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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진짜’ 사소하지 않은 문제

진짜 여자다운 여자여야 진짜 국민?

“미국 대선은 거의 끝났다는 분위기야”라는 한 친구의 말에 놀라 부랴부랴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미트 롬니가 ‘스스로에게 엿을 먹였다’는 힌트에 찾아본 기사의 내용은 롬니가 한 비공개 기부자 모임에서 한 발언이 뒤늦게 동영상으로 공개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영상을 보니 한국의 소위 ‘정책전문가’라는 사람들과 대다수 언론들이 총선/대선의 핵심정책인 복지에 대해 핏대를 세우며 ‘퍼주기 복지’,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외칠 때만큼이나, 기가 찬다. (물론 요즘은 너도나도 복지를 외친다. 좋아 보이는 건 다 가지고 싶은 마음인가?)

롬니의 말실수?

'(오바마 정권을 지지하는) 47%의 사람들은 정부에 의존하면서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건강, 식품, 주거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정부가 이들을 돌볼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하지만 세금은 내지 않는 사람들’, ‘자신은 이러한 사람들이 개별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그들 스스로의 삶을 돌봐야만 한다는 것을 납득시킬 생각이 없으며….


사실 롬니의 발언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한국을 지배하는 논리와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에 씁쓸했지만, 오히려 한국 대선 후보들의 행보를 떠올려봤을 때 이런 발언이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만큼 ‘파급력’을 가진다는 사실이 솔직한 심정으로 부럽기까지 할 정도다. (‘이 정도로 대선 승패가 갈린단 말이야? 여기는 더 심한 것도 널리고 널렸는데!’) 물론 롬니가 사과하지 않은 것은 황당하지만, 그의 책 <위대한 미국은 사과하지 않는다>(No Apology: The Cause for American Greatness) 제목을 떠올려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가보다.

하지만 나를 더 황당하게 한 것은 이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였는데, '잇따른 롬니의 말실수’, ‘롬니, 저소득층 폄하 말실수 폭로 파문’, ‘롬니 또 실언…’과 같은 제목들이 오히려 내 화를 돋우었다. 롬니의 발언은 실수, ‘품위’의 문제일까? ‘대한민국 남자, 문재인’ PI에 대한 사람들의 남성성/국가주의 비판은 문재인에 대한 ‘걱정’때문이었나? ‘5·16은 구국의 결단’ 발언, 인혁당 사건에 대한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의 발표에 대해 ‘모함’이라고 한 것은 박근혜의 ‘소신’인가? ‘우리들 중 이 자리에 남아 있을 국회의원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라는 이재오의 강용석에 대한 두둔은 ‘양심’ 선언인가?

이쯤해서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페미니스트는 아닌지 자기검열이 작동하지만, 이는 생각만큼 사소한 일이 아니다. 글을 쓰면서 권인숙의 2000년도 글 ‘나는 왜 사소한 일에만 분노하는가’를 다시 읽었다. 롬니가 말한 47%의 사람들이 실제로는 오바마의 지지층 뿐 아니라 롬니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는 계층과 지역의 사람들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명확하게 겨냥하고자 한 대상은 복지정책이든 시민권 인정과 같은 법률제정이든 국가 시스템을 통해 사회적 지지망이 필요한 위치의 사람들이다. 오바마를 지지하기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저런 말이 많지만 ‘자신을 피해자라고 믿는 사람들’이라는 발언에서 낙태를 시술하거나 낙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들에게 재정지원을 금지했던 정책을 해제할 때,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며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위한 기금을 마련했을 때, 노인/청소년 불법체류자에 대한 추방을 유예하는 정책을 발표했을 때- 환호했을 사람들을 떠올린 건 나뿐이었을까? 그 사람들을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롬니가 원하는 ‘강한 미국’의 국가 구성원, 시민의 자격을 구성하는 경계와 범주 그 자체를 질문하게 하는 권력과 배제의 문제를, 미국‘씩이나’ 되는 국가의 대통령 후보의 정치철학 수준을 실수로 받아 적는 수준에도 한숨이 나온다.

‘진짜 여자다운 여자’, 그래서 ‘진짜 국민’?

‘대통령은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오바마의 반격은 현실이 아닌데다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지만, 특정한 삶들이 어떻게 결속되거나 추방되면서 ‘국민/시민’의 범주가 구성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확장, 재범주화 하는 논쟁에 헌신하는 것은 정치지도자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위의 이유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정치적 입장에 반대하지만, 최근 박근혜의 ‘어떤’ 여성 정체성을 근거로 그를 비판하는 움직임은 매우 절망스럽다.

지난 달 갤럽의 설문조사에서 박근혜의 여성 유권자 지지율이 안철수, 문재인 두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높게 나온 상황, 동시에 여성/주의자들에게 “그래서(?) 박근혜를 지지하시겠네요?” 혹은 “당대 최고 지위에 있는 여성 모델로서 박근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왜 박근혜가 여성을 대표하는 여성정치인인가’라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비판에 나는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여성학자 전희경의 지적처럼 “젠더, 학력(학벌), 계급, 장애여부, 성정체성, 결혼상태, 국적, 지역 등 다양한 권력관계가 교차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생물학적 여성의 이해관계 총합이 대표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순진(하고 게으르기까지)”하다. 이러한 입장은 당연히 그동안 여성들이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인식이자 정치의식이다. 그런데 "2030 여성 세대가 박 후보를 안 좋아하는 걸 보면, 잘난 여성을 질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른바 박근혜의 측근은 누굴까? 박근혜 후보에 대한 여성들의 각기 다른 입장은 그것이 지지여도 비판이어도 ‘정치의식 없음’의 징표로 쉽게 미끄러진다.

문제는 여성정치인 박근혜를 지지할 수 없는 근거,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여성/시민됨’이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구축되는가이다. 박근혜 후보에게 여성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를 물을 때 흔히 나오는 주제는 ‘결혼-임신-출산-양육’이라는 지배적인 여성의 생애주기 각본과 역할 수행 여부이다. 이 논리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다. 출산장려운동을 하는 ‘부부학교’라는 한 시민단체의 대표는 “저출산 문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자신이 결혼부터 먼저 하고 애를 하나라도 낳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근혜의 정치적 포지션을 비판하는 일부 진보진영도 ‘뭘 얼마나 여자로 살아봤는지, 집안일을 도와보지도, 취업에서 차별을 받지도, 혼수와 시집살이에 설움을 겪어보지도 않았다, 가슴 달렸다고 다 대한민국 여자로 산 건 아니다’라는 비판에 공감하기 바쁘다. 지난 대선 전 "나처럼 애를 낳아 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고, 고3 수험생을 네 명은 키워 봐야 교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는 그 유명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말할 것도 없다. 롬니의 발언보다 어디가 ‘덜’ 나쁜가?

이에 대한 박근혜의 대답은? "꼭 노인이 돼봐야 노인정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이다. 여성학자 이박혜경은 결혼한 동료 페미니스트에게 “너도 가족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가족에 대해서 잘 알아야해”라는 말을 들은 경험을 소개하면서 여기에서 가족과 여성은 어떤 가족, 어떤 여성인지를 질문한다. 여성이 가족제도와 맺고 있는 관계는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결혼한 사람이 가족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다는 주장은 특권적인 이성애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보편적이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아니어도 이주민 관점에 기반한 정책을 펼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보기에 박근혜 후보의 대답은 자신이 정체성의 정치를 벗어난 인물이라는 점을 드러내면서도, 지금껏 ‘여성’이 국민됨을 인정받기 위한 거의 유일한 기준(재생산)마저 변화시킨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가 대단히 성찰적이고 인권감수성이 높은 인물이어서, 여성정치인의 상을 변화시킨 혁명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박근혜 후보가 왜 여성을 대표할 수 없는지 혹은 누가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그 기준이 ‘진짜 여자다운 여자’, 그래서 ‘진짜 국민’이라는 정상성의 규범을 구축하는 것에 맞추어져있기 때문에 발생한 효과이다. 그리고 그 정상성의 규범은 다른 사회적 주체들인 비혼 여성, 불임 여성,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 국제이주 결혼여성 등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차별받는 것으로 이어질 때(이것은 폭력이다), 효과를 발휘한다. 역사의식/정치의식은 박근혜‘만’ 없는 게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이 괴로운 이유

어떤 국민들은 대한민국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뉴스로 들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내 주변의 여성주의자들은 하나같이 복잡미묘한 표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를 둘러싼 정치담론을 지켜보며 페미니스트들이 괴로운 이유는, ‘여성’의 이름으로, 여성 존재를 젠더 경험만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진보와 복수를 막론한 가부장제 기획에 반대하면서도, 여성 정체성 사이의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만들면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국가/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질문하는 민주주의 정치를 시작해 나가야 하기 때문일 테다. 필요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참고자료]
* 이 글은 함께 분노해준 여성주의자 최이슬기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데일리안, “'육아 경험없어' 질문에 박근혜 "세종대왕은..."”, 2012년 7월 29일.
머니투데이, “박근혜 "노인 돼봐야 노인정책 만들 수 있는 것 아냐"”, 2012년 7월 29일.
오마이뉴스, “저소득층 '47%' 포기한 롬니, 과감하거나 무식하거나”, 2012년 9월 20일.
위키트리, “미트 롬니 '곤경'에 처하게 한 영상”, 2012년 9월 18일.
헤럴드 경제,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남녀별 지지율을 봤더니?”, 2012년 8월 4일.
박혜경, “가족을 넘어선 페미니즘 - 필요성, 가능성 그리고 미래”, 『여성주의 학교-간다』, 한국여성민우회, 2008.
전희경, “‘공정한 경쟁’? : 여성 할당을 둘러싼 담론의 젠더 정치”, <15%보다 뜨거운 평등 30%보다 절실한 민주주의> 토론회, 한국여성민우회 주최, 2012년 2월 19일. [보러가기]
주디스 버틀러·가야트리 스피박 지음, 주해연 옮김,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산책자, 2008.

덧붙임

몽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net/)의 채널[넷]에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