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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지배 권력은 ‘피해’와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신자유주의 형사정책의 이해를 위하여

형벌권의 비대화, 강성화 경향

3월 31일 국회를 통과한 법들을 일일이 나열하다 보니 가슴이 꽉 막혀온다. 게다가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2005년 폐지된 보호감호제를 부활하겠다고 공언하였고 사형집행을 재개하겠다고 한다. 치안불안을 호소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국가 형벌권의 강화정책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 중에는 위헌적인 부분도 있고, 형사정책의 합리성이 결여된 부분도 있다. 정책 하나하나에 대한 세세한 분석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왜 이렇게 강성 형벌정책이 판치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어떠한 담론이 작용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정치경제질서에서 이러한 형사정책은 어떠한 맥락이 있는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다.

강력한 형사정책은 아동 성폭력범죄를 계기로 2000년경 조짐이 보이기 시작해, 지금껏 확대재생산되었다. 3월 31일 국회를 통과한 법들은 ‘종합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전자발찌는 성폭력범죄에 대해서 적용하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동유괴범죄까지 포함되었다. 이어 3월 31일 국회를 통과한 법에 ‘살인범죄와 강도치사 등’으로 적용범위가 확대되었다. 전자발찌뿐만 아니라 신상공개, 치료감호제, 보호감호제 등의 강성 정책은 앞으로 적용대상이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이번 법 개정에서 주목할 것은 징역형의 상한을 30년으로(가중하면 50년) 높였다는 점이다. 실제 징역 30∼50년이 선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겠지만 범죄자에 대한 장기간 사회 격리와 강력한 응징을 표방하는 입법의 상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왜곡된 범죄 이미지의 재생산, 불안과 공포의 정치화

정부와 언론은 일부 극단적인 흉악범죄 사건을 교묘히 활용한다. 아동 성폭력범죄를 예로 들면, 정부와 언론은 “어느 날 낯선 성인이 나타나 연약한 아동을 상대로 흉악하고 파렴치한 범행을 저지른다”는 범죄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는 매우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실제 아동 성폭력의 70% 정도는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아동 성폭력의 실상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일부 극단적인 아동 성폭력사건을 이용하여 왜곡된 범죄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다. 연쇄살인사건도 마찬가지이다.

극단적인 사례를 언론이 집중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아동 성폭력범죄자는 ‘위험한 성향을 지닌 낯선 성인’이라는 왜곡된 범죄 이미지가 생긴다. 대다수 아동 성폭력범죄가 아는 사람에 의하여 발생하고 청소년 또래에 의한 아동 성폭력도 점점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실상은 외면된다. 게다가 성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다.

결국 시민들 사이에서는 치안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확산되고, 이것은 공권력 강화의 정당화 기제로 작용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위험’이라는 코드이다. 범죄에 관한 왜곡된 이미지에는 한결같이 ‘위험’ 코드가 내장되어 있다. 지극히 위험한 일부 몇몇 성폭력범죄자만 제거하면 아이들이 성폭력에서 안전한 세상에 살 수 있을 것으로 시민들을 호도한다.

‘피해자’의 이름으로

오늘날 형사정책은 ‘피해자 보호’의 관념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감시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위험한 범죄자’와 ‘선량한 피해자를 대비시켜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눈다. 이러한 이분법 구도는 범죄를 오로지 개인과 도덕의 차원으로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결국 범죄의 또 다른 원인으로 살펴야 하는 경제적 불평등, 빈곤, 사회적 소외 등 사회 구조와 성에 관한 왜곡된 관념 등 문화적 요인은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피해자’는 실제 범죄 피해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피해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재적 피해자’를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전략은 결국 모든 시민을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피해자’로 등치시킨다. 선량한 대다수의 시민과 대비되는 ‘위험한 범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배제정책을 통해 재범을 저지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피해자 보호정책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피해자 보호의 담론은 ‘위험통제’ 내지 ‘위험관리’의 코드와 결합한다. ‘위험한 범죄자’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하에 국가의 감시와 통제 권력을 본격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이 사회적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얻게 된다. 전자발찌, 신상공개, 치료감호제나 보호감호제 등 위험관리정책이 새로운 형벌정책으로 등장하고, 전통적인 형벌인 징역형이나 사형은 위험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시키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왜 ‘피해’와 ‘위험’의 코드가 확산되는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기본적으로 불안정성과 예측불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구조적 폭력에 무기력하게 노출된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주변의 불안정성 요소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이것이 오늘날 ‘피해’ 내지 ‘위험’ 코드가 확산되는 배경이 다.

이에 대응하여 신자유주의 법담론은 ‘개인책임의 원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본래 자유주의 이념에 근거한 근대 법담론에서 개인책임의 원리는 자율적 의사결정능력을 가진 주체들의 이성적 판단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다. 반면, 신자유주의 시대 법담론 속에서 개인책임의 원리는 다른 맥락과 양상을 지니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개인책임의 원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불안정성과 예측불가능성에서 초래되는 위험을 개별 주체들에게 전가하여, 개인들이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고 ‘법질서가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그에 대한 대비를 스스로 마련하도록 요구하는 원리로 자리 잡고 있다. 법질서의 허용범위를 벗어나서 시장질서에 위협을 가하거나 타인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도전은 허용되지 않는다. 소위 ‘법질서 이데올로기’와 ‘무관용 원칙’은 형사사법담론의 코드로 내장되고, 범죄가 사회구조적 조건이나 권력적 비대칭성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개인의지의 결과일 뿐이라는 관념을 주입시킨다. 그리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법질서를 위반한 개인을 엄격하게 처벌한다. 또한 범죄자가 공동체에 끼칠 수 있는 위험을 철저하게 통제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일반 시민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소위 ‘위험한 범죄자’에 대한 엄격한 감시와 사회적 배제를 요구한다. 범죄를 낳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범죄를 오로지 개인의 잘못(개인의지의 문제)으로 간주하며, 엄격한 처벌 및 사회적 격리를 정당화하는 법담론이 이에 조응한다.

이러한 법담론은 형사사법에 있어서 두 가지 현상을 동반한다. 첫째, 형사사법은 신자유주의 시장질서의 자율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전제로 하여 시장 내부 혹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불안정성의 요소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의 형벌 권력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위험의 정도’에 따라 통제되어야 할 행위를 선별하게 된다. 파업 등 노동문제에 대한 형사법적 통제가 더욱 강화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네르바 사건이나 언소주 사건은 그 자체로는 결코 심각한 범죄가 아니지만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시장질서의 불안정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엄격히 통제되어야 할 범죄행위로 인식된다. 둘째,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통제하는 원칙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반대로 개개인이 시장질서에 적응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원칙, 법규범을 위반한 개인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통제를 정당화하는 원리로 변질된다.

‘공익’ 내지 ‘공공성’의 왜곡과 변질

정부는 형사적인 규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공익에 대한 피해’라는 관념을 유포한다. 예를 들면, 노조의 파업은 시민들의 발을 묶어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야기한 범죄로 개념화된다. 조중동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한 1차 ‘언소주’ 사건에서 검찰은 네티즌들의 전화공세로 인하여 해당 기업들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점을 구체적인 손해액까지 들먹이면서 강조했다. 사실 업무방해죄에서 경제적 손실은 구성 요소가 아니다. 또한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사건은 시청 앞과 광화문을 뒤엎은 집회참가자들로 인하여 도심교통이 마비되고, 이로 인하여 무고한 시민들이 엄청난 고통과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점이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다. PD수첩 사건이나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 무분별한 언론보도나 인터넷상의 표현이 국가 혹은 국가기관의 정책적 신뢰성의 상실을 야기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의 신인도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는 점이 ‘공익’이라는 해석코드로 등장하고 있다.

흔히 시장의 위험관리는 경제학과 통계학의 지식에 근거하여 대단히 분석적으로 행해질 뿐만 아니라 언제나 수치화된 위험지수로 등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형사사법에서 ‘위험’이라는 코드는 경제학적 수치화의 기법으로 자주 동원되고 있다. 이 때 ‘위험’의 코드는 법익 주체 간의 소통의 경험으로부터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본의 언어’로 규정된다.

자본의 언어로 해석되는 위험 개념은 형사사법의 담론에서 ‘공공성’의 영역을 파괴하고 ‘공공성’의 개념을 변질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집회·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적 의사소통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본과 그것을 후원하는 국가작용의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차원에서 다루어질 뿐이다. 집회․시위의 불법성에 대한 법담론에서는 언제나 다수 시민들의 원활한 도로교통을 방해한 것으로 불법성이 상징화 된다. ‘공공성’은 민주주의적 의사소통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정의되지 않으며, 오로지 개별화된 개인들이 공통으로 향유하는 사적 이익이라는 차원에서 정의될 뿐이다. 공적인 것은 사적인 것의 단순집합으로만 개념화되며, 여기에서 ‘사적 이익의 총체’로서 정의되는 공익이란 결국 자본의 이윤창출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위험감시정책의 본격적 강화

형사정책의 핵심은 분명 ‘위험관리’를 지향하고 있다. 단지 엄중한 처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위험한 인물’에 대한 통제를 위하여 국가의 감시 및 통제 권력을 총체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형사정책의 핵심이다. 전자발찌, 신상공개 등이 대표적인 위험관리 전략이며, CCTV감시의 강화라든가 범죄자에 대한 유전자정보데이터베이스 등이 병행한다.

국가의 감시 및 통제 권력의 확대는 ‘위험한 인물 내지 집단’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복종과 강제의 전술을 일상화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가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확장에 대하여 “인권의 후퇴”를 말한다면 이 지점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수많은 감시체계가 작동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감시시스템은 시민에 대한 권력적 복종과 배제의 전술을 확장시키는 모태가 된다. 감시를 통하여 축적된 정보는 결국에는 분석되고 분류․체계화될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정보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소위 ‘위험한 인물’의 유형이 만들어지고 위험도가 측정되며, 위험한 인물이나 집단에 해당하는 사람에 대한 통제와 감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감시권력의 속성은 분류를 통한 통제에 있다. 분류는 예측과 재단을 통하여 시민들에 대한 차별적 통제를 정당화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인권담론의 사회적 기반을 붕괴시킬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길이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이미 그 길로 접어들었다.

인권운동 진영의 대안은 무엇인가? 위와 같은 상황인식이 유효하다면, 어떤 형벌정책이나 제도 하나하나에 대한 단편적인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가혹한 응징과 감시 위주의 형벌정책이 범죄예방에 비효율적이라는 반론도 더 이상 의미 있는 테제가 될 수 없을 듯하다.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피해’와 ‘위험’의 코드로 무장한 형사사법의 담론이 국가형벌권의 확대와 차별적 적용을 정당화하고 이것이 결국 민주주의와 공공성, 인권의 위기를 가져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대한 인권운동진영의 대응전략 역시 근본적인 지점을 향해야 할 듯싶다. 앞으로 이 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2010.3.31. 국회를 통과한 법률 개요

○ 「형법」개정법률안
• 유기징역의 상한을 15년에서 30년으로, 형을 가중할 경우에는 50년까지로 상향
• 무기징역의 가석방요건을 10년에서 ‘20년 이상 복역한 자’로 상향조정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죄의 법정형을 종래 “7년 이상의 징역”에서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높이는 등 법정형 상향조정
• 음주나 약물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법 제10조 제1항 및 제2항(책임무능력규정 및 한정책임능력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
• DNA증거 등 입증증거가 확실한 성폭력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를 10년 연장
• 성폭력범죄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근거규정 마련
• 성인 대상 성폭력범죄에 대해서도 신상정보의 등록 및 공개제도, 고지제도를 새로이 적용

○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 신상정보등록 및 공개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늘림
• 신상정보를 우편으로 지역주민에게 알려주는 고지제도 신설

○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 전자발찌의 적용요건을 대폭 완화
• 성폭력, 미성년자유괴범죄 외에 살인범죄와 강도치사죄 등을 전자발찌 부착대상으로 추가
• 부착기간을 10년에서 30년까지로 대폭 상향 조정
• 전자발찌의 소급적용에 관한 근거규정(부칙 제2조) 마련
덧붙임

이호중 님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