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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지역 일자리 문제, 노동기본권의 확장이 해법이다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의 문제점

‘5월 광주가 민주주의의 촛불이 됐듯이 광주형 일자리는 경제 민주주의의 불씨가 될 것’

올해 1월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2014년부터 광주시가 추진해 온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현대차와 투자협약을 체결해 본궤도에 오르자 정부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 확산을 공식화했다. 10월에는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한국 GM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지역경제가 휘청거렸던 군산에서도 ‘군산형 일자리 협약식’이 대통령이 참석해 성대하게 열렸다. 그런데 민주노총에서는 이러한 지역 일자리 모델이 노동기본권을 제약한다며 비판한다. 경제 민주주의의 불씨와 노동기본권 제약이라니,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찬사와 비판을 함께 받고 있다.

상생형 일자리니 노동자가 양보해라?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는 어느 정부에서나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일자리 정책은 취업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일자리 사업을 한 축으로 하고, 기업들의 고용과 투자 촉진을 위한 각종 지원책이 다른 한 축을 이룬다. 문재인 정부의 ‘상생형 지역 일자리’도 크게는 기업들의 고용과 투자 촉진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책이다. 다만 차이점은 그 지원이 크게 확대되었고 정부와 지자체가 ‘노사관계’에 노사민정 협의체라는 틀로 적극 개입하겠다는 점이다.

정부는 상생을 표방한 만큼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사민정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런데 기업은 일정 규모 이상의 고용투자 계획을 집행하기만 하면 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지자체는 투자비 일부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부동산 장기임대 및 임대료율을 인하하고 각종 지방세 감면 조치도 시행한다. 중앙정부에서도 지방투자보조금 보조율을 인상해 지원하고 법인세 감면과 같은 세제 지원을 추가로 한다. 과거에 비해 대폭 늘어난 지원금 집행을 위해 정부는 ‘국유재산특례제한법’, ‘조세특례제한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더구나 현재 진행되는 지역형 일자리 대부분이 전기차 생산과 관련된 분야인 만큼 차세대 신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형 일자리의 경우엔 아예 광주시가 500여억 원을 출자해 ‘광주글로벌모터스’의 1대 주주로 나섰다.

노동자의 역할로 요구되는 건 적정 임금과 노동시간이라는 노동조건에 합의하고 협력적 노사관계를 위해 단체행동을 지양하며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직업훈련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를 강제하기 위해 개별 노사관계가 아니라 ‘상생협의회’라는 노사민정 차원의 협의기구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협의토록 했다. 광주에서는 완성차 누적생산 35만대 달성 때까지, 군산에서는 5년 동안 상생협의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제반 노동조건에 대한 사항을 정부와 지자체가 개입해 사실상 임금억제에 나선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기본권인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을 제약한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정부는 노동기본권을 상생을 위해 노동자가 양보해야 할 권리라고 본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임금인상 이기주의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고, 그 결과 중소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격차가 커진다고 한다. 지역형 일자리에 투자하는 기업, 협력업체 소속으로 일하게 될 하청 노동자와 상생하기 위해서 노동기본권이 제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평등한 노동세계 문제의 원인이 정말 노동조합에 있을까? 그래서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게 경제 민주주의의 불씨가 된다고 했던 걸까?

‘일자리 문제’, 정말 무엇이 문제인가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의 고용형태 조사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크게 늘어 화제가 됐다. 그런데 비정규직이 예년에 비해 90만 명 정도 증가했다고 하는데도 전체임금노동자 중 36%에 불과하고 정규직은 64%나 된다. 이쯤 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안정된 직장이라고 하는 정규직 비율이 64%나 된다고?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규직 직장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 직접 고용되어 임금이나 사내 복지가 잘되어 있는 직장이다. 여기에 정부가 생각하는 ‘이기적’인 노동조합까지 있는 일자리는 고작 7.6%에 불과하다. 64%에 분류되는 정규직 일자리의 대부분은 회사 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해고되고 급여수준도 그리 높지 않으며, 변변한 사내 복지랄 것도 없고 노동조합은 상상도 못하는 중소영세업체들이다.

대기업 정규직이면서 노조가 있는 일자리 7.6%에 공무원 고용율 10%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80%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고용안정이나 급여, 복지수준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다양한 업종이나 직무로 나뉘어 있고,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단시간 노동, 프리랜서 노동도 늘어나고 있지만 적어도 제조업에선 그렇다. 상생형 지역 일자리도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가 아니라 80%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제조업 일자리다. LG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소재 생산 공장을 짓는 구미를 제외하고 현재 진행되는 지역형 일자리에서 대기업이 직접 고용하는 곳은 없다. 독립법인이나 위탁생산업체를 세우는 대기업의 간접고용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적정임금을 받는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라고 자랑할 것까지는 없는 일자리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자체가 적정임금을 받는 괜찮은 일자리라고 홍보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자리 문제는 일자리 자체가 아예 없는 실업문제가 아닌 취업과 실업을 오가는 불안정 노동의 문제다. 특히 복지제도가 빈약한 한국에서 일을 아예 하지 않는 완전실업은 일부 부유층이나 취업, 진학준비에 매진할 수 있는 넉넉한 집안 출신에게나 허락된 특권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역형 일자리 역시 대다수 노동자들이 겪는 불안정 노동의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노동과 삶의 불안정에 맞설 유일한 권리인 노동기본권마저 정부와 지자체에 의해 제약된다면 오히려 문제는 더 심각하다.

80%의 대다수 노동자들이 겪는 불안정 노동의 문제는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직접고용방식이 아닌 이상, 적정임금과 정규직이라는 형태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이미 그 정도의 임금과 고용형태는 중소제조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게 아니다. 지역형 일자리 역시 중소제조업 노동자가 겪는 불안정 노동의 조건에서 출발해야 했다면, 정부와 지자체가 내놔야 했던 새로운 일자리 모델은 이에 대한 해법이어야 했다. 노동조합에 문제의 원인을 돌리고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기업의 뻔한 논리에 수백억 원을 지원하면서 힘을 실어주는 건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상생형 지역 일자리 모델’에 그 실마리는 있었다.

노동기본권의 확장이야말로 유일한 해법

수출제조대기업 중심으로 짜인 산업구조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는 ‘광주글로벌모터스’가 현대차의 위탁생산업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2021년부터 ‘광주글로벌모터스’가 1천여 명을 고용하고 공장이 자리할 빛그린산업단지에 하청업체들이 들어서면 총 1만 명이 일하게 된다. 현대차-광주글로벌모터스-하청업체로 이어지는 원하청 연쇄고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일감을 발주하는 원청 대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정부도 지역형 일자리를 추진하면서 원하청 관계 개선을 주요한 의제로 제기했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구체적인 방법은 없다. 어디까지나 원청의 상생 의지에 달려있다.

제조업에서 일자리 격차는 바로 원하청의 기업 격차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빛그린산단 1만 명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시간을 현대차가 좌우하게 되지만, 노동자들이 현대차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는 없다. 개별 하청업체가 해당 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여지가 별로 없다면,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청을 상대로 교섭하는 것이다. 원청의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업체별로 나뉜 고용관계가 아닌 산업단지 노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단결해 단체행동을 하고 현대차와 단체교섭을 하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 추진 초기에는 산단 차원의 공동교섭과 개별 기업별로 보장되기 어려운 복지혜택을 지자체에서 산단 차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지자체의 불투명한 복지지원은 임금을 줄이기 위한 방편에 그치고 노동기본권이 산단 차원으로 확대되기는커녕 상생협의회가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약하게 됐다. 군산은 협약에 참여한 4개 업체가 공동교섭추진과 공동복지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5년 동안 상생협의회의 조정을 따르기로 한 것을 보면 노동기본권의 확대보다는 간섭과 제약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원청, 하청업체 소속여부에 따라, 하청도 1차 하청인지 2차 하청인지에 따라 노동조건의 격차가 촘촘히 나뉜 제조업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정부와 지자체가 세금 수백억 원을 들여서 해야 했던 일은 노동기본권을 일자리가 조성되는 산업단지 차원으로 확장하는 일이었다.

노동조건을 넘어, 노동자 권리의 증대로

일자리 문제가 한국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면서 정부와 지자체도 고용의 질에 신경 쓰겠다며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그 결과물로 ‘상생형 지역 일자리’를 내놨다. 적정임금과 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좋은 일자리’의 척도가 된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건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우리가 놓치게 되는 게 있다. 바로 기업별로 나뉜 노동조건을 넘어서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함께 행동하며 그 힘으로, 이윤을 쌓고 있는 자본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어찌 보면 노동조건은 이러한 역량과 능력이 발휘된 결과에 불과하다.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역량과 능력을 사회가 지지하고 키워야 한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정부와 각 지자체들은 수백억 원을 들여서 일자리 수보다 더 중요한 인권 원칙을 짓밟았고 이를 새로운 모델이라고 홍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