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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경의 인권이야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노동장, 노동자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인가?

지난 10월 5일, 미국과 일본 등 태평양 인근 12개 나라가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 타결됐다. 체결국들의 경제 규모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TPP 타결 소식이 전파되자마자 정부는 ‘적극 참여’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시민단체는 물론 여러 국제조직들은 TPP가 결국 초국적 자본의 이익만 극대화하는 협정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전 세계 162개국 328개 노총을 대표하는 국제노총(ITUC)는 10월 6일 TPP 타결을 비판하며 이 협정이 ‘기업의 탐욕을 위한 레시피’라고 규정했다.

기업의 탐욕을 위한 레시피, TPP

‘자유무역’을 촉진하는 협정이라고 하지만, TPP는 사실상 무역의 범위를 넘어 초국적 기업의 국경을 넘나드는 이윤 추구에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관세철폐 외에도 지적재산권의 철저한 보호, 금융자유화, 인터넷 통제,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협정은 그동안 철저한 ‘비밀주의’ 원칙 아래 논의되어 왔다.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는 협상 과정에 참여는 물론 내용조차도 접근할 수 없었던 반면, 미국을 근거지로 하는 초국적 기업들은 '협상자문단'이라는 명목으로 협상의 장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반영해왔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자유무역협정에서 주권을 해친다고 비판받아온 ‘투자자 국가제소 제도 (ISDS)’를 포함하고 있다.


‘노동장’은 노동권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까?

협상 타결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온 미국 정부는 TPP의 노동장이 매우 강력하여 체결국 노동자들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전해왔다. 전체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미 무역대표부의 협정문 요약에 따르면, TPP 체결국들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핵심 노동기준(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 보장, 아동노동 금지, 강제노동 철폐, 고용상 차별 금지)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산업안전보건, 노동시간, 최저임금에 관한 기준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그러나 어떤 수준을 보장해야 하는지에 관한 규정은 없다).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한 상품 수출을 자제해야 한다(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자제’를 강제할 것인지는 규정이 없다). 이러한 노동장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국가의 정부를 상대로 문제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 문제제기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제재(벌금)도 가해진다. 그렇다면 협정 체결국마다 노동권 보장수준이 불균등하여 노동자들을 ‘밑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내모는 상황에서 이러한 노동장이 과연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까?

기업은 국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으나 노동자는 불가능

한미 FTA를 비롯하여 최근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이러한 노동장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권 침해 또는 국내노동법 위반으로 분쟁해결 시스템이 작동한 사례는 단 한 건이다. 바로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DR)에 따라 미국 정부가 과테말라 정부를 분쟁 패널에 회부한 사례다. 이렇듯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된 노동장은 실제로는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노동장 위반으로 실제 분쟁절차에 들어가려면 체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장의 효과성은 체결국 정부의 ‘의지’에 전적으로 좌우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노동권 침해 사안을 제기할 수 없다. TPP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투자자-국자 제소 제도’가 개별 기업이 정부 정책으로 인해 침해된/침해될 이익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수출기업의 이익에 저당 잡힌 과테말라 노동자들의 노동권

한국기업 또는 한국계 기업이 75%를 차지하고 있는 과테말라 섬유봉제업 노동자들은 고용주의 상습적인 법위반(임금체불, 잔업수당 미지급, 장시간노동 강요, 사회보장 기여금 갈취, 위장폐업-야반도주)에 노출된 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창출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의류봉제 수출기업들은 ‘10년간 법인세 면제’ 등 각종 혜택을 누리면서 법위반에 대해 사실상 ‘면책’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CAFTA-DR 과테말라 노동권 분쟁은 제기된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다. 과테말라 노동조합들은 올해가 가기 전 CAFTA 노동권 분쟁 패널에 회부된 과테말라 정부의 국제노동기준 불이행 건에 대해 결론이 나길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테말라 노동조합은 이것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CAFTA 분쟁 패널에서 과테말라 정부의 국제노동기준 협정 위반 사실이 인정되면 정부는 벌금을 물게 된다. 그러나 법 위반 당사자인 기업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TPP 노동장이 과연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멈출 것인가?
덧붙임

류미경 님은 민주노총 국제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