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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경의 인권이야기] 최저임금 제도 개악에 맞서 싸우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

물가인상률, 경제성장률로 자동 결정되는 최저임금 인상률?

지난 10월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대통령궁 앞에서 35,000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시위를 경찰은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강제해산했다. 평화로운 집회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며 끝까지 저항한 노동자들을 경찰은 마구잡이로 경찰차 안에 밀어 넣으며 연행했다.

최저임금결정 “협상은 없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최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최저임금 제도 개악안을 철회하고 적정생계비를 반영하여 최저임금을 22%, 즉 500,000루피아(약 4만원)를 인상하라는 것이었다. 정부의 개악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인도네시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역별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해왔다. 노동조합, 정부, 사용자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적정생계비를 계측하여 다음 해부터 적용될 인상률을 각 위원들이 제출하고 이를 놓고 협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합의한 인상률을 바탕으로 각 주정부가 인상률을 최종 공표한다. 그런데 지난 10월 15일 정부가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새로운 제도는 이러한 협상 과정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즉, 매년 물가인상률과 경제성장률을 합하여 최저임금 인상률이 자동적으로 결정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매년 적정생계비(KHL)를 갱신하고 이를 반영하여 최저임금 인상률 권고치를 도출하던 지역별 최저임금위원회의 역할은 5년에 한번씩 적정생계비를 갱신하는 것으로 축소된다. 적정생계비를 갱신했는데 최저임금이 이에 못미치는 경우에는 이후 4년동안 자동인상에 더하여 추가로 최저임금을 조정하게 된다. 정부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를 “해마다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지나치게 큰 입장 차이를 드러내며 갈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새로운 제도는 매년 노동자들에게는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하고 사용자들은 이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사진: 인도네시아 노동자 총파업 집회 모습

▲ 사진: 인도네시아 노동자 총파업 집회 모습


노동조합 영향력은 배제하고 최저임금 인상은 억제하고

노동조합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개악안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이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없다면 전국적인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노동조합들이 가장 크게 비판하는 부분은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노동자들이 입장을 내고 개입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데 정부가 이를 원천적으로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노총(KSPI) 사이드 익발(Said Iqbal) 위원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심지어 비민주적 수하르토 정권 시절에도 정부, 기업, 노동조합이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과정에 참여해왔다. 현 정부는 민주 정부라면서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에 대한 교섭권을 박탈하려고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들이 생활을 유지하는데 실제로 필요한 생계비가 최저임금 결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이는 물가인상률과 경제인상률만으로는 절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익발 위원장의 설명이다. 역설적이게도 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2년 자카르타에서 노동조합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여 44%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승인한 주지사였다.

적정생계비에 한참 밑도는 최저임금

최근 몇 년간 인도네시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져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2년에는 주요 3개 노총이 연합하여 조직한 총파업에 200만 명이 참여하여 21개 지역 80개 공단의 가동을 실제로 멈추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무려 44%의 최저임금 인상을 이끌어냈고 이러한 파업은 2013년, 2014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노동조합이 이렇게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동조합간 공동행동’ 기운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은 비교적 낮은 수준이다. 2015년 적용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자카르타 지역은 270만루피아(200 미달러 상당)고, 가장 낮은 이스트 누사 텡가라 지역은 125만 루피아(92 미달러 상당)다. 자카르타 최저임금은 말레이시아(209달러)나 태국(254달러)에 못 미친다.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높게는 44%, 낮게는 10.6%였는데 정부가 도입하려는 공식에 따르면 인상률이 10% 미만으로 결정되게 된다.
국제노총 샤란 바로우 사무총장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개악안은 ILO 협약 131호 위반이자 노동권에 대한 근본적 공격이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을 악화하고 경제적 수요를 압박할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저임금 제도 개악안을 철회하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
덧붙임

류미경 님은 민주노총 국제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