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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그네들이 폭파하자는 여성부는 어떤 여성부인가?

지난 3월 31일 여성가족부 건물에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광주에 사는 박 씨라는 한 시민이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인터넷 게시판에서 여성가족부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글을 봤다고 신고해 군과 경찰 200여 명이 여성가족부 건물에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언론보도에 따르면 신고한 지 20분 후에 서울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반 등 경찰 120여 명, 육군 위험성폭발물제거반 20여 명, 소방관 40여 명 등 200명이 출동해 건물을 폐쇄하고 수색작업을 벌였다 한다. 수색 결과 아무런 폭발물을 발견할 수 없었고, 신고한 박 씨가 신고 내용 자체가 허위라고 자백해 사건은 일단락 됐다.

[사진 설명] 지난 3월 31일 여성가족부에 폭팔물이 설치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여 건물내 출입을 차단하고 있다.

▲ [사진 설명] 지난 3월 31일 여성가족부에 폭팔물이 설치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여 건물내 출입을 차단하고 있다.


허위 신고한 박 씨는 수년간 지속되어온 ‘여성부 폭파’ 농담거리를 웹상에만 남겨두기 안타까웠나 보다(* 여성가족부를 글의 내용에 맞게 여성부로 표기하겠다). 어쩌면 여성부 폭파를 웹상에만 끄적거리거나, 상상하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현실감 있는 오락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영웅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고.

여성부를 폭파하겠다는 사람들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여성부 폭파’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여성부 조롱 글・카툰 등은 물론 ‘여성부 폭파하러 갈 인원 모집’ ‘여성부 폭파 방법’ ‘여성부 폭파 게임’ ‘여성부 건물 폭파 이미지’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이런 콘텐츠를 비단 웹에서만 접하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는 웹에서처럼 ‘폭파’라는 극단적 표현은 쓰지 않지만 ‘여성부를 없애야 한다’는 표현은 어렵지 않게 듣게 된다.

필자도 1년 전 우연히 들른 분식집에서 사장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여성부에 대한 ‘신념’을 피력하는 것을 원치 않게 들은 적이 있다. 사장은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세 명이 앉아있는 곳에 가서 자리를 차지하고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여성부는 없어져야 된다. 남자들 공공의 적이지 않냐, 여성부!”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내용을 현실에서 접하게 되니 놀라서 그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잠시 시선을 의식했으나 곧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런 내용의 인터넷 게시물이나 사람들의 말을 접할 때면 궁금증이 인다. 도대체 이들이 생각하는 여성부의 정체는 뭐지? 비난하는 여성부라는 대상 속에 중앙행정기관으로서의 여성부가 실재하기는 하는 걸까?

여성부 아닌 여성부 비난

여성부에 대한 맹목적 비난을 쏟아내는 일부 네티즌의 글을 읽으면 여성부는 여성우월주의자들이 모인 집단 혹은 남성의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여성 이기주의자 집단, 각 층위의 페미니스트 목소리를 대변하는 집단쯤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여성부가 과연 그러한가?

여성부가 설립된 시기는 2001년인데 1999년에 폐지된 군가산점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부 해체’를 이야기한다.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을 내린 곳은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여성부가 아니라 헌법재판소다. 그런데 이를 두고 ‘헌법재판소 해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3년 전, 온오프라인을 시끌하게 했던 셧다운제 음악 심의 제도 문제도 그렇다. 정부의 각 중앙행정부서인 고용노동부, 교육부, 환경부 등에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정책을 내놓았을 경우 사람들은 보통 행정의 핵심적 위치에 있는 대통령을 비난하곤 한다. 각 부서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당 부서를 해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비판 혹은 비난하며 의견을 피력하거나 불만을 표출한다.

하지만 여성부에 관련한 일은 유독 예외가 된다. 셧다운제와 과도한 음악 심의 제도 관련한 문제에서도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이명박 정부에 돌리지 않았다. 문제에 대한 책임을 여성부에 돌리며 여성부에 대한 조롱과 비난을 퍼부었다. 여성부 폭파론은 더욱 기승을 부렸고, 여성부와 관련이 없는 풍문들까지 동원돼 여성부 비난은 극에 달했다.

여성부와 관련된 유명한 풍문에는 조리퐁 판매금지, 테트리스 이용 반대, 소나타 3 불매 운동, 초코송이 불매 운동 등이 있다. 조리퐁은 여성 성기 모양을 연상시키고, 테트리스와 소나타 3의 외관, 초코송이가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 하여 여성부가 판매 금지 및 불매 운동을 벌였다는 낭설이다. 이는 수년간 지속된 풍문으로 뉴스 기사만 검색해 봐도 근거 없는 사실임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사실 확인 없이 여성부에 대한 막연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이와 같은 악의적 루머를 사용하고 있다.

여성부와 페미니스트를 등위에 놓고, 여성부 꼴페미×들 하는 네티즌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여성부가 설립될 당시 여성단체 장을 맡았던 사람들이 여성부장관 직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한 여성단체 장이 다양한 층위의 페미니즘 스펙트럼을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여성단체 출신 장관이 내놓은 정책이 여성계가 주장하는 대표적인 의견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여성부가 정부 중앙행정기관이라는 것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그 정권에 맞는 인사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여성부 인사들만 정권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이 비난하는 것은 여성부가 아니다

이쯤 되면 또 다른 궁금증이 인다. 여성부에 대한 막연한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이 혐오하는 것은 과연 여성부인가, 하는. 어떤 이는 여성부가 설립된 이후로 남성들이 역차별 당하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겼다고 한다. 이는 여성들이 양성이 아닌 여성위주의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설립하여 이를 사회 전반에 작동하게 하였으며, 그 결과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논리일 텐데, 정말 그러한가?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2012년 남성대비 여성 임금 비율은 64.4%다. 프랑스 86%, 미국 81%, 일본 71%에 비하면 월등히 낮은 수치다. 재미있는 사실은 분석대상을 500대 기업으로 할 때 그 결과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경향신문이 분석한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500대 기업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남성대비 여성임금 비율은 56.4%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분석 대상을 국내500대 기업으로 높였음에도 남성대비 여성임금 비율이 줄어드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지난해 3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발표한 OECD 국가들의 유리천장 지수(Glass Ceiling Index)에서도 한국은 당당히 꼴찌를 차지한 바 있다. 유리천장은 여성이 고위직으로 올라가는데 장애가 되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뜻하는 것으로, 해당 매체의 분석표에서는 지수가 낮을수록 유리천장이 더욱 공고함을 나타냈다. 한국은 100점 만점 중 15점을 얻어 26개국 중 꼴찌였으며, 35점을 얻은 25위 일본과도 큰 격차를 보였다.

성범죄의 경우에도 경찰청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발생건수가 하락할 줄 모르고 증가만 하고 있다(2008년 1만5970건, 2009년 1만7242건, 2010년 2만375건, 2011년 2만1912건, 2012년 22933). 피해자의 96%는 여성이며, 남성은 4%만을 차지한다.

한국이 남성중심 사회라는 증거들은 이외에도 얼마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부 남성들이 말하는 역차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인터넷에 떠도는 역차별 사례를 살펴보니 여성전용 주차장이나 여성 전용 흡연구역 등등의 공간 할당, 여성대비 남성에게 과도하게 부과되는 데이트 비용, 여성할당제, 생리 휴가 등이 눈에 띈다.

상업 공간에서 여성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는 것은 주 고객인 여성 소비자의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함이다. 지하철 여성전용 칸 등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여성 전용 시스템은 역차별이 아닌,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성차별적 시선을 기반에 깔고 있기 때문에 여성계도 달가워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여성할당제나 생리 휴가 등의 제도도 남성에게 권력이 편향돼 여성을 고려하지 않는, 여성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건강한 방향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제안되는 것들이다. 젠더에 의한 권력 불균형 문제가 해소되면 없어져야 할 것들이다. 가만히 보면 정치권, 방송사, 학교, 기업 등이 추진하는 지역 할당제, 장애인할당제 등 다양한 할당제가 있는데 유독 여성 할당제에 과격한 반응을 보인다. 여성 할당제가 우스울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양성간의 권력이 균등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앞에서 말했듯 여성부는 정부의 중앙행정기관이다. 해당 정권에 맞게 관련 정책을 펼치는 부처이다. 여성부가 정권의 정책 이념과 별도로 여성 우월주의적인 정책을 생산하고 설파할리는 만무하다. 또한 여성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존폐설이 제기될 정도로 정부 각 부처 중에서도 최약체에 해당한다. 이런 부처가 어떻게 전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부 네티즌의 의견을 살펴보면 여성부가 사회의 균형을 깨는 악의 축으로 간주하는 듯한데, 여성부는 그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여성부는 정부의 행정부처로서 해당 정권의 정책을 시행하는 기관인 것이다. 게다가 여성부 설립 하나로 여성들 전체의 의식 수준이 바뀔 정도로 여성이라는 존재는 ‘무뇌적’이고 비독립적이며,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현대인들이 급격한 사회변화와 과학의 발달로 야기된 전통적 가치의 쇠퇴, 환원주의의 경향성, 금전만능주의의 만연으로 개인의 가치를 찾는 게 어려워지고 실존적 공허에 놓이기 쉽다고 이야기한다. 제도적으로 계급사회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제적 수준에 따라 계급화되는 사회에서 적응하면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찾는 일까지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절대적이고 명백한 어떤 것에 더 이상 기댈 수 없다. 처한 공간에 따라 다양한 인격을 갈아 끼워야 하고, 그럼에도 욕망하는 것들을 성취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지속적으로 놓임으로써 내면에 분노를 축적하게 된다.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기 위해 이를 해소할 분노의 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 분노의 대상은 권력이 낮은 계급으로 향하기 쉽다.

과열된 경쟁사회에서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길 바라지만, 민주주의 개념 확대로 인해 드러내놓고 차별 개념을 이용해 자원 확보를 꾀하기는 어렵다. 직접적이지 않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차별을 이용해 좀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오랜 역사동안 이어져 온 젠더를 바탕으로 한 성차별은 남성사회가 현 시스템에서 포기할 수 없는, 노력을 들이지 않고 생득적으로 취할 수 있어 취득이 어렵지 않은 자원인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에게서 보이는 무조건적인 여성부 비난은 성차별을 이용해 여성에 비해 권력을 더 확보하려는 욕망을 우회적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덧붙임

코린 님은 언니네트워크 운영지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