바람에 가족과 친지들이 목숨을 잃는 장면을 지켜본 수니파 주민들이 분노와 복수의 감정으로 인해 더욱더 이슬람국가에게 의지하게 하는 것, 그 결과 지역의 광활한 영토에 이슬람 칼리프 체제를 수립하겠다는 자신들의 공언을 현실화시키는 것이 이슬람국가 지도부의 전략이요, 목표인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미국과 영국 정부는 그들의 뱀 같은 의도에 점점 말려들어가고 있다. 거기에 한국 정부도 동맹국으로서 ‘인도적인’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분명히 말하건대, 미국과 영국, 한국 같은 외세가 개입해서 이슬람국가를 완전히 궤멸시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라크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시리아는 시리아 국민들에게 맡겨두라. 외세가 패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부당한 내정간섭을 중단한다면, 두 나라 국민들 스스로가 먼저 나서서 잔인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저 언저리로 몰아내 “분해하고 없애버릴”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와 시리아 국민들이 그 정도의 현명함과 분별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부인하는 한, 비극은 영원히 되풀이된다.
덧붙임

최재훈 님은 '경계를넘어' 회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